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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이번 4차 경연 또한 저번과 마찬가지로 자유곡 선정입니다!”

         

       가뜩이나 유 설과의 경연에 쓰레기 같은 곡 걸리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이번 주도 자유곡 선정이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참가자 여러분들은 각자 배정 받은 연습실로 이동해주십시오! 이번 4차 경연도 행운을 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조금 안심하며 유 설과 함께 배정받은 연습실로 갔다.

         

       따라오는 카메라맨도 없고 방치형 카메라만 있을 뿐 연습실 안에는 우리 단둘뿐이었다.

         

       “…….”

         

       “…….”

         

       나와 유 설은 신경전 이후로 딱히 사적인 대화는 전혀 나누지 않았다.

         

       덕분에 연습실 안을 적막이 가득 채웠지만….

         

       왜일까? 나는 그다지 유 설을 향한 어색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스윽.

         

       “이것 좀 봐봐.”

         

       “이게 뭐예요?”

         

       그때 말없이 태블릿PC를 이리저리 만지고 있던 유 설이 보고 있던 화면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우리 둘이 하면 좋을 것 같은 곡 리스트. 최근 10년 아이돌 유닛 활동 곡 중에 골라봤어.”

         

       “…….”

         

       화면을 보니 대략 20여개 정도의 곡들이 담겨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곡들을 추렸다고?’

         

       나는 작은 감탄과 함께 곡을 살피면서도 의심을 거두지는 않았다.

         

       ‘혹시 자기한테 엄청 유리한 곡들만 고른 거 아니야?’

         

       권모술수 유 설이 곡에 무슨 장난질이나 계략을 쳐놨을지 몰랐기에 나는 보다 세심하게 곡들을 살폈다.

         

       하지만….

         

       ‘…무난하네. 아니, 상당히 잘 골랐어.’

         

       유 설이 추린 곡들을 보다가 의심을 거두었다.

         

       나와 유 설의 컨셉은 상당히 상반된다.

         

       섹시와 청순.

         

       퇴폐미와 귀여움.

         

       흑과 백.

         

       그리고 유 설이 고른 곡들은…, 우리의 그런 상반된 이미지를 잘 살릴 수 있는 컨셉의 곡들 뿐이었다.

         

       그렇게 어떤 곡이 괜찮을지 면밀하게 보고 있던 중에 유 설이 말했다.

         

       “그중에 네가 원하는 거 골라. 나는 다 괜찮으니까.”

         

       대략 20개의 곡 중 뭐든 괜찮다는 유 설의 말에 나는 흠칫하고는 물었다.

         

       “…이 중에 정말 제가 뭘 골라도 군말없이 따르겠다고요?”

         

       “어.”

         

       “…왜 저를 배려해 주는 거예요?”

         

       “뭐? 배려? 푸흣.”

         

       배려라는 내 표현이 웃겼던 것일까.

         

       유 설이 피식 한 번 웃고는 말했다.

         

       “배려가 아니라 자신감이지. 이 곡 중 뭘 해도 너 정도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

         

       빠직.

         

       근데 이 사람 왜 시비지?

         

       유 설의 무시에 짜증이 난 나는 그녀의 말을 맞받아쳤다.

         

       “2등이 1등한테 자신감 갖는 꼴이 퍽 웃기긴 하네요.”

         

       “…이게 싸가지없게.”

         

       “싸가지는 언니가 없는 거구요. 그것보다 카메라 앞에서 착한 아이 코스프레 하는 건 그만두는 거예요? 오늘따라 본모습을 꽤나 자주 드러내시네.”

         

       평소 유 설이라면 카메라 앞에서 늘 착한 척을 하곤 한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 설은 방송에 내보낼 수 없는 그녀의 본모습을 보였다.

         

       이것을 비꼬면서 물으니 유 설이 입꼬리를 올리며 반격했다.

         

       “우리 지금 마이크 안 꼈잖아. 방치형 카메라에는 그렇게 음량이 잘 안 들어가. 그리고 착한 아이 코스프레는 내가 아니라 네가 자주 하는 거잖아.”

         

       “…그게 무슨.”

         

       “왜? 아니야? 너 불쌍한 사람들 찾아가서 위로해 주는 척 네 자존감 채우는 거 좋아하잖아. 서유진한테도 그랬고 혜정 언니한테도 그랬고.”

         

       꾸욱.

         

       나는 그 순간 유 설의 재능을 하나 더 찾을 수 있었다.

         

       이 사람…, 말싸움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

         

       제대로 열이 받은 나는 유 설을 더 쏘아 붙이려다가 말았다.

         

       여기서 더 나아갔다가는 그녀의 술수에 그대로 말려들 것 같기 때문이었다.

         

       이에 나는 대신….

         

       “난쟁이.”

         

       “…뭐?”

         

       “만년 2등.”

         

       “…지금 뭐 하는 거야.”

         

       1차원적 공격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는 제법 잘 통한 것인지….

         

       “늙다리.”

         

       “…너무 유치해서 상대할 가치가 없네.”

         

       “퇴물.”

         

       “…….”

         

       유 설은 제대로 긁힌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나도 지금의 내가 상당히 유치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가 이겼어…!’

         

       유 설이 고개를 돌리자 말싸움에 이겼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에 나는 킥킥 한 번 웃고는 곡을 고르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거.’

         

       내게 유 설의 리스트 중 어느 한 곡이 눈에 띄었다.

         

       “퇴물 언니.”

         

       “…너 한 번만 더 그따위로 부르면.”

         

       “그게 아니라…, 저희 이 곡 하죠.”

         

       “…….”

         

       유 설은 짜증을 내려다가 내 말을 듣고 태블릿PC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

         

       …이내 고민에 빠졌다.

         

       유 설은 나보다 전체적으로 스탯이 높다.

         

       하지만 그런 유 설보다 내가 소폭 앞서는 스탯이 있으니…, 바로 춤 스탯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고른 것은…, 레전드 보이그룹 유닛의 댄스 명곡.

         

       가창력과 댄스 중 댄스의 중요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곡이었다.

         

       ‘이거라면….’

         

       이거라면 나도 유 설을 이길 수 있….

         

       “혹시 이거라면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거 아니지?”

         

       “…….”

         

       그때 유 설이 나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며 말했다.

         

       “그런 거면 되게 같잖네.”

         

       “…….”

         

       “그래, 이걸로 해. 그래 봤자 결과는 같겠지만.”

         

       …이 사람 진짜 짜증나.

         

       “…퇴물.”

         

       “할 줄 아는 말이 그것뿐이니? 이건 뭐…, 유치원생도 아니고…. 머릿속이 뭐 이리 어린 건지….”

         

       “제가 어린 게 아니라 언니가 늙은 거에요.”

         

       “…….”

         

       그렇게 우리는 그 누구보다 적대적이지만 그 어느 팀보다 빠르게 곡을 선정했다.

         

       그야말로 오월동주(吳越同舟)였다.

         

         

         

         

       **

       

         

         

         

       곡을 선정하면 그 다음은 안무를 따고 숙지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계속된 퇴물 소리에 짜증을 숨기지 않던 유 설은 내가 선택한 곡의 안무 영상을 몇 번 돌려 보고는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직접 알려줄 테니까 너는 따라오기만 해.”

         

       “…그게 뭔 소리예요?”

         

       …무슨 트레이너가 연습생한테 안무 트레이닝 해주는 것도 아니고 따라가긴 뭘 따라가?

         

       순간 나는 유 설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지만….

         

       ‘……어?’

         

       유 설은 정말 그 짧은 시간에 안무를 따기라도 한 건지 내게 동작을 가르쳐 주며 자신은 디테일을 공고히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천재여도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설마?’

         

       나는 혹시 하는 심정으로 유 설에게 물었다.

         

       “언니 혹시 이거 전에 커버한 적 있어요?”

         

       “…….”

         

       유 설은 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맞는 듯했다.

         

       유 설이 전에 이 곡을 커버한 적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분개하며 그녀에게 따지듯 말했다.

         

       “비겁해요.”

         

       “…….”

         

       “저는 이 곡 아예 처음인데 언니는 이거 해봤다는 거 아니예요.”

         

       안 그래도 나는 유 설에 비해 스탯에서 많이 밀린다.

         

       그런 내가 전에 이 곡을 커버하여 안무를 몸에 익힌 유 설을 이길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이에 내가 불공평함을 주장하니 유 설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다른 곡으로 바꾸자고?”

         

       “당연하죠, 지금 당장 다른 곡으로….”

         

       “다른 곡은 다를 것 같니?”

         

       “그게 무슨…, 설마…?”

         

       그녀의 말에 당황한 나는 태블릿PC 속 곡들과 유 설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유 설은 내 의문에 긍정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 리스트에 있는 20개 넘는 곡들을 다 커버해 봤다고요?”

         

       “…….”

         

       “…말도 안 돼.”

         

       그렇다면 이 많은 곡들의 안무를 몸으로 대충 다 숙지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나는 혀를 내두르면서 유 설의 술수를 눈치챘다.

         

       ‘그래서 나보고 아무 곡이나 고르라 했던 거구나. 여기 있는 곡 다 해 본 거니까…!’

         

       이에 나는 곧바로 음악 차트 앱을 켰다.

         

       유 설의 리스트에 있는 곡들 말고 다른 곡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 모습을 유 설이 물끄러미 보고는 담담하게 물었다.

         

       “뭐 해? 다른 곡이라도 찾게?”

         

       “…네, 여기 있는 곡이 아닌 다른 곡을….”

         

       “내가 다른 곡들은 커버 안 해 봤을까?”

         

       “…….”

         

       유 설의 말에 내가 태블릿PC를 만지던 손을 멈칫하고 얼어붙자 유 설이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예린아, 너 학교 다니고 있을 때 나는 연습실에서 썩고 있었어.”

         

       “…….”

         

       “무려 9년 동안이나 말이야. 내가 그 긴 시간 동안 커버한 곡이 몇 곡이나 될까?”

         

       …그래, 스탯 말고도 내가 유 설에게 절대 이길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시간.

         

       나는 이제 트레이닝을 받은지 고작 몇 개월이 되었을 뿐이지만 유 설은 연습생 기간이 무려 9년을 넘어간다.

         

       가장 높은 산, 가장 긴 강.

         

       그때 유 설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내가 도저히 넘을 엄두가 안 날 정도였다.

         

       유 설은 얼어붙은 내 뺨을 어루만지며 마치 자비를 베푼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냥 처음 고른 곡으로 해. 그게 그나마 너한테 유리할 테니.”

         

       “…….”

         

       순간 나는 반골 기질이 올라와 유 설의 제안을 거절할까 생각도 했지만….

         

       끄덕.

         

       이내 자존심을 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창력의 중요도가 돋보이는 다른 곡들을 고르면 그야말로 답이 없어지니까.

         

       유 설이 커버를 해봤다고 해도…, 댄스가 중점인 이 곡을 고르는 게 그나마 승산이 높았다.

         

       “알아들었으면 이제 연습 시작하자.”

         

       “…….”

         

       “예린아, 지금 내가 너한테 안무 가르쳐 주는 입장인데 대답은 해야지.”

         

       “…네.”

         

       “아이, 착해. 예린아, 고분고분하게 있으니 너무 예쁘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 응?”

       

       “…….”

       

       “대답.”

       

       “…네.”

         

       스윽, 슥.

         

       유 설은 아까 팀 선정할 때 내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던 것에 복수라도 하듯 짓궂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어린아이 다루는 듯한 그녀의 손길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유 설과 나 사이 차이는 극심하니까….

         

       지금은 최대한 몸을 굽혀 그녀에게서 빼먹을 건 다 빼먹고 간극을 줄이는 게 그나마 그녀를 넘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면 이제 진짜 시작할게, 잘 따라만 와.”

         

       “…네.”

         

       그렇게 나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심정으로 유 설의 트레이닝을 따랐다.

         

       그리고….

         

       ‘……와.’

         

       …이내 감탄했다.

         

       유 설은 단순히 스탯이 높은 것만이 아니라 남에게 가르쳐 주는 것도 능했다.

         

       ‘…이게 어떻게 연습생.’

         

       나는 일개 연습생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지우에게 트레이닝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유 설이 가르쳐 주는 대로 족족 흡수하며 빠르게 안무를 숙지했다.

         

       “…확실히 빠르긴 하네.”

         

       유 설도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놀랐는지 조금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대로 안무 제대로 숙지하고…, 무대에서 천마환혹을 제대로 터트리면….’

         

       승산이 있다.

         

       …라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욱신.

         

       “……!”

         

       “…뭐해, 한 박자 빨랐잖아.”

         

       “…아, 그게.”

         

       3시간 동안 안무 연습만 해서 그런 건지….

         

       조금 아릿하긴 해도 그래도 견딜 만 했던 발목에서….

         

       욱신, 욱신.

         

       …마치 둑이 터진 것처럼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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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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