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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부우우웅-.

         

       “…….”

         

       “…….”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은 조용했다.

         

       운전석의 빡빡이 상구 오빠와 조수석의 강형만은 원래 말수가 적고 나는 지쳐서 무언가 말할 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색하다.’

         

       그래도 너무 조용한 건 좀 그런 것 같아서 내가 힘을 쥐어짜 강형만에게 물었다.

         

       “저희 엄마 아빠는 안 오셨네요?”

         

       “…!”

         

       내 질문에 강형만이 순간 흠칫하고는 대답했다.

         

       “그 바보들은 오늘 네가 돌아오는 날인지도 모를 거다. …일부러 안 데려왔는데 혹시 서운하니?”

         

       “아뇨, 전혀요.”

         

       부모가 안 와서 서운하냐는 물음에 나는 정색을 하고 답했다.

         

       “오히려 그 사람들이 왔으면 화났을걸요. 안 와서 다행이라고 말하려던 참이었어요.”

         

       “…그래.”

         

       엄마, 아빠.

         

       그 사람들이 왔으면 또 얼마나 나를 괴롭혀 댔을지 생각하면 치가 떨릴 정도다.

         

       내가 질색팔색하며 혀를 내두르니 그 모습을 강형만이 물끄러미 보다가 내게 물었다.

         

       “나아아는 어땠니.”

         

       “…….”

         

       나아아가 어땠냐라…, 간단하지만 복잡한 질문이었다.

         

       이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역시 명료하지만 많은 뜻을 담은 말로 답했다.

         

       “좆같은 곳이었어요.”

         

       “……!”

         

       “……!”

         

       내 대답에 강형만은 물론 운전을 하던 상구 오빠까지 움찔했다.

         

       부웅-.

         

       “…죄송합니다.”

         

       상구 오빠는 많이 놀란 건지 핸들이 꼬여 잠시 차선 이탈을 하기도 했다.

         

       “…안전 운전해라.”

         

       “…예.”

         

       강형만은 그런 상구 오빠한테 작게 한 번 타박하고 나서 다시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좆같은 곳이라…, 그리 긍정적이게 들리지는 않구나.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니?”

          

       그때의 나는 고된 나아아 촬영 때문에 지쳐 있었다. 나아아에서 내가 겪었던 일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무슨 일들이 있었냐면요….”

         

       강형만의 질문에 나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입을 열었다.

         

       나는 마치 댐에서 수문을 여는 것처럼 그간 있었던 일을 강형만에게 쏟아 냈다.

         

       처음 세트장에 입장해서 99위석에 앉은 것부터 유 설을 만난 것, 일주일간 잠도 안 자고 연습을 한 것, 마지막으로 이혜정이 제작진들에 의해 억지로 A 등급에서 쫓겨난 것까지 다.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그랬구나.”

         

       강형만은 이런 내 이야기를 그저 담담하게 들어 주었다.

         

       한시우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잠시 눈이 커지긴 했지만 그게 유일한 리액션이었다.

         

       그는 그저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예.”

         

       “그리고 정말 힘들었겠구나.”

         

       “…….”

         

       나는 그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혹시 나아아에 나간 걸 후회하니?”

         

       “……!”

         

       나아아에 나간 걸 후회하냐니.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곧장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여기서 후회한다고 대답한다면 나를 나아아에 넣은 강형만에게 실례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왜인지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 내 입에서 선뜻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

         

       “…….”

         

       곧이어 차 안은 다시금 침묵으로 가득 찼다.

         

       그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창밖을 바라보며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 강형만이었다.

         

       “하차하고 싶으면 하차해도 된다.”

         

       “…예?”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강형만은 나를 보며 이렇게까지 말했으니까.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아이돌을 그만둬도 된다.”

         

       “그게 무슨….”

         

       아이돌을 그만둬도 된다니 그러면….

         

       “제 빚은요?”

         

       아, 따지고 보면 내 빚은 아니구나. 아무튼.

         

       “빚 2억은 어떡하구요.”

         

       내가 아이돌을 그만두면 빚 2억은 어떡한단 말인가.

         

       거기다 강형만은 나를 위해 트레이너 둘까지 고용했다. 매일 같이 나를 차에 태워주기까지 했고. 끼니 때가 되면 밥을 사준 것도 기본이었다.

         

       그런 기타 등등 비용까지 하면 꽤 될 텐데.

         

       하지만 강형만은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는 듯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 부모 빚을 왜 네가 신경 쓰니? 다른 푼돈들도 상관없다.”

         

       그게 푼돈…. 나는 새삼 강형만이 현금 부자라는 걸 깨달았다.

         

       “적성에 맞지 않다면 억지로 시킬 생각 없다. 아이돌이 네 길이 아닌 것 같다면…, 눈치 보지 말고 그만둬라.”

         

       “…….”

         

       “대신 네가 자립할 수 있도록 다른 일을 찾아 주마.”

         

       호의가 계속되면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강형만의 호의가 부담스럽고 의심스러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여기서 아이돌을 그만둔다고 하면 그는 내게 또 다른 일을 소개시켜주리라.

         

       “…….”

         

       그 순간 아주 작은 찰나 동안 내 머릿속에서 고민이 일었다.

         

       그리고 답은 곧장 나왔다.

         

       “아이돌이란 거…, 확실히 쉽지 않더라고요. 나아아도…, 생각보다 훨씬 더 잔혹한 곳이었고.”

         

       “그렇다면….”

         

       “그래서 다음부터는 저도 제 모든 걸 걸고 해보게요.”

         

       “……!”

         

       “지금까지 제가 얼마나 가벼운 마음으로 나아아에 임했는지 깨달았어요.”

         

       유 설.

         

       이혜정.

         

       그 밖에 다른 참가자들도.

         

       그 누구 하나 간절하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그렇게 어설프게 할 거면 차라리 하차를 해. 네가 지금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 간절한 한 명이 기회를 잃고 있다는 거 몰라?’

         

       그들의 간절함에 누를 끼치지 않게 할 것이다.

         

       간절한 그들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이길 것이다.

         

       그게 예의고 그게 지금의 이 좆같은 기분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

         

       내가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던 건가.

         

       강형만은 대답을 마친 나를 놀랍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곤 피식 웃으며 이리 말했다.

         

       “예린아, 변했구나.”

         

       “제가…, 변해요?”

         

       “그래, 많이 독해졌어.”

         

       내가 독해졌다고?

         

       푸핫.

         

       그 말을 들은 후에는 도리어 내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래 봬도 내가 인생 2회차다.

         

       전생에서는 고아여서 혼자 험한 세상 살아가느라 독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생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부모들도 먹여 살려야 해서 더욱더 독하게 살아야 했고.

         

       이미 나는 독버섯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독했는데 이보다 얼마나 더 독해진단 말인가.

         

       “푸핫, 저 원래 독했어요. 알잖아요. 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혼자 우리 집 먹여 살린 거.”

         

       “그건 독한 게 아니라 강한 거다. 예린아, 너는 원래 강한 아이긴 하지만 독한 아이는 아니었어.”

         

       강하다와 독하다….

         

       그게 큰 차이가 있나?

         

       내가 고개를 갸웃하니 강형만이 한 번 더 웃고는 말을 이었다.

         

       “나쁜 의미로 말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전의 너는 너무 순둥이였어. 네가 나아아를 통해 무언가 바뀐 것 같아 기쁘다.”

         

       그리 말하는 강형만의 시선은 다시 무심하게 창밖을 향하고 있었다.

         

       “네가 나아아에 남겠다고 하니 알겠다. 나는 너를 믿고 기다리마.”

         

       “나도….”

         

       그때 운전석에 있던 상구 오빠가 소심한 말투로 끼어들었다.

         

       “나도 믿는다…. 예린아.”

         

       평소 말이 거의 없던 상구 오빠가 용기를 내 응원했다는 게 왠지 웃겼다.

         

       “고마워요, 다들.”

         

       차를 처음 탈 때는 굉장히 피곤했는데…, 이상하게 중간부터는 피로가 풀리고 온몸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1시간이 넘는 이동 끝에 차는 우리 집에 도착했다.

         

       “예린아, 혼자 들어가도 되겠니? 혹시 우리가 필요하면….”

         

       “저희 집인데 당연히 저 혼자 들어가야죠.”

         

       내가 강경하게 말하자 강형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혹시 네 부모들이 또 힘들게 하거든 전화해라. 동생들 몇 보낼 테니.”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것만 같았다.

         

       이에 나는 웃으며 강형만과 상구 오빠를 배웅했다.

         

       “예, 꼭 연락할게요. 그러니까 안심하고 가세요.”

         

       “그럼 이만 가마. 오늘 수고했다.”

         

       부우웅-.

         

       나는 강형만의 차가 멀어져 깉끝에서 아예 사라지는 것까지 본 후 집으로 들어갔다.

         

       빌어먹을 부모들이 살고 있는 이 구질구질한 빌라 안으로.

         

       띠리릭-.

         

       “저 왔어요.”

         

       “어! 뭐야! 예린아!”

         

       “어엇! 오늘 우리 딸 오는 날이었어?”

         

       이 인간들은 오늘 내가 오는 날인 것을 당연히 몰랐는지 내가 들어오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오-! 미리 알았으면 데리러 갔을 텐데!”

         

       “그래, 촬영은 잘했고?”

         

       “…그냥 그럭저럭요.”

         

       “여보! 예린이가 알아서 잘했겠지! 누구 딸인데!”

         

       “호호! 그러네요. 애 얼굴 때깔도 좋은 거 보니 안에서 호강했나 보네. 예린아, 그래서 말인데….”

         

       엄마가 내 등을 두드리며 싱크대를 가리키곤 말했다.

         

       “예린이 네가 없어서 집에 설거지 할 사람이 없던 거 있지? 저거부터 치워주지 않을래?”

         

       엄마가 가리킨 싱크대에는 쌓여 있는 설거지거리와 먹다 남은 배달음식 용기들이 가득했다.

         

       “…….”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내가 침묵하니 아빠는 한술 더 떠서 내게 이리 부탁했다.

         

       “예린아! 설거지 다하고 아빠 야식으로 김치찌개 한 번만 끓여주면 안 돼? 그동안 배달음식이랑 라면만 먹어서 아빠 속 다 버린 것 같아.”

         

       “…….”

         

       밤 11시 50분에 딸에게 김치찌개를 끓여 달라는 아빠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껴지지 않았다.

         

       옛날의 나였다면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설거지도 하고 김치찌개도 끓였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빨래, 화장실 청소, 방청소 등등 지친 몸을 이끌고 밀린 집안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달랐다. 부모가 내게 떠미는 그 어떤 일도 하기 싫어졌다.

         

       그 순간.

         

       ‘예린아, 변했구나.’

         

       ‘제가…, 변해요?’

         

       ‘그래, 많이 독해졌어.’

         

       나는 강형만이 왜 내게 독해졌다고 말한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지난 일주일 동안 있었던 나의 아이돌 아카데미아는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이었으니까.

         

       모두가 각자 살아남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고.

         

       어쩔 땐 서로 미워하기도하고.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억까를 만나 절망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간절한 자들만 모여 있던 곳에서 살다 왔으니 독해질 수밖에.

         

       그리고 변해 버린 나는….

         

       “싫어요.”

         

       “…엉?”

         

       …내가 있던 곳과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에 사는 우리 부모의 모습이 치가 떨렸다.

         

       “싫다고요. 엄마, 아빠 설거지를 왜 제가 치워요. 그리고 김치찌개가 드시고 싶으면 알아서 만들어 드세요.”

         

       “…어? 예, 예린아…! 그게 무슨…!”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우리 엄마 아빠의 말을 거스른 날이었다.

         

       그리고….

         

       “저는 피곤하니 먼저 잘게요. 아, 저기 아빠 컴퓨터 방 이제 제 개인 방으로 쓸 테니까 알아서 치워주세요.”

         

       “뭐, 뭐? 안 돼-! RTX-4090이 탑재된 아빠 컴퓨터는 세심한 관리가 필요….”

         

       “그것도 다 제가 알바해서 번 걸로 산 거잖아요!!”

         

       “……예, 예린아.”

         

       내가 처음으로 우리 엄마 아빠에게 큰소리를 낸 날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르고 나니 쉬웠다.

         

       나는 엄마 아빠한테 마지막 경고를 날리고는….

         

       “내일 아침까지 치우세요. 안 치우면 제가 중고거래로 팔아 버릴 거니까.”

         

       쿵.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그야말로 하예린 인생에서 길이길이 남을 역사적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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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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