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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

       지금까지 100명의 참가자들의 무대를 보는 동안 곡이 겹치는 일은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는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도 힘들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바로 제작진들이 참가자들의 곡을 통제했다는 것을 뜻한다.

         

       사전에 참가자들에게 무대에서 무슨 곡을 할지 물어보고 혹시 겹치는 게 있다면 이를 막거나 다른 곡을 추천했겠지.

         

       그런데 지금 유 설은 나와 무대곡이 겹쳤다.

         

       무엇보다 즐겁다는 듯 탐욕스러운 눈으로 무대를 보는 제작진들의 표정.

         

       ‘저 시청률의 악마들이…!’

         

       저들은 나와 유 설의 곡이 겹치는 걸 미리 알고 있던 게 분명했다. 알고도 그대로 둔 것이다.

         

       나와 유 설를 비교하여 방송 분량으로 내보내기 위해서.

         

       ‘소름 돋네, 진짜.’

         

       만약 내가 떨어지는 수준의 무대를 보였다면 나는 그대로 유 설과 실력을 비교당하여 시청자들의 몰매를 맞았을 것이다.

         

       -ㅋㅋㅋ 쟤는 얼굴은 예쁜데 춤은 더럽게 못 추네.

         

       -유 설이랑 비교되네요. 연습이 많이 필요해 보여요.

         

       -요즘은 얼굴만 예쁘면 개나 소나 다 아이돌 하려 하네~

         

       └난 솔직히 얼굴도 유 설이 더 예쁜 듯.

         

       └ㄹㅇㅋㅋ

         

       대충 이런 반응들이었겠지.

         

       하지만 이미 나는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쳤다.

         

       이제 자신의 춤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건 유 설 그녀였다.

         

       ‘그러니까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그녀는 무대에 들어가기 전 내게 기싸움을 걸며 도발했다.

         

       과연 그런 그녀가 그에 걸맞은 춤 실력을 보일 수 있을지 나는 똑똑히 볼 생각이었다.

         

       심지어 나만 그리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물론…, 심사진들도 유 설이 나와 비교하여 무슨 무대를 보일지 궁금한 듯한 눈치였다.

         

       그렇게 역대 가장 큰 관심과 시선이 모인 채로 나아아 마지막 등급 평가가 시작했다.

         

         

       -나와 함께 이 밤을.

         

         

       “……!!!”

         

       그리고 첫 벌스가 흐르자마자 모두 움찔했다.

         

       이유는 아까 무대와 전혀 다른 음색 때문이었다.

         

       “음색이….”

         

       “…바뀌었다.”

         

       방금 전 신디의 <달과 호수의 편지>를 부를 때는 서정적인 분위기와 함께 청초한 음색이 돋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목소리는 끈적하다못해 매혹적이다.

         

       구미호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귀에 속삭이는 듯한 느낌.

         

       마치 성대를 갈아낀 것같이 달라진 음색에 분위기도 아까와는 정반대로 변했다.

         

       아까는 통기타와 함께하는 어쿠스틱한 콘서트였다면…, 지금은 늦은 밤 화려한 조명과 함께하는 댄수 가수의 퍼포먼스.

         

       정말 유 설의 보컬은 그만큼 독보적이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댄스 실력이 별로인가? 그것도 또 아니었다.

         

         

       -부족해, 시간이

         

       -너와 함께 있을래.

         

         

       “안무가 달라….”

         

       유 설의 안무는 원곡의 것과 달랐다.

         

       원곡의 안무가 조금 부드러운 몸짓과 몽환적인 분위기에 초점이 맞춰져 느리고 단조로웠다면….

         

       스르륵-.

         

       지금 유 설의 안무는 속도감이 더해져 조금 경쾌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속도감을 주었다고 원곡의 분위기를 헤친 것도 아니었다.

         

         

       -필요해, 네가

         

       -네가 없으면 안 돼.

         

         

       여기서는 그녀의 표정 연기가 빛을 발했다.

         

       인상 짓는 그녀의 표정과 속도감 있는 안무가 합쳐져…, 마치 상대를 갈구하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된 것이다.

         

       “…….”

         

       지금까지 아이돌을 하기 위해선 춤과 노래가 중요하지 연기력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유 설의 무대는 내 생각이 틀렸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유 설의 작은 얼굴 속에 담겨 있는 디테일.

         

       그것이 무대의 분위기나 연출을 집어삼켜 다른 무언가로 바꿔 버렸다.

         

         

       -24시간.

         

         

       모두가 홀린 듯이 유 설의 무대를 바라보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무대는 어땠지?’

         

       나는 유 설의 무대를 보며 내 무대를 겹쳐 보았다.

         

       내 무대는 저렇게 화려 했던가. 내 무대는 저렇게 빛났던가.

         

       …아니었던 것 같다.

         

       ‘……젠장.’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뭘 믿고 내가 유 설과 맞먹을 수 있다 생각한 건가. 고작해야 심사진들의 칭찬 몇 마디 들었다고….

         

       사실 나와 유 설의 실력이 차이가 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을 텐데.

         

       재능으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내가 그녀보다 우위에 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아아…, 부끄럽다.

         

       그리고….

         

       분하다.

         

       울컥.

         

       나는 그 순간 가슴에서부터 무언가가 치미는 듯한 기분을 다시 느꼈다.

         

       아까는 몰랐지만 지금은 이 기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패배감.

         

       내가 지금 느끼는 것은 지독한 패배감이었다.

         

       “크윽….”

         

       유 설의 무대를 보면 볼 수록 그녀와 내 격차가 여실히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나는 그녀의 무대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지금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녀를 따라잡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성장은 언제나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지한 후부터 시작하는 법.

         

       패배감에 힘들긴 해도…, 나는 이번 기회에 유 설과 나의 격차를 정확하게 느껴보기로 했다.

         

       그때였다.

         

       “…!”

         

       마지막 후렴을 앞에 두고 있던 유 설과 내 눈이 다시 마주쳤다.

         

       그녀는 댄스 동작을 이어가며 여전히 고혹적인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씨익.

         

       …은근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그녀도 나를 제대로 의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 또한 알고 있는 듯했다.

         

       지금 내가 무슨 감정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두 사람 중 누구의 실력이 더 위에 있는지를.

         

       ‘…유 설이 원래 저런 성격이었나?’

         

       전생의 방송에서 봤을 때는 그냥 착하고, 귀엽고 얌전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완전 개구쟁이인데다 악질이었다.

         

       ‘……젠장.’

         

       하지만 나는 유 설의 비틱질에도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입 모양으로 그녀에게 욕을 하지 않았다.

         

       대신…, 눈빛으로 말할 뿐이었다.

         

       ‘다음에 또 떠.’

         

       이런 내 눈빛에 담긴 뜻을 알아챘는지 유 설이 무대 중인 것도 잊은 듯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상당히 얄밉게도 보였다.

         

         

         

         

       **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

         

       유 설이 무대를 마치고 한시우는 자신의 벌린 입을 막느라 고생해야 했다.

         

       그만큼…, 한시우에게 있어 유 설의 무대는 충격과 공포 그 이상이었다.

         

       ‘이게 연습생의 실력이라고…?’

         

       연예계에 실력은 출중한데도 운이 없어 데뷔를 못하는 경우는 파다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것일 때 이야기다.

         

       ‘JJ는 대체 왜 얘를 데뷔시키지 않은 거야?’

         

       유 설의 실력은 절대 연습생 급이 아니었다. 아니? 지금 당장 데뷔를 시켜도 현역 아이돌 중 선두에 설 정도의 실력이었다.

         

       한시우는 절대 나아아의 총괄 프로듀서를 가벼운 마음으로 맡지 않았다.

         

       그는 등급 평가를 하며 머릿속에 나름대로 데뷔조에 넣을 만한 인물들을 추려 보았다.

         

       그리고 유 설은 그중에서도 단연코 1순위.

         

       유 설이 없는 나아아 데뷔조는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쟤는 불미스러운 사건만 없으면 무조건 데뷔다.’

         

       한시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이크를 들었다.

         

       “아까 무대만큼이나 인상적인 무대였습니다. 춤과 노래를 동시에 하면서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시지 않았네요. 안무도 원곡 무대와 달랐던 것 같은데…, 혹시 직접 안무를 짜신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뛰어난 창작 능력까지….

         

       한시우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디테일한 손짓이나 표정 연기 등이 어우러져서 더욱 빛나는 무대를 보이신 것 같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연이은 한시우의 칭찬에 유 설이 진심으로 감동 받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시우는 직감적으로 지금 유 설이 감동 받은 연기 중이란 것을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저 거짓된 태도도…, 아이돌이 반드시 가져야 할 미덕 중 하나였으니까.

         

       이에 한시우는 한 번 씨익 웃고는 마지막 소감을 말하다가….

         

       “아무튼 잘 봤습니다. 오늘 참가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 …!”

         

       …순간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멈칫했다.

         

       한시우는 방금….

         

       ‘오늘 참가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였습니다.’

         

       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리 말을 하려다 보니 <24시간이 부족해>를 커버한 다른 참가자가 떠올랐다.

         

       형제기획의 하예린.

         

       솔직히 객관적으로 봤을 때 무대의 완성도에서는 유 설이 압승이었다.

         

       하예린의 성장 가능성과 천재성을 높게 평가하더라도 지금 당장의 실력은 유 설이 더 뛰어났으니까.

         

       하지만 둘 중 뭐가 더 기억에 남는 무대였냐고 한다면….

         

       …….

         

       “……오늘 유 설 참가자의 무대는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 중 하나였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한시우가 그리 말하고 마이크를 내려놓자 다른 심사진이 평가를 시작했다.

         

       “한시우 프로듀서님 평가 끝났으면 그 다음으로 제가 이어서 하겠습니다. 일단 춤선이 너무 아름다웠고….”

         

       휘익.

         

       한시우의 평가가 끝났기에 카메라는 그가 아닌 다른 심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한시우는 남몰래 99위석의 하예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조금 침울하면서도 분하다는 표정으로 유 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유 설의 무대에서 벽을 느꼈나.’

         

       확실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네가 유 설보다 뛰어난 게 있어.’

         

       그건 바로 대중들의 기억에 얼마나 강렬하게 남는가.

         

       그런 면에서 하예린의 존재는 나아아 참가자 중에서 독보적인 파괴력이 있었다.

         

       한시우가 생각하기에 하예린의 가장 큰 무기는 자기도 모르게 서큐버스처럼 주변을 홀려버리는 매력이었으니까.

         

       그러니 지금 당장은 유 설이 그녀보다 앞선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아아가 끝날 때는 결과가 반대로 바뀌어 있을지도 몰랐다.

         

       한시우가 이를 생각하며 남몰래 속으로 웃고 있을 때 다른 심사진들도 유 설의 평가를 끝냈다.

         

       심자진들은 다 같이 모여 상의하는 척을 한 번 하고는 유 설의 등급을 발표했다.

         

       유 설의 등급은….

         

       “JJ엔터테인먼크 유 설 참가자의 등급은 A입니다.”

         

       …당연하게도 A였다.

         

       “제, 제가요?! 가, 감사합니다!!”

         

       너무 뻔한 결과였음에도 유 설은 자신이 A를 받을 지 몰랐다는 것처럼 반응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한시우는 그런 그녀의 뻔뻔함에 한 번 더 웃고는 마이크를 들었다.

         

       “자, 이것으로 등급 평가를 마….”

         

       이제 유 설을 마지막으로 등급 평가를 완전히 끝냈으니 다음 진행을 이어 나가려 했다.

         

       그런데….

         

       웅성웅성.

         

       “빨리 카메라 돌려! 빨리!”

         

       “……?”

         

       갑자기 소란이 일더니 스테이지 밖 제작진들이 마이크를 든 한시우가 아닌 그 뒤를 찍기 시작했다.

         

       이에 한시우와 심사진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돌았고 그곳에선….

         

       “……!”

         

       …하예린이 1위석으로 돌아가는 유 설을 붙잡고 있었다.

         

         

         

         

       **

         

         

         

         

       내가 왜 이랬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유 설과 너무 큰 차이가 난 것이 분해서? 왠지 나를 보며 비웃는 듯한 그녀의 얼굴이 얄미워서?

         

       …모르겠다.

         

       그냥 정신을 차렸을 땐 내가 유 설의 갈 길을 막고 있었고….

         

       “……?”

         

       내 입은 자동으로 열리고 있었다.

         

       “…오늘 무대 너무 잘 봤어요.”

         

       우웅-.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가 달려들었지만 나는 한 번 터진 입을 막지 않았다.

         

       “…다음에는 저도 더 좋은 모습 보일 거에요.”

         

       이것은…, 다음에는 내가 꼭 이기겠다는 의미였다.

         

       “…….”

         

       이런 내 말뜻을 이해했는지 그 순간 유 설의 얼굴이 꾸미지 않은 무언가로 변했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다시 청순한 얼굴로 돌아와서는….

         

       “네, 저희 잘해 봐요.”

         

       웃으며 내게 손을 뻗었다.

         

       나는 지체 없이 그 손을 맞잡았다.

         

       그녀의 얼굴에 담긴 미소는 햇살처럼 따스했지만 그녀의 손은 이름처럼 차가웠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손을 잡는 동안 나는 이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가슴이 찌릿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라이벌 관계가 있다.

         

       제갈량과 주유.

         

       임요환과 홍진호 홍진호.

         

       그리고 지금 이것은….

         

       유 설과 하예린.

         

       우리 둘이 그 유구한 역사를 가진 라이벌 계보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레드와 그린 나루토와 사스케 손오공과 베지터 차은우와 배드엔딩이즈굿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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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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