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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1

       보안대를 통과하고 집합장소인 7층까지 올라가자 한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엘리베이터에서 막 나온 우리를 마중했다.

         

       “안녕하십니까? 미리 마중 나왔습니다. 하예린 님은 저를 따라오고 형제기획 관계자 분들은 옆의 직원을 따라가시면 법무팀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단정한 복장과 정갈한 자세. 과하지 않고 딱 알맞은 예의.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사장님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어…!’

         

       눈앞의 직원이 강형만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도 아무런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손님 접대에 얼마나 능하면 강형만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건지….

         

       혀를 내두르고 있으니 옆에 있던 강형만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여기서 흩어져야 한다니 그러자꾸나. 이따 보자.”

         

       “네, 사장님.”

         

       “이따 봐요, 예린 양.”

         

       “네, 변호사님.”

         

       “그러면 하예린 님은 저를 따라와 주시지요.”

         

       강형만과 이김장 변호사와 헤어지고 NAS 엔터 직원의 뒤를 따르며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근데 오늘 제가 할 일은 뭔가요?”

         

       내 질문에 앞서 가던 직원이 사람 좋게 방긋 웃으며 답해 주었다.

         

       “앞으로 루키즈 활동을 하시며 함께 일하실 여러 실무진 분들과 미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

         

       “어려운 건 아니고 간단한 인사 정도만 진행될 예정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 그리고….”

         

       끼익.

         

       직원이 나를 데려다준 곳은 거대한 회의실이었다.

         

       그곳에는….

         

       “다른 멤버 분들은 이미 도착해 계십니다.”

         

       “언니!”

         

       “예린아.”

         

       나를 제외한 모든 루키즈 멤버들이 미리 자리에 앉아 있는 채였다.

         

       “얘들아, 그리고 언니들.”

         

       나는 멤버들에게 인사를 하며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루키즈 멤버들 빼고 모든 자리가 비워져 있는 게 아무래도 우리와 미팅한다는 실무진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싶었다.

         

       ‘실무진과의 미팅이라니 긴장되네.’

         

       그리 생각하며 내가 자리에 앉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언니, 여기 앉으세요.”

         

       “예린아, 여기 앉아.”

         

       “……?”

         

       각각 양쪽 자리에 앉아 있던 서유진과 유 설이 동시에 자기 옆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이에 내가 잠시 멈칫하자….

         

       “…….”

         

       “…….”

         

       서유진과 유 설 두 사람이 ‘저건 뭐야?’ 싶은 차가운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봤다.

         

       ‘별것도 아닌 걸로 왜 이래?’

         

       이에 나는 잠시 황당함을 느끼다가….

         

       “그럼 여기에….”

         

       제일 가까운 유 설의 옆자리 의자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서유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낑낑대며 나를 보았다.

         

       “언니…, 어떻게 저를 버리고….”

         

       고양이가 밖에서 1시간 동안 비에 쫄딱 맞아 오면 저 표정일까.

         

       나라라도 망한 듯 허망한 서유진의 표정에 나는 처음 고른 자리에서 손을 떼고 서유진 쪽으로 가려 했다.

         

       “아, 그러면 그쪽에….”

         

       그런데 이번에는….

         

       턱.

         

       “예린아, 그냥 여기 앉아.”

         

       유 설이 서유진 옆자리로 가려는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눈을 올망졸망 크게 뜨며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공략하는 서유진과 달리 유 설은 그저 싱긋 웃을 뿐이었다.

         

       “언니, 저 유진이 옆에….”

         

       “앉아.”

         

       “…네.”

         

       하지만 유 설의 눈빛에는 무언가 나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이에 깨갱한 나는 그대로 유 설 옆에 앉았다.

         

       내가 자리를 옮기지 않고 유 설 옆에 앉으니 서유진이 더 이상 불쌍한 표정 짓는 걸 멈추고 유 설을 노려보았다.

         

       “크르르….”

         

       “…….”

         

       그런 서유진의 시선을 유 설은 그저 무시할 뿐이었다.

         

       두 사람의 사소한 신경전에 오히려 불편한 것은 나였다.

         

       ‘설마 특성 효과 때문에 그런가….’

         

       서유진과 유 설은 각각 좌호법, 대호법 특성 효과로 인해 집착이 상승한 채였다.

         

       아무리 그래도 벌써부터 이런 모습이라니…, 앞으로 숙소 생활할 때 두 사람 사이에 낀 내 모습이 상당히 고달플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끼익.

         

       “……!”

         

       “팀장님들 오셨습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나를 여기로 안내해준 직원이 실무진들의 입장을 알렸다.

         

       그리고 곧….

         

       척, 척, 척.

         

       ‘뭔가 무겁네.’

         

       우리 루키즈를 운영할 NAS 엔터의 실무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에 웃음기 대신 피로만 가득한 그들은 우리를 보고도 놀라지 않으며 사무적인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중 선두에 있던 이가 회의실 가장 상석에 앉으며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조금은 후줄근한 캐주얼 복장에 안경을 긴 조금 딱딱한 표정의 남자였는데….

         

       “안녕하세요, 이렇게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네요. 루키즈 총괄 운영을 맡게 될 정필승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정 실장이라고 불러 주세요.”

         

       “……!”

         

       그가 이름을 밝히자마자 내 옆에 앉아 있던 유 설이 움찔했다.

         

       이에 의문이 든 내가 티 나지 않게 그녀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왜 그래요, 언니? 아는 사람이예요?”

         

       “…유명한 사람이야.”

         

       나중에 듣기로 정 실장은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오로지 실력만으로 NAS 엔터 아이돌 부문의 디렉터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했다.

         

       Nnet에서 신PD 사단이 아이돌들을 발굴하면 정 실장이 모두 맡아서 키웠다나.

         

       나 빼고 전부 정 실장이 누군지 알았던 건지 그의 등장에 멤버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런 우리를 보고 웃으며 정 실장이 옆에 있는 다른 실무진들을 한 명씩 소개해 주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왼쪽부터 A&R 팀장님, 디자인 팀장님 그리고….”

         

       “안녕하십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 실장이 한 명씩 소개해 줄 때마다 우리는 고개 숙여 그들에게 인사했다.

         

       팀장급 인사들도 우리가 인사할 때마다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마주 고개를 숙여 주었다.

         

       첫인상과 달리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매우 부드럽고 훈훈해졌다.

         

       “…마지막에 계신 두 분은 각각 스타일리스트 팀장님과 루키즈 로드 매니저님입니다. 앞으로 멤버 분들과 제일 자주 함께하실 분들이죠.”

         

       “안녕하세요~”

         

       “루키즈 로드매니저를 맡은 임성실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인상은 참으로 선하고 좋아 보였다.

         

       “자, 이제 팀 소개를 해드릴게요. 먼저 A&R 팀에서는….”

         

       그 후 정 실장은 각각 팀에서 하는 업무가 무엇인지 또 규모는 어떤지 또 어떤 식으로 우리를 도와주고 지원해 줄지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멍.

         

       전체적으로 무슨 소리인지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이래서 뭐가 됐든 대기업에 가야 한다고 하는 건가?’

         

       바로 우리를 향한 그들의 대우와 지원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

         

       사실 형제기획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대접받았던 나는 NAS에서도 좋은 대우를 약속받자 헷갈릴 수 밖에 없었다.

         

       “…언니, 원래 이렇게 모든 기획사가 소속 아이돌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거예요?”

         

       “…그럴 리가.”

         

       3대 기획사 JJ 출신인 유 설은 고개를 젓고 단호하게 답해 주었다.

         

       “이 정도면 3대 기획사보다도 잘해주는 거야.”

         

       “아….”

         

       “나아아가 대박이 났으니까 우리한테 바라는 게 많겠지.”

         

       참고로 나의 아카데미아 마지막화 순간 최고 시청률은 27%였다.

         

       아무리 오디션 프로그램인 것을 감안해도 그야말로 완전 대박.

         

       대중들에게 우리 루키즈의 인지도는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우리의 팬클럽을 자처하는 이들도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회사에서 우리에게 잘해주는 것도 당연한가?’

         

       이에 내가 조금 흐뭇한 마음이 들던 그때였다.

         

       “아, 참고로 루키즈의 음원은 저희 회사에서 임시 전속 프로듀서를 계약해서 자체제작할 예정입니다.”

         

       “……?”

         

       전속 프로듀서를 계약하다니?

         

       루키즈는 1년만 활동하고 해체하는 프로젝트 그룹이다.

         

       그런 NAS 엔터 입장에서는 전속 프로듀서를 영입할 게 아니라 실력 있는 프리랜서 작곡가들에게 외주로 곡을 맡기는 것이 비용도 절감되고 다양성 측면에서 좋았을 것이다.

         

       이에 고개를 갸웃하니 정 실장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제일 중요한 걸 설명 안 했군요. 여러분, 탄탄대로 같은 루키즈에게 걸림돌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루키즈의 걸림돌이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머릿속에서 바로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이에 모두가 침묵하니 정 실장이 웃음기를 거두고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저희 NAS 엔터의 주요 사업은 사실 아이돌이 아니라 영화 배급입니다.”

         

       맞다.

         

       이번 루키즈가 특수한 경우여서 그렇지 사실 NAS 엔터는 아이돌 육성에 그리 큰 관심이 없다.

         

       실제로 현재 NAS 엔터 소속 아이돌은 우리 루키즈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아이돌계는 사실상 3대 기획사에서 대부분 먹고 들어간다고 볼 수 밖에 없죠. 그리고…, 공교롭게 우리 루키즈가 데뷔하는 주에 3대 기획사 YW에서도 신인 걸그룹을 데뷔시킨다 하더군요.”

         

       “…….”

         

       3대 기획사 YW 이야기가 나오자 우리는 전부 입을 다물었다.

         

       안 그래도 루키즈와 YW 신인 걸그룹의 데뷔 시기가 겹치는 것에 인터넷은 이미 흥분 상태였다.

         

       자본력의 NAS 엔터와 관록의 YW 중 어느 쪽의 걸그룹이 성공할지 열띤 토론이 매일 같이 벌어졌고 여론은 YW 쪽으로 조금 기운 채였다.

         

       그만큼 3대 기획사의 위용은 엄청나니까.

         

       YW에서 나온 걸그룹은 늘 크게 성공한다는 속설도 있고.

         

       ‘이걸 역시 NAS에서도 크게 신경 쓰고 있었구나.’

         

       확실히 나도 YW에서 데뷔하는 신인 걸그룹을 크게 의식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도 같은 마음이었나보다.

         

       “그래서 저희가 어렵게 모셨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프로듀싱 능력이 손에 꼽는 데다 YW 출신이어서 YW 내부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분을요.”

         

       YW 출신의 최고 프로듀서?

         

       ‘YW 전속 작곡가라도 빼온 건가?’

         

       그렇게 정 실장의 알쏭달쏭한 설명에 의문만 가득 차던 그때였다.

         

       끼익.

         

       “…?”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린 우리는….

         

       “……!!!”

         

       문을 연 상대의 얼굴을 보고 기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쓰고 온 모자를 벗으며 송구스럽다는 듯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모자를 벗자 나이를 먹고도 전혀 녹슬지 않은 미형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늦었죠.”

         

       “아닙니다, 마침 프로듀서님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새삼스럽긴 하지만 자기소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자기소개라…, 알겠습니다.”

         

       자기소개란 말에 그가 그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안녕하세요, 루키즈 여러분. YW 배신자 한시우라고 합니다.”

         

       갑작스런 한시우의 등장에 놀란 멤버들이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특히 나는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자신만의 회사를 차리기 위해 10년 넘게 몸 바친 YW를 퇴사한 한시우였다.

         

       분명 지금쯤이면 회사 창립을 시작해야 되는데….

         

       ‘…왜 HS 엔터 안 만들고 여기 있어?’

         

       그가 만든 HS 엔터는 짧은 시간 내에 3대 기획사에 버금가는 거대한 회사로 성장한다.

         

       그런 대단한 회사를 만들 사람이 왜 여기에…?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시우가 우리를 보며 자기소개를 마저 했다.

         

       “앞으로 1년간 루키즈의 뮤직 프로듀서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제 친정 YW를 부수기 위해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순간 장난스러운 그의 눈동자가 나와 마주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그는 더욱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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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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