444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 2 )
“흐아아암.”
턱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얼마 만에 푹 자본 건지, 아주 그냥 온 세상이 화사하게 보인다.
기계적인 동선으로 씻은 다음 출근 준비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탔다.
핸드폰을 꺼내 게임에 접속했다.
‘우선… 일꾼 1호를 회수해야지.’
그동안 펜리르한테 정신이 팔려서 일꾼 1호의 회수를 깜빡했다.
솔직히 일주일 동안 이세계에 방치한 것이라,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일꾼 1호는 무사히 성지에 돌아와 있었다.
– “저와 리아가 데려왔습니다. 위대하신 분께서는 심히 바빠 보이셨기에.”
– “선배님이랑 제가 했답니다.”
SD 케넬름과 SD 리아가 다부지게 말했다.
휴, 안심된다. 믿음직한 보좌관들이다.
– “헌데 위대하신 분이시여. 그… 지난번 성도에서 말씀하신 내용에 대한 것은 어찌… 하실 생각이신가요?”
리아가 쭈뼛거리며 질문했다.
저번에 성도에서 내가 말한 내용? 그게 뭐였지? 잠시 머리를 굴리며 기억을 훑었다.
일주일 동안 퇴근하고 매일 영혼의 바다에서 해녀 노릇을 했더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 “성도에서 심연이 만들어진 이유와 악마들의 기원에 대해서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아.”
기억났다.
펜리르가 말하라고 해서 말했었지.
– “아무래도 그간 알고 있던 것들이 송두리째 바뀌는 것이기에, 적지 않은 혼란이 예상됩니다…. 의외로 지금까지는 조용했지만요.”
–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던진 폭탄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그런데 뭐, 이건 생각보다 수월하게 수습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내가 신이니까, 내가 그럴듯하게 이유 붙여서 설명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그렇다고 하면 너희들이 뭐라고 반박할 수 있는데.
회사에 도착한 다음 늘 평소와 똑같은 일과를 수행했다.
밀려오는 업무를 소화하고, 내 일이 아닌 것은 다른 사람에게 던지고, 박덕춘 부장을 따라서 온갖 미팅에 참석하고, 업무 전화에 대응하고….
그러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끝난다.
‘벌써 밤 9시라고?’
사람이 너무 바쁘면 퇴근도 빨리 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덜컹거리는 버스에 늘어진 몸을 던지듯 실어 넣은 뒤 집에 도착했다.
“으어.”
풀썩 침대에 몸을 던진다.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과로사로 죽고 말 거야.
“…내가 죽으면 이세계 전생하려나?”
그런 실없는 생각이나 하며 한참이나 누워있다가 핸드폰을 꺼내 게임에 접속했다.
출근 버스에서 접속하고 이제야 두 번째 접속이다.
“으그그그극.”
밀려있는 장비들을 한 번에 수령하고, 다시 무기를 만들도록 주문하고….
춤추고 있는 이베르 꼬리도 한번 슬쩍 당겼다.
– 삐이이익?!
“아, 맞다. 일꾼 1호가 탈주했었으니까 얘네 노동 환경도 슬슬 개선해줘야 하는데.”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세계에서 마음껏 금속을 두들기던 일꾼 1호의 표정이 한없이 밝았다는 것이다.
성지에서는 보여준 적 없는 표정이었다.
“에휴. 할 일이나 해야지.”
머리 아픈 고민은 잠시 저쪽 한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이제 사회인에서 한 세상의 신으로 다시 일을 시작할 시간이다.
* * * * *
“허어.”
“끄응.”
결투 축제가 끝난 이후, 성도의 만신전은 알게 모르게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마왕 발가르에게 무력하게 당했다는 패배감도 있었지만, 신께서 직접 심연과 악마의 기원에 대해 말씀하신 것도 있었다.
“심연이 하나 된 분의 실수로 만들어진 차원이라니….”
“악마의 기원이 어찌 과거의 생명체일 수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신의 실수라니?”
골방에 모인 대사제들이 머리를 싸맸다.
모든 이치를 꿰뚫고 계시는 분께서 실수하시다니. 신이란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었던 말인가?
“신께서 실수하셨다는 것은… 설마, 신께서 전지전능하시지 않다는…”
“어허! 불경입니다 불경!”
오죽 혼란스러웠으면 이런 말까지 내뱉었을까.
평생 신학을 공부한 이들에게는 완전무결한 존재인 신의 실수라는 것을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신도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일단 썩 나쁘지는 않습니다. 뭐, 조금 축 처진 모습이 있기는 한데…. 그건 마왕에게 두 번이나 당했다는 것 때문이지, 심연과 악마 때문은 아닙니다.”
“그런가요? 그건 좀 의외군요.”
“아무래도 일반 신도들은 신께서 모두 뜻하신 바가 있으리라 믿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사제들의 머리에 보이지 않는 벼락이 떨어지는 듯싶었다.
일반 신도들은, 백성들은 그저 신을 믿고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신께서 안배하고 계심이라 믿고 따름이다!
그런데 여기 모인 대사제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사제들의 정점이라는 대사제가 되어서는, 신의 실수라는 말에 홀려 미혹이 가득 차지 않았는가.
“……우리가 애초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었군요.”
“그렇습니다. 모두 신께서 뜻하신 바가 있을 지언대. 어찌 대사제라는 작자들이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었단 말인지.”
“정녕 그러합니다. 선과 악, 모두 신께서 빚으심이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위대한 깨달음이 대사제들을 스쳤다.
강철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들겨야 하는 법.
그렇구나!
신께서는 선과 악을 모두 창조하셨구나! 악을 이겨냄으로써 우리의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담금질하시려는 것이었구나!
대사제들은 신의 경이로움에 몸을 떨었다.
“회개해야 합니다. 기도로 속죄해야 합니다.”
숙연한 기도의 시간이 흘렀다.
예전의 광기 넘치는 대사제들이었다면 가시 달린 채찍으로 스스로의 등을 내리치는 고행의 시간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이렇게나 의젓하게 기도로 회개하는 모습이라니.
그들도 성장하는 인간이라는 증거였다.
쿠르르릉ㅡ!
맑은 하늘에서 커다란 우렛소리가 울렸다.
범상치 않은 번개가 우르릉거리며 하늘을 달린다.
사람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너나 할 것 없이 하늘을 올려봤다.
태양 아래 사그라지지 않는 일곱 개의 별이, 눈동자를 그리며 지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듣거라. 나의 말을 듣거라.》
거룩한 음성이 메아리친다.
아이와 노인 음성, 여자와 남자의 목소리가 한데 섞여 외치는 듯 기묘하고 웅장한 음성이었다.
“아아. 아아아! 듣고 있습니다. 당신의 종이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대들에게 내가 악마를 만든 것에 대해 말해주고자 하노라.》
대사제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하늘을 향해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하얀 수염과 속눈썹이 눈물로 촉촉하게 젖었다.
“아아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당신께서 선과 악을 창조해냈음을 알고 있습니다!”
“모진 비바람을 이겨낸 나무가 더 울창하고 크게 자라는 것처럼. 당신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기 위함으로 악을 만드셨음을 저희는 알고 있나이다!”
행여나 신에게 닿지 않을까, 신성력까지 써서 외쳤기에 누구 하나 듣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인 사람들이 술렁이며 속삭였다.
신께서 그런 이유로 악마를 만드신 거였어?
아,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면서 더욱 굳건한 신앙심을….
그러면 저번에는 왜 실수로 심연을 만드셨다고 한 거지?
바보야 그것도 몰라? 일부러 악을 만들었다고 하면 우리가 신을 원망하는 중죄를 저지를까 봐 그러신 거잖아!
아! 그런 거구나!
술렁술렁, 파도처럼 전해지는 말과 깨달음이 깊은 감동을 타고 흐른다.
“하나 된 분이시여, 어찌 모자란 저희들이 당신을 원망할 수 있겠나이까!”
“어흐흐흑. 신을 원망하는 죄를 저지를까 봐, 실수로 악마를 만든 것이라는 거짓말을 하시다니…. 당신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습니다…!”
《……….》
신께서는 잠시 말없이 지상을 굽어살피셨다.
《…… 내 너희들을 너무 어리게만 보았구나. 참으로 기특하도다. 나의 진의를 파악하다니.》
“아아아ㅡ! 찬미, 찬미합니다! 당신의 거룩함을!”
《선과 악을 빚음에, 선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라 내보이지 않도록 귀하게 다루며 숨겨두었으니.》
신의 거룩한 음성이 이어짐에 따라 사람들이 귀를 쫑긋 열었다.
개중에는 흙바닥에 급히 신의 말씀을 따라 적는 이도 부지기수였다.
《악이라는 것은 너희들을 괴롭히고 유혹하는 모든 것들이요. 선이라는 것은 너희들을 이끄는 모든 가르침과 선한 마음가짐일지니.》
참으로 거룩한 가르침이라.
옥고 같은 말씀이 영혼을 타고 흐르며 모든 번뇌가 씻겨 흘러가는 착각마저 들었다.
《……모든 악의 제왕, 발가르 칸 가르데나 또한. 너희들이 끊임없이 대항하고 또 저항해야 하는 악을 의미하노라.》
“아!”
끔찍하도록 두려운 존재였던 발가르 칸 가르데나!
그 사악한 존재마저 위대한 신의 의도 아래 탄생한 존재였단 말인가.
《그러니 너희들은 끝없이 악에 저항하라. 번민하고 발버둥 치며 머나먼 선을 추구하라. 나의 검이 모든 악을 꿰뚫을지니.》
신의 검.
반사적으로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가며 붉은 머리카락을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케니스가 조심스레 얼굴을 들었다. 자신이 언급될 줄 몰랐다는 표정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약간의 부담감이 얹어진 모습.
하지만 금세 의연한 모습으로 모두의 기대를 짊어졌다.
“…….”
한스의 눈에는 그 모습이 조금 불안해 보였다. 아직 어린 소녀의 어깨에 올라간 것들이 너무 많았다.
만약 자신이 조금이라도 그녀의 곁에서 도와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케니스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밝아지지 않을까.
“…그러려면 우선 팔라딘 일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귀신처럼 다가온 데모닉이 한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한스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마침 좋은 기회군.》
뒤에 서있던 유니콘이 갑자기 하늘을 박차 오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신의 눈동자에 닿을 듯 하늘 높이 올라간 유니콘이 무어라 아뢰기 시작했다. 너무 먼 거리여서 들리지는 않았다.
‘……차원……, 경계? 이상……….’
그런데 한스는 바람을 타고 유니콘의 말을 드문드문 엿들을 수 있었다. 엘프 뺨치는 청력이었다.
“으음? 유니콘이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한스 경, 혹시 뭐 아는 거 있나?”
“어, 글쎄요. 저도 잘.”
한스가 모른 척 어깨를 으쓱였다. 다른 사람들도 멍하니 고개를 빼 들고 유니콘을 바라봤다. 매일 처녀만 따지는 신수였지만 그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왱알왱알.
《……허?》
이내 지상을 굽어보던 별빛이 사라졌다.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드디어 금요일…!!! 독자님들 모두 한 주의 고단함을 푹 씻어낼 수 있는 주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ppark 2013’님…!! 후원 감사합니다!!! 444 채우기 연참 대신…!! 독자님을 향한 저의 사랑을 곱빼기로 담아서 드리겠습니다…!! 맛잇게 드세욧…!! 오이시꾸 나래~ 모에모에 뀽♡♡!!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독자님도 아프지 말구 항상 건강하세요…!!! 제가 코로나에 한번, 아니지 두번째로 걸려보니까 언제라도 건강이 최우선의 재산입니다 정말로…!! 요즘 일교차가 심하니까, 항상 따뜻하게 입으시고…!! 수분 모충도 잊지 말아주세욧…!!
– ‘신선우’님…!! 후원 감사합니다…!! DLC… 만약 완결 후 외전을 쓴다면… 본편에서 다루지 못한 여러 떡밥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신의 무기를 받은 여러 인물들의 뒷이야기를 조금 더 집중적으로 다룬다던다가… 연옥에서 전생한 폴 할아버지의 이야기, 혹은 황금 기병대에 소속된 라이언하트의 이야기, 애덤과 그의 제자들 등등…!!
아니면 주인공이 일반인의 시선으로 이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도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