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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집을 나온 후 나는 그날 밤 강형만이 잡아 준 호텔에서 묵게 되었다.

       

       “오늘은 일단 여기서 자고…, 내일부터는 어떻게 할 생각이니? 집에 들어갈 거야?”

       

       “…아뇨, 나아아 3주차 할 때까지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그래, 그러면 일단 여기 호텔 장기투숙을 신청해 놓을 테니 편하게 있어라. 매일 아침 상구 보낼 테니 차 타고 학교 통학하고. 교복은 내가 내일 가져다주마.”

       

       “…네, 감사해요. 사장님. 그리고…, 죄송해요. 괜히 번거롭게 해서.”

       

       “…….”

       

       조금 기가 죽은 내가 그리 답하자 강형만이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네가 무슨 잘못이 있니.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푹 쉬렴.”

       

       “…네.”

       

       그 말을 끝으로 강형만은 떠나고….

       

       “…일단 씻을까.”

       

       나는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 후 침대에 누웠다.

       

       피로감만 따지면 역대급인 오늘 하루였다.

       

       지난 일주일 동안 잠도 잘 못자고 경연을 준비했고…, 그 결과물을 관객들 앞에서 라이브 무대로 선보였다.

       

       하지만…, 지금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왜 나는 하필이면 두 사람 자식으로 태어났을까요?’

       

       내가 그리 말했을 때 진심으로 상처받았다는 듯 나를 보던 부모의 눈이었다.

       

       우리 부모는 나를 마치 하인 부리듯 착취하면서….

       

       내 등골을 아무렇지 않게 쏙쏙 빼먹으면서….

       

       자신들의 행동에 아무런 악의나 죄책감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강하게 말하면….

       

       ‘예린아….’

       

       ‘어떻게 그런 말을….’

       

       진심으로 상처받고 괴로워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게 아니어도 내가 잘못했다는 기분을 느꼈다.

       

       바로 지금처럼.

       

       “…젠장.”

       

       지난 19년 간의 삶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피곤해도 눈을 감을 수 없다.

       

       눈을 감으면 아빠 엄마 생각이 나니까.

       

       “…짜증 나.”

       

       아빠 엄마가 미웠다.

       

       정말….

       

       치가 떠릴 정도로 미웠다.

       

       

       

       **

         

       

       

       나아아 2회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 내 삶은 1회차가 끝났을 때와 비슷하면서 달랐다.

       

       나아아 첫 방송이 나갔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내게 아는 척을 해왔었다.

       

       그리고 나아아 2회가 끝난 지금은….

       

       “예린아! 방송 잘 봤어!”

       

       “너무 예쁘더라-!”

       

       “팀 경연은 이미 녹화 끝난 거지? 어땠어?”

       

       “유 설이랑 친해?”

       

       “춤 너무 잘 추더라-! 언제부터 배운 거야?”

       

       우르르르-.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그래도 전에는 사람들이 내 책상 주위에만 모여 있는 정도였는데….

       

       “여기가 걔 반이야?”

       

       “쟤인가 보다. 와…, 진짜 예쁘긴 하네.”

       

       “예린 선배! 전에 복도에서 인사드렸는데 저 기억하세요?”

       

       지금은 우리 교실을 가득 채울 뿐만 아니라 복도까지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로 가득 찰 정도였다.

       

       “어어…, 그게.”

       

       예전이었다면 조금 모인 인파 따위 무시와 짧은 대답으로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인파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까지 이어져서 학교에서 잠을 보충하려 했던 나는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서의 삶도 달라졌다.

       

       “예린아! 어서 와!”

       

       “지우 쌤.”

       

       내 첫 트레이너였던 이지우가 형제기획가 전속 계약을 맺었기에 나는 학교가 끝나고 그녀에게 마음껏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춤 스탯이 99긴 해도 내게 경험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나는 일주일 동안 그녀에게서 다양한 노하우를 쏙쏙 전수 받았다.

       

       이지우가 커뮤니티 활동에 능했기에 오는 장점도 있었다.

       

       “예린아, 이것 봐봐. 벌써 네 반응이 좋은데?”

       

       이지우가 보여 준 화면에는 방청객 중 한 명이었을 거라 추정되는 누군가의 글이었다.

       

       [제목 : 나아아 1차 팀경연 갔다 온 후기(스포일러 포함)]

       

       [이런 곳 가는 건 처음인데 내 여자친구가 이런 거 엄청 좋아해서 같이 갔다 옴. 여자친구랑 사귄지 34일째다. 너희도 알지? 연애 초반이 여친이 가장 사랑스럽게 보이는 순간인 거.(아, 너희는 모르려나 ㅋ) 아무튼 아무리 예쁜 애들이 나와도 나는 내 여친이 가장 예뻐 보일 줄 알았는데, 와…, ㅅㅂ 첫 무대부터 진짜…. 특히 하예린? 걔는 진짜 존나 예쁘더라. 걔 한 번 보고 여친 보니까 웬 오랑우탄 한 마리가 응원봉 흔들고 있던데 ㅋㅋ. 아무튼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존나게 잘 추고. 뒤에 마지막 무대 쯤에 유 설이란 애도 엄청 잘하긴 했는데 나랑 여친은 하예린 팀 찍음. 원래는 스포방지 조약에 서명해서 말하면 안 되는데 익명 커뮤니티라 상관없겠지? 하예린 팀이 1등함 ㅋㅋ ㅅㄱ]

       

       -야이 시발아 여자친구 있는 거 자랑하냐?

       

       -나도 알아 연애 초반이 가장 재밌는 거(사실 모름)

       

       -하예린 팀이 1등이라고? 와…, 지리네.

       

       └걔는 연습기간도 한 달이라면서 어떻게 팀 경연도 잘하냐?

       

       └걍 천재임 ㅇㅇ 아이돌을 하기 위해 태어났음

       

       └ㄹㅇ 그런듯

       

       -스포 ㅅㅂ아

       

       -아니 유 설 팀이 1등 못했다고? 왜? 이유가 뭐야 ㅅㅂ

       

       “아, 예린이 너는 잘 모르지? 이건 남자들이 주로 보는 커뮤니틴데….”

       

       슥-.

       

       이지우가 핸드폰을 가져다가 다른 사이트를 보여 주며 말을 이었다.

       

       “여자들이 주로 보는 사이트에도 예린이 네 이야기가 제일 많아.”

       

       “……와.”

       

       실제로 그녀가 보여 준 여자 커뮤니티에도 나를 향한 칭찬이 담긴 게시물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보통 여기는 까는 이야기밖에 없는데 이 정도면 엄청 여론 좋은데?”

       

       “그런가요?”

       

       “그럼! 예린아, 다음 주 촬영이 순위 발표식이지? 이렇게 분위기 좋은거 보면…, 기대해봐도 되겠는데?”

       

       이지우는 그리 말하며 능글능글한 눈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이에 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래도 아직 쟁쟁한 사람이 있는걸요? 1등은 무리일 게 분명해요.”

       

       “쟁쟁한 사람이라면 그 애? 유 설?”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이지우도 고개를 마주 끄덕이며 말했다.

       

       “음…, 하긴. 걔 실력은 확실히 탈 연습생급이긴 하더라. 내가 아무리 콩깍지가 씌었어도 그 애 실력이 우리 예린이보다 한 수 위라는 건 부정할 수 없어.”

       

       “…하하.”

       

       역시 이지우는 이런 방면에서는 참 현실적이었다.

       

       뭐…, 그녀의 그런 점이 좋은 거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예린아.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꼭 실력만으로 등수가 정해지는 건 아니니까. 한 번 희망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넵, 그럴게요.”

       

       “아, 마침 오늘 나아아 3회 방송날이잖아. 오늘 밤 방송에서 어떻게 나왔나 확인해 보면 되겠네. 오늘도 여기서 우리랑 같이 방송 볼 거지?”

       

       “그러려구요.”

       

       “흐흐, 기대가 되는걸? 내 제자가 얼마나 무대를 찢었으려나. …근데 예린아.”

       

       이지우가 하하 웃다가 내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우우웅-.

       

       “그…,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전화 자꾸 오고 있는데?”

       

       “아.”

       

       그녀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는 쉴 새 없이 진동이 울리는 내 핸드폰이 있었다.

       

       이에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끄며 고개를 저었다.

       

       “진작 껐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음? 전화는 안 받게?”

       

       “안 받아도 되는 전화여서요.”

       

       지금 내게 전화를 걸고 있는 것은 엄마였다.

       

       지난 일주일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번갈아 가면서 내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댔으니까.

       

       쌓인 부재중 전화만 수백 통 정도 되려나.

       

       꾹.

       

       나는 울리는 핸드폰의 전원을 꺼버리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보다 쌤. 저희 연습 더 하죠.”

       

       “그럴까? 하하, 예린이가 의욕이 넘치니 나도 막 가슴이 뜨거워지네?”

       

       그렇게 나는 이지우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것도 잊고 밤까지 춤 연습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아아가 시작하기 직전 강형만이 저녁 대용으로 시켜 준 치킨과 함께 다 같이 모니터링 실에 모였다.

       

       “아니, 사장님! 지금 아이돌 데뷔하겠다는 애 저녁으로 치킨이 뭐예요, 치킨이!”

       

       “그…, 구운 거는 괜찮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구운 것도 치킨이에요! 예린이가 살이 안 찌는 체형이라 망정이지…. 그래도 다음에는 조심하세요!”

       

       “아, 알겠네.”

       

       이미 강형만과 이지우의 관계는 역전이 된 걸로 보였다.

       

       나는 아이러니한 그 모습에 하하 웃으며 tv 앞 소파에 앉았다.

       

       띡.

       

       [22 : 00]

       

       시간은 마침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1차 팀 경연의 내용이 담겨 있는 나의 아이돌 아카데미아 3화.

       

       우리 팀은 1등을 했었고 나 또한 좋은 모습을 보였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제작진의 몫.

       

       “아, 시작한다.”

       

       과연 제작진들이 1차 팀 경연을 어떻게 요리해놨을지 확인해 볼 시간이었다.

       

       

       

       

       **

         

       

       

       시간을 잠시 돌려서 지난 주.

       

       제 1차 팀 경연이 끝난 그날 밤.

       

       참가자들은 모든 촬영을 마치고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아아 제작진들의 하루는 이제 시작이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그들은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겨 회의 시간을 가졌다.

       

       회의 이름은 이른바 ‘편집 방향성 회의.’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회의 같지만….

       

       ‘편집 방향성 회의’를 자기들끼리 부르는 속칭은 바로….

       

       ‘살생부 회의’였다.

       

       “자, 말해 봐.”

       

       나아아 메인PD 신PD의 주관에 회의는 시작되었다.

       

       나아아의 편집을 맡고 있는 작가들은 신PD에게 나아아 3화를 어떻게 구성할 건지 보고하기 시작했다.

       

       “우선 3화에 넣을 내용이 많은데요. 하예린과 유 설 모두 저희가 지정된 곡을 잘 소화해냈기 때문에 일단은 그대로 라이벌 구도를….”

         

       당연한 말이지만 팀 경연 곡 선정에서 사용된 사이버 돌림판은 랜덤이 아닌 조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하예린과 유 설의 선택만이 조작되었다.

         

       제작진은 일부러 차가운 이미지의 하예린에게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곡인 <Where is my first love!>를 지정했고.

         

       귀엽고 어리숙한 이미지의 유 설에게는 힙하고 걸크러시 면모가 부각되는 <Thank you very much>를 지정했다.

         

       이는 제작진 나름의 옥석 가리기였다.

         

       우승 후보 두 사람 중 상반된 이미지의 곡이 선정되었을 때 누가 더 무대를 잘 소화할 수 있는지 지켜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다만 두 사람은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에 작가들은 어느 한 명을 밀어주기 보다는 일단 경연을 지켜보며 판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나아아 3화에 들어가는 내용은 이전 화들과 동일하게 하예린과 유 설의 라이벌 서사였다.

         

       둘은 이미 나아아에서 국밥처럼 든든하게 주축이 되는 존재들이니 둘을 이용하면 아마 안정된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래, 당연히 두 사람 이야기 넣어야지. 근데 말이야…. 너희 그 서사 하나로 마지막화까지 이어갈 거니? 너무 단조롭고 식상하잖아~”

       

       신PD는 하예린과 유 설 라이벌 구도 원툴로 방송을 이어가는 것에 불만이 있는 듯했다.

       

       “…그러면.”

       

       “좀 더 화끈하고…, 시청자들을 달아 오르게 할 만한…, 뭐랄까. 조금 터질 것 같은 참가자들 없었어?”

       

       터질 것 같은 참가자.

       

       신PD와 오래 일했던 그들이기에 알 수 있었다.

       

       신PD가 말하는 ‘터질 것 같은 참가자’의 의미는…, 프로그램의 땔감이 되어 줄 참가자.

       

       즉, 마녀사냥의 제물을 의미했다.

       

       “흠….”

       

       신PD의 주문에 작가들이 각자 고민에 빠져서 조건에 부합하는 참가자들이 없나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그게…, 이번 팀 경연에서 생각보다 갈등이 없어서….”

       

       신PD가 원하는 땔감 역할을 할 참가자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후배들의 답답한 모습에 신PD는 날카로운 눈초리와 함께 싸한 목소리를 이었다.

       

       “얘들아, 정신 안 차려?”

       

       “…….”

       

       “뭐? 갈등이 없어? 우리가 지금까지 같이 일한 게 몇 년인데 너희 아직도 내 스타일 몰라? 없으면 만들어.”

       

       “……아무리 그래도.”

       

       “얘들아, 우리 이 바닥에서 더 높이 올라가려면 이 기회 잘 잡아야지. 시청률이 곧 우리 밥이고 줄인 거 몰라?”

       

       신PD는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아랫사람을 쪼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또다시 일주일 연속 밤샘을 할 수 없었던 작가들은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그리고….

       

       “저….”

       

       “어, 말해 봐.”

       

       “생각나는 참가자 한 명이 있는데요….”

       

       고민에 빠졌던 작가 중 한 명이 참가자 한 명의 얼굴을 떠올리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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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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