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예린이…!! 흐으윽!! 이번 경연 끝나면 꼭 바로 집으로 와!! 알았지? 흐윽…!! 하예린 화이팅!!]
내 부모의 주접 인터뷰가 그렇게 끝이 나고….
파앗.
“……엇.”
다음 사람 인터뷰가 등장하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몸을 기댄 채로 인터뷰를 시작하는 중년 여자.
그녀의 행색이나 분위기는 누가 봐도 오랜 병자의 느낌을 풀풀 풍겨댔고…, 무엇보다 그녀는 지금까지 인터뷰 중 유일하게 혼자인 채였다.
‘근데 지금까지 인터뷰 안 나온 유일한 사람은….’
나는 지금까지 인터뷰가 없었던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 설은…, 마치 사형대에 올라온 것만 같은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영상 속 여인의 정체는 유 설의 엄마인 듯했다.
곧이어….
[설아, 엄마야.]
영상 속 유 설의 어머니가 말을 시작하고.
[엄마 때문에 늘 고생하는 우리 설이….]
[엄마가…, 늘 미안해….]
싸아-.
유 설의 표정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바뀌었다.
언제나 자신의 원래 표정을 가면으로 숨기던 유 설이…, 이번엔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듯…
콰앙-!!
“……!”
“……!”
모두의 앞에서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리를 박차 일어났다.
“…….”
그렇게 선명하게 드러난 유 설의 맨얼굴은 예전의 나에게 보인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살벌한 표정으로…, 지금까지 참가자들은 절대 범접할 수 없었던 신PD를 한 번 노려보고는…
타앗.
쾅-!!!
그대로 격한 걸음과 함께 세트장을 떠나 버렸다.
[엄마만 아니면 우리 설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아이돌 할 수 있었을 텐데….]
[흐으….]
유 설이 떠난 사이에도 화면 속 인터뷰는 계속되고 있었다.
지금 막 유 설의 엄마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곧 눈물 짓던 얼굴을 지우고 능숙하게 웃음을 피어냈다.
[그런데 이기적이게도 엄마는…, 우리 설이가 꼭 데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설아, 네가 올곧은 방법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데뷔를 할 수 있을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런 모습에서….
‘…닮았다.’
유 설의 엄마와 유 설이 닮았다고 느꼈다.
[우리 설이…, 언제나 엄마가 응원하고, 사랑해.]
그렇게 눈물로 시작했던 인터뷰는 마지막 그림 같은 유 설 엄마의 미소로 끝이 났다.
하지만….
“…….”
“…….”
훈훈하게 끝이 난 인터뷰 영상과 달리…, 영상이 틀어진 장내는 그야말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분위기가 굳어 버렸다.
갑작스런 돌발 상황 때문에 방송 프로인 한시우도 진행을 잇지 못했고 제작진들도 그 어떤 오더도 내리지 못했다.
스윽-.
그 사이에 나도 몰래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언니, 어디를….”
“쉿, 잠시만 나갔다 올게.”
어차피 이 상황에서 정상적인 방송 진행은 어려울 터.
나는 그렇게 방송이 잠시 멈춘 사이…, 밖을 나간 유 설을 따라 나갔다.
**
유 설은 어디로 갔을까.
갑자기 사라진 그녀가 어디로 갔을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나는 쉽게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솨아아.
세트장 끝에 있는 화장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화장실은 곳곳에 카메라가 깔려 있는 나아아 세트장에서 유일한 안전지대다.
이에 나도 조금은 편안한 심정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솨아아.
유 설은 세면대에 물을 틀고 그 앞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드르륵-.
“…또 너니?”
내가 들어가자마자 내 얼굴 대신 다리만 보고 나인 것을 눈치챘다.
유 설은 그대로 미동도 않은 채 신경질적으로 내게 소리쳤다.
“왜? 또? 착한 척하려고? 너는 한 번이라도 착한 척 안 하면 몸에 가시라도 돋는 거야?”
“…….”
내가 왜 유 설을 따라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서유진을 팀으로 뽑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생각하기 전에…, 몸부터 움직였달까.
지금이라도 내가 왜 유 설을 따라왔는지 이유를 생각해보면….
‘너무 절박해 보여서.’
그토록 카메라 앞에서 자기 관리 철저한 유 설이 모두의 앞에서 가면을 벗어던진 게….
그 가면 안 얼굴이 너무 절박하고 위태로워 보여서….
그래서 나는 그녀의 뒤를 바로 따라온 듯싶다.
내 얼굴에서 그런 기색을 읽었는지 유 설이 눈초리를 더욱 표독스럽게 세우며 말했다.
“너…, 또 나를 불쌍하게 봤구나.”
“…….”
그렇다.
불쌍했다.
전생에서는 그렇게 빛나던 유 설.
그런 그녀가 아직은 빛을 보지 못한 채 발버둥치는 모습이 불쌍했다.
‘괜히 나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특히 지금처럼 나를 향해 악에 받쳐 째려보는 모습이 자꾸 자신 주위로 벽을 세우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유 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으니 그녀가 마치 얼음 인형과 같은 표정과 걸음으로 내게 다가와….
콰악.
“…읏.”
내 뺨을 한 손으로 잡고는 말했다.
“너…, 내가 불쌍히 보지 말랬지.”
“…….”
“…우리는 모두 경쟁자야. 너나 나나 데뷔권이라 해도 우승자는 한 명이고.”
압도적인 피지컬 차이로 나는 유 설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구태여 그러지 않고 얌전히 뺨을 잡힌 채 입을 열었다.
“언니나 저나 확실한 데뷔권이면 저희는 나아아 끝나고 같은 팀이 될 텐데…, 같은 팀원끼리 동정 좀 하면 안 돼요?”
“팀? 하! 겨우 1년 잠깐 활동하고 헤어질 건데 팀?”
꾸욱.
“천만에.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해. …나는 너 싫어.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나고 짜증나 죽겠어.”
“…….”
“그러니까 너도 나 싫어해. 너도 나 미워하라고.”
이것도 기분 탓인가.
그녀가 자꾸 나를 밀어 내려 하는 것이…, 나는 자꾸 잡아달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그 어떤 표정 변화도 없이 그녀를 내려다보니 유 설이 조금 다급해진 투로 말했다.
그리고….
“너…, 그거 알아? 네가 이번 주에 그렇게 싸고돈 서유진…. 나락 보낸 거 나야.”
“……예?”
…나는 그런 유 설이 내뱉는 말에 흠칫하고 말았다.
“…아픈 거? 다 거짓말이었어. 서유진, 그 철도 없고 싸가지도 없는 애랑 같이 데뷔하면 나중에 팀에 폐 끼칠 게 뻔하니까.”
“…….”
“그래서 내 득표수도 얻을 겸 그 17살 짜리한테 작업쳤어. 멍청해서 그런가 아프다는 핑계로 리더랑 센터 다 준다니까 넙죽 받더라.”
“…….”
“내가 이런 애야, 이런 년이라고. 근데 내가 아직도 불쌍해 보이니?”
“…아니.”
콰악.
나는 유 설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 볼을 감싼 유 설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유 설은 어떻게든 반항해 보려는 듯했지만 내 근력에 밀려 꼼짝하지 못했다.
“그거 모두…, 당신이 짜고 한 거라고…? 그때는 아니라고…, 약 봉투까지 보여줬었잖아.”
“…다 미리 준비해 놓은 거지.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해야 나한테 피해 오는 것 없이 나락 보낼 수 있을 테니까.”
“…이런 나쁜.”
그 순간 나는 지난 며칠간의 일이 떠올랐다.
서유진 그 어린 애가 얼마나 힘들어 했는데…, 얼마나 울었는데….
스윽-.
이러려고 유 설을 따라온 게 아니었지만 진실을 알고나니 순간 화를 참기 어려웠고…, 인지하지도 못한 채 내 손은 높이 올라갔다.
스륵-.
유 설은 그것을 보자마자 마음껏 때리라는 듯 눈을 감았고…, 내 손은 빠른 속도로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던 그때였다.
“그게 무슨….”
갑작스레 끼어든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
“……!”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화장실 문앞에 서 있는 서유진의 모습이 보였다.
“…유진아.”
“…….”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우리가 하는 대화를 모두 들은 듯싶었다.
“그, 그게….”
서유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떡하지? 지금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 줘야 하지…?’
나는 습관적으로 바로 서유진의 상태창부터 키고 상태이상을 확인했다.
[상태이상 : 미약한 우울증, 미약한 불안장애, 극심한 분리불안.]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유진의 상태이상은 이전과 같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굳어 가고 있었다.
유 설이 서유진에게 무슨 말을 할 지에 대한 불안도 있었다.
‘왜? 또? 착한 척하려고? 너는 한 번이라도 착한 척 안 하면 몸에 가시라도 돋는 거야?’
‘너…, 내가 불쌍히 보지 말랬지.’
‘팀? 하! 겨우 1년 잠깐 활동하고 헤어질 건데 팀?’
‘천만에.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해. …나는 너 싫어.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나고 짜증나 죽겠어.’
‘그러니까 너도 나 싫어해. 너도 나 미워하라고.’
화장실에서 가면을 완전히 벗어 버린 유 설은 내게 표독스러운 말들을 쏘아 내었다.
‘혹시 유 설이 서유진한테도 그런 독설들을 쏟아 내서 유진이의 멘탈을 흔든다면….’
하필이면 경연 전 날…, 서유진이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면 내일 무대에도 지장이 있겠지.
이에 내가 유 설이 말을 하는 걸 막으려 몸을 튼 순간….
“……!”
유 설의 표정을 보고 또다시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가면 안의 표독스럽고 치밀한 얼굴이 진정한 유 설의 얼굴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유 설은….
“아…, 그….”
방금 내게 보였던 것과는 다른 사람처럼…, 화장실 문 앞의 서유진을 보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바보 같은 표정은….
“…….”
…감히 형용할 수 없는 죄책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유 설의 얼굴을 보고 홀린듯이 유 설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상태이상 : 우울증, 불안장애, 극심한 자기혐오]
열어본 유 설의 상태창은 한 때 서유진의 것만큼이나 화려했다.
다음 편은 12시간 후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