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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예린아, 응? 예린아아아…!!”

         

       “이 불쌍한 엄마 아빠 한 번만 봐줘…! 흐으으윽!!”

         

       “으으으…….”

         

       아빠 엄마의 계속된 재촉에 가뜩이나 심신이 지쳐 있던 나는 제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그래도 정신 차려야 해…!’

         

       여기서 까딱 잘못하면 엄마 아빠 쪽으로 페이스가 넘어가니까.

         

       이에 나는 억지로 힘을 쥐어짜 두 사람을 밀어내며 말했다.

         

       “…그만.”

         

       “어헝헝헝-!!”

         

       “예린아-!!”

         

       “…머리 아프니까 쪼옴.”

         

       “끄흐흐흑…! 허어어어엉-!!”

         

       “예린아…!! 차라리 엄마 눈에 흙을 집어넣…!”

         

       “알았으니까 좀 조용히 하라고요!!”

         

       “…어?”

         

       “…알았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하아….”

         

       내가 알았다고 말하니 아빠 엄마가 소름 끼칠 정도로 빠르게 눈물을 그쳤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또 치가 떨리는 걸 느끼며 오늘 제대로 결판을 지을까 생각하다가….

         

       “……하아, 오늘 피곤하니 다음에 얘기해요.”

         

       …그냥 이마를 부여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치만.”

         

       “여기서 더 떼쓰고 난리 치면 그냥 경찰을 부르든가 사장님을 부르든가 할 거예요.”

         

       “…….”

         

       그래도 19년 동안이나 같이 살았던 만큼 나에 대해 부모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내 표정이 진심이란 것을 느꼈는지 부모가 눈가에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미안해. 흐윽, 아빠 엄마는 돌아갈게.”

         

       “끄흡…, 피곤할텐데 성가시게 해서 미안해…. 대신, 예린아. 엄마 아빠랑 자주 연락은 하자, 응?”

         

       “…….”

         

       내가 끝내 대답을 하지 않자 아빠 엄마는 훌쩍이며 가지고 온 사진들을 주섬주섬 챙기고는 방을 나갔다.

         

       쿵

         

       “하아….”

         

       나는 아빠 엄마가 나간 후에야 드디어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아빠 엄마와의 이런 대화는 늘 숨이 막힌다. 그리고 오늘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아아….”

         

       씻고 자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만한 기력이 없었다.

         

       나는 그대로 아빠 엄마를 상대했던 자리에서 일어나 좀비처럼 비척비척 침대로 향했다.

         

       그런데….

         

       “…….”

         

       침대로 가던 내게 발밑에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아빠가 가져온 내 어린 시절 사진 중 하나였다.

         

       급하게 챙겨서 나가느라 미처 하나를 못 보고 그냥 갔다 보다.

         

       스윽-.

         

       나는 그것을 들어 오랜만에 유년 시절 내 사진을 보았다.

         

       “이게 정확히 몇 살 때 찍은 거지….”

         

       사진 속에는 이제 막 돌잔치를 지난 듯한 아기와 지금보다 훨씬 더 젊은 아빠가 정답게 구도를 잡고 있었다.

         

       아기는 예뻤고 아빠는 잘생겼다.

         

       물론 지금의 나도…, 어릴 적의 나도 예쁜 건 마찬가지였지만…. 사진 속 아이와 지금의 나는 큰 차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지금의 나는 웃음을 모르지만…, 사진 속 아이는 누구보다 행복하게 활짝 웃고 있다는 것.

         

       ‘이때는 아직 아빠 엄마에 대한 콩깍지가 씌워져 있었을 때니까.’

         

       하예린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 나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기뻤었다.

         

       그때는…, 부모를 그저 존재만으로 사랑했었다.

         

       스륵-.

         

       나는 사진 속 아빠 품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를 엄지손가락으로 만지작댔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애란 말인가.

         

       자기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르고 이렇게 속 편하게 웃고 있다니.

         

       그래도….

         

       이때는 정말….

         

       행복했었는데…, 사랑했었는데….

         

       턱.

         

       감정이 과잉되기 전에 나는 사진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물론 볼 수 없게 반대로 뒤집어 놓은 채였다.

         

       털썩.

         

       그리고 나는 곧바로 침대에 폭 하고 누워 버렸다.

         

       아직 씻지도…, 옷을 갈아 입지도 않았지만 그냥 이대로 잠에 빠져 들고 싶었다.

         

       나아아도…, 서유진도…, 유 설도…, 우리 부모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잠을….

         

       그때의 나는 절실히 원했다.

         

         

         

         

       **

         

         

         

       다음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강형만에게 전화해 어젯밤 부모가 찾아온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강형만은….

         

       […잠시 거기 기다리고 있으렴.]

         

       뭔가 화난 듯한 목소리로 내 전화를 받더니 15분도 안 돼서 상구 오빠와 함께 내 호텔 방에 도달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일단 내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혹시 그 작자들이 널 해코지하진 않았지?”

         

       강형만의 걱정에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저희 부모가 폭력적인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후우…, 미안하다. 전화를 받자마자 너무 놀라서…, 좀 예민하게 반응했구나.”

         

       강형만은 내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표정을 다시 풀고는 내게 물었다.

         

       “근데 예린아. 왜 이걸 이제 말하는 거니. 어제 전화했으면 바로 달려왔을 텐데.”

         

       “…주위에 사람들이 많아서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아빠 엄마가 돌아간 후에는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들기도 했고…. 죄송해요.”

         

       “아니…, 네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 상구야.”

         

       강형만은 고개를 젓고는 바로 상구 오빠에게 명령했다.

         

       “예, 형님.”

         

       “예린이 짐 챙겨라.”

         

       “예.”

         

       강형만의 명에 상구 오빠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가방을 대신 들려하자 도리어 내가 당황했다.

         

       “…엇, 제 짐은 왜요? 어디 가요…?”

         

       “여기 위치가 노출되었으니 호텔 옮겨야지.”

         

       “아….”

         

       “너무 걱정마라. 이번에는 네 부모가 어떻게 알아낸 건지 몰라도 이번에는 철저하게 숨기마. 혹시 그걸로 부족하다면….”

         

       강형만이 특유의 무표정으로 살벌한 말을 이었다.

         

       “네 부모가 다시는 네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줄 수도 있다.”

         

       “…….”

         

       우리 부모가 다시는 내게 접근 못하게 하다니….

         

       그 방법이 뭘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저으며….

         

       “…아뇨, 그건 괜찮아요. 그거 말고….”

         

       “뭔가 부탁할게 있니?”

         

       “…네. 그게 어제 아빠 엄마한테 듣기로…, 두 사람이 일자리를 구했다는데…, 혹시 그게 정말인지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아빠 엄마가 정말로 자립해서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사실유무를 확인해달라 청했다.

         

       “…….”

         

       내게 그 부탁을 들은 강형만은 무언가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본 나는 그제서야 아차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혹시 곤란한 부탁이면….”

         

       “…아니다.”

         

       내가 당황하자 강형만도 표정을 다시 원상복구하고는 대답했다.

         

       “…한 번 알아봐주마.”

         

       “…네.”

         

       하지만 그리 말하는 강형만은 원하지 않은 부탁을 받은 것처럼 얼굴이 썩 좋지 못했다.

         

       “형님, 예린이 짐 다 챙겼습니다.”

         

       “…그래.”

         

       “주차장에 차를 호텔 정문 앞으로 가져오겠습니다. 천천히 내려오시지요.”

         

       상구 오빠는 그리 말하고 짐을 챙긴 채 먼저 아래로 내려갔다.

         

       “…….”

         

       “…….”

         

       상구 오빠가 내려가고 방에 둘만 남자 어색함이 돌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강형만이 무뚝뚝하고 말수가 없는 편이긴 해도 그와 같이 있을 때 어색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상구가 짐을 다 챙겨간 게 아니구나.”

         

       그 때 강형만이 적막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탁자 위 내가 뒤집어 놓은 사진에 닿았다.

         

       뚜벅.

         

       “…사장님, 그건.”

         

       강형만은 내가 말리기도 전에 한걸음에 탁자로 다가가 사진을 들었다.

         

       “…….”

         

       어린 나와 젊은 시절 아빠가 정답게 찍혀 있는 그 사진을.

         

       사진의 내용을 확인한 강형만은 사진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침묵하다가….

         

       “후우….”

         

       깊게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나를 향해 말했다.

         

       “예린아.”

         

       “…예.”

         

       “사람이란 건…,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예린이 네 부모는 평생 그렇게 인간말종으로 살 게 분명하다.”

         

       “…….”

         

       “아마 그대로 두면 평생 네 등골을 빨며 너를 괴롭게 만들겠지.”

         

       나는 강형만이 담담하게 꺼내는 말을 그냥 잠자코 듣기만 했다.

         

       “아까 네 부모가 정말로 일자리를 구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지.”

         

       “……네.”

         

       이내 강형만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네 부모 곁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있는 거니?”

         

       “……!”

         

       “네 부모를 용서하고 싶은 거야?”

         

       “…….”

         

       부모를 용서하고 싶은 거냐는 말에 나는 숙인 고개를 더욱 숙였다.

         

       속에서 무언가가 치미는 게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르겠어요.”

         

       “…….”

         

       “제 부모가 바뀔 리 없다는 걸 확신하고 있는데…, 남은 제 인생을 위해 두 사람과 연을 아예 끊어 버리는 게 낫다는 걸 알고 있는데…. 그런데….”

         

       “…….”

         

       “머리로는 다 알고 있는데…, 왜….”

         

       부모를 버리고 싶다.

         

       정말 헌신짝 버리듯 쓰레기통에 버려 버리고 싶다.

         

       지게에 두 사람을 싣고 어디 골짜리 같은 곳에 던져 버리고 싶다.

         

       하지만….

         

       ‘내가 우유부단해서…, 내가 등신이라서….’

         

       발걸음만 돌리면…, 얼마 있지도 않은 부모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죄송해요. 사장님한테 폐만 끼쳐서 죄송해요.”

         

       “…….”

         

       “…답답하게 굴어서…, 죄송해요.”

         

       이런 내가 답답해 보이겠지. 속 터지겠지.

         

       강형만 입장에서는 얼른 나를 통해 회사를 키워야 하는데 별 시답잖은 일로 정체되어 있는 내가 곱게 보이지 않겠지.

         

       강형만은 내게 계속 은혜를 베푸는데…, 나는 보답하기는커녕 계속 폐만 끼친다.

         

       그게 너무 미안해서…, 나는 감히 그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툭.

         

       “…뭐가 죄송하다는 거냐.”

         

       “……!”

         

       그런 내 머리 위로 투박하지만…, 따뜻한 강형만의 손길이 느껴졌다.

         

       이에 놀라 고개를 들었을 땐….

         

       “설마 부모를 빨리 버리지 못한 게 미안하다는 거냐?”

         

       “…….”

         

       강형만이 늘 그렇듯 무심하지만 진심이 담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미워도 19년을 같이 산 가족이다. 너를 낳아준 부모고.”

         

       “…….”

         

       “아무런 고민 없이 부모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건 인간이 아니라 후레자식이지.”

         

       “…….”

         

       “예린이 네가 지금 겪고 있는 고민과 고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스윽-, 슥.

         

       강형만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마치 상처난 내 마음에 연고를 바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든지 기다려주마. 그리고…, 네가 무슨 선택을 하든 존중하마.”

         

       “…….”

         

       지금 나를 보는 강형만의 눈동자에 담긴 무조건적인 신뢰와…, 내 마음을 치유해주는 그의 손길.

         

       마지막으로 그 어떤 것보다 든든하게 느껴지는 그의 말 한 마디는….

         

       주륵.

         

       …결국 내 마음의 둑을 터트렸다.

         

       “감사해요…, 감사해요…, 사장님.”

         

       “…….”

         

       “…정말로 흐…, 감사해요, 사장님.”

         

       “원 녀석 감사한 것도 많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서 연신 눈물을 흘리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강형만과 함께 아래로 내려갔다.

         

       지금과 비슷한 규모의 다른 호텔로 짐을 옮겨 그곳으로 숙소를 삼았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강형만에게 또다시 연락이 왔다.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빠와 엄마가 일자리를 구한 게 맞다고 했다.

         

         

         

         

       **

       

         

         

         

       “예린아.”

         

       “…….”

         

       “예린아…!”

         

       “…아, 네. 지우 쌤.”

         

       내가 계속 멍한 표정을 짓자 걱정이 되었는지 이지우가 걱정스런 투로 물었다.

         

       “…괜찮아? 무슨 일 있었어?”

         

       “…아뇨, 그냥.”

         

       아빠 엄마가 자기들이 알아서 일자리를 구해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날부터 나는 계속 상념에 잠겼다.

         

       …상념에 잠겼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아직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냥 멍하니 허공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오해했는지 이지우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예린아, 혹시 저번 주 촬영에서 실수한 거 있었어?”

         

       “…네?”

         

       “이제 30분 후면 나아아 5화 방영이잖아. 혹시 저번 촬영에서 좋지 못한 모습이라도 찍힌 거야?”

         

       “…아.”

         

       솔직히 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시간은 오후 9시 30분. 이제 30분 후면 나아아 5화가 방영한다.

         

       ‘…서유진.’

         

       그제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뜨며 의식이 깨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나아아 5화는 여러모로 중요한 화였다.

         

       다름 아닌…, 서유진의 앞으로 아이돌 인생이 걸렸을지도 모르는 화였으니까.

         

       “…제가 실수한 건 아닌데 제 아는 동생이….”

         

       “…아는 동생?”

         

       “…네, 제발 잘 넘겼으면 좋겠는데.”

         

       스윽-.

         

       나는 자세를 고치고 모니터에 집중했다.

         

       이미 나아아 5화는 편집을 끝내고 송출만을 남겨두고 있을 터.

         

       ‘…그래도 유진이 소속이 SAV인데 설마.’

         

       나는 부디 제작진 쪽에서 서유진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기를 간절히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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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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