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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7

       우우웅.

         

       마치 따뜻한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는 듯한 포근한 느낌과 함께…, 나는 꿈을 꾸었다.

         

       “으으으-!!”

         

       “산모님! 조금만 더 힘내세요!”

         

       “여보! 조금만 더!!”

         

       병원.

         

       분주한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들.

         

       익숙한 얼굴의 산모와…, 익숙한 얼굴의 남편.

         

       “으읏-!!!”

         

       “으아아아아앙-!!”

         

       힘겨워하던 산모는 마지막 힘을 다해 아기를 출산하고 의사와 간호사가 밝은 얼굴과 함께 아기를 포대기로 감싸며 말한다.

         

       “아기 나왔습니다-!!”

         

       “하아…, 하아….”

         

       “…….”

         

       아기나 나왔다는 말에 멍한 표정을 짓는 두 남녀.

         

       “남편분, 여기 탯줄 잘라주세요.”

         

       “아…, 네, 넵…!”

         

       탯줄을 잘라달라는 의사에 말에 그제서야 떨리는 손으로 탯줄을 가위로 자르는 남편.

         

       “남편분 아기 한 번 안아 보세요!”

         

       “으아아아앙-!!”

         

       의사는 여전히 잘게 떨리고 있는 남편의 품에 천에 감싸진 아이를 올려놔 주었다.

         

       남편은 그런 자신의 아이를 스윽 내려다보다가….

         

       주륵.

         

       이내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며 자신의 부인에게 다가갔다.

         

       “여, 여보…! 흐으…, 너, 너무 수고 많았어요…. 이, 이 애가 저희 아기래요…! 저희 아기….”

         

       “하아…, 하아….”

         

       남편과 아이가 다가오자 출산의 고통에 지쳐 있던 부인도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우리 딸…, 우리 사랑이…, 너무 예쁜 것 같아요…. 이런 사랑스러운 아기가 내 배에서 나왔다고….”

         

       사랑이는 그 아기의 태명이었다.

         

       아기에게 사랑만 주면서 잘 키우겠다는 부모의 다짐이 담겨 있는 이름이었다.

         

       산모는 그 다짐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 아기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속삭였다.

         

       “사랑아…, 예쁜 아가야…. 내가 네 엄마야. 앞으로 잘 부탁해.”

         

       그런 아기와 부인을 보고 남편이 눈물을 닦고 웃으며 말했다.

         

       “여보…, 이제 잘 태어났으니 태명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러줘야죠.”

         

       “아, 그렇죠, 헤헤.”

         

       그리고는 이 세상의 별이라도 따다줄 것 같은 눈동자와 달콤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예린아, 우리가 아직은 많이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최선을 다 할게. 우리 딸 예린아, 아빠랑 엄마가 많이 사랑해.”

         

       태명이 사랑이인 그 아기의 이름은 하예린.

         

       즉…, 나였다.

         

       여기 있는 젊은 부부는 내 아빠 엄마고.

         

       “여보, 우리 예린이…, 잘 키워 봐요. 세상에서 제일 귀하게…,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게….”

         

       “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딸한테…, 꼭 그렇게 해 줄 거예요…!”

         

       그렇게 꿈은 아빠 엄마의 굳은 다짐과 함께 끝이 났다.

         

       “…….”

         

       나는 이것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것은 환상이나 왜곡된 기억이 아니었다.

         

       내가 하예린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고…, 처음 봤던 장면.

         

       내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기억이었다.

         

       나는 그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이때 아빠 엄마가 내게 보이고 들려 줬던 표정과 목소리를 떠올리며 견디곤 했다.

         

       하예린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고 나서 혼란스러웠던 그때 사랑한다는 아빠 엄마의 진심 어린 그 말은 내게 전생에서는 느낄 수 없는 황홀감을 주었다.

         

       그래…, 이때 정말 행복했는데.

         

       드디어 생긴 부모가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너무 감격스러웠는데.

         

       나도 이 사람들을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다짐까지 했었는데….

         

       …이제는 안다.

         

       이때의 행복한 기억이 지금은….

         

       내가 부모를 절대 저버릴 수 없는 족쇄가 되었다는 것을.

         

       ‘아아….’

         

       그렇게 나는 가슴이 다시 한 번 쓰라려 오는 걸 느끼며 눈앞의 광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신기루처럼…, 절대 이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처럼….

         

       내 손에 끝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예린 양?”

         

       “……아.”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과거의 기억을 휘젓다가…, 어느새 세상이 다시 밝아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예린 양! 드디어 정신이 드십니까?”

         

       그런 나를 옆에 있는 정 실장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

       

         

         

         

       나는 그 즉시 누워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내가 기절했던 NAS 엔터 회의실이 아니었다.

         

       깨끗한 침대 몇 개와 책상 그리고 각종 간단한 의료기구들이 있는 중간 크기의 방.

         

       ‘처음 보는 곳이야….’

         

       이에 나는 나 말고 유일하게 이 방에 있는 그에게 물었다.

         

       “정 실장님…? 이곳은…?”

         

       “회사 내 마련되어 있는 의무실입니다. 처음에는 병원으로 데려가야 하나 했지만…, 숨을 잘 쉬시기도 하고 여러 시선들도 걱정되고 해서…, 이곳으로 모셨습니다.”

         

       “아….”

         

       분명히 내가 응급실에 실려 가고 이것이 언론에 알려졌으면 나를 향한 관심과 대중들의 입방아는 지금보다 심해졌을 거다.

         

       “제 자의적인 판단으로 예린 양을 병원에 데려다 드리지 않은 것이 불쾌하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몸이 안 좋은 곳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아니에요. 몸은 전혀 문제없어요. 괜찮습니다. 그보다 정 실장님…. 혹시 제가 쓰러진 지 얼마나 됐나요?”

         

       내 질문에 정 실장이 잠시 손목시계를 한 번 봤다가 바로 답해 주었다.

         

       “2시간 지났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

         

       하지만 현 상황을 묻는 대답에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아….”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 다행인 점은 예린 양을 향한 여론은 나쁘지 않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시끄러워졌는데 저를 향한 여론이 좋다고요?”

         

       “예. 사실 그동안 예린 양이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쌓아두기도 했고…, 어른들 사이에 괜히 끼어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동정 여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동정 여론….”

         

       나를 향한 여론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가 욕을 먹었다면 내가 속한 루키즈까지 욕을 먹었을 테니까.

         

       ‘다른 멤버들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은 건가….’

         

       하지만 나를 향한 여론이 좋다고 말하는 정 실장의 표정은 그리 좋지 만은 않았다.

         

       마치…, 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처럼.

         

       이에 내가 그를 물끄러미 쳐다 보니 그가 순순히 답해 주었다.

         

       “대신…, 형제기획을 향한 여론은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

         

       “사람들한테 악덕기업으로 낙인찍혀서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욕을 얻어먹고 있습니다.”

         

       “아….”

         

       나 대신 형제기획이 욕을 먹고 있다는 말에 내가 고개를 푹 숙이니 정 실장이 안타깝다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MS기획 측에서는…, 예린 양의 소속을 형제기획에게서 승계받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본래 루키즈에서 1년간 활동이 끝나면 예린 양의 소속이 형제기획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MS기획 측에서는 1년 후 형제기획을 대신하여 예린 양을 데려가고 싶다고 NAS 엔터 측에 통보했습니다.”

         

       지금 이 말은 1년 후 내 소속이 형제기획이 아니라 MS기획이 될 수도 있다는 건가…?

         

       ‘싫어….’

         

       상상만 해도 몸서리 쳐지는 말에 나는 어깨를 잠시 떨고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NAS 측에서는….”

         

       “…….”

         

       이에 정 실장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 답했다.

         

       “윗선에서는 그냥 MS기획이 원하는 대로 해주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

         

       “어차피 1년 후 예린 양의 소속은…, NAS 엔터 입장에서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 괜히 더 잡음내지 말고 예린 양을 순순히 내주자는 거죠.”

         

       “…….”

         

       어차피 1년 후 내 소속은 NAS 엔터와 상관없다…, 인가….

         

       그리 생각하면 NAS 엔터가 1년 후 나를 그냥 MS기획에 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이에 나는 정 실장의 옷소매를 부여잡고 읍소했다.

         

       “…싫어요.”

         

       “…예린 양.”

         

       “제 회사는 오직 형제기획 뿐이에요…. 저는 MS기획과 계약한 적도 없고…, 그곳에 가기도 싫어요….”

         

       “…….”

         

       “…저 때문에 형제기획이 욕먹는 것도 지켜만 볼 수 없어요. …정 실장님, 도와주세요.”

         

       “하아….”

         

       “제가 지금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게 정 실장님밖에 없어요…. 제발…, 제발….”

         

       정 실장은 거듭된 내 읍소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사실은….”

         

       읊조리듯 말을 꺼냈다.

         

       “지금 MS기획의 행태가…, 저도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이런 양아치같은 짓을 벌이고도 웃고 있을 안 대표를 생각하면 조금 열이 받기도 하군요.”

         

       “정 실장님…!”

         

       “하지만 저는 단지 실무진에 불과하고 결정권은 위에 있습니다. 윗선을 설득하려면…, 지금의 여론을 반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여론을 반전시킨다면 어떻게…?”

         

       “그게….”

         

       “…말해주세요. 정 실장님.”

         

       내 계속된 애원에 결국 정 실장은 머뭇거리다 말했다.

         

       “지금 여론이 MS기획 쪽으로 기우는 이유는 예린 양의 부모님이 그들의 주장에 타당성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형제기획 변호사에게 들었습니다. 예린 양은 지금까지 부모에게 지속적으로 갈취를 당하는 삶을 사셨다고.”

         

       “…….”

         

       “기자회견을 잡아 드릴 테니 MS기획과 부모의 말이 모두 거짓이며 지난 19년간 부모에게 학대받았다고 진술하세요.”

         

       “……!”

         

       정 실장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무언가 가슴에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드는 동시에….

         

       ‘예린아, 우리가 아직은 많이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최선을 다 할게. 우리 딸 예린아, 아빠랑 엄마가 많이 사랑해.’

         

       엄마 아빠의 말이 내 귀에 맴돌며 다시 족쇄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론만 넘어오면 나머지는 NAS 측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렵긴 하더라도….”

         

       자신이 생각해도 방금 한 말이 19살 여자애에게는 너무 잔인했는지 정 실장이 말을 흐렸다.

         

       나는 그런 정 실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분명 이것은…, 형제기획을 구하고 선을 제대로 넘은 우리 부모와 인연을 끊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여보, 우리 예린이…, 잘 키워 봐요. 세상에서 제일 귀하게…,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게….’

         

       “자, 잠시만요….”

         

       여전히 나는 그들을 내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나는 다시금 밀려드는 구토감에 입을 막으며 정 실장에게 말했다.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시간을 주세요….”

         

       “……예, 마음을 정하면 밖으로 나와주세요.”

         

       정 실장은 나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혼자가 되니 내 머릿속은 다시 혼란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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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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