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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아, 저 혹시 무대에 앞서 복장을 조금 갈아입어도 될까요?”

         

       “그러시죠.”

         

       지금 나아아 참가자들이 공통으로 입고 있는 것은 교복 형식의 유니폼.

         

       상의는 와이셔츠에 넥타이 그리고 제복 느낌이 나는 각진 재킷에 하의는 테니스 치마다.

         

       격렬한 댄스를 하기엔 부적절한 의상이었기에 사람에 따라 옷을 갈아입고 무대를 하기도 했다.

         

       이에 한시우는 아무 생각 없이 의상 교체를 허락했다.

         

       그런데….

         

       훌렁.

         

       한시우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하예린은 재킷을 벗어제꼈다.

         

       “…?”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한시우는 물론 다른 심사진들이 벙쪘다.

         

       그러다….

         

       스윽-.

         

       “예, 예린 양-!!”

         

       그녀가 치마까지 벗어서 내리니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만 몇 명인데 저게 무슨 짓인가. 그것도 아직 성인도 안 된 고딩 여자애가!

         

       “지, 지금 무슨 짓이에요!”

          

       “…예?”

         

       모두가 기겁하고 있는데 정작 하예린은 태연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이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지 파악을 못 한 듯 보였다.

         

       “여, 여기가 아니라 스테이지 밖에서 옷을 갈아입으셔야죠.”

         

       “아….”

         

       한시우는 필사적으로 눈을 가린 채 그리 말했다.

         

       그런 그의 말을 듣고 하예린이 잠시 멈칫했다가 자신의 휑한 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치마 안에 바지를 입고 있어서요.”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치마 속에 숨겨져 있던 짧은 팬츠가 있었다.

         

       “아.”

         

       그 말을 듣고서야 심사진들이 안심하고 눈을 떴다.

         

       특히 심사진 중 유일한 남자였던 한시우는 하예린이 팬츠를 입고 있는 걸 확인한 후에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하…, 괜한…, 오해를 했네요.”

         

       하예린이 너무 털털하게 옷을 훌렁 벗어서 생긴 오해였다.

         

       ‘속에 무슨 아저씨가 들었나….’

         

       그렇게 잠깐의 해프닝이 지나고 하예린은 벗은 재킷과 치마를 스테이지 밖으로 옮기고 돌아왔다.

         

       ‘…음?’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한시우가 물었다.

         

       “혹시 하예린 연습생. 의상교체는 그걸로 끝인가요?”

         

       “예, 맞습니다.”

         

       사실 이건 의상 교체라고 보기도 뭐 했다.

         

       하예린이 한 것은 그저 입고 있던 재킷과 치마를 벗은 것뿐이니까.

         

       그런데….

         

       ‘어울린다. 그것도 미치도록.’

         

       조금 구겨진 하얀 와이셔츠. 살짝 풀어 헤쳐진 넥타이. 그리고 허벅지까지 오는 짧은 블랙팬츠까지.

         

       오피스룩과 캐주얼이 적당하게 믹스된 저 무심한 코디가.

         

       꿀꺽.

         

       어딘가 남심을 자극하며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당연히 그걸 느낀 것은 한시우만이 아니었다. 다른 심사진들과 참가자들도.

         

       “……쟤만 단독으로 몇 개 찍어봐.”

         

       심지어는 스테이지 밖 제작진들까지 하예린의 바뀐 분위기에 홀려 시선을 집중했다.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정작 하예린은 특유의 무심한 표정과 함께 무대를 준비할 뿐이었다.

         

       그런데 주변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한 그 모습이 또 하예린의 매력을 빛내 주었다.

         

       “그러면 무대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주위 시선이 한층 더 집중된 채로 무대는 시작되고….

         

       똑딱똑딱.

         

       “……!!”

         

       “……어어?!”

         

       시계침이 부딪치는 인트로가 흐르는 것과 동시에 하예린에 홀려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이 노래는…!”

         

       “이걸 하겠다고…?!”

         

       그 충격은 서유진이 태환의 <moving>을 선곡했을 때나 방금 전 하예린이 지디몬 어드벤처의 <butter-dragon>을 선곡했을 때보다도 훨씬 컸다.

         

       “이거…, <24시간이 부족해>잖아…!”

         

       JJ 출신 레전드 아이돌인 미선의 싱글 1집.

         

       <24시간이 부족해>

         

       잘 완성된 여자 퍼포먼스 곡인데다 춤 동작도 크게 역동적이지 않아 라이브에 용이했지만 비교재가 너무 월등하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곡이었다.

         

       원곡가수 미선이 이 곡과 너무 찰떡이라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원곡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24시간이 부족해>가 소화해내기 너무 어렵다는 것.

         

       몽환적인 춤과 매혹적인 목소리.

         

       이는 무대 경험이 뛰어난 베테랑이 아닌 이상 끌어내기 힘든 부분이었으니까.

         

       실제로 많은 여자 아이돌들이 <24시간이 부족해>에 도전했다가 흑역사만 잔뜩 쓰고는 했다.

         

       그래서 이 곡은 암암리에 커버 금기곡으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이걸 하겠다고?

         

       많은 이들이 벙찐 가운데 가장 크게 충격받은 건 한시우였다.

         

       ‘이건…, 망했다.’

         

       사실 방금 전 하예린의 가창력에 꽤나 흥미를 느낀 한시우였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조금 그녀의 선전을 기대했는데…, 하필이면 이 노래를 선곡하다니.

         

       그 순간 한시우의 머릿속에서 민망하게 허우적대다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하예린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건 개다리춤보다 못한 선곡이야.’

         

       이제 겨우 한 달 연습한 사람이 이 곡을 소화할 리 없을 테니까.

         

       혹시 하예린이 신이 내린 천재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그렇게 한시우는 하예린을 향한 안타까움을 느끼며 무대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

         

       무대가 진행되며…, 찌푸려져 있던 한시우의 눈동자는 처음과 다른 감정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쩌억.

         

       놀라움을 이겨내지 못한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

       

         

         

       조금 시간을 뒤로 돌리고.

         

       강원도 어딘가.

         

       XX사단 본부근무대 경비중대 C-2 생활관.

         

       금요일 23시 43분.

         

       낮 동안 위병소 경계와 작업에 시달린 중대원들은 TV 앞 침상에 옹기종기 모여 야간 연등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행복한 야간 연등 시간은 아니었다.

         

       “야 이 개새끼야. 너 병신이야? 어디 모자라? 사복 입었다고 사단장님을 못 알아봐? 네가 공관에서 내려오는 사단장한테 경례 안 한 것 때문에 비서실장이 우리 소대장한테 개지랄 떤 거 알아 몰라.”

         

       “죄, 죄송합니다…!”

         

       “너 근무 들어간지 두 달 됐나? 근데 십새끼야, 너 번호판도 다 못 외웠다며. 야, 정보참모 차 번호 뭐야.”

         

       “저, 정보참모 한영희 중령님 차, 차 번호…, 1721…! 1721입니다…!”

         

       “그건 대침투작전장교 차 번호고 병신아. 하…, 이 폐급새끼. 안 되겠다. 너 이따가 나랑 02시 근무지? 넌 시발놈아 자지 말고 지금부터 근무까지 차 번호만 존나 외워라.”

         

       “…예! 알겠습니다!”

         

       “그때 또 물어 봤는데 틀리면 진짜 뒤진다.”

         

       뒤에서는 어리바리한 일병이 선임에게 쥐 잡듯이 털리고 있었고….

         

       “아, 시발. 볼 거 존나 없네. 그냥 잘까.”

         

       앞에서는 전역까지 93일 남은 경비중대 왕고 유창선 병장이 하품을 하며 지 좆대로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아니, 그럴 거면 그냥 자라고. 우리끼리 보게!’

         

       주위의 수많은 후임들은 진득하게 TV를 보지 않고 자꾸 채널을 돌려대는 유창선 병장을 욕했지만 그래도 그 목소리가 닿는 일은 없었다.

         

       뭐가 됐든 TV 앞에 있긴 한 그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었으니까.

         

       아직 짬이 안 되는 일, 이병들은 자리가 없어 TV도 보지 못하고 각자 자리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이곳은 경비중대 C-2 생활관.

         

       부조리와 비합리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저…, 유창선 병장님?”

         

       그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후임 한 명이 어렵게 손을 들고 청했다.

         

       “왜?”

         

       “혹시 볼 것 없으시면 Nnet 한 번 틀어보는 것 어떻습니까?”

         

       “Nnet? 뭐야, 쇼미 새 시즌 나왔냐?”

         

       “그게 아니라 Nnet에서 지금 나의 아이돌 아카데미아라고 여자 아이돌 오디션 프로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유창선 병장이 황급히 리모컨을 돌리며 물었다.

         

       “아이돌 오디션…? 몇 시에 시작하는데?”

         

       “제가 알기로 23시에 시작합니다. 아마 지금 하고 있을 겁니다.”

         

       “뭐…? 야이 시발놈아! 그러면 빨리 말했어야지! 아, 시발 이미 시간 존나 지났네!”

         

       “…죄송합니다.”

         

       사실 후임이 잘못한 거는 아니었지만 그는 익숙하게 사과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내심 기다리고 있던 ‘나아아’ 첫 방송을 보게 되어 기분 좋았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라는 이야기가 나오니 다른 후임들의 관심도 TV로 쏠렸다.

         

       군인들에게 있어…, 여자 아이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피슉.

         

       “오…, 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히 알짜배기는 놓치지 않은 그들이었다. 유창선 병장이 채널을 돌렸을 때는 나아아 참가자들이 등급평가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번 순서는 서유진이었다.

         

       [SAV 소속 참가자 서유진!]

         

       큼지막한 자막과 서유진의 외모를 보며 유창선 병장이 탄성을 내질렀다.

         

       “와~ 씨…! 존나 예뻐!!”

         

       남자라면 누구나 좋아할 고양이상의 미소녀.

         

       [서유진(SAV) : 예, 저는 떨리지 않습니다.]

         

       [서유진(SAV) : 저는 SAV이기 때문입니다!]

         

       [서유진(SAV) : 지금 무대를 통해 제가 다른 참가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말하는 게 뭔가 싸가지 없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서유진은 예쁘니까.

         

       심지어 그녀는….

         

         

       -묘한 분위기에 아찔해 너를 놔버릴 수 없어.

         

         

       외모만 예쁠 게 아니라 뛰어난 무대 실력도 가지고 있었다.

         

       “와…, 씨. 노래도 엄청 잘하네….”

         

       “춤도 엄청 잘 추는 것 같습니다.”

         

       “역시 SAV라서 그런가? 그냥 저대로 데뷔해도 되겠습니다.”

         

       이에 다른 후임들도 감탄하며 유창선 병장의 말에 말을 더했다.

         

       [한시우 : 본인의 무대가 너무 겉멋이 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세요?]

         

       한시우가 서유진의 무대를 비판할 때는 한마음되어 욕하기도 했다.

         

       “십새끼가 지금 누구를 욕하는 거야.”

         

       “감히 시발 내 미래의 아내를 건드리네.”

         

       “한시우 저 새끼 옛날부터 사실 싸가지없다 말 많았습니다.”

         

       그만큼 서유진이 중대원들의 마음에 스며든 것이었다.

         

       [SAV 엔터테인먼트 서유진 연습생의 등급은 B입니다.]

         

       [충격적인 결과.]

         

       “와…, 이게 B라고? 이건 아니지.”

         

       “한시우 전 소속사 YW라 SAV 연습생한테 꼬장 부리는 거 아닙니까?”

         

       “B 받을 무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서유진이 B라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녀를 향한 응원이 점철되고….

         

       “야, 저거 투표 어떻게 하냐? 내일 바로 해야겠다.”

         

       “저희도 하겠습니다. 서유진, 쟤. 꼭 데뷔하면 좋겠지 말입니다.”

         

       날이 밝으면 다 같이 투표도 하겠다 다짐하던 그 순간이었다.

         

       두둥-.

         

       “음?”

         

       서유진이 자리로 돌아가고 갑자기 브금이 바뀌었다.

         

       그것도 아주 웅장하고 박동감 넘치게.

         

       “갑자기 뭐냐? 뭐 수양대군이라도 나오냐?”

         

       “아무래도 다음에 나오는 참가자를 방송에서 밀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최종보스같은 브금을 사용하지는 않을 테니까.

         

       [다음으로 무대를 보일 참가자는 형제기획 하예린 참가자입니다.]

         

       하지만 형제기획이라는 소속이 나오자마자 기대는 팍 식었다.

         

       “형제기획은 시발 뭔 아재가 지은 이름 같냐. 혹시 유명한 회사야?”

         

       “처, 처음 듣습니다.”

         

       “저도….”

         

       형제기획이라는 촌스럽고 틀딱내나는 회사의 소속이라면 별 볼 일 없는 애가 나올 거라 생각한 것이다.

         

       이에 리모컨을 쥔 유창선 병장은 시큰둥한 표정과 함께 후임의 다리에 드러누웠다.

         

       “실력도 없고 못생긴 듣보년들 분량 줄 바엔 그냥 아까 서유진 걔나 더 비춰주지. 소속사도 근본있게 SAV…, …어라?”

         

       그러던 그때였다.

         

       또각.

         

       카메라가 스테이지에 입장하는 하예린의 발부터 몸통을 천천히 찍어 올리고…, 마침내 그녀의 얼굴이 담긴 순간….

         

       “……!!”

         

       불평하던 왕고 유창선 병장도….

         

       “……헐.”

         

       “…미친.”

         

       유창선 병장 곁에서 TV를 보던 다른 선임병들도….

         

       “……와.”

         

       자는 척하면서 몰래 틈새 사이로 TV를 엿보던 일, 이병들도….

         

       “군수장교 차 번호 뭐야.”

         

       “…….”

         

       “야 이 시발년아. 선임이 말하는데 지금 눈동자가 어디를 가…, 어…?”

         

       까이고 있던 후임과 그를 갈구던 선임도.

         

       [예, 하예린 참가자. 자기소개 해주시죠.]

         

       [하예린(형제기획) : …형제기획에서 온 19살 하예린이라고 합니다.]

         

       마치 관성처럼…,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화면 속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모델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비율, 적당히 글래머한 가슴, 잘록한 허리.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이목구비, 그리고 교복까지.

         

       남자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모든 걸 갖춘 그녀의 등장에….

         

       탕.

         

       중대원들은 마취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얼어 붙었다.

         

       서유진의 존재는 당연히 진작 잊어 버린 채였다.

         

       “…….”

         

       “…….”

         

       덜렁이들만 가득한 군대에서 그녀의 존재는 너무나도 파괴적이었다. 이에 중대원들은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침묵 속으로 빠졌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왕고 유창선 병장이었다.

         

       “……진짜 개시발 좆되게 예쁘다.”

         

       그것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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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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