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2

       내가 나아아에서 돌아온 그날 이후 일주일 동안 나와 엄마 아빠의 관계는 역전되었다.

         

       어느 날은 엄마가 나를 불러서 불쌍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예린아…. 이리 잠시 좀 앉아 볼래?”

         

       “무슨 일인데요?”

         

       “그게…, 우리 집 생활비가 이제 다 떨어져서 말이야…. 혹시 저번 달 알바비 받은 것 좀 생활비로 줄 수 있을까?”

         

       “…….”

         

       날강도나 다름없어 보이지만 사실 이건 원래 우리 부모 치고 상당히 신사적인 태도였다.

         

       원래는 내게 말도 없이 내 계좌 잠금을 풀고 돈을 빼가곤 했으니까.

         

       “흐윽…, 앞으로 엄마가 알뜰살뜰 살림 열심히 할게. 그러니까 생활비 좀….”

         

       그리 말하는 엄마의 눈가에는 작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무래도 최근 내가 강경하게 나갔다 보니 눈물 작전으로 수법을 바꿨나보다.

         

       실제로 부모의 눈물 작전은 그동안 내게 잘 먹혀 들어가곤 했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내가 아빠 그래픽카드를 교체해줬던 것도 눈물 작전 때문이었지.

         

       ‘흐윽…, 흑…. 예린아…. 아빠 그래픽카드 좀 교체해줄 수 없을까? 지금 그래픽카드는 너무 구려서…. 게임이 흐으윽….’

         

       ‘…아빠, 지금 게임 하실 때 아니예요. 얼른 일자리를 구하셔서 돈을 버셔야….’

         

       ‘흐아아아앙-! 그래픽카드만…, 그래픽카드만 더 좋은 게 있으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서 빨리 일자리 구할 수 있을 텐데-! 흐아아아아!’

         

       ‘후우…, 그래서 얼마 필요하신….’

         

       ‘땡큐, 예린아! 아빠가 거의 낼 테니 너는 200만원만 보태 줘!’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엄마의 눈물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왜 제가 알바해서 번 돈을 생활비로 내야 해요?”

         

       “왜긴…, 우리는 가족이니까 당연히….”

         

       “아,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나는 엄마의 옷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옷방에 안 입는 옷이 한가득이잖아요. 그것들 몇 개 추려서 중고거래로 팔면 돈 좀 되지 않겠어요? 그걸로 생활비 쓰죠.”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당연히….

         

       “뭐어-!! 절대 안 돼-!!”

         

       눈가의 눈물을 그치고 빼액 소리쳤다.

         

       “엄마가 그 옷들 어떻게 샀는데! 왜 그것들을 팔고 생활비로 써야 해!”

         

       “왜긴요?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이익…!”

         

       엄마가 했던 말 그대로 내가 돌려주자 엄마가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예뻤다.

         

       나 하예린이 이런 외모를 갖고 태어난 것에는 부모 덕이 크긴 했으니까.

         

       특히 엄마는 젊었을 적 남자들이 줄을 서서 엄마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줬다나.

         

       그때의 허영심이 아직까지 남아 우리 엄마는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래서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 명품을 사고 그래도 돈이 없으면 몹시 슬피 울며 어린 나를 끌어안곤 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예전에는 안타깝게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선 그냥 철없어 보일 뿐이다.

         

       물론 그것은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예, 예린아…. 아빠 너무 배고픈데 반찬은 괜찮으니 어떻게 밥만 좀 해주면 안 될까?”

         

       “알아서 해 드세요.”

         

       “아니…, 아빠는 밥할 줄 모르잖아.”

         

       나이가 몇인데 밥할 줄도 모르는 우리 아빠.

         

       우리 아빠 역시 지금 당장 TV에 나오면 아줌마들이 미중년이라고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생겼다.

         

       예전 아빠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건 정말 얼굴 천재라는 호칭이 안 아까울 정도였다.

         

       심지어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내 할아버지 대까지는 집도 엄청 잘 살았다고.

         

       그런데….

         

       엄마랑 결혼한 직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도박으로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렸단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옛날이야기를 하곤 했다.

         

       예전에는 그런 아빠가 불쌍해 보일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한심해 보일 뿐이다.

         

       “아빠가 밥할 줄 모르시면 엄마한테 해달라고 하시던가요!”

         

       “너…, 너… 예린이 너! 아빠한테 이게 무슨 말버릇이야! 어떻게 자식된 도리로서 부모한테…!”

         

       “엄마 아빠가 저한테 부모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데 왜 제가 자식의 도리를 다해야 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엄마 아빠가 나를 보며 진심으로 울상을 지었다.

         

       “우, 우리 예쁜 딸 예린이가…!”

         

       “어떻게 이런 말을…!”

         

       지금 이것은 눈물 연기가 아니라 두 사람의 진심이었다.

         

       “허…….”

         

       나는 그런 부모의 모습이 가증스럽다가도….

         

       “…….”

         

       계속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약해지는 기분이 들어 그대로 집 밖을 나갔다.

         

       “…저 나갈게요. 밥 알아서 챙겨 드세요.”

         

       “어디가, 이 시간에-!”

         

       “예린아-!”

         

       이렇게 우리 집안의 분위기는 냉전을 이어갔다.

         

         

         

         

       **

         

         

         

         

       우리 가족 냉전의 종식은 내가 나아아에서 돌아온지 일주일 째 되던 날 이뤄졌다.

         

       “다녀왔….”

         

       평소처럼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내가 마주한 광경은 거실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빠와 엄마였다.

         

       “…하예린. 여기 와서 앉아 봐라.”

         

       “…….”

         

       우리 아빠 엄마가 철없고 나쁜 사람들은 맞았지만 이렇게 부모의 권위를 앞세워 무거운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웬일로 평소 가벼운 분위기 대신 거실에 차가운 분위기가 팽배하여 나도 조금 마음을 다잡고 두 사람 앞에 앉았다.

         

       “무슨 일이예요?”

         

       “…네가 학교 간 동안 아빠랑 엄마랑 하루종일 의논해봤다. 요즘 네가 변한 것에 대해서 말이야.”

         

       참나.

         

       그럴 시간 있으면 일자리나 알아보던가.

         

       참으로 팔자 좋은 사람들이다.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한 번 뀌고는 말했다.

         

       “그래서요?”

         

       “그동안은 예린이 네가 너무 착하고 예의 바른 딸이니까 우리가 아무 말도 안 했었지. 근데 최근 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예린이 네 행동은 도가 지나쳤던 것 같아.”

         

       그리 말하는 아빠는 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엄마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래도 예린이 너는 훈육이 필요할 것 같다고 엄마랑 아빠랑 결론냈다.”

         

       “…훈육이요? 뭐 어떻게 훈육하실 건데요?”

         

       어떻게 훈육할거냐는 내 질문에 아빠가 뒤에서 무언가 가져와 내게 건넸다.

         

       쿵.

         

       그것은 볼펜 하나와 대충 봐도 수십 장은 넘어 보이는 A4용지였다.

         

       “자, A4용지 100장이야. 여기다가 엄마 아빠한테 뭘 잘못했는지 반성문을 적도록 해.”

         

       도대체 내게 무슨 훈육을 하나 했더니 기껏해야 반성문이었나.

         

       훈육이라고 하기엔 그리 무겁지 않은 벌이었지만….

         

       “…싫어요.”

         

       당연히 나는 이를 곧이곧대로 할 생각은 없었다.

         

       “도대체 엄마 아빠가 무슨 권리로 저를 훈육한다는 거에요? 잘못한 사람은 그동안 부모 노릇 못했던 엄마랑 아빠인데 반성문도 엄마 아빠가 쓰셔야죠.”

         

       “하예린! 지금 엄마 아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엄마가 자신의 맑은 목소리를 드높이며 성을 냈다.

         

       아빠도 드물게 성난 표정을 지으며 윽박을 질렀다.

         

       “예린아! 도대체 우리가 부모 노릇 못한 게 뭐가 있니? 낳아주고…, 키워주고…. 학교도 보내주고! 또…, 음… 아무튼!!”

         

       “효녀라면 엄마 아빠 대신 집안일 조금 할 수도 있는 거지! 밥하고 설거지 조금 하는 게 그렇게 힘들었어?”

         

       “물론 힘들고 불만일 수도 있지. 그래도 엄마 아빠한테 공손히 말해야지!”

         

       “그 착하던 예린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아빠 엄마는 원투펀치로 개소리 융단폭격을 날린 후 A4 용지를 내 앞에 놓고는 말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요.”

         

       “지금이라도 바로잡으려 하니 어서 반성문 써.”

         

       “싫어요.”

         

       “어허-! 하예린! 지금 엄마 아빠 대하는 태도가 그게 뭐냐니…!”

         

       그렇게 대화가 도돌이표를 만들어가던 그때였다.

         

       우우웅-.

         

       “……!”

         

       아빠가 언성을 높인 순간 갑자기 휴대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보통 폰을 무음으로 해놓기에 내 것은 아니었다. 아빠 주머니에서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아빠 것인 듯싶었다.

         

       “이 중요할 때 누구야?”

         

       아빠는 신경질을 내며 누군지도 확인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여보세요! 누구세요! 뭐 누구요? ……아, 강 사장님.”

         

       상대가 강형만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곧바로 다소곳하게 자세를 잡았다.

         

       “예, 하하. 잘 지내죠. 네네. 에이~ 제가 예린이를 언제 괴롭혔다 그러세요~ 네, 근데 저한테 전화는 무슨 일로…? 네?”

         

       아빠는 전화를 받다가 나를 향해 말했다.

         

       “예린이 너! 강 사장님이 전화 많이 했다는 데 못 봤어?”

         

       “…전화요?”

         

       아빠의 말에 나는 폰을 꺼내 확인해 보았다.

         

       “…아.”

         

       [부재중 전화 강형만 사장님 7통.]

         

       …아무래도 무음으로 설정해놔서 전화를 못 받았나보다.

         

       “…무음으로 해서 못 봤네요.”

         

       “예, 사장님. 예린이가 칠칠맞게 폰을 무음으로 해놔서 못 봤다고 하네요. 아, 네 지금 바꿔 드릴까요.”

         

       아빠는 이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게 폰을 건넸고 이를 내가 받아들였다.

         

       [예린아.]

         

       “사장님.”

         

       방금 전 상황이 상황이었는지라 왠지 그의 목소리를 반가웠다.

         

       “네, 무슨 일이세요?”

         

       [다른 게 아니라 혹시 영상 확인했니?]

         

       “…영상이요? 무슨….”

         

       내가 고개를 갸웃하니 강형만이 설명해주었다.

         

       [어제 자정에 나아아 단체 테마곡 영상이 올라왔다. 한 번 들어가 보는 게 좋겠구나.]

         

       “아.”

         

       그러고 보니 이번주 중에 영상을 올린다고 했었지? 그게 어젯밤이었나보다.

         

       나는 그 길로 곧바로 내 폰을 꺼내 너튜브로 들어갔다.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알고리즘을 탔는지 이미 추천 동영상에 단체 테마곡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은….

         

       [나의 아이돌 아카데미아 – We are dreaming idol! (최초 공개)]

         

       [조회수 : 1,732,869회 – 17시간 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이미 조회수 170만 회를 넘고 있었다.

         

       “어…? 이거 조회수가….”

         

       [그래, 조회수가 생각보다 잘 나왔더구나. 전화 끊을 테니 천천히 한 번 봐라. 영상 속 네 분량도 한 번 확인해 보고.]

         

       뚝.

         

       그 말을 끝으로 용건이 끝났는지 강형만이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아빠 폰을 내려놓고 눈을 비비며 다시 조회수를 확인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17시간 만에 170만 회라니….’

         

       물론 전생에서도 나아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이 정도였나.

         

       “…….”

         

       내 예상보다 큰 조회수에 내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니….

         

       “예, 예린아 이게 뭐야. 조, 조회수가 170만….”

         

       “이, 이거 예린이 너 나오는 거야…? 어, 얼른 틀어 봐.”

         

       나를 훈육하겠다던 부모들도 내 옆에 옹기종기 다가와 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스윽

         

       어느새 엄마 아빠의 손은 내 어깨에 다정하게 걸쳐진 채였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