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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화면 밖에서 중대원들이 하예린을 홀린 듯이 보는 것과 별개로 화면 안의 하예린은 한시우에게 맹공을 당하고 있었다.

         

       연습 기간이 고작 한 달이라는 게 화근이었다.

         

       [하예린 참가자의 연습기간은 고작 한 달이라는데….]

         

       [한시우 : 지금 제 뒤에 있는 연습생 분들 중에서 최소 1년 이상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분은 없습니다. 그중에는 10년 넘게 연습한 분도 있고요.]

         

       [하예린(형제기획) : ……예.]

         

       [한시우 : 그런데 고작 한 달 연습하고 출연을 하셨다라…,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으셨나요, 아니면….]

         

       [숨 막히는 정적.]

         

       [한시우 : 그만큼 아이돌이 만만하게 보이셨나요?]

         

       “저 개 시발 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쳐하는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한시우를 향한 중대원들의 분노는 극에 이르렀다.

         

       “시발, 연습생 좀 짧게 했을 수도 있지, 별 꼽을 다 주네, 씹새가-!”

         

       “야, 시발. 한시우 저 새끼 군대 갔다 왔냐? …면제라고? 개시발놈, 고추는 존나 작을 거야 개새끼.”

         

       중대원들은 하예린을 오래도록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꾸 한시우가 하예린을 궁지로 모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하예린(형제기획) : 지난 한 달간 직접 몸으로 뛰고 부딪치며 저는 아이돌이라는 직종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지금 제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닙니다. 저는 더 열심히 노력하고 성장해야겠지요.]

         

       [하예린(형제기획) : 저는 고작 한 달 연습했는데도 힘에 부쳤습니다. 여기 계신 다른 모든 분들은 이 고된 트레이닝을 최소 수 년 이상 견뎠죠. 그런 분들이 모여 있는 아이돌 업계를…, 절대 만만히 보지 않습니다.]

         

       하예린의 대답에 트집을 잡을 구석은 없었다.

         

       아이돌 연습생들을 향한 리스펙과 스스로의 부족함을 잘 어필한 것이다.

         

       그리고….

         

       [한시우 : 그렇다면 왜 아이돌이 되고 싶은 거죠?]

         

       [하예린(형제기획) : …부모님 때문에.]

         

       [한시우 : ……예?]

         

       [하예린(형제기획) : 부모님 때문에…, 저는 아이돌이 돼야 합니다…. 꼭이요….]

         

       “…아이고, 이런.”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하예린이 부모 얘기를 했을 때는 동정심과 탄식을 불러일으켰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소녀가…, 절절한 목소리와 눈동자로 부모 이야기를 한 것에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매였다.

         

       거기서 이어지는 추가 편집본.

         

       그것은 하예린의 사전 인터뷰 내용이었다.

         

       [하예린(형제기획) : 저희 집에 빚이 조금 있거든요…. 그래서….]

         

       “와 씨…, 부모님 빚 갚아 드리려고 그런 거야?”

         

       “효녀네, 효녀야. 얼굴도 예쁜데 효심까지….”

         

       “맞습니다. 두부집 효녀 이후로 진짜 제일 예쁜 효녀가 나온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외모 때문에 중대원들의 온갖 호의와 관심을 집중 받던 그녀에게 동정의 시선까지 더해졌다.

         

       그들은 정말 한마음이 되어 하예린을 응원했다.

         

       혹여 하예린이 음치에 박치에 막춤을 추더라도 계속 좋아할 생각이었다.

         

       아이돌 연습한 지가 고작 한 달밖에 안 되었으니 어차피 무대에 대한 기대감이 없기도 했으니까.

         

       [하예린(형제기획) : 그러면…, 지금부터 무대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하예린의 무대가 시작하고….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내가 허락받은 세상이란~

         

         

       “어…?”

         

       “이거…!”

         

       익숙한 노래가 흐르자 중대원들은 다시금 동요했다.

         

       “와 씨, 이거 지디몬 아닙니까? 저 어렸을 때 엄청 좋아했는데?”

         

       “그러게. 혹시 쟤도 지디몬 봤나?”

         

       2, 30대 남자들에게 지디몬은 쉽게 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중대원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하예린의 무대를 보았다.

         

       생각보다 노래를 잘해서 귀가 즐겁기도 했다.

         

       사실 보컬 실력만 따지면 전 무대인 서유진이 더 뛰어났지만 그건 진작 잊어 버린 채였다.

         

         

       -oh my love~~

         

         

       그렇게 무대를 마치고.

         

       “와 씨, 찢었다.”

         

       “이야~ 한 달 연습했다며! 노래도 잘하는데?”

         

       이제 곧 야간 연등 시간이 끝날 시간이 됐음에도 그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하예린의 무대에 대해 왁자지껄 떠들었다.

         

       무대를 좋게 본 것은 그들 뿐만이 아니었는지 심사진들도 줄줄이 칭찬을 이었다.

         

       [한시우 : 음색도 좋고 발성도 좋네요. 박자감도 괜찮고요. 굉장히 즐거운 무대였습니다.]

         

       [이희수(보컬 트레이너) : 아직 잘 가듬어지지 않은…,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원석을 발견한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이 훈훈한 분위기를 다시 초치는 이가 있었으니….

         

       [한시우 : …그런데 말입니다. 하예린 연습생, 이건 아이돌 곡이 아니죠?]

         

       [긴장하는 표정.]

         

       [하예린(형제기획) : ……예.]

         

       [한시우 : 중간중간 동작이 있긴 했지만 그건 춤이라 보기 어렵고요. 맞습니까?]

         

       [하예린(형제기획) : …맞습니다.]

         

       [한시우 : 요즘 아이돌에게 있어 노래만큼 중요한 게 춤입니다. 아니, 어쩌면 요즘은 춤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아…, 진짜 쟤는 왜 저러냐.”

         

       역시나 한시우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중대원들 모두 한시우에게 속 편히 욕 할 수 없었다.

         

       하예린의 무대에 춤이 없었던 것 맞았으니까.

         

       “아…, 춤 좀 없다고 뭐 대수야?”

         

       “에이…, 그래도 아이돌인데 춤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긴, 춤 안 추면 아이돌 아니긴 해.”

         

       “아니, 이게 첫 무대인데 다음에 하면 되지.”

         

       TV 앞 중대원들도 춤 없는 하예린의 무대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없는지 반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펼쳤다.

         

       그러던 그때였다.

         

       [한시우 : 따로 준비한 댄스곡…, 있습니까?]

         

       “…오, 뭐야.”

         

       “기회 한 번 더 주나?”

         

       뭔가 웅장하고 긴박한 브금이 흐르는 것과 동시에 한시우가 한 곡 더 무대를 보기를 청했다.

         

       [하예린(형제기획) : ……준비한 게 있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해 보겠다는 하예린.

         

       “……괜찮으려나.”

         

       중대원들은 기대와 걱정이 반쯤 섞인 눈으로 방송을 보았다.

         

       “…….”

         

       “…….”

         

       그렇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하예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예린(형제기획) : 아, 저 혹시 무대에 앞서 복장을 조금 갈아입어도 될까요?]

         

       [한시우 : 그러시죠.]

         

       심사진들은 물론 TV를 보는 중대원들도 그 말을 들으며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 어우야.”

         

       “헉.”

         

       “와…, 뭐, 뭐야….”

         

       “시발, 비켜 개새끼야. 안 보이잖아!!”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그 자리에서 자켓을 벗는 하예린의 모습에 모두가 화들짝 놀라 탄식했다. 반사적으로 TV에 가까이 가려다 뒤통수를 맞은 후임도 있었다.

         

       [한시우 : 예, 예린 양-!! 지, 지금 무슨 짓이에요!]

         

       [하예린(형제기획) : …예?]

         

       [한시우 : 여, 여기가 아니라 스테이지 밖에서 옷을 갈아입으셔야죠.]

         

       당황한 건 한시우도 마찬가지인지 한시우가 드물게도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예린은 그런 한시우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하예린(형제기획) : 제가 치마 안에 바지를 입고 있어서요.]

         

       [한시우 : 아.]

         

       [빼꼼.]

         

       [그제서야 손을 내리는 한시우 프로듀서.]

         

       [많이 부끄러우셨나 봐요^^.]

         

       자막이 말하는 것처럼 많이 부끄러웠는지 한시우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완벽주의 성향이 다분한 한시우에게서 보기 힘든 모습이 연출되자 이를 본 중대원들이 좋다고 깔깔댔다.

         

       “아, 크큭. 저 새끼 얼굴 빨개진 것 봐.”

         

       “한시우 새끼도 결국 남자였습니다.”

         

       “저거 시발 괜히 내 미래 마누라한테 반한 거 아니야?”

         

       “쟤가 왜 네 마누라냐. 뒤질래?”

         

       하예린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이 해프닝으로 긴장된 분위기가 풀렸다.

         

       그리고….

         

       “…와, 근데 진짜 예쁘긴 존나 예쁘다.”

         

       “…실제로 보면 진짜 끝장일 것 같습니다.”

         

       의상교체로 야리꾸시한 분위기를 더한 하예린은 그 외모만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하예린(형제기획) : 그러면 무대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예린의 두 번째 무대가 시작되고….

         

       똑딱똑딱.

         

       “어? 이 노래?”

         

       “그거 아니야?”

         

       또다시 아는 노래. 특히나 섹시 퍼포먼스가 두드러지는 댄스곡이 나오자 중대원들은 기대에 부풀어 신나게 떠들었다.

         

       그리고….

         

       “와 씨, 기대된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완전…, …!”

         

       털썩.

         

       도입부 동작을 위해 하예린이 제자리에 주저앉자마자 모두가 숨을 들이키며 입을 닫았다.

         

       짧은 팬츠 밑으로 그녀의 하얗고 긴 다리가 돋보인 것이다.

         

       물론…, 그리 대단한 노출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앉아서 다리를 뻗은 것만으로도 중대원들의 가슴에 대단한 충격을 주기엔 충분했다.

         

       이어지는 노래.

         

         

       -나랑 함께 이 밤을.

         

       -나와 손을 맞잡고.

         

         

       아까 지디몬 어드벤처 노래를 부를 때와는 정반대의 허스키한 목소리.

         

       그것은 마치 정말로 옆에서 귓속말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건 역시 춤이었다.

         

       사르륵-.

         

       딱히 화려하거나 신나는 동작들은 아니다.

         

       느리고…, 몽환적인.

         

       하지만….

         

       사락-.

         

       …섬세하다. 그리고…, 오묘하다.

         

       “……아.”

         

       왕고 유창선 병장은 특히 심취하여 하예린의 한 동작 한 동작을 음미했다.

         

       그때였다.

         

       파앗.

         

       ‘……어?’

         

       어느 순간 시야가 암전되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가 있는 곳은 군대 생활관이 아니었다.

         

       어둡고…, 좁은…, 그의 자취방.

         

       유창선 병장은 익숙한 군대 생활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채 각자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스윽-, 저벅.

         

       그리고 그런 그에게 다가오는 인영.

         

       스륵-, 스륵.

         

       그녀는 팔을 쭉 뻗고 엉덩이를 올린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하예린이다….’

         

       방금 전까지 TV 속에 있던 소녀가 자취방 침대에 누워 있는 그에게 다가온다.

         

       그것도 고양이처럼 네발로 기면서….

         

       스윽-.

         

       보석처럼 큰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보면서….

         

       “허억….”

         

       그것만으로도 유창선 병장은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부족해.

         

         

       “…예, 예?”

         

         

       -부족해, 시간이.

         

       -너와 함께 있을래.

         

         

       스륵-.

         

       “하아….”

         

       하예린의 손길이 그의 발목에 닿았다.

         

       그녀의 손은 점점 위로 향하고 그녀의 몸은 그의 몸 위로 올라탄다.

         

       “하아…, 하아….”

         

       그녀의 손길이 가슴에 닿고 그녀의 숨소리가 바로 앞에서 느껴진다.

         

       마치 감전이라도 당한 것처럼 짜릿하고 황홀한 감각.

         

         

       -24시간은 너무….

         

       -부족해.

         

         

       그녀의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그것은 마치…, 물이 되어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전혀 싫지 않았다.

         

       유창선 병장은 오히려 이 황홀한 감각에 몸을 던졌다.

         

       그녀가 그의 모든 걸 앗아가는 그 순간을…, 그저 경외하며…, 감사하며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하예린(형제기획) : 하아…, 이상입니다.]

         

       하예린이 무대를 끝내고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

         

       “……저 잠시 화장실 좀.”

         

       갑자기 화장실을 가는 후임 한 명을 제외하고 TV 앞 중대원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순간 유창선 병장은 담배를 처음 폈을 때의 두통과 함께…, 짧은 무대 시간에 아까움을 느꼈다.

         

       조금 더…, 조금 더 그녀를 보고 싶은데.

         

       조금 더 그녀의 휘황찬란한 자태를 목도하고 싶은데…!

         

       그리고 이내 그의 머릿속에서 그녀를 더 볼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야, 7, 8, 9.”

         

       “…….”

         

       “이 씹새들아, 대답 안 하냐? 7, 8, 9.”

         

       “사, 상병 문유찬!”

         

       “…상병 허 만!”

         

       “사, 상병……!”

         

       왕고 유창선 병장이 언성 높이며 부르자 경비중대 투고 7, 8, 9월 군번 라인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유창선 병장은 그들에게 정색하고 명했다.

         

       “내일 폰 받자마자 내 아래 새끼들은 다 쟤 투표한다. 나 전역하기 전에 쟤 데뷔 못하고 떨어지면 다 뒤지는 거야, 알았어?”

         

       “예? 아, 예! 알겠습니다!”

         

       그것은 유창선 병장이 왕고 잡고 내린 명 중 가장 합리적인 것이었다.

         

       이미 중대원들도 유창선 병장과 같은 마음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대답했다.

         

       모두가 그녀의 무대를 더 보고 싶었으니까. 모두가 하예린이 연습생이 아닌 정식 아이돌로서 TV에 나오길 원했으니까.

         

       그들은 그 순간 전쟁 중이 아님에도 같은 전우로서 완벽하게 일심동체된 것을 느꼈다.

         

       이는 언젠가 대한민국의 하늘을 덮을 하예린 팬덤이 처음으로 준동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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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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