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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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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0화. 돌이킬 수 없는 실수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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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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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ㅡ 삐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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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 성에 커다란 균열이 열리더니 짙은 갈색의 용을 뱉어냈다.

        균열에서 튕겨 나온 용은 한참이나 바닥을 구르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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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튼튼한 용의 육체는 고작 바닥을 구른 정도로 다치지 않았다.

        용은 정신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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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한 달도 살지 못한 새끼 용의 기억과 수천, 수만 년을 살아온 고룡의 기억이 한데 뭉쳐 뒤섞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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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응…. 머, 머리가 아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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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기를 한참.

        마침내 눈동자에 현기가 돌아온 용이 머리를 붙잡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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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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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츰차츰 새끼 용의 기억이 수면 위로 떠 오른다.

        용은 수십 일 간의 짧은 기억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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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부화, 얼음 성, 외로움, 보호자, 선물, 균열… 그리고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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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렇군. 그렇게 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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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의 보호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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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룡의 시각에서 보호자는 선인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어리고 미숙한 자신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고룡이 된 지금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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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자는 태생부터가 사악함으로 빚어진 존재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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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그것이 존재의 본질을 정의하는 것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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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생이 사악하게 태어난 존재는 변할 수 있는가.

        대지고룡은 존재의 본질이 변할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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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보호자 또한 사악한 본성을 이겨내고 점차 어린 자신에게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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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 기억은, 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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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흙을 반죽해서 선물했다고?

        으에?

        거기에 엉덩이춤까지 췄어?!

        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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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 현자라고 불리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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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자신을 현자라고 불러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아무튼 용은 자신을 용의 현자라고 자칭했다.

        앞발을 붕붕 휘두르며 기억을 날려버린 용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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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응. 이럴 때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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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자는 무너져가는 기묘한 공간에서 자신만 탈출시켰다.

        그 눈빛. 모든 희망을 놓아버린 자의 것이었다.

        붕괴하는 공간에서 나오지 않을 작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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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살리고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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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시가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용은 썩 즐거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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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자신이 죽음에서 돌아왔는지, 보호자는 어떻게 자신을 얻게 된 것이며, 자신이 죽은 후 도대체 몇 년 만에 깨어난 것이고, 보호자는 도대체 뭐 하는 인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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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저것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미지는 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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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쩌저적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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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이 발톱을 내리긋자 차원의 벽이 부서졌다. 갈색빛의 용은 균열 너머로 몸을 쓱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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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구구궁! 콰르르릉! 콰앙! 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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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다섯 신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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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장 보이는 풍경에 용은 혀를 찼다. 사방팔방에서 무너지는 기둥들, 붕괴하는 공간, 그 가운데에서 망연자실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의 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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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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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푹 숙인 고개.

        용은 조용히 보호자 옆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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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용의 기억에서 보호자의 등은 한없이 넓고 컸는데, 어찌 이리 작고 왜소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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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욱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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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수 없는 감정에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시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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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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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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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발가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상대를 확인하자 탁하게 풀렸던 눈동자에 번쩍 생기가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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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너 새끼 도마뱀 녀석! 네, 네 녀석이 어떻게 다시 이곳에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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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균열 너머로 보냈던 새끼 용이 어떻게 다시 돌아왔단 말인가?

        그것도 무너지고 있는 차원의 틈에 돌아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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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어떻게 다시 돌아온, 아니,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다. 어서 다시 도망쳐라! 여기 있으면 너도 휘말리고 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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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도망치게 한 다음에 너는 이곳에서 죽을 속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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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치만 커진 건 아닌 모양이군. 너는 내가 알던 그 조그만 용이 맞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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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건 용도 확신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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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은 그렇다고 하자. 음. 나는 ‘나’의 과거이자 미래에서 왔다고 해야 할까? 그보다 지금은 더 급한 일이 있는 것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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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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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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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지는 기둥이 발가르와 용을 덮쳤다. 발가르는 얼어붙은 탄식을 휘둘러 기둥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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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여긴 진짜 특이한 곳이네. 정말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는 곳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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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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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묘한 공간이다. 

        지금도 사방에서 무지막지한 압력이 쏟아지고 있었다. 용의 신체는 이를 거뜬히 이겨내며 도리어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냈다. 

        실시간으로 근육과 혈관이 압력에 눌려 찢어지고 재생하기를 반복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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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이 공간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거지? 내가 도와주도록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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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무슨 수로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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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법이 있거든.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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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 현자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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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어, 어린 내가 꼬, 꼬리 춤을 춘 것 있잖아? 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매, 맹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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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그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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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그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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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 비늘이 붉게 달아올랐다. 꼬리를 땅에 내려치며 분함을 표시했다.

        겨우, 겨우라니! 자신이 꼬리 춤을 췄다는 것이 알려지면 얼마나 수치스러운 사실이 될 것인가! 비늘이 몽땅 빠지는 순간까지 놀림 당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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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리 춤이 허락되는 건 비룡까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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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무튼 맹세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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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바보 같은 짓이군. 일단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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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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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 현자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이걸로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는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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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는 조금 한심한 눈빛으로 용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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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보다 더 멍청해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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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맹세한다는 말도 안 했는데?

        이렇게 쉽게 믿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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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딴게 새끼 용의 미래?

        발가르는 살아서 돌아간다면 새끼 용의 교육을 철저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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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고룡이 발가르의 발칙한 생각을 알았다면 가슴을 치고 분개했을 것이다.

        어린 자신의 기억 속에서 보호자는 퉁명스럽지만 자상한 모습을 보였으니, 이를 근거로 선인이라 규정하여 믿었을 뿐이거늘.

        발가르의 망상에서 고룡은 단숨에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 난만하여 사기당하기 딱 좋은 천치가 되어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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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똑똑히 보도록 해! 이게 용의 위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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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깝게도 타인의 생각을 읽는 재주가 없던 용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쏟아지는 압력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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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시간으로 근육과 혈관, 뼈가 부서지고 재생하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더욱 질기고 튼튼하게 자라났고, 이는 곧 성장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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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음. 지금 이 정도면… 성룡의 중간쯤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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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은 성장함에 따라 발휘할 수 있는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달라지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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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으으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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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숨을 마신 용이 사방을 향해 숨결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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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아아아아아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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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룡이 진흙을 토하던 것과 수준이 달랐다. 거대한 산을 쏟아내듯, 막대한 바위와 토양이 산사태처럼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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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굵고 거대한 바위 거목이 만들어진다. 우뚝 솟아난 바위 거목은 크고 높게 자라나며 무너지고 있던 골조를 붙잡았다. 

       

        대지용이 여기저기 숨결을 뱉을 때마다 바위 나무가 쑥쑥 자라나며 골조를 얼기설기 엮어내고, 붙잡고, 고정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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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듯이 흔들리던 공간 또한 점점 진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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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ㅡ!! 쿠와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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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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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는 작게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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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용이 부리고 있는 재주는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발가르만 하여도 심연에 직접 만들어낸 마왕성이 있는데, 이까짓 나무를 만드는 것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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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장소가 차원의 틈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발가르조차 3할의 힘밖에 쓸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막대한 차원의 압력조차 성장의 밑거름으로 쓰는 용이란 얼마나 불합리한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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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우. 대충 이 정도면 끝났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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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이 날개를 펄럭이며 발가르에게 다가왔다. 제법 뿌듯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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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임시방편이기는 하지만 최악은 막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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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있는 골조들은 3할밖에 되지 않았지만, 용의 조치가 썩 나쁘지 않았던 탓에 차원의 붕괴는 멈췄다.

        어디까지나 임시 조치였지만 훌륭한 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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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가 습관적으로 용을 향해 팔을 벌렸다. 용은 무의식적으로 발가르의 팔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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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슥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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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는 능숙한 손길로 용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새끼 용일 적에도 뿔 사이를 만져주면 좋아하더니, 덩치가 커진 지금도 하는 행동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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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헤. ……으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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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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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자신의 추태를 깨달은 용이 부리나케 거리를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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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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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 우선… 고맙다고 말해야겠군. 정말 고맙, 크흠! 고맙다…. 덕분에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막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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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심이었다.

        용이 나타나서 상황을 정리하기 전까지, 발가르는 걷잡을 수 없이 최악으로 향하는 상황에 좌절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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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별거 아니야. 나 정도 되는 용의 현자라면 당연한 거지.》

        ​

        용이 으스대며 그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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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 현자?

        아무리 봐도 용의 현자보다는 용의 푼수가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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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말이 목 끝까지 치밀었지만 발가르는 애써 꾹 참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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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푼수라는 건 다른 말로 하자면 순수하다는 것 아니겠나. 우리 새끼 용이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영특한 부분이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세상 구경을 시켜서 견문을 넓힌다면….

        ​

        《아. 그러보니 너는 이름이 무엇이냐?》

        ​

        《내 이름? 네페로스라고 불러. 잠깐, 너 그러고 보니까 어린 나한테 아직 이름도 안 지어줬더라? 너무 한 거 아니야? 어린 내가 아닌 척했지만 엄청 섭섭하게 생각한 거 알아?》

        ​

        용의 힐난에 발가르가 시선을 피했다.

        ​

        이름이 뭐 그렇게 중요한 건가 싶기는 했지만…. 변명의 여지는 없다. 발가르가 의도적으로 이름 지어주기를 피했던 탓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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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하나의 존재를 정의하는 것이다.

        어버이께서 자신을 빚으심과 동시에 이름으로 정의하신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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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두려웠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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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새끼 용이 흙 묻은 발로 성큼성큼 자신의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겁났다. 그렇기에 애써 모른 체 하며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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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이제 곧 어린 나의 모습으로 돌아오면 이름을 지어줘. 나랑 똑같은 이름으로 지어주지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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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떠날 것 같은 분위기에 발가르가 의아하게 용을 바라봤다.

        용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

        《아직 많이 어린 나의 몸은 고룡의 정신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거든. 이 공간에서는 꼼수로 성장한 거니까, 이곳을 벗어나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네가 아는 어린 나로 말이야. 아마 이 대화도 기억 못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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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장히 초월적인 힘의 도움을 받아 형태와 기억을 고정할 수 있다면 모를까.

        지금의 대지용에게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

        《그러니까 어린 나한테 잘해줘. 예쁜 이름도 지어주고, 잘 놀아주고….》

        ​

        《엉덩이춤도 봐주면 되는 건가?》

        ​

        《으아아아아! 그건 잊어!》

        ​

        발가르는 허리춤에서 흙덩어리를 흔들며 용에게 보였다.

        순식간에 비늘이 붉어진 대지용은 펄쩍 뛰어오르며 발가르에게 달려들었다.

        ​

        《으아아앙! 그것도 내놔!!》

        ​

        ​

        ​

         * * * * *

        ​

        ​

        ​

        – 콰르르르릉! 콰과광! 콰앙! 쿠웅!

        ​

        차원의 틈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는 거울이 무수하게 떠 있는 해변.

        누군가 봤다면 지휘 통제실의 CCTV 화면이냐 물었을 것이다.

        ​

        “꺄아아아악! 서, 선배님! 무너져요! 무너지고 있어요!!”

        ​

        리아가 비명을 질렀다.

        거울에 비치는 상황은 그야말로 대재앙, 그 자체였다.

        ​

        무너지는 골조, 무너지는 차원의 틈, 무너지는 지상, 무너지는 리아와 케넬름의 억장과 멘탈….

        온갖 것들이 한데 섞여 무너지는 대종말의 현장이다.

        ​

        “위, 위대하신 분은요? 그분께서는 지금 뭘 하고 계신 거죠?!”

        ​

        케넬름은 상황이 자신들의 손을 떠났음을 인지했다.

        이건 둘이서 못 막는다. 생쥐 두 마리가 모여서 댐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위대하신 분께서는 지금…. 아!”

        ​

        언젠가 케넬름이 위대하신 분을 몰래 엿보던 구멍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으니. 덕분에 리아는 위대하신 분의 동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

        – “야아, 박 주임, 아니 박 대리……! 마셔, 마셔! 내가 너 지이인짜 아끼는 거 알지? 어?!”

        ​

        – “아하하. 부장님…. 너무 많이 드신 것 같.”

        ​

        – “어어?! 내가 너 지이이이인짜루… 팍팍 밀어줄 테니깐… 으응? 나랑 같이 딸꾹! 오래오래 일하자아아!!”

        ​

        “아하하… 하하…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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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게 달아오른 문어를 닮은 중년 인간에게 시달리고 있는 위대하신 분. 시끄럽게 구워지는 고기와 찰랑이는 투명한 물, 떠들썩한 분위기….

        ​

        그간 꾸준히 위대하신 분의 세계를 관찰(염탐)한 케넬름은 저 행위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

        “저건… ‘회식’이군요.”

        ​

        “회식… 이요?”

        ​

        “네. 위대하신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한번 시작하면 도통 끝이 보이지 않는데, 지리멸렬한 과정이 수렁과도 같아서 도무지 나올 수 없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

        “그, 그런…! 그렇다면 지금 위대하신 분의 도움은…!”

        ​

        “…일단 알리기는 하겠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

        우웅! 우우우웅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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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하신 분의 호주머니에서 작은 단말기가 진동했다. 허나 시끄러운 소리와 산만한 분위기, 주사를 부리는 문어까지 합쳐져 이를 눈치채기란 요원해 보였다.

        ​

        “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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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넬름이 눈을 질끈 감으며 기도했다.

        찌푸려진 미간이 그녀가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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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해야 한다.

        그녀에게 수많은 생명체가, 지상과 심연의 운명이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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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우우우우웅ㅡ!! 우우우우우우웅ㅡㅡ!!

        ​

        이제는 거의 드릴에 가까울 정도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

        – “와, 음, 오오. 정말요 부장님? 아…? 어, 잠깐만요. 저 잠깐 연락이 온 것 같아서.”

        ​

        “ㅡ됐다!”

        ​

        마침내!

        케넬름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옆에서 같이 환호해야 할 리아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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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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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아는 저 멀리, 수많은 거울 중 하나를 붙잡고 입을 헤ㅡ 벌리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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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가 저렇게나 칠칠치 못한 모습을 보이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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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란 언제 어디서라도 품위 있고 고상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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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하신 분에게 무릎베개하고, 남몰래 뺨이랑 머리도 쓰다듬고, 벽에 낀 천박한 모습을 보인 케넬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리아! 성녀는 언제라도 품위와 우아함을 지켜야 합니다. 도대체 뭘 그렇게 보고 있길래 그런 흉한 모습…… 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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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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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넬름도 리아처럼 헤ㅡ 입을 벌렸다.

        ​

        거울에 비친 거대한 용이 입으로 막대한 흙과 바위를 뿜어내며 무너지는 골조와 차원의 틈을 떠받치고 있었다.

        ​

        “요, 용? 어, 어째서 용이?”

        ​

        짙은 갈색의 용이라니? 

        ​

        “저 용은… 분명 위대하신 분이 발가르에게 줬던 알에서 부화한 용이었죠.”

        ​

        24시간 내내 차원의 틈을 감시하고 있기에 알 수 있었다.

        저 용은 발가르가 차원의 틈에 데려온 용이다. 더불어 차원의 틈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 유력한 원인이기도 했고.

        ​

        그런데….

        ​

        “어, 용이 상황을… 해결한 것 같은데요?”

        ​

        “…….”

        ​

        고룡도 아니고, 고작 성룡으로 이 정도의 힘을?

        ​

        케넬름은 잠시 잊고 있었다.

        용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불합리한 존재인지.

        ​

        “하아….”

        ​

        긴장이 풀린 케넬름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

        “다행… 다행이다….”

        ​

        정말로 다행이다.

        까딱 잘못했으면 지상과 심연이 동시에 공멸하는 최악의 재앙이 일어났을 것이다.

        ​

        “뭐야, 무슨 일이야. 케넬름! 리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뭔 일 있었어?”

        ​

        뒤늦게 모습을 보이신 위대하신 분께서 상황 파악을 위해 물었다.

        케넬름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며 와락 몸을 던졌다.

        ​

        “흐, 흐아아앙! 저, 저…!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요…!”

        ​

        “어으악?! 케, 케넬름?! 자, 잠깐만! 다, 닿고 있는데! 닿고 있다고!!”

        ​

        리아는 한 덩어리가 되어 나뒹구는 둘을 보며 생각했다.

        ​

        ‘…선배님. 성녀는 고결하고 우아하고 품위 있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오늘따라 데모닉의 온기가 그리워진 리아였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주인공의 계략이라뇨…!! 그렇게나 사악한 주인공이 아니랍니다…!! 인간의 마음을 알고, 생명의 덧없음과 치열함을 사랑하는 선?신이라구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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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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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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