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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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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7화. 하나 된 세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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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룻밤 사이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대지가 흔들리고, 하늘이 요동치는 거대한 축포와 그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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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평범한 사람들은 당장 이 사실을 체감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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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상 보냈던 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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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쩌어어어기, 바다 끝에 엄청 큰 산맥이 솟아난 건 알겠는데. 그래서?

        저 산맥이랑 우리가 무슨 상관인데? 저게 빵이라도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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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에게는 밭을 갈고, 일용할 식량을 농사짓고, 물건을 파는 것이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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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아주 느리고 서서히.

        가장 평범한 이들도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조금씩 피부로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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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눈에는 온갖 이종족들이 인간들과 섞여 살아가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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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췩, 이봐 귀쟁이! 여기 음식 좀 먹고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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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킁킁. 으엑. 이거 샐러드잖아요. 고기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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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칫, 무슨 귀쟁이들은 풀을 안 먹고 고기만 먹냐! 얼굴값 더럽게 못 한다! 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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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점 식당을 차린 오크와 지나가던 엘프가 떠들었다.

        유난히도 이종족의 비율이 높은 성도에서는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이종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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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요즘 털 상태가 엄청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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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눈치챘어? 요즘 새로 나온 털 빗을 쓰고 있거든. 되게 좋더라고. 털이 하나도 안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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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리를 흔드는 수인들이 가죽 갑옷과 검을 들고 지나갔고.

        어둠 속에서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암중 세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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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인, 오크, 엘프.

        이 세 종족이 가장 많았다. 아무래도 하나 된 분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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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가로 향하면 인어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깊은 바다에서 여러 해산물을 능숙하게 캐오는 인어들 덕분에 바다를 낀 마을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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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캉ㅡ! 카앙! 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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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만신전에서 가장 큰 대장간. 

        애덤 더 스미스의 대장간 안에서 드워프 하나가 굵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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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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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도 수염이 풍성한 오푸스 팔락이 가볍게 숨을 뱉었다.

        방금 막 만들어진 방패가 심상치 않은 광휘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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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라도 탐낼 명작이었다. 어딘가의 신이 이 방패를 봤다면 심히 탐냈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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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이곳에는 신의 눈길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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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로 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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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의 명작을 만들어낸 오푸스 팔락은 무심하게 방패를 뒤로 던졌다.

        언덕처럼 쌓인 잡동사니들 사이로 방패가 섞였다. 온갖 화려한 무기로 이루어진 언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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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허어…. 으잉? 형님. 아직도 일하고 있는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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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나하게 취한 트리비우스 팔락이 딸꾹거리며 대장간으로 들어왔다.

        코가 삐뚤어지게 마신 것을 보니, 못해도 술집 5개를 탈탈 털고 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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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으으으. 아니. 이제 좀 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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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푸스 팔락이 허리를 쭉 폈다. 우두둑-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3일 만에 허리를 제대로 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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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니임. 딸꾹! 거 쉬엄쉬엄 좀 하쇼. 그렇게 일해서야, 딸꾹! 성지를 떠나서 즐거움을! 딸꾹! 으이?! 찾겠다는 목적은! 으으응? 딸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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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그래. 알겠으니까, 이만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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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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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푸스 팔락은 주정을 부리는 트리비우스 팔락의 머리에 망치를 휘둘렀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트리비우스 팔락이 쓰러졌다. 드워프들이 자주 쓰는 숙면 비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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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긴 뭘 쉬느냐. 아직 한참 부족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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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오푸스 팔락은 밤낮 가리지 않고 무기를 만들고 있었다.

        드워프 형제들이 직접 사용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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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더 서둘러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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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푸스 팔락은 초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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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워프들은 신의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종족이다.

        권력자라면 누구라도 자기 병사들을 신의 무기로 무장시키고 싶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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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만신전의 보호 덕분에 안전하게 지낼 수 있지만, 언젠가 만신전을 떠나 드워프만의 길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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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푸스 팔락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여, 드워프 형제들을 위한 무기들을 산처럼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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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것에 발목 잡혀서야 원. 하늘 고래에 올라가는 건 언제쯤 연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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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늘 고래 위로 날아올라,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숙원도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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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푸스 팔락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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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강! 카앙! 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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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내, 날카로운 망치 소리가 대장간을 울렸다.

        작은 거인이 뜨거운 화로 앞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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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보다 작지만 단단한 거인들이 몸을 일으키는 날, 세상은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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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이 어째서 신의 일꾼이라 불렸으며.

        그들이 무슨 일을 해낼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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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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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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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벽에 걸터앉은 케니스가 작게 한숨을 뱉었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성도는 활기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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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저 멀리 지평선의 끝, 우뚝 솟은 산맥이 희미하게 보였다.

        케니스는 바다 넘어 올라온 산맥을 볼 때마다 오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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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너머, 까마득한 바다와 산 너머에.

        한때 치열하게 겨뤘던 대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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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 발가르가 다른 차원이 아닌.

        바다 건너 산맥 너머에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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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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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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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연이 지상으로 올라오면 당장 큰일이 날 것 같았던 분위기와 달리.

        의외로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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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자들도 별 움직임 없이 잠잠했는데.

        심연이라는 땅이 망망대해의 끝, 까마득한 산맥 너머에 있다는 것을 깨닫자 깔끔하게 포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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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계산해도 투자 비용과 이득이 맞지 않았다.

        이는 권력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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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연으로 가는 건, 하등 남는 것이 없는 짓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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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몇몇 멍청이들이 신대륙으로 떠나겠다며 선원들을 모으기는 했지만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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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나! 나를 데려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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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고? 굶주림에 혹한, 풍랑을 만나고. 땅에 닿은 다음에는 뒤지게 높은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이거 완전… 최고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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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로 제법 많은 멍청이가 이 위험한 여정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앞서 지옥을 다녀온, 지옥 탐험대라는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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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을 역사에 남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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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높은 땅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본다니…. 사나이 가슴이 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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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이들의 여정이 실패로 끝날지, 성공으로 끝날지.

        이건 케니스가 당장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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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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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지금 제 걱정 하나만으로도 벅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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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여느 때처럼 굴러간다.

        조금은 평화롭게.

        약간은 위태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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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지만, 세상이 극적으로 변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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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변화란 그런 법이다.

        가장 크게 흘러와서 아주 천천히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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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케니스를 둘러싼 세상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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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게는 한스와 연인 관계로 발전한 것이 있을 것이고, 크게는 용사로서 할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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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와 그 어느 때보다 물리적으로 가까워졌지만, 역설적으로 지상은 악마의 영향에서 그 어느 때보다 멀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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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분에 한가한 시간이 늘어난 케니스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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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에게서 용사라는 커다랗고 무거운 짐을 뺀다면.

        나는 과연 무엇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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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성기사? 힘 센 일반인?

        잘 싸우는 전사? 나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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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찾아온 의문은 케니스를 오래도록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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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니스. 여기서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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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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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쩍 성벽을 뛰어오른 한스가 케니스 옆에 앉았다.

        풋풋한 연인으로 발전한 둘은 이제 막 손을 잡는 단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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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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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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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니스는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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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에 대한 고민이라니.

        사춘기 아이가 할 법한 생각 같아서 조금 부끄러웠지만, 한스는 진지하게 케니스의 말을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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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각한 고민이지. 이해해.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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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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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내가 정말로 폭염용왕흑살제 한스인지, 신의 사도 한스인지 헷갈린다니까? 이제는 정말로 폭염용왕흑살제가 맞는 것 같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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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가 제 왼손을 흔들었다. 까만 의수가 묵직한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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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을 넘은 이후, 한스는 용왕의 사념에 영향을 받는 횟수가 줄기는 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용왕의 사념이 넘칠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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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을 고생을 하며 벽을 넘은 한스는 억울했지만 별 방법은 없었다. 그냥 견디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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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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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니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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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어떤 고민이라도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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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지금처럼 가볍게 웃으면서 이겨낼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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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 고향이 어디라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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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저쪽 제국 변두리 쪽에 있는 마을인데, 아마 말해도 모를 거야. 갑자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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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농사나 지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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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사?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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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한스랑 같이. 우리 둘이서 작은 오두막 하나 만들고 거기서 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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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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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가 솔깃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

        “물론 지금 당장 가자는 소리는 아니에요. 나중에, 우리가 할 일이 전부 끝나면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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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야 좋지. 그런데 할 일? 요즘 뭔가 되게 조용하지 않았나? 할 일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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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 또한 신입 팔라딘으로서 할 일이 제법 줄어든 상태였다. 평화의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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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니스는 말없이 시선을 돌려 수평선을 바라봤다. 바다 넘어 희미하게 보이는 산맥이 구름을 두른 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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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마왕? 심연으로 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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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스는 조금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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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마왕도 되게 얌전히 잘살고 있잖아. 우리가 먼저 쳐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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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는 뭔가 오해하고 있었다.

        케니스가 이를 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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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이랑 사생결단을 내려고 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한번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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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니스는 지난 왕의 회의에 나타난 발가르를 기억했다. 작은 새끼 용을 품에 안고 나타난 마왕의 모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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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지금껏 케니스가 알던 마왕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는 모습이었다.

        ​

        그 눈빛, 조심스러운 손짓, 속삭이는 말투.

        상대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

        이제야 조금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 케니스는, 너무나 달라진 마왕의 눈빛이 신경 쓰였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을 돌아보게 된 것이라 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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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으로 태어난 존재는, 그 본질을 이겨내고 사랑을 품을 수 있는가…. 저는 마왕을 직접 만나서 이걸 꼭 확인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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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의 제왕 마왕이라는 존재도, 이를 척결하기 위해 선택받은 용사도.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인가.

        ​

        케니스의 금빛 눈동자는 이미 결심으로 굳어있었다.

        한스는 가만히 이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케니스의 손을 잡았다.

        ​

        “그러면, 같이 가자. 네가 가는 곳에 나도 가야지.”

        ​

        “…!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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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어, 지금 당장 가는 건 힘들겠지만, 기회가 되면 꼭 같이 가자.”

        ​

        케니스가 활짝 웃으며 한스에게 안겼다.

        달콤한 공기가 둘을 감쌌다.

        ​

        “………….”

        ​

        그리고, 으슥한 그림자 속에서 둘을 몰래 지켜보는 그림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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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먼저……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

        데이지는 한스와 케니스를 훔쳐보며 눈물 흘렸다. 얼마나 슬프게 우는지, 누군가 이를 봤다면 저도 모르게 안아주며 달랬을 것이다.

        ​

        타탓.

        ​

        “여기 있었나. 정말이지 간신히 찾았군.”

        ​

        애석하게도, 울고 있는 데이지를 발견한 사람은 일반적인 감수성과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

        “……팔라딘, 님.”

        ​

        데이지가 씹어먹듯 뱉었다. 눈빛으로 데모닉을 찢어버릴 기세였다. 데모닉은 태연하게 데이지와 눈을 마주쳤다.

        ​

        이 아이의 연정을 본의 아니게 짓밟은 것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 

        ​

        “……왜 오신 거죠. 놀리러 오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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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너를 가르치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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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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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무니없는 데모닉의 발언에 데이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웃기지도 않은 헛소리였다.

        ​

        그날, 케니스와 한스가 연인으로 맺어진 날 데이지를 막은 장본인이 이런 말을 하다니.

        ​

        “너라는 재능의 원석을 이대로 두자니 눈에 밟혀서 지나칠 수가 없더군. 너는 더 성장할 수 있다. 네 재능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이야. 그러니, 내 밑에서 배우도록 해라.”

        ​

        “…저한테 선택지는요? 아니, 제가 팔라딘님 밑에서 배워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

        “선택지는 없다. 그리고 장담하는데, 이 대륙에서 나보다 너를 잘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은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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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모닉이 단호하게 말했다.

        순수한 인간의 육체로 기예의 극에 달한 전사의 자부심이 가득했다.

        ​

        “……제가 강해지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지.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고, 지금처럼 꼴사납게 울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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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라딘님, 진짜 미친놈 같아요.”

        ​

        “칭찬이군.”

        ​

        훌쩍이며 눈물을 닦은 데이지가 단단하게 눈빛을 굳혔다.

        ​

        “……좋아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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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지는 잠시 한스와 케니스를 바라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

        “언젠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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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돌아올 테니.

        ​

        ​

        그렇게 데이지는 데모닉과 함께 짧은 편지 한 통을 남긴 채 성도를 떠났다. 바람처럼 훌쩍, 누구에게도 목적지를 말하지 않은 채 떠나버렸다.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데모닉 팔라딘님ㅡ!!!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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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데모닉 팔라딘의 공백은 남은 둘, 신입 팔라딘 한스와 이스칼이 채워야 했다. 둘은 유서 깊은 팔라딘의 전통, 짬 때리고 도망가기를 당한 것이다.

        ​

        데모닉은 라이언하트에게 당한 피해자였고, 이제는 가해자였다.

        ​

        “끄으으으으…. 죽여,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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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칼이 바들거리며 서류에 사인 했다.

        오늘 업무는 이걸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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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게 도대체 왜 이 모양인지.

        업무와 업무의 연속이라니.

        ​

        팔랑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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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라.”

        ​

        서류 사이에 끼워져 있던 작은 종이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기지개를 켜던 이스칼은 허리를 굽혀 종이를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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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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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내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

        <경고. 오늘 셀리나 발정기다. 넌 집에 오면 뒤졌어. PS. 나도 발정기임. -네 아내>

        ​

        프리가가 꾹꾹 눌러서 쓴 손 편지였다. 이걸 여기까지 전달했을 사제들은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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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칼이 하하하ㅡ 힘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

        ‘…인어 비약이 몇 개나 남았더라.’

        ​

        야속하게도 하늘이 맑았다.

        ​

        세상은 그렇게 천천히 굴러갔다.

        어제와 아주 조금 다르게, 내일보다는 조금 덜 색다르게.

        ​

        ​

        ​

         * * * * *

        ​

        ​

        ​

        덜컹ㅡ 덜컹ㅡ

        ​

        흔들리는 버스 안.

        한 사내가 사람으로 가득한 출근 버스에서 힘겹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핸드폰 게임을 조작하는 모습은 다소 필사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

        특이한 점이라면, 넓은 초원 위에 여러 건물을 짓는 타이쿤 종류로 보이는 게임을 하는 듯 보였다는 것일까.

        ​

        그닥 눈여겨볼 풍경은 아니었다.

        ​

        “이번 정류장은”

        ​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 사내는 허둥지둥 게임을 끄고 버스에서 내렸다. 

        ​

        “휴. 또 정류장 지나칠 뻔했네.”

        ​

        열심히 게임을 한 나머지 가끔 내릴 곳을 지나친 적도 있는 모양.

        사내는 괜히 크게 한숨을 뱉었다.

        ​

        살짝 바람이 불어와 사내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

        늘 보는 풍경, 익숙한 사람들, 어제와 조금은 다른 순간들.

        그런 것들이 사내를 스쳐 지나가며 일상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

        “…어으. 출근하기 싫어.”

        ​

        직장인이라면 누구라도 했을 소리를 뱉은 사내는,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

        ​

        사내에게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

        “에휴.”

        ​

        통장 잔액을 보면 절로 눈물이 난다. 사내가 슬쩍 가슴을 부여잡았다. 

        쓰라린 잔액은 총 맞은 것보다 아프다.

        ​

        그러나 어쩌겠는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한 것인데.

        ​

        사내는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자신은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니까.

        ​

        “출근해야지, 출근.”

        ​

        잠깐 멈췄던 걸음이 다시 나아간다.

        ​

        한 걸음.

        또다시 한 걸음.

        ​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일을 향해 걸어간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정말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모두 독자님들의 응원과 사랑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자세한 후일담은 따로 적도록 하겠습니다…

    – ‘신선우’님…!! 후원!! 그리고 응원!!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완결까지 500화 넘게 남았다니… 크흠! 안타깝게도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부디, 만족스러운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여담이지만, 독자님에게는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너무나 과분한 사랑과 애정을 보여주셨고, 응원을 해주셨습니다. 언제라도, 독자님의 모든 미래에 영광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 ‘작은애기’님…!! 후원!! 사랑!! 정말로 감사합니다…!! 며칠 만에 정주행 하셨다는 독자님이시군요…!!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오셨네요…!! 길고 긴 여정의 끝에서, 새롭게 만난 인연이라니.
    서정적이고, 애틋한 느낌이 가득합니다…! 독자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애정은, 저 작가의 마음에 영원히 남을 것 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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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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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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