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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1

       신PD는 한국 최고의 대학교에서 신방과를 졸업하고 다른 동기들과는 다르게 기자 대신 예능 PD로 지상파 방송국에 처음 입성했다.

         

       그 당시 예능 PD 경쟁률이 수백 대 일.

         

       학벌도 좋고 능력도 좋았던 젊은 피 신PD는 통칭 엘리트였다.

         

       하지만 안전주의인 다른 엘리트들과 다르게 신PD는 방송에서 보다 큰 자극을 찾았다.

         

       출연자들의 허점을 찾거나 극단적인 모습을 편집하여 방송에 내보내며 아주 망나니 같은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것이 다른 지상파 엘리트들에게는 당연히 곱게 보이지 않았고 결국 지상파에 환멸을 느낀 신PD는 스카웃을 받아 케이블 방송국으로 옮기게 된다.

         

       신PD가 지상파 방송국을 퇴사할 때 그의 선배가 해준 말이 있었다.

         

       ‘그렇게 신나게 불 지르고 다니다 보면 언젠가 그 불길이 너를 덮을 거다.’

         

       그때 신PD는 지상파 엘리트 선배가 또 꼰대 짓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일까.

         

       왜 하필이면 지금….

         

       그 선배의 말이 지금 떠오르는 것일까.

         

       신PD는 침을 꿀꺽 삼키며 국장의 전화를 받았다.

         

       “예, 국장님, 전화 받….”

         

       [야 이 미친 새끼야-!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

         

       전화를 받자마자 신PD는 자신의 고막 상태를 걱정해야 했다.

         

       귀를 찌르는 목소리에 신PD는 표정을 찡그리면서도 국장에게 공손히 말했다.

         

       “국장님…, 진정을 좀 하시고….”

         

       [진정은 무슨 얼어 죽을 진정! 연습생 하나 관리 못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언론에서 우리 존나게 때리고 있는 거 이거 어떡할 거야!]

         

       “…우선 이번 폭로는 법적으로 저희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계약을 어긴 저쪽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 점으로 저희도 언플하면 저희를 향한 비난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비난을 줄여? 하!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근데 SAV 건은 어떡할 거야? 방금 SAV 대표한테 전화 왔어!]

         

       “그쪽 대표는 또 왜….”

         

       신PD는 이어지는 다음 말에 크게 흠칫하고 말았다.

         

       [우리 방송국에 그쪽 기획사 아이돌, 연예인들 공급 다 끊는단다!]

         

       “……!”

         

       사실상 지금 대한민국 톱클래스 아이돌들은 모두 3대 기획사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하나인 SAV에서 출연자 공급을 끊는다고…?

         

       이는 방송국 입장에서 치명적일 수 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아니 무슨 연습생 하나 때문에…!’

         

       고작 연습생 하나 지키려고 때문이 아니었다.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방송국에 밀렸다는 선례를 남기면…, 앞으로도 계속 방송국에 끌려다니기만 할 테니까.

         

       SAV가 강하게 나온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평소의 신PD라면 곧바로 알아챘겠지만…, 머리가 복잡한 그는 순간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이 소식이 또 언론 타면 본사 주가에도 영향이 있을 건데 이거 어떡할 거냐고, 이 새끼야! 어?]

         

       “…….”

         

       폭로, 안 좋아진 여론, SAV는 연예인 공급을 끊는다하고, 주가 하락까지….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로 국장이 몰아붙이자 신PD는 얼어 붙었다.

         

       그런 신PD의 모습에 국장이 혀를 쯧쯧 차고는 말했다.

         

       [하아…, 한심한 놈. SAV 쪽은 내가 알아서 해결하마. 너는 시청자들 여론이나 잘 관리하고. 또 그 뭐냐. SAV 연습생 걔!]

         

       “SAV 서유진 말씀이십니까….”

         

       [그래 걔! SAV에서 더 말 안 나오게 네가 직접 그 녀석 챙겨! 알아 들어?]

         

       “…예, 알겠습니다.”

         

       [아…, 젠장. 본사에서 또 전화가 오네. 너 3시간마다 나한테 상황 보고하고 이만 끊….]

         

       “저…, 국장님…!”

         

       이대로 전화를 끊을 수 없었던 신PD는 마지막 순간 용기를 내 국장에게 물었다.

         

       “제 부국장 임명 건은 혹시 어떻게 되는지….”

         

       […….]

         

       지금 이것이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라는 걸 머리는 알고 있었다. 지금 이것은 그의 가슴이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신지천PD. 지금 나랑 장난해?]

         

       …역시나 참혹했다.

         

       [지금 그게 이 상황에서 필요한 말이야? 지금 너 때문에 방송국 전체가 흔들리는데 너는 지금 개인의 승진이 더 중요하다는 거야? 어?!]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그 어느 때보다 열이 오른 국장의 대답에 아차 싶은 신PD가 황급히 고개를 푹 숙이며 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국장님, 저는 그저….”

         

       [후우…, 내가 나이도 어린 신PD를 부국장에 임명하려 했던 건 신PD 네가 워낙 성적도 좋고 내 학교 후배기도 해서 그런 거였어. 근데 너도 알고 있지? 사실 부국장 자리를 맡기에 너 나이 면에서나 연차 면에서나 여러모로 부족한 거.]

         

       “……알고 있습니다.”

         

       [근데 네가 이렇게 엿을 먹이면 내가 임원 회의에서 너를 추천할 수 있겠냐고. 어?]

         

       “…….”

         

       [이번 부국장 건은 없던 일로 해. 이번 나아아 수습 잘하고 조용해지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고. 전화 끊지.]

         

       뚝.

         

       그 전화를 끝으로 국장과의 통화는 끝났다.

         

       털썩.

         

       일어선 채 두 손으로 국장의 전화를 받고 있었던 신PD는 전화가 끝이 나자마자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가 다 빨린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는 채였다.

         

       ‘그렇게 신나게 불 지르고 다니다 보면 언젠가 그 불길이 너를 덮을 거다.’

         

       그 당시 젊었던 신PD는 이제 꼰대라고 불릴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이제 와서 그 꼰대 선배가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은 신PD였다.

         

       다른 엘리트들이 신PD처럼 할 줄 몰라서 그렇게 안 한 것이 아니었다.

         

       신PD의 방법은 너무 위험하니까. 곳곳에 적을 만드는 방법이고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힘든 방법이니까.

         

       롱런하여 더욱 높은 곳을 바라보는 엘리트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방법이니까.

         

       그래서 하지 않았을 뿐이었던 것이다.

         

       ‘시발.’

         

       신PD는 자기가 지른 불길이 자신의 앞길을 막은 후에야 그것을 깨닫고 말았다.

         

       “…선배님.”

         

       “…….”

         

       “국장님이 뭐라고 하셨는지요. 이번 일 어떻게 처리할까요.”

         

       후배의 질문에 신PD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서유진 묻어 버리기로 했던 계획은 모조리 폐기하고, …최대한 훈훈한 분위기 연출해.”

         

       “…네, 알겠습니다.”

         

       “…나아아 7화는 가정의 달 특집으로 편성하고 참가자 가족들 섭외해서 응원 영상 찍어와. 최대한 따뜻하게….”

         

       “네, 그리하겠습니다.”

         

       신파는 신PD가 애용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이에 후배는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신PD의 다음 말에는 흠칫하고는 말았다.

         

       “그리고…, 우리 나아아 모든 SNS 계정에 사과 공지 올려. 나아아 5화에서 우리가 했던 악의적인 편집들 모두 인정하고 사과한다고.”

         

       “……예?!!”

         

       평소 신PD는 권모술수, 책임회피 이런 것에 어울리지 진솔한 사과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갑작스런 신PD의 태도 변화에 후배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선배님, 사과 공지라니 그게 무슨….”

         

       “이번 일…, 확실히 우리가 과했어….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우리도 스타일을 한 번 바꿔보자고….”

         

       신PD는 그리 말하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래,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다른 선배나 동기들처럼 하는 거야…. 그러면 다시 일어날 수 있어.”

         

       실제로 이번 일 때문에 신PD의 인생이 망가진 것은 아니었다.

         

       잠시 넘어졌을 뿐.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서 다른 엘리트들이 그리했던 것처럼 안전하게 달리기 시작하면 그도 언젠가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신PD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평생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줄을 타며 살았던 신PD다.

         

       누구보다 빠르고 아슬아슬하게 달리며 도파민 가득한 삶을 살았던 그가 이제 와서 다른 엘리트들처럼 살 수 있을 리 없었다.

         

       “괜찮아…, 이제라도 돌아가면 돼….”

         

       스스로 괜찮다고 말을 되뇌이며 자기 최면을 이어 갔지만…, 이번 일로 크게 넘어진 신PD는 그 어느 때보다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추후 그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

         

       “…….”

         

       커뮤니티에 올라온 나아아 폭로글을 보고 나와 서유진은 눈을 끔벅였다.

         

       이내 나는 작성자의 이름을 보고 서유진에게 물었다.

         

       “이여름…, 이 사람 분명히 저번 경연에서 유진이 너랑 같은 팀이었지?”

         

       “…네, 맞아요. 친하지는 않았었는데 이 언니가 왜….”

         

       이여름….

         

       이름을 되뇌이다 보니 나도 누군지 기억이 났다.

         

       ‘분명 12년 연습했다던 그 사람이지….’

         

       연습생 생활을 12년 하고도 스타성이 없단 이유로 등급 평가에서 C를 받았던 참가자다.

         

       연습생 생활을 한 달하고 A를 받은 나를 부럽게 쳐다보던 시선이 기억난다.

         

       그때 이후로 눈에 잘 안 띄길래 내성적인 사람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대형 핵폭탄을 투하하다니….

         

       역시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그때였다.

         

       슥.

         

       갑자기 서유진이 태블릿 pc에 손을 대려 하기에 나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물었다.

         

       “…유진아, 뭐 해?”

         

       “…댓글들. 그러니까 사람들 반응 좀 보려구요.”

         

       “…후회하지 않겠어?”

         

       “…….”

         

       내 말에 서유진이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끄덕.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언니랑 같이 보자.”

         

       그렇게 우리는 떨리는 손으로 함께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아 시발 그러니까 내가 중립기어 박으라고 했잖아.]

         

       [어떡해 ㅠㅠ 서유진 완전 상처 받았겠다]

         

       [난 처음부터 믿고 있었음]

         

       [와 그간 ㅈㄴ 억울했겠네. 괜히 제작진 새끼들 때문에 욕먹고.]

         

       [뭐야 ㅅㅂ 우리 혜정이 원래 A 등급이었는데 억까 당한 거라고? 어쩐지!!]

         

       [와…, 사람들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말바꾸는 거 역겹네.]

         

       대중들의 여론은 서유진을 향해 상당히 호의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부분이 의심해서 미안하다거나…, 원래부터 믿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아 ㅋㅋ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냐고 ㅋㅋ]

         

       [응~ 그래도 싸가지 없는 건 똑같죠~ 나는 계속 욕할 거야!]

         

       여전히 서유진을 욕하는 글들도 많았지만 전처럼 서유진을 욕하는 글들로 가득 찼던 과거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유진아! 사람들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정말 다행….”

         

       그렇게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보니….

         

       주르륵.

         

       “…유진아.”

         

       서유진이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서유진을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이런 말 어떻게 들릴 지 모르겠는데, 하차 잠시 미뤄보지 않을래?”

         

       “……!”

         

       “아이돌 되고 싶어서 나아아 왔다고 했잖아. 그리고 지금…, 상황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

         

       스윽-, 슥.

         

       그렇게 서유진은 내게 한참 동안 쓰다듬을 받더니 이내 웅얼거리듯 말했다.

         

       “…을 거예요.”

         

       “응?”

         

       “나아아에…, 남을 거예요….”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젖은 얼굴 속 눈동자에는….

         

       “나아아 남아서…, 꼭 언니랑 데뷔할 거예요.”

         

       “…….”

         

       “반드시 여기서…, 아이돌이 될 거예요.”

         

       …그간 봤던 다른 참가자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결의와 독기가 담겨 있었다.

         

       이를 악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오히려 뿌듯함을 느끼며 말했다.

         

       “그래, 우리 같이 데뷔하자.”

         

       그렇게 서유진은 잠시 소동이 있긴 했지만…, 다시 출항하여 데뷔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제는 여론이 어느 정도 넘어왔으니…, 이제는 이번 무대에서 실력을 증명하기만 하면 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화 에피소드 소제목 Fire in the belly는 실력파 아이돌 르세라핌의 노래 <Fire in the belly>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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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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