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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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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전. 전(前) 용사라고요?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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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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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내려온 용의 외침. 일대에 침묵이 찾아왔다.

        하필이면 용이 한스를 바라보고 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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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아, 아니야! 아니라고! 진짜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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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의 필사적인 변명. 이안은 떨떠름하게 한스를 바라봤다.

        아직 아버지를 믿고 있기는 하지만…. 혹시, 설마……,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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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아아아아! 도착했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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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거나 말거나.

        온통 누런빛의 작은 용은 자신의 등을 향해 외쳤다. 한스를 아버지라 여기는 모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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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거 봐! 내가 아니라니까?! 저 용은 나를 아빠라고 부른 게 아니라고!”

        “……전 항상 아버지를 믿고 있었어요.”

        “거짓말하지 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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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간의 정이란 이토록 얄팍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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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에 내려앉은 용이 활짝 펼쳤던 날개를 접고 몸을 낮췄다.

        이제껏 날개에 가려져 있던 용의 등에서 한 인영이 날렵하게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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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의 그림자를 빚어 만든 것처럼 어둡고 또 어두운 신체. 눈을 마주치면 절로 움츠러드는, 그야말로 생명의 적대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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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수고했다 로티. 썩 나쁘지 않은 비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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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

        발가르 칸 가르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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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

        《음. 필멸자인가.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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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는 용을 타고 온 마왕의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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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용, 내 기억이 맞으면 네가 돌보던 그 새끼용… 맞나?”

        《맞다. 필멸자치고는 기억력이 제법 우수하군.》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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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은 날 수 있다. 날기만 할까. 마음만 먹으면 하늘을 나는 존재 중 가장 빠르게 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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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마왕이 도대체 왜 이런 작은 용을 타고 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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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찮은 필멸자. 네 녀석이 알 필요 없는 내용이다.》

        “크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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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가 붉은 눈동자를 불길하게 빛냈다. 한순간 사방으로 깔리는 위압감. 

        이안과 아리아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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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가 이를 악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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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의 경우에는 아이들이라도 지켜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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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오.

        한스는 언제라도 등 뒤에 있는 이들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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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촉즉발의 순간.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긴장감은 참 우습게도 휘발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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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이이익-! 아빠, 아빠! 나 잘했지! 내가 아빠를 태우고 여기까지 날아왔어!》

        “흥. 나쁘지는 않았다. 네 녀석치고는 제법 노력했으니, 특별히 도장을 찍어주마.”

        《삐이이이! 삐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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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런빛의 용, 로티가 기쁨의 포효를 지르며 꼬리를 씰룩씰룩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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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 앙증맞게 움직이는 엉덩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하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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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가 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더니 손가락을 꾹 찍었다.

        로티의 칭찬 도장이었다. 이걸로 8개가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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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이이이! 끼이이이익ㅡ! 8개야! 신난다! 끼익!》

        “……귀,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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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가 중얼거렸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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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티는 무척이나 귀엽고….

        또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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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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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의 의수가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의수 안에 깃들어 있는 용왕의 사념, 그것이 한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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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계, 계약자여. 자, 잠시… 저 어린 용을 조금만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해다오.》

        ‘갑자기?’

        《이, 이 몸을 저 어린 용을 향해 뻗어다오.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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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의수 안에 있는 용왕이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별일이 다 있다고 생각하며,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한스는 순순히 용왕의 부탁대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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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으으음.》

        “삐ㅡ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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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왕이 한참이나 의뭉스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신기하게도, 로티 또한 한스의 의수에서 무언가 느꼈는지 의수에 코를 툭툭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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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이건 정말로… 네페로스? 네페로스가 맞는 것이냐?》

        “네페로스? 그게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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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가 중얼거렸다. 이를 들은 발가르가 의외라는 듯 한스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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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멸자. 뭐냐,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그건 로티의 본래 이름일 터.》

        “어, 어어. 그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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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수 안에 있는 용왕이 말해줬어요ㅡ. 라고 말하면 그걸 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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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나한테 밖에 목소리가 안 들리는 상상 속의 친구 같은 존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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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는 한참이나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했다. 그러자 발가르는 흥이 식었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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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됐다. 로티 앞에서 괜히 그 이름을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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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는 매정하게 뒤돌더니 다시금 로티의 등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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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 남성도 올려봐야 할 정도인 발가르가 송아지 정도 크기의 로티에 올라타고 있으니, 그림이 참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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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이익. 아빠, 아빠! 나 힘 완전 쌔! 아빠 하나도 안 무거워!”

        《흥. 당연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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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는 볼 수 있었다.

        로티의 등에 앉은 발가르의 몸이 살짝 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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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삑! 아빠, 나 다른 친구들도 태워줄래! 태워줄 수 있어! 삐익!”

        《하찮은 녀석들이여. 영광으로 알아라. 로티의 등에 탈 수 있는 영광을 주도록 하겠다.》

        “……아버님?”

        “…이, 일단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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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와 이안, 한스가 쭈뼛거리며 로티의 등에 앉았다. 

        좁은 등 위에 네 명이 앉았더니 숨이 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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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웅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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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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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벼운 부유감. 로티의 등에서 살짝 떠올랐다.

        한스가 발가르를 바라봤더니, 조용히 하라는 듯 표정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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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펄럭! 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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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이이이! 나, 힘 엄청 강해! 네 명도 태울 수 있어!!》

        ​

        로티가 힘차게 날갯짓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기세는 가히 용맹했으나, 속도는… 꽤 느렸다.

        ​

        “이 속도로 마왕성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예상치 못하게 너희들의 도착이 빨랐던 탓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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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와 일행은 약속했던 시기에 딱 맞춰서 도착했다. 발가르가 늦은 것이지.

        한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굳이 안 해도 될 이야기였다.

        ​

        펄럭! 펄럭!

        ​

        로티는 일행을 태우고 천천히 하늘을 날았다. 고도는 제법 높았다. 발밑으로 울창한 밀림이 지나갔다.

        ​

        쿠구궁! 쿠웅!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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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곡하게 자라난 밀림에서 연달아 굉음이 들리며 거목이 우수수 쓰러져갔다. 매우 빠른 무언가가 거목을 쓰러트리며 일직선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

        “아. 저기 케니스랑 데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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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심히 아래를 살피던 한스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혹시나 하였는데 역시나.

        금방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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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 삐이이ㅡ. 아빠아아…. 저기 두 명이 더 있는데, 더, 더 태워…?”

        ​

        로티가 죽는소리를 하며 발가르를 바라봤다. 로티의 등은 이미 만원이었다. 

        물리적인 공간이 부족했다. 만약 태운다면 꼬리나 날개에 매달려야 할 판이다. 아무리 로티라고 해도 그건 무리였다.

        ​

        《저 둘이라면 알아서 잘 올 것이다. 필멸자, 네가 알아서 신호를 남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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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뜻 정 없어 보이는 발가르의 말이었지만, 이는 케니스와 데이지를 어느 정도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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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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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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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가 크게 숨을 마시며 가슴을 부풀렸다. 

        ​

        “귀 막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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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과 아리아가 재빨리 귀를 막았다.

        한스의 입에서 커다란 고함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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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ㅡ리ㅡ먼ㅡ저ㅡ마ㅡ왕ㅡ성ㅡ으ㅡ로ㅡ갈ㅡ게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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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가 터져나가는 굉음.

        코앞에서 벼락이 친 듯 고막이 사정없이 울렸다.

        ​

        “삐이, 삐이이이! 아, 아빠! 아빠!!”

        ​

        놀란 로티가 비틀거리며 발가르를 부르짖었다. 발가르의 눈이 더없이 난폭해졌다.

        ​

        《네 녀석 필멸자여! 정녕 너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서 심연의 가장 어두운 곳에 처박아야 만족하겠느냐!!》

        “아, 아니. 그, 미안…. 저 아래까지 들리도록 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

        《두 번은 없다. 조심해라….》

        ​

        한스가 멋쩍게 사과했다. 

        사실 조금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한스의 잘못이 아니었다.

        ​

        ‘야,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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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수에 깃든 용왕이 멋대로 힘을 증폭시킨 탓이다.

        ​

        《크흐흐흐흫! 크하하하하! 세상에, 비늘이 다 벗겨질 지경이군! 네페로스가 저렇게 엉덩이춤이나 추는 꼴이라니! 흐하하하하하ㅡ!》

        ‘…드디어 미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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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가 고개를 저었다. 

        ​

        저 아래에서 한스의 신호를 제대로 확인한 케니스와 데이지의 답변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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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ㅡ방ㅡ갈ㅡ게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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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웅, 쿵! 거목 쓰러지는 속도가 한결 빨라졌다.

        저 둘이라면 통곡의 산도 거뜬히 넘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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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자, 로티.》

        “삐이, 가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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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티가 힘차게 날갯짓했다. 

        ​

        펄럭, 펄럭. 

        ​

        네 명을 태운 로티는 통곡의 산을 향해 열심히 날아갔다. 속도는 조금 느렸다. 

        ​

        …그들이 통곡의 산을 완전히 넘는 데에는, 무려 이 주일이나 걸렸다.

        ​

        “왜 이렇게 늦었어?”

        “…분명 먼저 와 계실 줄 알았는데.”

        ​

        오죽했으면, 진작에 통곡의 산을 통과한 케니스와 데이지가 그들을 추월했을까.

        ​

        “하….”

        ​

        한스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로티를 타고 온 덕분에 늦었다.

        ​

        발가르의 은밀한 배려 덕분에 로티가 일행의 무게를 감당하는 일은 없었지만, 고작 생후 10년 조금 넘은 아룡에게 통곡의 산은 너무 높고 험했다.

        ​

        “삐이…. 삐, 히, 힘들어어….”

        ​

        날아가다 쉬고, 또 날아가다가 쉬고.

        몇번이고 쉬면서 산을 넘어야 했다. 

        ​

        ‘이래서… 이래서 약속한 시일보다 늦게 도착한 거였나.’

        ​

        그러거나 말거나.

        발가르는 품에서 다시 종이를 꺼내 손가락 도장을 꾹 찍고 있었다.

        ​

        《잘했다. 이걸로 도장을 9개 모았군.》

        “끼이ㅡ! 신난다! 신난다!!”

        ​

        로티가 신나게 꼬리를 흔들었다.

        아리아가 로티에게 물었다.

        ​

        “……그… 죄송하지만, 그 도장을 전부 모으면 상을 받으시나요?”

        ​

        아리아, 그녀의 나이 9살.

        한창 칭찬 도장에 관심이 많아질 나이였다. 데이지가 아리아에게 칭찬 도장 같은 말랑한 것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

        ‘…이안 오라버니에게 부탁해볼까요…?’

        ​

        8개의 도장을 모은 선구자, 로티가 날개를 활짝 펼치며 으쓱거렸다.

        ​

        “삐이! 이거 10개 모으면, 아빠가 진흙 쿠키 만들어 준다고 했어!”

        “진흙… 쿠키?”

        ​

        아리아가 발가르를 바라봤다.

        어떻게 진흙을 먹일 수가….

        ​

        “삐! 이거 봐! 나 진흙 완전 잘 먹어!”

        ​

        챱챱.

        ​

        로티가 바닥에 있는 진흙을 꼬리로 뭉쳐서 한입에 쏙 넣었다.

        옴뇸뇸, 대지용이라서 가능한 식성이었다.

        ​

        “……하나 된 분 맙소사.”

        ​

        발가르를 바라보는 아리아의 눈빛은 경악, 그 자체였다.

        살갑게 대하는 듯 보여서 딸처럼 여기는 줄 알았더니. 설마 진흙을 먹일 줄이야….

        ​

        ‘이게, 인류의 대적자 마왕……!’

        ​

        ​

        ​

         * * * * *

        ​

        ​

        ​

        우여곡절 끝에 온통 얼음으로 만들어진 마왕성에 도착했다.

        진작에 합류한 케니스와 데이지도 함께였다.

        ​

        《네 녀석들, 하찮은 필멸자들. 오늘 구태여 다시 이 자리에 모인 이유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옥좌에 앉은 발가르의 목소리가 웅웅 사방에서 울렸다.

        목소리에 깃든 위엄… 때문은 아니었고, 그냥 알현실이 너무 넓고 아무것도 없어서 소리가 울리는 것이었다.

        ​

        “우리는 언젠가, 못다 한 승부를 결정짓겠다고 말했었죠.”

        《옳다. 허나, 그때 본인은 피와 강철로 끝 보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

        케니스의 대답에 발가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이곳에 모인 이들은 개개인의 무력으로 나름 정점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이들이다.

        ​

        그러나 어찌하여 무력으로 결판내지 않겠다고 말했는가.

        ​

        “…폭력과 전쟁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죠….”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변하고 있다. 거대한 물살에 휩쓸린 물고기는 격류를 깨달을 수 있는가?》

        ​

        발가르는 창가를 향해 다가가며 팔을 벌렸다.

        ​

        하나 된 분의 기적, 대격변, 은총.

        지상과 하나 된 심연.

        ​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으니. 악마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

        심연을 흐르던 독무는 사라졌다. 심연의 환경이 크게 변했다는 뜻이었다.

        ​

        바다와 호수가 생기고, 바람이 분다. 생명이 자라는데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진 셈.

        이미 심연에 뿌리내린 억센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

        심연은 변하고 있었다. 이미 변했다.

        하지만 악마들의 근원은 여전히 변치 않았다.

        ​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

        ​

        허나, 이전처럼 무조건적으로 생명의 피와 살점을 탐하는 욕구가 줄어들고 있었다.

        ​

        몇몇 하급 악마 중에서는 흐릿하지만 이지가 깨어난 이도 있을 정도였다. 

        ​

        《난 그들을 보듬는 만마의 제왕. 피와 폭력 대신, 지혜와 관용을 휘두르는 시대를 맞이해야 할 터이니.》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주역이 있어야 하죠.”

        ​

        케니스와 한스, 데이지, 발가르의 시선이 흩어졌다.

        각자의 자식을 향해.

        ​

        그들의 시대는 순리대로 흘러간다.

        어머니의 손에서 딸에게,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

        “어, 으에?”

        “……어머니? 아, 아버님?”

        “삐익?”

        ​

        당황한 아이들이 주춤 물러난다.

        부모들은 시선을 맞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자. 이제 마지막 승부네요.”

        《옳다.》

        “…결판을 내죠.”

        ​

        갑작스레 흐르는 비장한 공기.

        ​

        이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

        연회장 안에서 나누는 대사를, 이안은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

        처척!

        ​

        발가르가 천장을 향해, 아니!

        그 너머,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우렁차게 외쳤다.

        ​

        《하나 된 분이시여, 어버이시여!!》

        ​

        그 뒤를 이어, 케니스.

        이글거리는 대검을 하늘로 높게 들어 올렸다.

        ​

        마치 타오르는 횃불처럼, 어둠을 찢어발기는 불씨처럼.

        ​

        “그대의 검이 바랍니다. 당신의 종이 간절하게 바라나이다!”

        ​

        그리고 한스와 데이지.

        ​

        “부디, 그대의 거룩한 눈으로 임하시어 저희를 굽어살피소서. 감히 우리들의 청을 들어주소서!”

        ​

        콰아아아아아ㅡ

        ​

        연회실 전체에 거대한 존재감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

        저 하늘 너머, 구름으로 가려지지 않는 곳.

        ​

        아득하고 공활한 곳에 고고히 자리 잡은 일곱 개의 별들이, 눈동자의 형상을 그리는 천체가 움직인다.

        ​

        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부름을 쫓아서.

        그들의 외침은 공기를 타고 흐르는 파동을 초월하여, 그보다 더 근본적인 부르름이 되었으니.

        ​

        그들의 거룩한 의지는 구름을 넘어서, 하늘을 초월하여, 그보다 더 공허하고 아득한ㅡ 끝없는 곳을 향해.

        ​

        ​

        ​

         * * * * *

        ​

        ​

        ​

        따르르릉ㅡ! 따르르르릉ㅡ! 따르르릉ㅡ!

        ​

        안락한 잠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귀가 찢어져라 울어대는 알람 소리에 나는 귀를 막고 돌아누웠다.

        ​

        “…우, 으음…. 케넬름…. 저것 좀 어떻게 해 봐…….”

        ​

        부스럭.

        ​

        옆에서 인기척이 움직인다. 

        ​

        따르르르ㅡ

        ​

        시끄럽게 울던 벨소리도 잦아들었다. 다시금 정신이 가라앉는다. 안락한 수면의 세계에 나를 던지는ㅡ

        ​

        “일어나세욧!”

        “으하앗?!”

        ​

        우렁찬 케넬름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젠장 도대체 무슨 일이야?

        ​

        “무, 뭐야? 무슨 일이야?”

        “이거 당신을 찾는 거잖아요. 직접 해결하셔야죠.”

        “으윽. 아침부터…?”

        “아침이라뇨. 해가 중천인데.”

        ​

        벌써 그렇게나 됐다고?

        ​

        케넬름이 둥둥 떠 있는 거울을 손가락으로 나에게 밀었다. 허공을 날아서 다가오는 거울 속으로,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

        “뭐야. 벌써 한자리에 다 모였네?”

        ​

        – “위대하신 분의 말씀을 기다리나이다!”

        – 《어버이시여, 아뢰옵기 황공하게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한스, 데이지, 케넬름, 발가르.

        아주 떼거리로 모여서 나를 부르는 강령쇼를 열고 있었다. 

        ​

        “어그으윽.”

        ​

        뚜둑, 뚜두둑ㅡ

        ​

        간밤의 노고를 증명하듯, 몸 곳곳에서 시원한 소리가 들려왔다. 

        ​

        “팝콘 좀 가져올까요?”

        “어, 응. 부탁해.”

        ​

        케넬름이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얇은 가운만 걸친 채 걸어갔다. 가운 너머로 살랑살랑 흔들리는 여체의 굴곡이 내 눈동자를 유혹한다.

        ​

        “…후우. 참자, 일단 이 녀석들부터 해결하고.”

        ​

        아슬아슬했다. 솔직히 조금 혹했지만….

        ​

        ‘할 일부터 하고 난 다음이라면서, 케넬름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

        ​

        의욕이 팍팍 솟아난다.

        후딱후딱 처리하자고.

        ​

        “크흠. 《말하여라.》

        ​

        이제는 익숙해진 발성 방식이다. 소위 말하는, 위엄있는 산의 목소리.

        거울 속 녀석들은 몇 번이고 들었던 만큼 익숙하게 머리를 숙였다. 아리아와 이안, 로티만이 익숙하지 않은 존재감에 덜덜 떨고 있다.

        ​

        – “미천하고 우둔한 저희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있나니!”

        – “…바라옵건대, 당신의 빛나고 영험한 지혜의 일부분을 빌려, 저희들의 난제를 해결해주시기를 바라옵니다.”

        ​

        “씁.”

        ​

        하필이면 이런 부류인가.

        ​

        살짝 미간을 구겼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 나보다는 케넬름이나 리아가 더 제격인데.

        ​

        ‘케넬름은….’

        ​

        팝콘을 튀기는 중이다.

        ​

        ‘…리아는.’

        ​

        우리 둘이서 꽁냥거리는 거 보기 힘들다고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지를 만들었다. 당장 불러오기는 조금 힘들다.

        ​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에.

        ​

        《…말해보아라. 세상의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고 결과가 있는 법이니. 너희들은 나에게 낱낱이 고하여라.》

        ​

        – …끄덕

        ​

        거울 속 녀석들이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발가르가 대표로 나서며 힘차게 외쳤다.

        ​

        – 《저희들의 자식 중에서, 누가 가장 잘난 자식인지 헤아려 주시옵소서!!》

        ​

        “아이 씻팔.”

        ​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그런 건 너희들이 알아서 정하란 말이야!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이제 외전도 슬슬 끝이군요…!!!!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안의 미래는… 관측되지 아니하였으니… 슈뢰딩거의 중첩 현관 상태입니다…!! 저 현관문을 열기 전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초ㅡ중첩 다중 현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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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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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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