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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9

       사이버 돌림판을 보고 비명을 지른 것은 다른 참가자들 뿐만이 아니었다.

         

       ‘…젠장,’

         

       나 역시 1차 팀 경연 때 저 사이버 돌림판 때문에 안 좋은 경험이 있어서…, 표정을 굳히지 않을 수 없었다.

         

       ‘저거 때문에 1차 팀 경연 때 나와는 어울리지도 않는 테일로즈 곡을 했었지.’

         

       내 기억으로 그때 유 설도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보이그룹의 곡을 선정 당했었다.

         

       우연이라고 말하면 우연이겠지만 역시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달까.

         

       차라리 수동 돌림판이면 아무 말도 안 하겠는데 저 싸구려 프로그램은 조금만 만져도 조작이 가능해 보이기에 의심은 더 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의심이 간다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긴 했다.

         

       프로그램 후반기라 힘이 많이 빠졌다고 해도 제작진들은 여전히 나아아의 왕이었으니까.

         

       여기서 괜히 불만 표시를 했다가 제작진들이 교묘하게 비호감으로 편집하면 마지막에 낭패를 당할 터.

         

       괜히 긁어 부스럼이라고 사이버 돌림판의 조작 정황이 확실치도 않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참가자는 아무도 없었다.

         

       “자, 그러면 각 팀당 한 명씩 무대로 나와 주시지요!”

         

       한시우의 말에 우리 팀원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지금 나가면 방송에서 한 컷이라도 더 받긴 하겠지만 파이널 경연의 곡 선정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컸다.

         

       그야말로 리스크는 큰데 리턴은 적은 셈.

         

       그래서인지 그들의 시선은 이내….

         

       스윽.

         

       슥.

         

       …우리 팀의 실질적인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내게로 향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자 측은지심이 들었는지 이혜정이 내게 물었다.

         

       “예린아, 내가 나갈까?”

         

       “…아뇨.”

         

       솔직히 나도 나가기 꺼리긴 했지만 이혜정을 내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가장 어린 서유진을 내보낼 수 없고.

         

       “제가 나갈게요.”

         

       “와-!!!”

         

       “예린 언니 파이팅!”

         

       결국 우리 팀에서는 내가 팀원들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로 나갔다.

         

       그리고 상대 팀에서는….

         

       “언니.”

         

       “…예린아.”

         

       역시나 예상대로 유 설이 나왔다.

         

       유 설과 잠시 눈인사를 하는 사이 제작진이 가운데에 빨간 버튼을 설치하고 한시우가 진행을 이었다.

         

       “자, 1팀에서는 하예린 참가자가 그리고 2팀에서는 유 설 참가자가 나왔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지난번 순위 발표식에서 1, 2위를 기록했던 참가자 분들이라 긴장이 안 될 수가 없는데요.”

         

       스륵-.

         

       한시우는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 둔 동전 하나를 꺼내며 물었다.

         

       “누가 먼저 곡을 고를지는 동전 던지기로 정하겠습니다. 하예린 참가자, 유 설 참가자는 앞면과 뒷면 중에서 골라주세요!”

         

       아무런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뒷순서로 하고 싶었다.

         

       “…저는 앞면이요.”

         

       “그러면 제가 뒷면 하겠습니다.”

         

       “예, 하예린 참가자 앞면 유 설 참가자 뒷면입니다. 그러면 동전을 던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핑그르르.

         

       착.

         

       한시우의 손을 떠나 공중을 돌던 동전이 다시 한시우의 손에 안착했다.

         

       그리고 동전이 가리키고 있는 면은….

         

       ‘…앞면.’

         

       바로 앞면이었다.

         

       “앞면이 나왔습니다. 하예린 참가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집니다. 하예린 참가자, 먼저 돌림판을 돌리시겠습니까, 아니면 후에 돌리시겠습니까?”

         

       “…후에 돌리겠습니다.”

         

       “네, 그러면 유 설 참가자. 앞으로 나와서 먼저 돌림판을 돌려주시지요.”

         

       그래도 다행히 나는 원하는 대로 뒷순서에 돌림판을 돌릴 수 있었다.

         

       나는 먼저 앞으로 나가는 유 설에게 조용히 응원해 주었다.

         

       “언니, 좋은 곡 뽑으세요.”

         

       “…고마워.”

         

       유 설도 내 말에 대답해주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안 그래도 오늘따라 더욱 초조했던 얼굴이…, 지금은 더욱 경직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후우….”

         

       그렇게 유 설은 무거운 한숨을 한 번 내쉬고….

         

       꾹.

         

       …이내 버튼을 눌렀다.

         

       빙그르르-.

         

       돌림판이 돌아간다.

         

       유 설은 그것을 마치 염라대왕이 심판을 내리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유 설이 속한 2팀도 손에 깍지를 끼며 좋은 곡이 나오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돌림판이 서서히 멈추면서 곡이 선정되자….

         

       틱.

         

       [Energetic Start! – 롤링원]

         

       “2팀이 파이널 경연에서 선보일 곡은 롤링원의 Energetic Start!입니다!”

         

       “후우우우….”

         

       “와아아아아….”

         

       “와…, 다행이다….”

         

       유 설을 비롯한 2팀 일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nergetic Start!

         

       신PD 사단이 배출해낸 최고의 걸그룹 중 하나인 롤링원의 첫 앨범 타이틀곡.

         

       지금은 베테랑을 넘어 끝물에 이른 롤링원의 신인 시절 상큼한 느낌을 담고 있는 하이틴 팝 특유의 밝은 곡이었다.

         

       파이널 경연에서 쓸 곡 치고는 다소 가벼운 느낌이 아닌가 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고 적당한 난이도에….

         

       워낙 히트했던 곡이라 웬만한 아이돌 팬들이면 전부 꿰고 있기도하고 무엇보다 댄스에 비중이 높아서 유 설, 나한나가 포함된 2팀에게는 최적의 곡이라 할 수 있었다.

         

       ‘원곡 그대로 따라가도 되는데다 편곡 난이도도 그리 어렵지 않아. …그야말로 당첨이다.’

         

       유 설이 좋은 곡을 뽑자 덩달아 긴장이 되는 것은 나였다.

         

       “자, 그러면 다음으로 하예린 참가자 나와서 돌림판을 돌려주시지요!”

         

       “…예.”

         

       내가 긴장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자 내 팀원들이 나를 응원해 주었다.

         

       “하예린 화이팅!”

         

       “예린 언니 부담 없이 뽑아요!”

         

       이미 곡을 뽑은 유 설도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내게 한마디를 남겨 주었다.

         

       “너도 좋은 곡 뽑아.”

         

       “…감사해요, 언니.”

         

       그렇게 나는 모두의 기대와 응원을 받으며 빨간 버튼 앞에 섰다.

         

       내가 돌림판 버튼을 무섭게 노려보니 한시우가 하하 웃으며 내게 간단하게 물었다.

         

       “하예린 참가자, 혹시 원하는 곡이 있습니까?”

         

       “으음….”

         

       솔직히 말하면….

         

       너무 무난한 곡은 싫다.

         

       이번 경연이 마지막인 만큼…, 나는 조금 더 파괴적이고 도전적인 곡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 심정을 곧이곧대로 말하기는 좀 그래서 나는 적당히 둘러대며 답했다.

         

       “아까 화면에서 본 선배님들 모두 존경하는 분들이고 선배님들 곡 모두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이 걸리든 상관없습니다.”

         

       “하하!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하예린 참가자! 이제 돌림판을 돌려주세요!”

         

       “후우.”

         

       한시우의 말에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손에 기를 한 번 모았다.

         

       그리고….

         

       꾹.

         

       마침내 돌림판의 버튼을 눌렀다.

         

       빙그르르-.

         

       돌림판이 돌아가면서 여러 가지 곡들이 지나간다.

         

       내가 도전적인 곡을 원한다고 하긴 했지만 사실 파이널 경연에서 너무 실험적인 곡을 하기는 조금 그랬다.

         

       ‘적당히 무게는 있으면서 파격적이고 또 대중적인 것이여야 해.’

         

       다소 까다로운 주문이긴 했지만 저 돌림판 안에는 그러한 조건들을 충족하는 곡들이 있었다.

         

       나는 부디 그런 곡들이 나오기만을 바라면서….

         

       ‘하느님, 제발.’

         

       어느새 신께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하늘을 바라보기 위해 천장 쪽으로 시선을 옮기다가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그것은 바로…, 신PD였다.

         

       그리고 신PD는 돌아가는 돌림판 그리고 노심초사하는 내 얼굴을 보며….

         

       ‘웃어?’

         

       …웃고 있었다.

         

       신PD의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온몸이 오싹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두 사람……, 어디 두고 봅시다.’

         

       언젠가 반드시 보복하겠다는 듯 이를 갈며 했던 신PD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핑그르르, 툭.

         

       마침내 돌아가던 돌림판이 멈추고.

         

       파앗.

         

       [용사와 마왕 : 빛과 타락의 이야기 – 지뉴스]

         

       “…….”

         

       “…….”

         

       순간 한시우조차 진행을 잇지 못할 정도의 깊은 침묵이 세트장을 덮었다.

         

       그리고 돌림판이 가리키고 있는 곡을 보는 팀원들의 얼굴에는 절망감과 낭패가 가득했다.

         

         

         

       **

         

         

         

       이혜정의 분량을 건드리며 어느 정도 분풀이를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신PD의 모든 화가 풀린 것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개긴 하예린을 어떻게 더 보복해 줘야 할까.

         

       답은 간단했다.

         

       이미 팬층이 탄탄한 하예린을 데뷔조에서 떨어뜨리는 건 불가능하니 최소한 나아아 우승이라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PD는 나아아 광고주의 압박으로 대놓고 하예린을 홀대할 수 없었다.

         

       이에 그는 자신의 특기를 하나 발휘했다.

         

       바로 대놓고 건들기 힘든 상대를 우연인 척 엿 먹이는 방법.

         

       사이버 돌림판은 조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신PD는 진작에 소품 감독과 입을 맞춰서 하예린 팀이 무대를 선보일 곡을 골랐다.

         

       바로 신PD 사단이 배출해 낸 1군급 보이그룹 지뉴스의 ‘용사와 마왕 : 빛과 타락의 이야기.’

         

       이름만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이 곡은 히트곡이라면 나름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성적을 냈지만 이 곡의 성적이 좋은 이유는 단순히 지뉴스의 열성적인 팬들이 팔아줘서 그런 것일 뿐이었다.

         

       이 곡의 컨셉은 바로 판타지 용사와 흑막인 마왕에 관한 이야기인데 정말 귀 씻고 들어도 들어 줄 수 없는 유치한 가사와 눈 뜨고 볼 수 없는 오글거리는 스토리에 정말 어마어마한 욕을 먹었다.

         

       지금도 지뉴스 팬들에게는 금지곡으로 남아 있는 이 곡은 지스뉴의 흑역사와 오점 그 자체.

         

       이것은 그 어떤 현역 탑급 아이돌이 와도 절대 소화해낼 수 없는 곡이었다.

         

       제아무리 하예린이어도 이 곡이 걸린 순간 어찌할 도리가 없을 터.

         

       하예린을 비롯한 하예린 팀은 파이널 경연 생방송 무대를 망칠 것이고 이는 영원한 기록으로 남을 게 분명했다.

         

       제작진 입장에서 이미 단물 다 빠진 프로그램 끝물에 자극적인 장면으로 시청률을 제대로 빨 수 있는 좋은 기회기도 했다.

         

       ‘그러게 감히 PD한테 개겨? 그 벌로 네가 은퇴할 때까지 따라붙을 흑역사 무대 하나를 선사해주마.’

         

       신PD는 자신의 계획에 흡족해하며 하예린 팀원들의 얼굴을 살폈다.

         

       하예린 팀의 팀원들은 선정된 곡을 보고 자신들의 미래를 상상했는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신PD는 그 모습을 보고 낄낄대며 하예린 쪽으로도 고개를 돌렸다.

         

       늘 뻣뻣하고 차가운 그 재수 없는 계집이 절망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것만큼 통쾌한 광경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신PD가 하예린 쪽으로 시선을 옮긴 순간….

         

       ‘……음?’

         

       신PD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웃어?’

         

       뒤늦게 손으로 입을 가리긴 했지만….

         

       하예린은 선정된 곡을 보며 분명히 웃고 있었다.

         

       누가 봐도 도저히 소화할 엄두가 안 나는 곡임에도…, 마치 아주 잘 걸렸다는 듯이.

         

         

         

         

       **

         

         

         

       용사와 마왕 : 빛과 타락의 이야기.

         

       어디 애니메이션 주제곡으로도 안 쓸 것 같은 오글거리는 곡 이름.

         

       실제로 들어 보면 더 오글거리는 가사.

         

       전에도 들어 본 적 있는 곡이다.

         

       ‘첫 소절을 듣자마자 곧바로 진절머리를 내며 곡을 꺼버렸었지.’

         

       분명히 소화하기 어려운 곡이고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 가장 최악의 곡이다.

         

       하지만….

         

       [특성 : 천마(天魔) – 당신은 연예계의 이단아, 아이돌계의 천마(天魔), 하늘이 내린 재능의 악마입니다. 당신이 나타난 순간 다른 이들은 모두 범부(凡夫)일 뿐. 부디 안일한 연예계를 평정하고 당신의 광신도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당신의 이름으로 덮어 버리십시오.

         

       처음 내 특성을 보자마자 내가 해 보고 싶었던 컨셉이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컨셉을 담아낼 곡이 없어서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었는데….

         

       ‘이 곡이라면…, 시도해 볼 수 있어.’

         

       지금 내가 고른 곡 ‘용사와 마왕 : 빛과 타락의 이야기’는 내가 원하던 컨셉을 담아낼 수 있는 곡이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성공만 한다면 파이널 경연에서 꽤나 묵직한 무대를 하나 만들어 볼 수 있을 터.

         

       마침 편곡에 능한 이혜정과 서유진도 있겠다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나아아 마지막 무대를 내가 원하는 컨셉으로 종식한다라….’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고 도전 정신으로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이에 웃음이 났다.

         

       동시에 이번 파이널 경연….

         

       제법 괜찮은 무대가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낙낙서서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매번 감사합니다, 낙낙서서님 ㅠㅠ..

    이번 화도 좋게 봐주셔서 다행이고 다음에도 낙낙서서님 마음에 들기 위해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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