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7

       유 설이 내게 차가운 표정과 함께 던진 것은 바로….

         

       ‘…약?’

         

       바로 먹고 남은 티가 역력한 약 봉투였다.

         

       안에 같이 있는 처방전과 남은 약의 개수를 보니 일주일 전 약을 타서 오늘까지 꾸준하게 먹은 듯했다.

         

       이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아픈 척하려는 거면 굳이 약까지 먹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렇다면 설마….

         

       이런 내 생각을 표정에서 읽기라도 했는지 유 설이 차가운 표정과 함께 말을 이었다.

         

       “일주일 전에 내가 병원 가서 직접 탄 약이야.”

         

       “…….”

         

       “카메라에 병원 간 것도 찍혔으니 방송으로 확인해 보면 되겠네.”

         

       “…그러면.”

         

       “그러면은 무슨 그러면이야. 나는 정말 아팠고 그 철없는 애는 자기가 먼저 리더랑 센터하고 싶다고 말했고. 여기서 더 설명이 필요할까?”

         

       유 설은 그 말을 끝으로 짜증난다는 시선을 한 번 던지고는 그대로 차에 탔다.

         

       차에 타기 직전 멍하니 서 있는 내게 한 마디 더 해주는 건 덤이었다.

         

       “제발 모르면 나대지 좀 마, 예린아. 응? 다음에는 제발 좀 부탁할게.”

         

       “…….”

         

       쿵.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유 설은 차문을 닫았고 문이 닫히자 차는 바로 떠나기 시작했다.

         

       “…….”

         

       나는 떠나는 유 설의 차가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그저 지켜만 볼 수 밖에 없었다.

         

         

         

         

       **

       

         

         

         

       “…….”

         

       “…….”

         

       적막이 가득한 차 안.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요?”

         

       “……예?”

         

       “표정이 너무 안 좋길래…, 아닙니다.”

         

       유 설을 데려다주기 위해 잠깐 파견 나온 JJ 로드 매니저가 연습생과 사담을 나누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유 설에게 물었다.

         

       그도 그럴게….

         

       ‘원래도 표정이 썩어 있었는데 지금은 아주 심각하네….’

         

       원래도 운전해 줄 때마다 기분 좋았던 적이 없어 보였던 유 설이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더 심했기 때문이었다.

         

       스윽-.

         

       “…….”

         

       하지만 유 설은 로드 매니저의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슥 돌렸다.

         

       이에 로드 매니저도 그녀 행동에서 뜻을 이해하고 더 캐묻지 않았다.

         

       “…….”

         

       “…….”

         

       그렇게 두 사람은 더 이상 차 안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요하다고…, 감정의 폭풍까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었다.

         

       유 설은…, 평소에 그리도 능하던 표정 연기가 깨져 매니저한테 들킬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방금 전 하예린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난 일주일간 자신이 먹었던 약 봉투까지 내던져가며 하예린을 비난하고 스스로를 변호했다.

         

       물론 실제로 그녀가 아팠던 것은 맞았다.

         

       나아아 2차 팀 경연 첫날 아침부터 으슬으슬한게 감기 기운이 올라 왔고 때문에 곡 선정 게임인 나아아 체육대회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곧바로 병원에 다녀와 약을 타왔고 덕분에 몸 컨디션도 100%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야 언니 개인 득표수가 많아지니까요.’

         

       이번 일을 꾸민 것도 하예린의 말대로 유 설 그녀가 맞았다.

         

       처음 멤버 구성 그리고 선정된 곡을 보자마자 유 설은 팀 경연을 포기하고 혼자서라도 돋보일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몸이 아프다는 것은 아주 좋은 핑계가 되어 주었다.

         

       풀 컨디션이 아니라고 해도 사실 팀을 이끌거나 연습에 열심히 참여하는 일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모른 척 리더와 센터를 서유진에게 넘겼고…, 어려운 곡 난이도로 헤매는 팀에게 그 어떤 방향도 제시해주지 않았다.

         

       자존심이 센 서유진의 속을 긁어준 건 덤이었다.

         

       진창으로 빠지며 엉망이 되는 팀. 그 속에서 병으로 아픈데도 고고한 모습을 보이며 개인 득표수를 끌어 올리려 했다.

         

       뭐…, 예상외의 변수가 있었다면….

         

       ‘…솔직히 개인적으로 너무 아쉬운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설 언니한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나 잘할 수 있으면서…, 설 언니는 아프다는 핑계로 연습에도 잘 참여하지 않았어요…! 경연에서 혼자 돋보이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게 분명해요!’

         

       서유진이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막무가내였다는 점.

         

       오늘 서유진의 행동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유 설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 설은 서유진의 바보짓에 혀를 차며 신경질적으로 폰을 켰다.

         

       알림 차단을 푸니…, 그녀의 인별로 무수하게 많은 응원 dm들이 쏟아져 오고 있었다.

         

       역시…, 이번 그녀의 계획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나아아는 단순히 실력으로만 순위가 판가름되는 곳이 아니다.

         

       비록 정당한 방법은 아니었어도…, 유 설은 자신의 이번 팀 경연에서 권모술수를 펼친 것에 한 점 부끄럼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제발 모르면 나대지 좀 마, 예린아. 응? 다음에는 제발 좀 부탁할게.’

         

       …아까 하예린한테는 약 봉투까지 들이밀며 과민반응을 했던 것일까.

         

       …….

         

       두뇌 회전이 빠른 유 설은 금방 그 답에 도출할 수 있었다.

         

       부끄럽지 않다고…, 떳떳하다고 아무리 자위해도 그녀는 사실 부끄러웠다.

         

       경연이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를 직감하고 팀을 버린 자신이 부끄러웠다.

         

       혼자라도 살기 위해 어린 동생을 절벽 앞까지 내몬 자신이 부끄러웠다.

         

       오늘을 위해 지난 연습생 세월 동안 피눈물을 흘리며 고생한 건가…, 9년의 기간이 부끄러웠다.

         

       그에 반해 하예린은 빛이 나는 것 같아서….

         

       자신과는 다른 선택으로 어려운 여건에서도 팀을 당당하게 승리로 이끈 그녀가 질투나고 시샘이 나서.

         

       약 봉투를 들이밀며 추한 변명과 함께 하예린의 마음에 어떻게든 상처를 내고 싶었다.

         

       파앗.

         

       “……!”

         

       그때 차가 가로등이 없는 어두운 도로에 진입하고 창문을 통해 유 설 본인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유 설은 살면서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너무 추해 보였다.

         

       스윽-.

         

       이에 그녀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아아가 진행될수록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동떨어져 가고 있지만…, 이 정도 쯤은 이미 수도 없이 다짐하지 않았던가.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데뷔를 하는 것 그리고 엄마 병원비를 충당할 정도의 큰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러니 흔들리지 말자.’

         

       그렇기에 그녀는 달리는 차 안에서 눈을 감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졌다.

         

       흔들리지 않기로, 죄책감 갖지 않기로.

         

       ‘지금은 그냥 나아아 우승만 생각하는 거야.’

         

       나아아 우승을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기로.

         

       그렇게 유 설은 스스로를 다잡으며….

         

       스르르-.

         

       그녀 마음속의 어둠을 더욱 키워나갔다.

         

         

         

         

       **

         

         

         

         

       “하아아아….”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한숨을 내리 쉬었다.

         

       ‘제발 모르면 나대지 좀 마, 예린아. 응? 다음에는 제발 좀 부탁할게.’

         

       …아까 유 설과 나는 대화 때문이었다.

         

       “…내가 또…, 실수한 건가….”

         

       예전에 유 설에게 말실수를 한 적이 있어서 유 설의 마지막 말이 특히 신경 쓰였다.

         

       실제로 유 설은 단순히 몸이 아팠을 뿐이고…, 오늘 서유진의 일에 직접 관여한 게 없다면….

         

       ‘…이번 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계획 짠 거예요?’

         

       ‘그래야 언니 개인 득표수가 많아지니까요.’

         

       …내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상당히 기분이 나빴겠지.

         

       “후우….”

         

       유 설과의 관계는 뭐랄까…, 늘 어렵다.

         

       처음 나는 등급 평가에서 그녀의 무대를 보고 패배감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정작 그녀에게 한 발자국 다가서면…, 그녀는 늘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녀와 나 사이에 절대 가까워질 수 없도록 거대한 장벽이 하나 쳐져 있는 느낌이랄까.

         

       톡톡.

         

       나는 마음이 착잡해져 오는 것을 느끼며 핸드폰을 켰다.

         

       지금 우리 나아아 참가자를 향한 여론들이 어떤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우선 내가 먼저 들어간 곳은 이지우의 소개로 알게 된 한 여초 커뮤니티였다.

         

       이곳은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 특히 요즘에는 나아아에 대한 떡밥이 자주 돌아서 전반적인 정보를 얻기 좋았다.

         

       나는 우선 익명으로 된 게시판에서 내 이름이 거론된 글들부터 찾아봤다.

         

       ‘나는 뭐…, 별거 없네.’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남초든 여초든 커뮤니티든 공식이든 나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일주일 전 보았던 것과 큰 차이가 없기에 패스했다.

         

       다음으로 찾아본 건 유 설이었다.

         

         

       -하ㅠㅠ 나는 우리 설이 2등인 게 정말 믿기지 않아 [5]

         

       -솔직히 실력으로 보면 유 설 1등인데 [27]

         

       -우리 설이 과거 사진 찾았다!! 같이 볼 사람 [11]

         

       -다음에는 우리 설이 꼭 1등 만들어 보자고 [19]

         

       =아니;; 나아아에서 투표수 조작한 거 아님? 설이 2등 말이 안 되는데 [17]

         

         

       1차 순위 발표식에서 유 설이 2등한 게 그리도 충격이었는지 커뮤니티 안 유 설 팬덤은 터지기 전 화산처럼 고요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굳이 언급량으로만 따지면…, 나보다도 훨씬 많았다.

         

       ‘…이거 불안한데.’

         

       그리고 이런 내 불안한 심정은…, 다음 게시글에서 터지고 말았다.

         

         

       -나아아 2차 팀 경연 ㅅㅍ [81]

         

         

       “아….”

         

       나는 올게 왔다 생각하며 글을 눌렀다.

         

       글을 쓴 장본인은 역시 방금 전 2차 팀 경연 무대를 본 관객 중 한 명인 듯했다.

         

         

       [나아아 2차 팀 경연 ㅅㅍ]

         

       [방청권 어렵게 구해서 오늘 친구랑 경연 보러 왔거든? 보안 유지 서약까지 했는데 고소 당할 거 생각하고 글 하나 올릴게. 화가 너무 나서 도저히 가만히는 못 있겠어. 나 설이 팬인데 서유진 그 ㅅㅍ 년이….]

         

         

       파앗-.

         

       나는 그 뒤 작성자가 쓴 분노의 장문을 차마 읽어 내리지 못하고 폰을 껐다.

         

       그 뒤 내용을 굳이 읽지 않아도…, 예상이 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글에 달린 댓글들도….

         

       이미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인 유 설 팬덤이 글 내용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았을 터.

         

       ‘젠장….’

         

       내가 아는 사람이 돌에 맞는 걸 보는 것은 썩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게 전에 나랑 무대도 한 적이 있는 동생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지금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돌 던지는 사람이 지금보다 더욱 많아질 거라는 사실이었다.

         

       “하아….”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지난 몇 주 동안 나아아 촬영을 끝내고 돌아가며 고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그 정도가 평소보다 훨씬 더 심했다.

         

       “…….”

         

       “…….”

         

       내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강형만과 상구 오빠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괜히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두 사람의 배려 덕분에 나는 조용하고 편안하게 호텔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호텔에는 나를 가만두지 않을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직 오늘의 하루는 끝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 화는 12시간 뒤에 연재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