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평소 감정 변화가 없는 강수현이 슬픈 분위기를 자아내자 분위기가 급격하게 다운되었다.
이를 감지한 이지우가 재빨리 대화의 주제를 유 설에서 다음으로 넘겼다.
“아…, 하하…. 이제 자리 선정 끝났으니까 등급 평가 하겠네요. 와…, 기대된다. 와…, 한시우 나오네…, 와아…. 하하….”
“…….”
도대체 유 설과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침울한 표정을 짓는 걸까.
강수현이 JJ에서 트레이너 일을 그만두고 이 바닥을 뜨는 것과 관계가 있는 걸까.
‘그게 아니면 9년 연습하고도 데뷔 못한 늙다리가 불쌍해 보인 거니?’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일 것 같지는 않다.
강수현이 굳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기에 나는 묻지 않고 그냥 방송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시우 : 자, 그러면 지금부터 등급 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Show me your dream!]
[와아아아아아아-!!!!]
마침 방송에서도 트레이너 소개까지 빠르게 마치고 등급 평가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방송의 편집 방향도 내 예상과 같았다.
처음에는 참가자들의 의욕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한시우 : 음정이 하나도 안 맞았던 거 아세요?]
[한시우 : 고등학교 장기자랑 보는 듯한 무대였습니다.]
까다롭다 못해 냉혹하기까지 한 트레이너 들의 심사평이 이어지자 찬물을 끼얹기라도 한 듯 분위기가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이를 본 댓글의 반응은 반으로 갈렸다.
-음? 그 정돈가
-나름 괜찮게 한 것 같은데
트레이너들의 평가가 너무 박하다는 쪽과.
-아니 그래서 너희가 한시우보다 노래 잘함? 춤 잘 춤?
-븅신들 이제는 심사평에도 훈수질을 하네
-내가 봐도 못했는데 ㅇㅇ 지금 심사 잘하고 있는 거 맞음
지금 심사를 정확하게 잘하고 있다는 쪽으로.
그렇게 댓글이 둘로 나뉘어 댓글창을 불태우자 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이 설마 이것도 노린 건가?’
이렇게 언쟁 거리가 생긴다면 프로그램의 주목도와 화제성은 확실히 올라갈 터.
확실히 나아아 제작진들이 인성은 좀 안 좋을 수 있어도…, 방송을 보는 각은 예리하기 그지없었다.
[한시우 : 오현희 연습생. 여기 나온 바로는 1년 동안 연습했다는데 맞나요?]
[오현희(타이하이) : 저, 정확히는 1년 반 했습니다….]
[한시우 : 그동안 도대체 무슨 연습을 하신 거죠?]
[숨 막히는 정적.]
[Q : 그때 기분이 어떠셨는지?]
[오현희(타이하이) : 그때는 정말…, 다 놔두고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아 불쌍해…
-그러게 무대를 잘했어야지
-이번에 심사진들이 칼을 갈았나 보다 다들 매서워
-나아아 빡세네
[한시우 : …타이하이 엔터 오현희 연습생의 등급은 F 입니다.]
그렇게 방송 분위기는 제작진이 바라던 대로 차갑게 이어졌다.
그것은 SAV 서유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유진 : 안녕하세요, SAV 엔터테인먼트 소속 서유진이라고 합니다.]
-캬
-드디어 나왔다 유진이
-근본 SAV 다운 실력을 보여 줘
-SAV 아이돌은 대대로 실력 논란 없기로 유명하지
나와 유 설 다음으로 버즈량이 높았던 그녀 차례가 되자 댓글들은 다시 입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처음으로 A 등급을 받으리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예솔(보컬 트레이너) : 서유진 연습생. 이런 무대는 처음일텐데 떨려 보이지 않네요.]
[서유진(SAV) : 예, 저는 떨리지 않습니다.]
[김예솔(보컬 트레이너) : 어째서죠?]
[서유진(SAV) : 저는 SAV이기 때문입니다!]
[Q : 회사에 대한 애착심이 많아 보이는데?]
[서유진(SAV) : 네, 제 첫 회사이기도하고…, 워낙 쟁쟁한 선배님이 많다 보니 제 회사가 무척 자랑스러워요! 회사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 않게 좋은 모습 보이고 싶습니다!]
[당당한 미소,]
그리고 나아아 제작진들도 서유진의 모습을 보기 좋게 편집해 주었다.
그녀의 발언 중 오만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을 빼고 그녀의 당당함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렇게 서유진의 무대가 시작되고….
-묘한 분위기에 아찔해 너를 놔버릴 수 없어.
서유진은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무대를 펼쳐 내었다.
서유진이 생각보다 훨씬 더 뛰어난 무대 실력을 보이자 댓글창은 다시 불타올랐다.
-캬
-캬
-와 씨 태환의 <moving>을 이렇게 소화하네
-아니 대박인데?
-여윽시 SAV시다
서유진의 가창력과 춤은 강수현과 이지우도 칭찬할 정도였다.
“음…, 재능있네.”
“고칠 부분도 많지만…, 춤선도 예쁘고 잘 추네요.”
-이거 당연히 A겠지?
-이건 진짜 무조건 A다
-우리 유진이 ㅠㅠ 최초 A ㅊㅋㅊㅋ
그렇게 모두가 서유진이 처음으로 A 등급을 받을 거라 의심치 않던 그때였다.
[한시우 : 본인의 무대가 너무 겉멋이 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세요?]
역시나 한시우가 등판하여 분위기를 뒤엎어 버렸다.
확실히 지금 봐도 서유진의 등급 평가 무대가 B를 받을 정도는 아니긴 했다.
B와 A 그 사이 애매한 경계선이랄까.
하지만 한시우는 서유진 무대의 단점을 부각하며….
[한시우 : 서유진 연습생, 목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어요. 기교도 필요 이상이고.]
[한시우 : SAV 엔터테인먼트 서유진 연습생의 등급은 B입니다.]
[충격적인 결과.]
그대로 분위기를 이끌며 서유진에게 B 등급을 부여했다.
이에 댓글창은 난리가 났다.
-…? 이게 B라고?
-아니, A는 시발 뭐 얼마나 잘해야 받을 수 있는 거냐?
-한시우 저 새끼 억까 지리네
-전직 YW라고 SAV 연습생 탄압하는 건가요? 추하네요.
한시우의 계속된 박한 평가에 그야말로 민심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아니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너희가 한시우보다 노래 잘하냐고
-한시우는 그냥 자기 할 일 충실히 하는 건데 왜 욕함?
-시우 오빠 하고 싶은 거 다 해.
물론 그 중에는 혼신의 쉴드를 치는 한시우의 팬덤이 있긴 했지만….
-왜 욕하긴 ㅋㅋ ㅅㅂ 한시우 저 새끼가 자꾸 억까하니까 그러지
-연습생한테 도대체 얼마나 높은 수준을 바라는 거야?
-실망이네요, 한시우
이미 돌아서 버린 민심 앞에서는 그 이름 자자한 한시우 팬덤도 한 줌에 불과했다.
나는 그때 언젠가 나아아 제작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은 모난 돌 던지는 것도 다 관심이다?’
모난 돌 던지는 것도 관심이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은 나아아 1화에서 가장 큰 관심이 쏠리는 순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댓글 화력이 높았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트래픽이 넘치던 시기에….
[다음으로 무대를 보일 참가자는 형제기획 하예린 참가자입니다.]
…내 등급 평가 차례가 다가왔다.
**
[예, 하예린 참가자. 자기소개 해주시죠.]
[하예린(형제기획) : …형제기획에서 온 19살 하예린이라고 합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와중에 내가 등장하자 댓글은 또다시 반으로 갈렸다.
-예린이 나왔다.
-아…, 제발 잘해라
-단체 테마곡에서는 잘하던데
-또 한시우가 억까하면 어떡해.
나를 걱정하는 쪽과
-SAV도 B 받았는데 좆소 출신이 뭘 어떻게 하겠어
-얘는 B도 못 받을 듯
-걍 얼굴만 예쁜 것 같은데 ㅋㅋㅋ
애초에 내게 기대를 걸지 않는 쪽.
그리고 이 둘로 나뉜 댓글은 한시우의 다음 말로 한쪽에 통합되었다.
[한시우 : 하예린 연습생 . 제가 지금 봤는데…, 아이돌 연습생 경력이 굉장히 짧으시네요?]
[한시우 : 정확히 연습생 기간이 어떻게 되는지요.]
[하예린(형제기획) : …정확히는 한 달입니다.]
-뭣.
-아니 연습생 한 달밖에 안 했다고?
-???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 연습생 기간이 무척이나 짧다는 게 방송에 드러난 것이다.
[한시우 : 그런데 고작 한 달 연습하고 출연을 하셨다라…,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으셨나요, 아니면….]
[숨 막히는 정적.]
[한시우 : 그만큼 아이돌이 만만하게 보이셨나요?]
[하예린(형제기획) : 저는 고작 한 달 연습했는데도 힘이 부쳤습니다. …(중략)… 그런 분들이 모여 있는 아이돌 업계를…, 절대 만만히 보지 않습니다.]
내 구구절절한 변명 덕분인지 내 짧은 연습생 기간을 문제시하는 댓글들은 없었다.
[한시우 : 그렇다면 왜 아이돌이 되고 싶은 거죠?]
[하예린(형제기획) : …부모님 때문에.]
[한시우 : ……예?]
[하예린(형제기획) : 부모님 때문에…, 저는 아이돌이 돼야 합니다…. 꼭이요….]
[과연 그녀의 사연은 무엇일까?]
자막과 함께 일전에 방송에서 찍은 사전 인터뷰가 자료화면으로 나갔다.
[하예린(형제기획) : 저희 집에 빚이 조금 있어서요. (그걸 갚기 위해….)]
이러한 모습들을 보고서 댓글들이 내 처지를 동정하기도 했다.
-아 ㅠㅠ
-효녀네 효녀야…
-그런 사연이..
그럼에도 댓글 중에서 내 무대를 기대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 잘했으면 좋겠다.
-연습기간이 한 달인데 잘하겠냐?
-망신만 안 당하면 다행일 듯
그중에는 부족하리라 예상되는 내 실력을 미리 욕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니 단체 테마곡에서는 센터에 있던데 설마 외모빨로 간 거임?
-ㅋㅋ 연습 많이 안 한 게 자랑이냐?
-요즘은 실력 없어도 예쁘기만 하면 데뷔하나 보네요~
그렇게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 나를 옹호하는 사람들, 서유진의 B 등급에 안타까워하는 사람들, 한시우의 박한 평가를 욕하는 사람들의 모든 관심이 내 무대에 모이고….
[하예린(형제기획) : 그러면…, 지금부터 무대 보여드리겠습니다.]
내 무대가 시작되었다.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내가 허락받은 세상이란~
반주 없이 내가 무반주에서 노래를 시작하자 놀라는 심사위원들의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특히 한시우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화면 속 나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런 시작과 선곡에 당황한 것은 댓글창도 마찬가지였다.
-아닛, 이 노래는?
-에에엥?!
-태, 태일아-!
-어어…? 이 노래를 부른다고?
-이 노래가 뭔데요?
그리고 내가 무반주 첫 소절을 끝마치기 전에 광고가 나왔다.
[뭐? 안심 산적 작가 해피엔딩이즈굿의 신작이 나왔다고? 당장 보러 가자!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절찬 연재 중.]
나아아 제작진의 광고 넣는 타이밍은 정말 예술이었다.
-아 시발 여기다가 광고를 쳐 넣네
-아니 시발 내가 귀가 잘못됐나 방금 그거 <butter-dragon> 맞냐?
-와 ㅋㅋㅋ 내가 이 노래를 여돌 오디션 프로에서 볼 줄이야
-진짜 농담 아니라 벌써 개호감이다
-예린아!! 진화시켜줘!! 예린아!!
-이 노래가 뭔데 그러냐니깐?
-아 ㅋㅋ 여기서 남자 여자 다 보이네 ㅋㅋ
-지디몬 안 본 애새끼들은 다 꺼져라 ㅋㅋ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아 지디몬이야? 틀딱들 신난 거 보소 ㅋ
-아 광고 언제 끝나 시발-!!
조금 전까지 내 무대를 기대하지 않던 댓글들은 어느새 광고를 저주하고 나를 연호하게 되었다.
정말 다시 봐도 지디몬 추억 공격은 효과적이었다.
빠른 스토리 진행을 위해 12시간 주기로 연재하겠습니다. 다음 편은 12시간 후에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