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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나는 알아서 하겠다고 빼액 소리지르고 돌아가는 서유진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하아….”

         

       …나는 할 만큼 했다.

         

       충고를 해 줘도 들어 먹지 못하면…, 그 사람 팔자인 거다.

         

       ‘그래도 유진이 아이돌 생활을 길게 보면 지금 데이는게 나을지도.’

         

       서유진이 저 금쪽이 같은 성격을 고치지 못하고 저대로 데뷔하면 언젠가 아이돌 활동 하면서 크게 논란이 생길 게 분명했다.

         

       차라리 연습생인 지금 대중들의 매운맛을 보고 정신을 차리는 게 그녀에게 있어 예방주사가 될 수 있을 터.

         

       “그래…, 그러니까 이제 그만 신경 쓰자.”

         

       여기서 더 나서는 것은 충고가 아니라 오지랖이었다.

         

       우리 1팀도 아직 무대 수준이 완벽하지 않은데 우리 팀 일이나 신경 써야지.

         

       그렇게 나는 서유진이 복도 끝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본 후 우리 팀이 있는 연습실로 향했다.

         

       하지만….

         

       “…아으씨, 말 좀 듣지…!”

         

       연습실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서유진을 향한 걱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워지지 않았다.

         

         

         

         

       **

       

         

         

       “…….”

         

       “…….”

         

       적막만이 가득한 연습실 안.

         

       중간 점검이 끝나고 우리 1팀은 앞으로 어떻게 할지 회의 시간을 갖기로 했고….

         

       “…자, 다들 너무 뜸 들이지 말고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말해줬으면 해요.”

         

       “…….”

         

       “…….”

         

       “…….”

         

       놀랍게도 아무도 손을 들거나 운을 떼지 않아 회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말해야 하나….’

         

       이 지독할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에 내가 먼저 아이디어를 내거나 하물며 아이스 브레이킹이라도 시도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젠장, 나도 아무 생각도 안 떠오르네.’

         

       애석하게도 나 또한 막막한 건 마찬가지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숨 막히는 침묵으로 가뜩이나 차가운 우리 팀의 분위기가 더욱 얼어 붙던 그때였다.

         

       스윽-.

         

       “……!”

         

       이 적막을 깨고 손을 드는 이가 있어서 내가 반갑게 보았다가….

         

       ‘…아.’

         

       …손을 든 주체의 얼굴을 확인하고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쟤는 입 열면 좋을 게 없는데.’

         

       손을 든 이가 바로 나한나였기 때문이었다.

         

       나한나가 입을 열면 항상 분위기를 초쳤을 뿐이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 한나야. 한번 말해 봐.”

         

       그래도 유일하게 손을 든 사람인데 무시할 수는 없어서 발언 기회를 주었다.

         

       이에 기회를 얻은 나한나가 특유의 졸린 눈과 나른한 말투로 말을 시작했다.

         

       “지금 다들 무슨 고민하고 있을지 알 것 같은데요…. 방금 전 중간 점검에서 트레이너 님들에게 지적당한 것 때문에 무대 구성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거 아니예요?”

         

       맞다.

         

       원래 우리 1팀은 <매지컬 러브☆>를 준비하면서 원곡 그대로의 컨셉을 가져갔다.

         

       하지만 방금 중간 점검에서 트레이너들은 곡 분위기가 우리 팀과 맞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지금 우리 무대는 어색한데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한 두 가지도 아니고….

         

       ‘천마환혹도 실패할 지경이니 편곡은 불가피하겠지.’

         

       이에 나는 <매지컬 러브☆>를 어떻게 편곡해야 하나 새로운 컨셉을 고민하고 있었다. 아마 다른 팀원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나한나가 손을 들고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 거면….

         

       ‘혹시 좋은 편곡 아이디어라도 떠오른 건가?’

         

       하지만 나한나는 나 같은 범인의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저희 그냥 편곡하지 말고 그대로 가죠?”

         

       “……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나한나의 말에 나는 바보 같은 리액션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어버버하며 급하게 물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한나야.”

         

       “…말 그대론데요?”

         

       “곡이 우리랑 안 맞는 것 같다고 방금 중간 점검에서 지적을 받았는데 편곡을 포기하자고?”

         

       내가 급하게 질문하자 나한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냥 이대로 가죠. 솔직히 <매지컬 러브☆>가 저희 팀 분위기랑 잘 맞지 않았다는 건 다들 처음부터 느끼지 않았어요?”

         

       “…….”

         

       나한나의 말에 모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팀은 댄서가 많은데다 밝은 이미지보다는 시니컬한 분위기여서 애초에 <매지컬 러브☆>라는 밝고 희망찬 곡과 잘 매칭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저희가 편곡 안 하고 그냥 원곡 그대로 가기로 한 건 편곡 난이도가 엄청 어려워서 그랬던 거잖아요.”

         

       …이 말도 맞다.

         

       사실 곡을 배정받았을 때부터 편곡 생각은 안 한 건 아니지만…, 안 그래도 마법소녀라는 독특한 컨셉인 <매지컬 러브☆>를 편곡할 아이디어가 없어서 원곡 그대로 간 것이었다.

         

       “이제 와서 기발한 편곡 아이디어가 떠오를 리도 없고…, 아시죠? 괜히 어쭙잖게 잘못 건드리면 무대만 더 망하는 거.”

         

       “…….”

         

       “그러니까 괜히 편곡 하겠다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바로 연습 시작하시죠. 그게 효율적일 것 같은데.”

         

       그러면서 나한나는 푸하암 하품을 했다.

         

       그녀는 빠르게 연습을 해치우고 당장 방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근데 한나야.”

         

       이에 나는 나한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을 들고 반박했다.

         

       “이미 중간 점검에서 안 좋은 평가를 받은 무대를 그대로 진행하면 실제 경연에서도 안 좋은 평가를 그대로 받지 않을까? 본 경연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이면 우리 순위에도 영향이 있을 텐데.”

         

       “……!!!”

         

       내 말에 나한나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이 즉각적으로 움찔했다.

         

       우리 1팀에서 나와 나한나를 제외한 팀원들은 모두 탈락 위험권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본 경연에서 무대를 망친다면 그들은 직접적으로 생존에 위협을 느끼리라.

         

       “물론 <매지컬 러브☆>가 편곡을 하기에 어려운 난이도인 건 알겠어. 다만 본 경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려면 뭐라도 변화를 줘야 하지 않을까.”

         

       “저, 저도…, 예린 언니랑 똑같이 생각해요…!”

         

       “그, 그래. 일단은 뭐라도 해야 경연에서….”

         

       그렇게 다른 팀원들이 내 말에 동조하고 뭐라도 해보자는 분위기로 변모하는 그때였다.

         

       “…모든 팀이 한 번에 경쟁하는 평범한 경연이었다면 저도 이렇게 말 안 했을 거예요. 근데…, 이번 2차 팀 경연은 1대1 팀 매치잖아요?”

         

       나한나가 손을 들고 차갑게 반박했다.

         

       “저희의 비교 대상은 2팀 밖에 없어요. 아까 봤다시피…, 2팀은 알아서 자멸 중이고요.”

         

       “…….”

         

       “저희가 괜한 시도를 하는 대신 지금 무대 그대로 완성도만 단단하게 더 높이면 무난하게 2팀을 이길 수 있을 거예요.”

         

       2차 팀 경연은 알다시피 1대1 팀 매치다.

         

       본 경연에서 관객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1팀과 2팀 중 한 팀을 골라야 한다.

         

       최악보다는 차악이니까…. 두 팀의 무대가 별로여도 관객들은 그나마 수준이 나은 우리 팀을 고를 거란 건가….

         

       “그러니까 괜히 힘들이지 말고 지금 하던 연습이나 더 열심히 하죠.”

         

       “…….”

         

       “오히려 괜한 짓 했다가 저희 연습 시간 부족해지면 저쪽 팀에 역전의 빌미를 줄 걸요?”

         

       나한나의 말은 합리적으로 맞는 말이었다.

         

       이에….

         

       “한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편곡으로 시간 깨는 것보다 지금 무대 연습이나 더 하는게….”

         

       분위기가 다시 바뀌고 팀원들도 그녀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나는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편곡 난이도가 무척 높다고 하지만…, 시간이 4일이나 남았다.

         

       심지어 대부분 팀원들이 안무 숙지도 마쳤으니 분명 시간은 충분할 터.

         

       할 수 있는 게 아직 많이 남았는데…, 왜 벌써 포기하고 안전한 길로만 가려 하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팀이었고 내가 아무리 리더라고 해도 내 생각대로만 강행할 수는 없었다.

         

       이에 나는….

         

       “…그러면 어떻게 할지 투표로 정하죠.”

         

       편곡을 하는 데 시간을 쓸지…, 아니면 포기하고 연습이나 더 할지에 대해 투표를 부쳤다.

         

       “…….”

         

       “…….”

         

       “먼저 편곡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쪽 손들어 주세요.”

         

       그렇게 팀원들이 어느 쪽을 택할지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투표가 시작되었고….

         

       “…결과가 나왔네요.”

         

       …우리 팀은 편곡을 포기하고 그대로 연습을 진행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

         

         

         

       이번 주 늘 그랬던 것처럼 1팀은 12시가 땡 치자마자 연습을 마쳤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봬요~”

         

       나한나는 팀원들과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갔다.

         

       최종 등급 평가에서 A 등급 막차를 타고 얻은 개인실.

         

       쏴아아-.

         

       나한나는 이제는 익숙한 자신의 방에서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잠에 들기 직전인 이 노곤노곤함.

         

       그녀가 하루 중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

         

       그녀는 이내 자신의 애착 안대가 이곳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습실에 두고 왔나….”

         

       오늘 하루 동안 갔던 곳이 연습실과 식당 밖에 없었으니 식당에서 흘린 것이 아니면 필히 연습실에 있으리라.

         

       “귀찮은데….”

         

       그녀는 그냥 잘까 생각도 하다가…, 이내 그게 없으면 편히 잘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저벅…, 저벅….

         

       나무늘보도 울고 갈 속도로 비척비척 연습실로 걸어가며…, 나한나는 안대를 두고 온 과거의 자신을 저주했다.

         

       ‘딱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는데….’

         

       그렇게 궁시렁대며 나한나의 발걸음이 1팀 연습실 앞에 다다른 순간.

         

       “……음?”

         

       나한나는 이상한 점을 바로 찾았다.

         

       연습이 끝난 1팀의 연습실의 불빛이…, 아직 꺼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나한나가 몰래 연습실 안을 훔쳐 보니….

         

       ‘…뭐야?’

         

       1팀의 리더이자 센터인 하예린이 연습실 중앙에 앉아 태블릿pc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눈이 좋은 나한나는 태블릿pc 속 화면이 <매지컬 러브☆>의 뮤비라는 것을 단박에 확인하고는 작게 혀를 찼다.

         

       ‘저 언니는 아직 편곡 포기를 못 했나 보네.’

         

       나한나는 하예린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1팀의 경쟁상대인 2팀은 알아서 망하는 중이었다. 뚝심 있게 지금 하고 있는 거 연습만 좀 더 하면 경연에서 이길 수 있을 터.

         

       쉬운 길이 있는데 왜 자꾸 어려운 길로 가려 하는 건가.

         

       ‘어차피 개인 순위도 1등이면서.’

         

       심지어 하예린은 나아아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참가자였다.

         

       별 이상한 논란만 터지는 게 아니면 파이널까지 경연에서 게다리춤만 춰도 시청자들은 그녀를 계속해서 뽑아줄 게 분명했다.

         

       그런데 뭐 저리 열심히란 말인가.

         

       그렇게 나한나는 뮤비를 반복재생으로 돌려보는 하예린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다가….

         

       ‘그냥 돌아갈까….’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안대가 없는 건 아쉽지만…, 지금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면 숨 막힐 정도로 어색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래, 돌아가자.’

         

       결정을 마친 나한나는 다시 힘없는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하지만….

         

       “…….”

         

       …다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돌아가는 와중에 계속 하예린의 모습이 뇌리에 스쳤다.

         

       정확히는….

         

       ‘…미련한 모습이 닮았군.’

         

       하예린의 모습에서 과거 누군가의 모습들이 자꾸 떠올랐다.

         

       이에 나한나는….

         

       “하아….”

         

       돌아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끼익-.

         

       “……누구, 어?”

         

       그대로 하예린이 있는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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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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