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7화. 침식 ( 2 )
부리나케 해안가로 달려간 경비대장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머, 멈춰! 다들 멈춰라!”
물고기 마수가 최초로 발견된 해안가에는 이미 증원된 병사들이 가득했다.
어림잡아도 그 수가 오십 명은 넘는 듯했다.
“흐아아아악…! 으아아아아!”
“아, 아아아아. 어, 엄마, 엄마. 나, 다리, 다리가 아파…….”
패닉에 빠진 병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사경을 헤맸다. 아무렇게나 잘린 팔다리가 굴러다녔고, 밀려오는 파도는 흐르는 피에 섞여 붉은 거품을 일으켰다.
“끄르르으흐으윽….”
온전하게 서 있는 사람은… 없다.
이 참사를 목도한 경비대장은 본능적으로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여덟 개의 다리, 비늘 가득 자라난 눈동자, 채찍처럼 늘어진 혓바닥.
모든 것이 전해 들은 그대로의 외형이었다.
“후윽, 후으읍….”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한다. 경비대장은 저도 모르게 헛구역질할 뻔했다.
“ㅡㅡ우윽!”
제 헛구역질 소리에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들었나? 설마 녀석이 들었을까?
쿵쾅거리는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경비대장은 한참이나 귀를 기울였다.
들려오는 것은 세차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저 멀리서 끄르륵거리는 마수의 울음소리.
‘못 들었구나….’
경비대장이 작게 안도의 숨을 뱉었다.
만약 녀석이 귀라도 좋았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뻔….
‘ㅡ아차!’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경비대장의 안색이 꺼멓게 죽었다.
아니기를, 제발 아니기를.
경비대장은 간절히 기도했다. 자신이 여기까지 뛰어오며 생각했던 것이 그저 가설에 불과하기를.
꾸드드득, 뚜드득! 콰지직!
살점과 뼈가 찢어지고 부러지는 파육음.
조심스레 바위 너머로 눈을 내민 경비대장은, 자신의 눈을 파버리고 싶었다.
“끄히ㅡ르르륵! 꺄하으으으윽…!”
물고기 마수의 몸이 변화한다. 검붉은 근육과 살갗이 자라나더니, 물고기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귀 한 쌍이 돋아났다.
“후욱. 후으윽….”
도망쳐야 한다.
경비대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두 다리는 주인을 살리기 위해 하늘을 날듯 땅을 박찼다.
달려라, 달려!
경비대장은 눈을 꾹 감고 달렸다. 이대로 달리기만 하면 살 수 있다.
녀석은 걷는 속도가 무척 느리다고 했으니, 갑자기 빨라지는 것만 아니라면ㅡ
짜악!
자신의 뺨을 내려쳤다. 더 이상 생각하면 위험했다.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를 생각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겪을 뻔했다.
“허억, 허어어억…. 꺼흑, 후윽…!”
경비대장은 턱 끝까지 올라온 숨을 가쁘게 뱉었다.
달리면서 자신의 뺨을 얼마나 내리쳤는지, 두 뺨이 보라색으로 퉁퉁 부어버렸다.
“대, 대장님! 뺘, 뺨이…? 괜찮으십니까? 아! 그보다 지금 한창 찾고 있었습니다. 지금 비상 소집으로 다들 모여있습니다. 어, 그 일단 가시죠.”
병사 한 명이 완전 무장을 갖춘 채 경비대장에게 다가왔다.
보라색으로 부은 경비대장의 뺨을 보며 흠칫 놀란 기색이다.
“…허윽, 후으읍…. 애들 열 명만 뽑아서 해안가 주변을 통제하고. 아니, 아니지. 후우.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소집된 애들 전부 해산해, 당장!”
“예, 예? 하, 하지만 그 주변에 마수가 나타났다고ㅡ”
“염병, 내가 책임질 테니까 당장 애들 해산시키라고! 내가 직접 보고 왔는데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하잖아!!”
경비대장이 병사의 목을 붙잡고 고함을 질렀다.
그 기세에 놀란 병사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리나케 사라졌다.
“커흐윽. 후우우…. 젠장, 젠장!”
경비대장이 사나운 표정으로 바닥을 노려봤다.
경비대장을 무려 15년이나 했다.
당연히 온갖 괴수와 마수를 마주했고, 상대했고, 살아남았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젠장. 말도 안 되는 괴물 녀석이 튀어나왔어.’
그가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바다에서 올라온 마수에게 상식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다의 마수는 육지의 것들과 달리 형태도 다르고, 전투법도 천차만별이었다.
간혹 외형이 비슷하더라도 주변 환경에 의태 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폭발하는 가시를 발사하는 녀석도 있었다.
경비대장은 바다 마수의 기상천외한 싸움법에 질리도록 익숙해진 사람이었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녀석은 드물지만 가끔 있었어.’
이번에도 그런 종류의 마수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터무니없는 오판이었다.
경비대장은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변하는 종류의 마수를 본 적 있었다.
명백히 다르다.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으로 외형을 꾸며내는 것과, 자신의 몸을 진화시키는 것은 명백히 다른 영역이었다.
녀석의 능력은, 더욱 기괴하고 괴상한 무언가였다.
‘마치, 내 생각을 그대로 읽은 것처럼….’
만약 정말로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이라면, 그에 맞춰 더욱 위협적으로 ‘변화’한 것이라면. 그토록 끔찍한 것도 없을 것이다.
“알려야, 알려야 한다. 이, 이 사실을 알려야…!”
누구에게?
이걸 알려도 되나?
저 마수의 능력이, 자신이 상상한 것이 맞았다면.
‘최대한 적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
인간의 상상력이, 저 마수에게는 성장의 양분이 되는 셈.
시간이 충분히 흐른다면 저 마수는 얼마나 끔찍한 괴물이 될 것인가.
부르르 몸을 떤 경비대장이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 * * * *
으적으적.
■의 눈을 피해 일부러 지상의 차원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곳으로 숨은 데보라.
열심히 입을 놀리며 어딘가로 헤엄치고 있었다.
《크흐. 지금쯤이면 충분히 씨앗이 피어났겠군.》
찬찬히 때를 헤아려보니, 지금쯤이면 자신이 심어둔 씨앗들이 발아하기 시작했을 때쯤이다.
데보라가 즐겁게 킬킬 웃음을 흘렸다.
《크흐흐흐흐. 녀석의 당황한 꼴을 직접 봤어야 했는데!》
지상의 차원 주변을 갉아먹으며, 일부러 차원의 벽을 매우 얇게 만들어뒀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자신의 살점을 일부 떼어내 숨겨뒀다.
충분히 약해진 차원의 균열이 깨지면 살점이 지상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데보라의 권능은 ‘적응’과 ‘포식’.
떼어낸 살점 또한 데보라의 권능 일부를 담고 있다.
어디까지나 일부였기에 ‘적응’이라는 권능의 티끌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꽤 골치 아플 거다.》
■이 나선다면 벼락 한 방에 잿더미로 변할 녀석들이지만.
그 수가 개미 떼처럼 많다면? 그것도 온 사방에 가득하다면?
모르긴 몰라도 ■의 눈을 잠깐이나마 돌릴 수 있을 것이다. 환영 인사로는 충분하리라.
그리고ㅡ
《아. 드디어 도착했군.》
■의 눈을 지상 주변의 차원에서 돌리려면, 더 커다란 스케일의 사건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으저적.
데보라의 아가리가 힘차게 차원의 일부를 삼켰다.
크게 벌어진 차원의 균열, 그 너머로 보이는 곳은….
“자아, 자! 둘이 먹다가 둘 다 환생해도 모르는 국수!”
“할아버님, 제 손 잡으세요. 여기서는 저를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셔야 해요.”
“그으, 내를 여까지 데려온 훤칠한 총각 못 봤는감? 도대체 어디로 간겨?”
우글우글 모여있는 사람들과 커다란 날개를 달고 있는 이들이 가득한 장터의 한복판.
제대로 찾아왔음을 확인한 데보라가 찢어지듯 미소를 지었다.
* * * * *
영 찝찝하다.
차원의 틈에서 헤엄치던 미꾸라지 같은 놈을 놓친 지 벌써 며칠이나 지났다.
그 이후로 눈에 불을 켜고 차원의 틈을 모니터링했지만, 녀석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휘청.
“으앗.”
오랜만에 눈동자를 두 개만 쓰려니까 살짝 낯설다.
그동안 차원의 틈을 갉아먹은 녀석을 잡는다고 눈동자만 수백 개를 부릅뜨고 있었던 후유증이다.
눈을 부비며 애써 균형을 잡았다.
우웅ㅡ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열어서 확인했더니 은행에서 보낸 문자였다.
《고객님께서 가입하신 채움 적금이 곧 만기 예정입니다.》
“으아아아아아ㅡ!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내 월급의 절반이 고정적으로 들어가고 있던 적금의 만기일이 다가온다.
이 빌어먹을 적금만 만기가 된다면, 지금처럼 생활고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빌어먹을 콩나물에 밥을 비벼 먹을 필요도 없다.
밀려오는 고단했던 나날들.
나는 허공에 어퍼컷을 날리며 인간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휘청.
“우왁.”
혼자 생쇼 하다가 또 넘어질 뻔했다.
“응? 뭐야, 박 주임. 어디 몸 안 좋아? 사람이 왜 그렇게 휘청거려?”
언제 다가온 것인지 박덕춘 부장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 아뇨. 어제 조금 못 잤더니 살짝 어지러워서.”
“쯧. 젊은 사람이 벌써 그렇게 허약하면 쓰나? 나는 그 나이에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일했는데.”
“와. 하하. 그러시구나.”
박덕춘 분장의 라떼 타임. 영혼 없이 대꾸하며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그, 뭐냐. 이거 먹고 좀 쉬면서 일해.”
“…? 아. 감사합니다.”
박덕춘 부장이 주머니에서 도라지 꿀물을 하나 슥 꺼내서 주고 갔다. 설마 박덕춘 부장이 먹을 걸 챙겨줄 줄은 몰랐기에 살짝 얼떨떨했다.
“부장님이 저렇게 먹을 걸 챙겨 주시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우리 막내가 일을 잘하기는 하나 보네. 부장님이 직접 먹을 것도 주시고. 좋겠는데?”
좌우에서 과장님과 차장님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박덕춘 부장이 준 도라지 꿀물을 마셨다. 뜨끈하니 몸에 활력이 조금 도는 듯싶다.
“후우.”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이다.
은행 만기 적금이 가까워졌고, 박덕춘 부장이 흔치 않게 호의를 보여준 날.
느낌이 좋다.
조금이지만 열심히 일할 의욕이 생겼다.
좋아. 오늘도 어떻게든 견뎌보자.
‘그러고 보니까 연옥에 인력 보충도 해줘야 하는데.’
일하다 보면 가끔 연옥과 탄탈로스를 더 효율적으로 바꿀 방법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럴 때는 잊지 않고 바로바로 핸드폰에 메모했다.
‘가이에드랑 미카에르한테 공개 시험을 치르자고 하자. 재판장으로 올라가고 싶은 애들한테 신청받아서 공개적으로 시험을 치르면….’
그렇지 않아도 가이에드랑 미카에르가 2교대로 일하느라 반쯤 죽어 나가던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좋아할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니 또 가슴 속에서 흐뭇한 감정이 번진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만든 내 자식… 비슷한 애들이니까.’
물론 금쪽이 발가르도 내 자식… 비슷한 무언가다.
나를 꼬박꼬박 어버이라고 부르기도 하니까.
타다다다닥, 타닥ㅡ
머리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몸은 정신없이 움직이며 문서와 자료를 정리하고, 통화하고, 가끔은 수화기 너머로 고함을 질렀다.
우웅ㅡ!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와중 핸드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슬쩍 곁눈질로 확인했더니, 게임에서 올라온 알람이다.
‘…케넬름?’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이렇게 가끔 게임에서 알람이 올 때마다 뭔가 큰일이 한 번씩 터졌는데.
“꿀꺽.”
…방금까지 나를 감싸고 있던 기분 좋은 운수가 날아가는 착각이 든다.
‘오늘의 끝까지 운수가 좋을… 좋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헉, 신의 눈길을 피해 지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부질없다는 것을 알지만 지하로 피할 수 밖에 없는 운명…! 영원토록 밤이 계속되는 세계, 하늘에는 태양과 달은 사라지고 오직 별이 가득한 세계…!! 그 모든 별이 신의 눈동자…!! 이 무슨 코스믹 아포칼립스적인 상황인가요??!! 정말 꿈도 희망도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