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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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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전. 전(前) 용사라고요?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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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상실에서 비롯된다. 어른은 가지지 못한 것, 한때 가지고 있던 것을 아이는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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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바로 아이와 어른의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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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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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지금 여기.

        한 아이가 동경하던 대상을 현실로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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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지는 조금 안쓰럽게 이안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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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저게… 정말로 철벽의 수호자 이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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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이 알고 있는 이스칼은 근육질에 미소가 호쾌하고, 대중의 환호성을 즐기는 쾌남이었다.

        그런데 저기 인어의 비약을 들고 마구 소리치는 사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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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하하하하! 이제 집으로 갈 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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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아내가 무서워서 정력제를 사가는, 그저 중년 남성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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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ㅡ. 그럼 곧바로 다음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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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매는 속행되었다. 데이지와 이안은 경매에 관심이 없기에 경매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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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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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괜찮니?”

        “……조금은요. 아니, 그, 음. 조금 놀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 좀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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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말하는 빨간 약이 이안의 목구멍을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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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은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그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어렸을 적부터 동경하던 영웅의 사생활 정도는, 그래. 영웅도 인간이니까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사생활이 있을 수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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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은 그렇게 되뇌며 빨간 약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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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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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매가 끝났는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밖으로 나왔다. 그중에는 방금 인어의 비약을 낙찰받은 이스칼도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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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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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에 숨어 이스칼의 뒤를 점한 데이지가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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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뭣!”

        “…접니다. 데이지.”

        “아, 아. 뭐야. 데이지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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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연한 척하는 이스칼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리 방심했다고 하지만 아무런 기척도 없이 등을 잡다니.

        볼 때마다 무시무시한 은신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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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급한 건가?”

        “…조금 급합니다.”

        “끄응. 알아서 바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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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딘가 불안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스칼이 데이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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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스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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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정쩡하게 서 있던 이안은 이스칼을 보며 말을 더듬었다.

        가면을 벗은 모습을 보니 자신의 앞에 철벽의 수호자가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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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소개해주려는 건가?”

        “…이쪽은 한스 님과 용사님의 아들, 이안입니다.”

        “뭐야, 정말인가? 맙소사, 네가 정말로 이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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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팔을 벌린 이스칼이 이안을 꽉 끌어안았다.  

        ​

        “하하하! 이게 도대체 몇 년 만에 보는 건지 모르겠구나! 네가 아주 어릴 적에 한번 봤으니까 나를 기억도 못 하겠는걸!”

        “아으, 그, 그게, 저기이ㅡ”

        “…이안이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이스칼 님이라고 하더군요.”

        “ㅡㅡ! 둘째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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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의 얼굴이 벌게졌다. 이스칼은 더욱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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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하하하하하ㅡ! 이거 참 영광이구나! 내가 무장만 챙겨왔어도 만지게 해줬을 텐데, 참 아쉽구나! 한스랑 케니스 양은 잘 지내나?”

        “허읍! 마, 말씀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두 분은 무척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 중입니다!”

        “하하. 그렇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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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하게 웃던 이스칼이 멋쩍게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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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응.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지금 내가… 그리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라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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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칼은 어딘가 불안한 듯, 쉬지 않고 사방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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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 이스칼 님. 그리고 이 편지….”

        “음? 팬레터인가?”

        “아뇨. 데모닉 팔라딘 님이 전달하라고 하시던데요.”

        “…….”

        “꼭 좀 전달해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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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지옥에서 초대장을 받은 사람이 이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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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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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키지 않는 손으로 간신히 편지를 챙긴 이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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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그래…. 고맙다. 그럼 나는 이만 시간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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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칼은 부랴부랴 걸음을 옮겼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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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볼 일은 전부 끝난 거니?”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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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칼과 대화했던 이안의 표정은 조금 몽롱했다. 목구멍까지 들어왔던 빨간약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아물던 머리가 다시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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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칼, 그는 참으로 이스칼이었다.

        호쾌하고, 남자답게 웃으며, 대중의 찬사를 즐길 줄 아는 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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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제 나가자. 밤이 늦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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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지와 이안은 암시장의 거리를 걸었다. 호객하는 사람과 도박꾼, 약쟁이, 사기꾼이 들끓는 암시장의 바닥을 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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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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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중, 로브를 깊게 눌러쓴 두 명이 보였다. 데이지가 의문스러운 듯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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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시장에서 로브를 쓴 사람은 제법 흔하게 보이는 편이었다.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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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사람들. 설마.”

        “왜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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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브를 눌러 쓴 두 명은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한 명은 수인족인지, 로브 밑으로 고양이 꼬리가 길게 빠져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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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지의 예민한 귀가 로브 아래에서 중얼거리는 혼잣말을 잡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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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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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칼 이 새끼. 이번에 잡히기만 해봐. 크흐흐. 삼 일 밤낮으로 울 때까지 따먹어주마. 츄릅.”

        “공녀, 크흠. 여기에는 없는 것 같은데요? 정말 여기가 맞아요?”

        “분명해. 그 새끼 약 떨어졌다고 징징거린 게 벌써 3개월 전이야. 무조건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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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서린 여인들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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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지 알 것 같다고 하면 기분 탓일까.

        데이지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엮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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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이 진짜 실망할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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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는 분들이신가요?”

        “…아니야. 얼른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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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걸음을 재촉한다. 행여나 시선이 닿을까 고개까지 푹 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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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익,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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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뒤로 철문이 닫혔다. 그제야 암시장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이안은 다리가 쭉 풀릴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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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생했어. 많이 피곤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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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시장을 가로질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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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테리스에는 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과연, 그 말대로 늦은 밤인데도 낮보다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황금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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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동상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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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안쪽에 커다란 동상이 있었다. 한 노인과 다정하게 손잡은 인어의 동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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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이렇게 쓰여있네. 《가장 먼저 진실된 사랑에 빠진 남자, 에이홉과 그의 연인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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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이를 기리는 동상이었다. 동상 주변에 꽃이 한 움큼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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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과 데이지는 짧게 목례한 뒤 걸음을 옮겼다. 사람과 물건으로 가득한 시장을 얼마나 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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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갸르르르르ㅡ!

        아르르르르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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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둑이다!!”

        “저 녀석들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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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멀리서 짐승이 아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큰 소란이 일어났다.

        휙, 재빠른 그림자 두 개가 달려온다. 데이지와 이안은 재빨리 벽으로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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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렵한 몸짓으로 가장 높은 건물로 올라가는 그림자들.

        무기를 들고 뒤쫓던 사내들은 멍청하게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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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와라 이 도둑들아!!”

        “경비대가 도착하면 너희는 죽은 목숨이야!!”

        “도둑이라니! 우리는 정의의 수호자이시다!!”

        “맞아요. 우리는 도둑 같은 게 아니에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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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은 어쩐지 사내들의 목소리가 조금 어색하게 들렸다. 어딘가 연극을 하고 있는 듯한 말투랄까.

       

       “크으윽! ㅡ이 도, 도둑들아! 너희는 도대체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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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달빛을 배경으로 기묘한 자세를 취하는 그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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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밤ㅡ! 하는 효과음이 들려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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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누군지 물어보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

        촤라락- 어디선가 연보라색의 제비꽃이 흩날렸다. 인제 보니 건물의 꼭대기에서 누군가 열심히 꽃을 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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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악한 상인과 사채업자들의 돈을 갈취하여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는, 나는 마리!”

        “저는 에리!”

        “…….”

        ​

        짧은 침묵.

        마리와 에리라고 밝힌 그림자가 뒤를 향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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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나 진짜 못 하겠는데…. 이 나이 먹고 그런 짓을 하면 진짜 창피해서 주, 죽을 것 같아….”

        “뭐해! 넌 우리보다 어리잖아! 빨리, 지금이야!”

        “어서 하는 거예요. 지금밖에 없어요.”

        “…크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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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들부들 떠는 그림자가 어둠 밖으로 기어 나온다. 그러더니, 매우 수치스럽다는 듯 천천히 기묘한 동작을 따라 했다.

        ​

        “나, 나는 폴이다….”

        ​

        달빛 아래 완성된 세 명의 구도.

        ​

        “““달이 뜨면 우리가 나타난다! 우린, 정의의 도둑! 괴도 삼인방, 루나틱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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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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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보라색 제비꽃이 더욱 화려하게 흩날린다. 지금이 하이라이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

        “…….”

        “…….”

        ​

        세상에 정적이 찾아왔다. 찌르르 노래하던 풀벌레마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

        어, 음…. 그러니까 뭐라고?

        ​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기,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휴. 아닙니다 도련님. 고생 많으십니다.”

        ​

        침묵을 뚫고, 한 사내가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기를 들고 있던 사내들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

        꾸벅꾸벅 사과하던 사내는 자칭 루나틱스를 향해 소리쳤다.

        ​

        “마리!! 에리!! 제발!!! 가문의 상단을 터는 것은 멈춰 달라고 말하지 않았니!! 다 큰 처녀들이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흥. 데릴 오빠, 아무리 그래도 정의를 향한 우리의 행보를 멈출 수는 없어!”

        “맞아요. 정의는 달빛 아래에서 빛나요. 우리는 어머니의 뒤를 잇는 대도가 될 거예요.”

        “……하아.”

        ​

        폴이라는 사내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데릴이 피를 토하듯 외쳤다.

        ​

        “우리 가문의 상단이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도 아니고!!!! 정당하고 정직하게 장사하는데 왜 자꾸 가문의 상단을 터는 거냐고!!!”

        ​

        마리와 에리가 고개를 기울였다. 

        ​

        “우음.”

        “그야….”

        ​

        ““재미… 있으니까?””

        ​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마리!!!! 에리!!!! 제발!!!!!”

        ​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데릴의 고함.

        이안의 머리칼이 쭈뼛 솟았다.

        ​

        마리와 데릴ㅡ 가문의 영애님들의 의적질에 장단을 맞춰주던 상인들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

        척 보니 의적질을 하루 이틀 한 것이 아닌 모양.

        ​

        “……얼른 가자.”

        “아, 네….”

        ​

        데이지와 이안은 빠르게 걸어서 시장을 빠져나와 숙소에 도착했다.

        ​

        “…방금 그 사람들은, 이스칼 님의 자식분들이란다. 장남 데릴 공자님, 쌍둥이 마리, 에리 영애님이시지.”

        “아.”

        ​

        이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

        이스칼 님….

        ​

        ​

        ​

         * * * * *

        ​

        ​

        ​

        그리고ㅡ

        마침내 심연으로 떠나는 날이 밝았다.

        ​

        “어, 어어.”

        ​

        이안은 자신의 앞에 있는 것, 정확히는 배라고 불러야 할 것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

        “그, 저기, 정말로 이걸 타고 가는 건가요?”

        “크하하하! 그럼, 당연하지!”

        ​

        탕탕!

        ​

        작은 난쟁이가 믿음직스럽게 가슴을 두들겼다. 술과 강철의 종족 드워프였다. 풍성한 수염처럼 그 미소도 아주 호쾌했다.

        ​

        “……어머니?”

        “…나도 몰랐단다.”

        ​

        정작 이안과 데이지, 아리아는 전혀 웃을 수 없었지만.

        ​

        “…이게 뭐라고요?”

        “음! 우리 종족의 실험작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지! 하늘 고래에 올라갈 방법을 궁리하다가 나온 부산물이라고 할까?”

        “부, 부산물….”

        “뭐어. 그래도 성능 하나는 확실하니까 걱정 말고!”

        ​

        이안은 떨떠름한 시선을 보냈다.

        바다에 둥둥 떠있는ㅡ 아니. 그것을 떠 있다고 해야 할까. 이미 절반 넘게 가라앉아 있는 형태의 그것은 너무나 못 미덥다.

        ​

        “솔직히 말하자면 이거 실패작이거든! 크하하! 도무지 동력원을 구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

        “그런데 용사님, 어이쿠 이제는 용사님이 아니시던가? 아무튼 직접 탄다고 하셨으니 동력 문제도 해결이야!”

        “…….”

        “크흐흐. 지금은 이렇게 가라앉아있어도 제대로 동작만 하면 깜짝 놀랄걸?”

        ​

        글쎄…?

        이안과 데이지의 시선이 차게 식어간다.

        ​

        “……이름이 뭐죠?”

        “음!”

        ​

        아리아의 질문에, 드워프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

        “우리는 이걸ㅡ 비행선이라 부르기로 했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감사합니다…!! 어쩌다보니 이스칼은 용사 파티 중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속물적인 녀석이 되어버렸네요…!! 처음부터 출세를 목적으로 성도에 온 녀석… 재능 원툴로 벽도 넘은 녀석… 한스 앞에서 티배깅 조진 녀석… 이 남자, 매력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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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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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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