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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내가 스테이지 위에 오르자 백 쌍이 넘는 눈동자가 나에게 향했다.

         

       저릿.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일이었음에도 긴장감에 손이 저려 왔다. 그리고…, 방금 전 나보다 먼저 무대를 선보인 서유진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여기서 당당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지?’

         

       서유진의 안하무인(眼下無人)이라는 특성…, 쓰레기인 줄만 알았는데 어쩌면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이 무거운 긴장감은 줄여줄 테니까.

         

       두근-.

         

       그만큼 나는 압박감에 떨고 있었다. 미칠 듯이 뛰는 심장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니 그제서야 심사진들이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시작했다.

         

       “예, 하예린 참가자. 자기소개 해주시죠.”

         

       “…형제기획에서 온 19살 하예린이라고 합니다.”

         

       “그게 끝인가요?”

         

       “역시 시크하시네요~”

         

       아차차…. 자기소개에 미사여구를 좀 붙이려 했는데 긴장해서 그런지 생략해버렸다.

         

       그래도 내 간결한 대답이 심사진들에게 그리 기분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나보다.

         

       그들은 오히려 내 캐릭터성에 만족했는지 웃음을 지었다.

         

       “키가 굉장히 크신 편이네요? 몇cm인가요?”

         

       “아…, 172cm입니다.”

         

       “예? 와…, 한 177cm은 돼 보였는데….”

         

       “얼굴이 쪼꼬매서 그렇죠. 거의 제 주먹만한데요?”

         

       그리 말하며 주먹을 드는 심사위원도 여자였다.

         

       …아무리 내 머리가 작아도 여자 주먹만 하지는 않았다. 나를 놀리려는 의도가 다분한 말이었다.

         

       “그 정도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어머, 곤란해하는 표정도 귀엽네요.”

         

       “하예린 참가자는 생각보다 놀리는 맛이 있네요?”

         

       “하하하~”

         

       심사진 중 한 명이 웃자 다른 이들도 따라 웃으며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내가 하예린으로 다시 태어나서 전생과 크게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람들이 내게 친절하다는 것.

         

       ‘내 외모 덕이 크겠지.’

         

       동성이든 이성이든 아름다운 외모는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드니까.

         

       덕분에 나는 다른 참가자들 때보다 심사진들의 호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사람에 따라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태어난 거 뭐 어쩔 수 없지 않겠나.

         

       나는 이참에 예쁘게 태어난 덕을 톡톡히 보려 했다.

         

       ‘이렇게 부드러운 분위기를 끝까지 끌고 가면….’

         

       그런데 그때였다.

         

       “하예린 연습생.”

         

       좋게 흘러가던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얼음처럼 차가운 음성이 끼어들었다.

         

       그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한시우였다.

         

       그는 내 외모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뒤적이다가 무심하지만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지금 봤는데…, 아이돌 연습생 경력이 굉장히 짧으시네요?”

         

       “…….”

         

       “정확히 연습생 기간이 어떻게 되는지요.”

         

       한시우의 말에 그제서야 다른 심사진들도 고개를 갸웃하며 서류를 뒤적였다.

         

       ‘…젠장.’

         

       어차피 겪어야될 일이었다. 나는 남몰래 속으로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담담하게 답했다.

         

       “정확히는 한 달입니다.”

         

       “……!!”

         

       이에 심사진 중 한 명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안경을 치겨세우며 다시 물었다.

         

       “한 달…, 그러니까 트레이닝 받은 지가 이제 한 달이라고요?”

         

       “…예, 맞습니다.”

         

       “…….”

         

       내 대답과 함께 화목했던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랭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위기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담담하게…, 더 치명적인 질문들을 이어갔다.

         

       “지금 제 뒤에 있는 연습생 분들 중에서 최소 1년 이상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분은 없습니다. 그중에는 10년 넘게 연습한 분도 있고요.”

         

       “……예.”

         

       “그런데 고작 한 달 연습하고 출연을 하셨다라…,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으셨나요, 아니면….”

         

       톡톡.

         

       “그만큼 아이돌이 만만하게 보이셨나요?”

         

       …이 시발 새끼가.

         

       대기업도 아니고 왜 압박 면접을 하고 지랄이야.

         

       제 3자의 입장에서는 미처 몰랐는데 한시우의 날카로운 질문들은 정말 숨을 턱턱 막히다 못해 욕지거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오래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우우웅-.

         

       지금도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아니?

         

       “쟤랑 시우 씨 표정 줌 해, 얼른.”

         

       그들은 오히려 새로운 방송 분량에 미쳐 날뛰며 친히 내 묫자리에 구멍을 파주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나를 노려보는 한시우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차가운 눈에 담긴 적의는…, 서유진이 나를 바라볼 때보다 더 심했다.

         

       대체 왜…?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나는 서둘러 제정신을 차려야 했다.

         

       여기서 삐끗하면…, 나도 나락이었으니까.

         

       ‘한 달 만에 나아아를 나올 수 있겠다 생각이 들 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었냐고?’

         

       아니.

         

       상태창이 있었음에도 나는 자신이 없었다.

         

       “지난 한 달간 직접 몸으로 뛰고 부딪치며 저는 아이돌이라는 직종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지금 제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닙니다. 저는 더 열심히 노력하고 성장해야겠지요.”

         

       아이돌이 만만하게 보였냐고?

         

       아니.

         

       그것도 아니다.

         

       “저는 고작 한 달 연습했는데도 힘에 부쳤습니다. 여기 계신 다른 모든 분들은 이 고된 트레이닝을 최소 수 년 이상 견뎠죠. 그런 분들이 모여 있는 아이돌 업계를…, 절대 만만히 보지 않습니다.”

         

       내가 대답을 마치자 한시우가 여전히 싸늘한 눈초리로 내게 물었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것도…, 아이돌을 만만히 본 것도 아니면 나아아에는 무슨 이유로 나오신 거죠?”

         

       이런 늑대거북같은 새끼.

         

       한 번 나를 문 그는 어마무시한 치악력으로 나를 놔줄 생각을 않았다.

         

       무슨 이유로 나아아를 나왔냐니…, 그렇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당연히….

         

       “…당연히 아이돌이 되기 위해 나아아에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이돌이 되고 싶은 거죠?”

         

       와앙.

         

       늑대거북의 맹공에 내 머리는 점점 아파 왔다.

         

       평소였으면 꾸며서라도 괜찮은 대답을 꺼냈겠지만…. 긴장감과 압박감이 더해진 나는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대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이돌이 되려는 이유….

         

       ‘예린아, 엄마는 나중에 늙으면 경치 좋은 대저택에서 살고 싶어.’

         

       ‘하하, 여보. 그러면 예린이한테 부담이잖아요. 저는 강남의 60평짜리 고급 아파트면 만족해요.’

         

       ‘우리 예린이는 결혼해도 엄마, 아빠랑 계속 같은 집에서 살 거지?’

         

       ‘예린아,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전래동화는 심청전이야. 아버지를 위해 스스로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의 효심이 얼마나 감동적….’

         

       …부모님.

         

       그래, 내 빌어먹을 부모들….

         

       내가 과로로 죽을 때까지 내 등골을 쪽쪽 빨아 먹을 모기들.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면…, 돈이 필요했다.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당장 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아이돌이 되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 나는….

         

       “…부모님 때문에.”

         

       “……예?”

         

       “부모님 때문에…, 저는 아이돌이 돼야 합니다…. 꼭이요….”

         

       “……!”

         

       그렇게 내가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전한 그때였다.

         

       파아아-!

         

       지금까지 이런 적 없던 상태창이 갑자기 자기 마음대로 켜져 빛나기 시작하더니….

         

       [특성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특성 ‘진심’을 획득합니다.]

         

       [특성 : 진심(眞心) – “아, 진짜라고-!!” 가슴에서 우러나는 진심을 내뱉는다면 그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달됩니다.]

         

       …뭔가 애매모호한 것이 나왔다.

         

       언젠가 비어져 있는 상태창이 찰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근데 이건 뭐지…?

         

       ‘가슴에서 우러나는 진심이 뭔데….’

         

       그리고 그것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고 무언가 달라지긴 하나?

         

       “부모님…, 때문에 아이돌이 되셔야 한다고요?”

         

       “네? 아, 예….”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렇게 절절하게… 아, 아닙니다.”

         

       “……?”

         

       내게 무언가 질문하려던 댄스 트레이너가 중간에 화들짝 놀라고는 질문을 거뒀다.

         

       그 순간 나는 심사위원들이 나를 향하는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는 나를 차갑게 보던 사람들이…, 지금은 뭔가 조금 불쌍하게 보는 느낌이랄까? 나를 응원하는 느낌도 있고….

         

       ‘특성이 적용된 건가?’

         

       …근데 특성이 적용되긴 했어도 내 진심이 정확히 적용된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부모 때문에 아이돌이 돼야 한다고 말했던 건 우리 부모에게서 벗어나기 위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의 반응은 마치 인당수에 뛰어드는 심청이를 바라보는 뱃사람들 같지 않은가.

         

       …무언가 오해가 있음이 분명했다.

         

       “…….”

         

       그럼에도 나는 굳이 정정하여 그들의 오해를 바로 세우려 하지 않았다.

         

       오해해주면 고맙지. 냉랭한 분위기가 풀어졌으니 나는 오히려 땡큐다.

         

       거기에 혹여 효녀 컨셉이라도 받으면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생각보다 괜찮은데?’

         

       실제로 저 늑대거북 같던 한시우도 생각보다 온순해지지 않았는가.

         

       “…아무리 이유가 있다고 해도 방금 하예린 연습생이 말한 것처럼 이쪽 업계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한 달 연습만으로는 등급 평가 무대를 준비하기 부족하셨을 텐데….”

         

       “그것은…, 무대로 증명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는 그 질문을 끝으로 마이크를 놓았다.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무대를 보겠다는 의미였다.

         

       이에 따라 다른 심사진들도 마이크를 놓았다.

         

       “그러면…, 지금부터 무대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도 인터뷰용 마이크를 스태프에게 반납하고 무대로 올라 자세를 잡았다.

         

       분위기가 조금 괜찮아졌다 해도 여전히 백 쌍이 넘는 눈동자들이 나를 향하여 압박감을 주었다.

         

       그중 독보적인 건 역시 한시우였다.

         

       역시 프로답달까. 무대를 보기 전 그의 눈은 다시 이성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모습에 위축될 뻔도 했지만…, 무대 직전이 되니 나는 왠지 도리어 긴장이 풀렸다.

         

       무엇보다 나는…, ‘대(對) 한시우 전략’도 세워오지 않았는가?

         

       ‘저 차가운 얼굴이 반드시 사르르 녹게 만들겠어.’

         

       이 기회에 한시우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조금 귀여운 생각을 속으로 한 후 나는 스태프에게 큐 사인을 보냈다.

         

       우웅-.

         

       스테이지 밖 수십 대의 카메라가 나를 찍었다.

         

       이것은…, 대중들에게 내가 선보이는 아이돌 연습생으로서의 첫 무대였다.

         

         

         

         

       **

         

         

         

         

       “짠!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수현 쌤.”

         

       “네, 지우 쌤도요.”

         

       나아아 첫 촬영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그때. 밖에서는 하예린의 임시 트레이너였던 두 사람이 포장마차에서 회포를 풀고 있었다.

         

       “지금쯤 예린이도 등급평가를 하고 있겠죠?”

         

       “아마 그럴 거예요.”

         

       “아…, 제발 실수 없이 잘했으면 좋겠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지금 두 사람이 하는 말은 빈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 한 달간 하예린과 꽤 많은 정을 쌓았으니까.

         

       “이번에 Nnet에서 나아아 촬영에 상당히 공들인 것 같던데…, 혹시 JJ에서도 나온데요?”

         

       이지우가 그리 말한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저 강수현이 본래 JJ 소속이었으니까 아는 정보가 있을까 싶어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

         

       “……?”

         

       이지우의 질문에 강수현은 말없이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착잡한 표정을 한 채 답했다.

         

       “…제 제자였던 애 중 한 명이 나간다고 하더라고요.”

         

       “…아.”

         

       연예계에 종사하다 보면 가슴 아픈 사연이 하나 둘씩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이번에 나아아에 출연한 JJ 출신 참가자는 강수현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실력은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뛰어났었는데…, 여러 사정 때문에….”

         

       “…….”

         

       그리 말하는 강수현의 표정이 너무 침울했기에 이지우는 더 물을 수 없었다.

         

       대신 같이 잔을 기울이며 작은 위로를 건넬 뿐.

         

       “…아마 잘 될 거예요.”

         

       “…네. 예린이도…, 그 아이도…, 부디 잘 됐으면 좋겠네요.”

         

       짠.

         

       두 사람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또다시 건배를 하고 소주를 마셨다.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이지우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 그보다 수현 쌤. 예린이는 왜 등급 평가로 그 곡을 골랐을까요?”

         

       “그건…,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번 등급 평가에서 선보이기 위해 하예린이 준비한 곡은 무척이나 생소할 뿐더러 애초에 아이돌 곡도 아니었다.

         

       이에 강수현과 이지우 모두 우려를 표했지만….

         

       “똑똑한 아이니까 다 생각이 있겠죠.”

         

       “그렇겠죠?”

         

       …하예린이 반드시 그 곡을 해야 한다고 완강하게 몰아붙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하예린을 신뢰하니까. 그녀가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예린이의 A등급을 위해 한 번 더 짠할까요?”

         

       “…지우 쌤. 술 잘 드시네요. 저희 지금 3연속으로 안 쉬고….”

         

       “넹?”

         

       “…아니에요.”

         

       강수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술잔을 들었다. 이지우도 이에 따라 명랑한 웃음을 지으며 잔을 높이 들었다.

         

       분야도, 성격도, 취미도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들의 제자를 위해 하나 되어 건배를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 회차는 12시간 후 연재될 예정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다음 회차가 올라와 있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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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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