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전(前) 용사라고요? ( 4 )
유니콘에게 롱소드를 던진 이안이 연거푸 마른 세수를 반복했다.
침착해야 한다. 침착,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후우, 후우우….”
길게 들숨 한 번, 짧게 날숨 두 번.
좋아.
완벽하게 냉정해진 이안이 자신의 이복 여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아리아를 마주 봤다.
“…?”
아리아가 영문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으, 그러니까. 네가, 네가 정말로 내 여동생… 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실례지만 케니스 님과 한스 님의 아드님이 아니신가요……? 착각했다면 정중하게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 내가 이안이 맞아.”
“아…! 역시, 맞았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오라버니, 오라버니ㅡ
이안의 귓가에 쉼 없이 메아리치며 뇌를 흔들었다.
하나 된 분 맙소사, 여동생이라니.
이안은 하늘을 향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하늘이시여!
어찌하여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기분 탓인지 하늘에 걸린 일곱 개의 별이 마구 웃음을 터뜨리는 듯, 조잘조잘 흔들렸다.
“……오라버니. 이곳까지 오셨다는 건 어머니의 편지를 받으셨다는 뜻이겠죠. 저는 오라버니의 마중을 명 받았습니다.”
“………아, 아아. 그래. 둘째 어머니 말이구나.”
“…네. 가시죠.”
아리아는 언덕에서 훌쩍 몸을 던져 아래로 뛰어내렸다. 차마 말릴 틈도 없었다.
“아리아!”
이안이 깜짝 놀라 달려갔다. 걱정이 무색하게, 아리아는 멀쩡한 모습으로 저 아래에 서 있었다.
“……저는 일행을 수습하고 있겠습니다. 오라버니께서는 천천히 내려오세요.”
“그, 그래.”
이안은 식은땀을 흘렸다.
보통 사람이 이런 높이에서 멀쩡하게 뛰어내릴 수 있나? 겉보기에는 여리여리한 소녀인데, 아까 오크와 싸우는 것도 그렇고. 암만 봐도 평범한 소녀가 아니었다.
‘절대 개기지 말아야지.’
이안은 아리아의 주먹질에 떡대 오크가 저 멀리까지 날아간 것을 똑똑히 기억했다.
《이히히힝! 계약자여! 서두르게! 처녀들을 기다리게 할 셈인가!》
유니콘이 이안을 마구 닦달했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인지, 갈기에서는 반짝반짝 별가루도 떨어졌다. 처녀들 앞이라고 치장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대의 시간과 처녀들의 시간을 동일선상에 두지 말지어다! 꽃다운 처녀들의 시간은 천금과도 같을지니!》
미친 말.
이안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안과 유니콘은 서둘러 언덕을 내려갔다.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던 숲이 보인다.
“췻, 이거 좀 발라. 부러진 곳에 좋은 약초다.”
“으땃! 따가워! 살살 좀 발라줘!”
“자꾸 움직이면 취익, 나머지 팔도 부러뜨릴 거다.”
치열하게 싸우던 여인과 오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좋게 둘러앉아 있었다.
심지어 서로의 상처를 돌봐주기도 하는 모습.
조금 전의 격렬한 전투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네. 푸르릉. 애초부터 이 오크들과 처녀들이 몸담은 곳은 원래 이런 느낌이거든.》
“몸담은 곳이라고?”
이안의 눈에 오크와 여인들의 몸에 공통으로 새겨진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허벅지, 어깨, 팔목 등등.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있는 불꽃 형상의 문신.
크기도 제각각이었는데, 누구는 주먹만 했으며, 누군가는 밤송이처럼 작았고, 또 누구는 태양처럼 커다랬다.
그중, 아리아의 문신이 가장 크고 화려했다.
허벅지를 감싼 불꽃 문신은 화려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저 문신은 도대체 뭐지?”
《이힝. 그대의 둘째 어머니가 이끄는 집단의 상징이지.》
“집단? 상징이라고?”
이안은 더더욱 혼란에 빠졌다. 둘째 어머니가 어느 조직의 수장이란 말인가?
이런 사병 조직을 유지할 정도로 큰 조직을?
《흐음. 남정네한테 하나하나 설명하기 귀찮군. 어차피 곧 알게 될 거라네.》
“아니, 야! 잠깐만! 설명은 끝까지 해야 할 것 아니야!”
유니콘은 이안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곧장 처녀들 틈으로 걸어가며 콧김을 푸쉭푸쉭 내뿜는 모양새가, 음. 차마 신수의 그것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물론 처녀들은 유니콘을 상대해주지 않았다.
“…오라버니. 준비가 끝났어요. 어서 가시죠.”
아리아가 다가왔다.
그래. 차라리 아리아한테 물어보자.
“그, 아리아. 내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데이지 어머님이 이끄신다는 조직은 도대체 뭐 하는 곳이니… 인 가요?”
끝에 가서는 존댓말과 반말이 섞인 괴상한 형태가 되어버렸다. 겉으로 아리아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보다 어린 것 같기도 했는데, 오묘한 분위기를 보면 연상인 듯 느껴지기도 했다.
“…우음.”
리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갸우뚱거렸다.
“……으으음.”
한참이나 골똘히 생각하던 아리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희는, 음. 어머니를 따라서, 싸우고… 투쟁하면서… 삶의 불꽃을 키우는 자들이에요.”
“?”
“…영혼의 불꽃, 투쟁, 싸움, 강자존…. 자신을 증명하는 곳…….”
“…??”
이안의 얼굴에 물음표가 마구 새겨졌다.
분명 설명을 들었는데 어째선지 더더욱 미궁에 빠지는 신묘함이라니.
“……!”
아리아는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아주 조금 어깨를 으쓱거렸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콧김이 조금 강하게 흥흥 불었다.
“아니, 그…. 하. 아니다. 얼른 가자.”
“…네.”
이안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래. 죽을 곳에 끌려가는 것도 아닌데. 나중 가면 어떻게든 알게 되지 않겠는가.
“……모두, 정렬. 돌아간다.”
너저분하게 앉아있던 이들이 아리아의 명령에 빠르게 도열을 갖췄다. 잘 모르는 이안이 봐도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다.
“……귀환한다.”
이안과 유니콘은 우락부락한 오크와 풋풋한 처녀들 사이에서 걷게 되었다.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도대체 둘째 어머니가 뭐 하시는 분인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커졌다.
사박ㅡ
“눈이 내리네.”
한 송이 하얀 눈꽃이 떨어졌다. 칙칙한 회색 하늘은 눈송이를 하나, 둘 지상으로 흘리기 시작했다.
삭막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이다.
이안의 목적지, 몬테그로스에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이정표이기도 했다.
몬테그로스, 마수의 도시이자 북단에 위치한 공국.
다른 말로는ㅡ
“눈의 도시.”
언제라도 눈과 함께하는 곳.
가장 뜨거운 불꽃을 피우며 살아가는 이들이, 이곳 가장 차가운 설산에 머물고 있었다.
이안과 아리아는 하염없이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거대한 산의 아래, 단단히 자리 잡은 도시를 향해서.
“아. 맞다. 아리아. 너 근데 나이가 몇 살이니.”
“……9살이요.”
“푸흡!”
이안은 사레가 들려 격하게 기침했다.
9살? 9살?!
이안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아리아의 외형은 누가 봐도 성숙한 여인의 그것이었는데?!
“저, 정말로? 정말로 9살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이안의 격한 반응에 아리아가 조금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아리아는 자기 몸이 또래의 친구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유독 신경 쓰이기 시작한 아리아의 콤플렉스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을 이복 오빠에게 지적당하다니.
“아, 아니. 정말로 9살이라고?! 정말?!!”
“……네에….”
반복되고 강조되는 이안의 질문은, 아리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설마 오라버니도 자신을 괴상하게 바라보시는 걸까?
이 커다란 몸뚱아리 때문에?
“……흑. 흐끅.”
아리아의 탁한 눈동자에 방울방울 눈물이 맺히더니.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푸르르릉ㅡ. 숙녀를 울리다니. 최악이군!》
유니콘이 경멸어린 눈빛으로 노려봤다. 이안은 다급하게 변명했다.
“오해, 오해야! 진짜로!”
《우우ㅡ 쓰레기!》
* * * * *
화륵ㅡ
어두운 동공.
한 줄기 불꽃이 피어올라 어둠을 몰아냈다.
석실의 중앙에는 묘령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여인을 중심으로 수많은 불꽃이 일렁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존이시여.”
시종의 정중한 부름에도 여인은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마치 거대한 화로처럼.
여인의 주변에 있는 것은 불꽃이 아니었다.
실체도 없이, 집어삼키는 것도 없이 허공에서 타오르는 것을 불꽃이라 부를 수는 없으니.
그것은 그저, 여인의 기운이 투사된 환영일 뿐.
“소공자께서 도착하였습니다.”
“……오래 걸렸네.”
망부석처럼 앉아있던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의 불꽃들은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동공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공기가 여인을 반겼다.
눈이 내린다. 몬테그로스에서는 특별한 것 없는 날씨다.
“…이제 곧 축제의 때인가?”
“그렇습니다. 한창 ‘와일드 헌트’ 축제 준비로 바쁘더군요.”
저 멀리.
산 아래로 보이는 도시가 유달리 활기찬 듯 보이더니. 기분 탓은 아닌 모양이다.
외일드 헌트 축제.
탄탈로스 밤의 기병들이 악마와 마수를 사냥한 뒤, 몬테그로스 도시를 가로지르며 행진했다는 것에서 유래한 축제였다.
비록 지금은 밤의 기병들이 직접 행진하지는 않지만, 사내들이 직접 사냥한 짐승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바람이야.’
묘령의 여인, 데이지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술렁이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어디까지 왔다고?”
“지금쯤이면 도시가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만ㅡ”
데이지는 시종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타탓ㅡ! 강하게 한번 발을 굴려 하늘로 날아오른다.
가볍게 솟구치는 데이지의 몸을 따라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흔들렸다.
데이지의 몸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도시를 향해 날아갔다.
홀로 남은 시종이 중얼거렸다.
“부군에 관련된 문제라면 여전히 성미가 급하시군….”
* * * * *
“……그러니까, 그. 음.”
이안은 자신의 앞에 선 여인을 보며 말을 더듬었다.
하늘에서 뭔가 푸슝ㅡ하고 날아오더니, 타탓! 하고 착지했다. 그런데 그게 사람이네?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이 이안을 보며 말하기를.
“…심연으로 갈 준비는 되었니?”
“??”
어디를 가자고요?
아니 그 이전에, 도대체 누구신지?
“…그, 실례지만 누구세요?”
“아. 나는ㅡ”
여인은 잠시 단어를 고민했다. 이에 명쾌한 단어를 찾았는지 손뼉을 쳤다.
“어머니라고 부르렴.”
“…둘째 어머님?”
이안은 입을 떡 벌렸다.
둘째 어머니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충격적인 등장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놀라운 것은ㅡ
‘너, 너무 젊은데?!’
데이지의 외형은 아무리 많이 쳐줘도 20살 중반.
그런데 아리아의 나이가 9살이라고 했으니, 이를 역산하면….
“아버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어허…!! 가족입니다 가족…!! Family!!! 가족끼리 그런 눈으로 보는 거 아닙니다…!!! 천하근친이라니… 멈춰!!! 현관 엔딩 멈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