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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8

       ‘부모의 말이 모두 거짓이며 지난 19년간 부모에게 학대받았다고 진술하세요.’

         

       학대.

         

       어감이 강한 만큼 진한 거부감이 든다.

         

       지난 19년간 부모가 내게 했던 것은 학대였나?

         

       …사람에 따라서 학대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든다.

         

       그렇다면 내가 볼 때는 어떠한가.

         

       지난 십몇 년간 부모는 확실히 나를 힘들게 했다.

         

       온갖 집안일을 나한테 맡겼으며 내가 생활비를 벌게 했고 내가 뼈 빠지게 번 알바비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챙겼다.

         

       하지만….

         

       ‘예린아아….’

         

       ‘사랑해, 우리 딸.’

         

       나를 감정적으로 미워하지는 않았다.

         

       나를 사랑한다고 수시로 말해줬고 실제로 그리했다고 생각한다.

         

       “그래…, 학대는 아니야….”

         

       조금 더 약한 표현은 없을까…? 그도 아니면 아빠 엄마를 건드리지 않고 MS기획만 내칠 방법은 없을까?

         

       ‘하지만 그러다가 여론을 뒤집지 못하면…?’

         

       그러면 또다시 형제기획만 땅에 묻히는 거다.

         

       “하아…, 아아….”

         

       누군가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 같다.

         

       형제기획과 부모 중…,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지를.

         

       그리고 나는….

         

       “싫어….”

         

       둘 다 고르기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둘 중 무엇도 고를 수 없었다.

         

       형제기획과 강형만.

         

       밑바닥이나 다름없는 내 인생을 구제해준 은인들이고.

         

       부모.

         

       밉기는 해도…, 나를 낳아준 사람들이다.

         

       내가 전생에서 그렇게도 바랐던 존재들이고….

         

       ‘우리 딸…, 우리 사랑이…, 너무 예쁜 것 같아요…. 이런 사랑스러운 아기가 내 배에서 나왔다고….’

         

       ‘사랑아…, 예쁜 아가야…. 내가 네 엄마야. 앞으로 잘 부탁해.’

         

       ‘예린아, 우리가 아직은 많이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최선을 다 할게. 우리 딸 예린아, 아빠랑 엄마가 많이 사랑해.’

         

       ‘여보, 우리 예린이…, 잘 키워 봐요. 세상에서 제일 귀하게…,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게….’

         

       ‘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딸한테…, 꼭 그렇게 해 줄 거예요…!’

         

       나는 그들이 내게 보여준 사랑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분명…,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줬다.

         

       둘 중에 고르자니 내 속은 점점 꼬이고 머리는 점점 번뇌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이에 결국 나는….

         

       “……못 골라. 못 하겠어.”

         

       자조적으로 속삭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대? 아빠 엄마가 내게 한 것은 학대가 아니었다.

         

       기자회견에서 아빠 엄마에게 부정적인 말을 한다면 비난 여론이 두 사람에게 향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에 나는 형제기획과 부모 둘 다 챙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정 실장에게 나가서…, 같이 그 방법을 고민해 달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우웅-.

         

       “……!”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붙잡기라도 하듯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진동이 짧게 울린 걸 보니 메시지인 듯했다.

         

       나는 누군가 싶어 폰을 들었고….

         

       [사장님]

         

       [지금 상황이 많이 바빠서 직접 연락하지 못했다. 미안하다. 많이 놀랐을 텐데…, 나는 언제나 네 선택을 믿는다.]

         

       “…….”

         

       내게 메시지를 보낸 건 강형만이었다.

         

       나는 그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나 때문에 경찰서까지 갔으면서…, 나를 믿는다는 그의 말이 내 마음의 둑을 깨고 감정을 범람시켰다.

         

       “흐으….”

         

       …둘 모두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사실 알고 있었다.

         

       나는 모두를 구하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형제기획이 아닌 내 부모를 선택하려 했다.

         

       병신 같은 년, 금수같은 년, 은혜도 모르는 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사장님과 형제기획 식구들이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 그들을 배반할 수 있어.

         

       “그, 그게 아니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리 잘해준다 한들 물이 피보다 진한가?

         

       너를 태어나게 해준 부모를 저버리겠다고?

         

       너한테 매번 사랑한다고 말해준 두 사람을?

         

       왜? 또 전생처럼 ‘고아’로 살게?

         

       “……!”

         

       머릿속에서 계속 혼란과 충돌이 일어나던 중에 나는 ‘고아’라는 단어에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

         

       그래….

         

       아빠 엄마를 내치면 나는 또 ‘고아’가 된다.

         

       “으으…, 흐으….”

         

       나는 그 생각을 하자마자 홀린 듯이 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마치 모닥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나는 지금 내 행동을 제어할 수 없었다.

         

       또다시 고아가 되고 싶지 않다.

         

       부모의 사랑을 잃고 싶지 않다.

         

       전화를 받은 엄마 아빠가 나에게 잘못했다고 한다면….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해 준다면….

         

       반대쪽에 그 무엇이 있더라도 두 사람을 선택할 생각이었다.

         

       […여보세요?]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예린아.]

         

       엄마 아빠는 가끔씩 내가 강하게 나오면 더욱더 나를 감싸며 사랑한다 말해주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한 바람과 또다시 아빠 엄마가 나를 뒤통수쳤다는 분노를 더해 나는 엄마에게 언성을 높여 소리쳤다.

         

       “제가 형제기획 사람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시잖아요. 여기서 아이돌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잖아요. 근데 왜 그러셨어요, 왜!!”

         

       빨리 내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말해.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해 줘.

         

       그러면 또다시 용서할 테니까. 또다시 넘어가 줄 테니까.

         

       하지만….

         

       [그게…, 네 외삼촌이….]

         

       “……뭐라고요?”

         

       [그게 말하자면 긴데 네 삼촌이 사고를 쳐서….]

         

       엄마가 우물쭈물하며 왜 MS기획 측에 붙었는지 이유를 말하자 나는 잠시 굳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양아치 같은 사람 때문에 저를 배신했다고요?”

         

       [배, 배신이라니! 예린아 우리는….]

         

       “…제 뒤통수를 쳤으니 배신 맞죠.”

         

       고작해야 그 양아치 합의금 때문에 나를 배신했다고…?

         

       나는 지금 형제기획까지 저버리고 두 사람을 선택하려 했는데.

         

       그만큼 나는 두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했는데.

         

       두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흥분으로 가득 찼던 내 가슴을 싸늘하게 식혔다.

         

       내 어투가 차가워지자 아차 싶었는지 아빠가 전화를 대신 받아 내게 말했다.

         

       [예린아…,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건 가족의 일이잖아….]

         

       “…저도 우리 가족이잖아요.”

         

       도대체 가족이라는 핑계로 몇 번을 그냥 넘어가려 하는 건가.

         

       싸늘해진 내 마음이 쉽게 달아오르지 않자 조바심을 느꼈는지 아빠가 필살기를 쓰듯 소리쳤다.

         

       하지만….

         

       [당연하지! 우리 예린이는 아빠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딸인걸!]

         

       “…….”

         

       이번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내 마음속의 동요가 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응? 알잖아! 아빠랑 엄마가 우리 예린이 가장 사랑하는 거!]

         

       ‘예린아, 우리가 아직은 많이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최선을 다 할게. 우리 딸 예린아, 아빠랑 엄마가 많이 사랑해.’

         

       나는 그때 아빠가 했던 사랑한다는 말과 지금 아빠가 하는 사랑한다는 말이 다르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아.’

         

       변했다.

         

       예전의 아빠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때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일까.

         

       언제부터 아빠는 변했던 걸까.

         

       아마 엄청 예전부터 일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지금껏 깨닫지 못했을 뿐.

         

       …아니, 깨닫지 못한 게 아니라 내가 진실을 외면하고 있던 거다.

         

       쩌적, 쩌저적-.

         

       이에 나는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해요. 아무 느낌도 안 들어요.”

         

       [……어?]

         

       “아빠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주륵.

         

       어느새 내 눈에서는 눈물이 나고 있었다.

         

       쩌저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또한 계속 났다.

         

       “저를 사랑한다고 하셨잖아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하셨잖아요….”

         

       [예린아….]

         

       “저를 그 무엇보다 귀하게 키운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왜…, 왜, 왜…!”

         

       어느새 격양된 나는 그들에게 소리쳤다.

         

       “아빠 엄마한테 사랑받고 싶어서 지난 19년간 노력했어요-! 근데 왜 아빠 엄마는 저를 사랑해주지 않는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랑 엄마는 우리 예린이를 사랑한다니까…?]

         

       “…거짓말. 그간 저한테 했던 짓들을 생각해 봐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이럴 수 있을 리 없잖아요…? 예전이면 몰라도 두 사람은 저를 사랑하지 않아요….”

         

       나는 그제서야 인정했다.

         

       지금까지 부모가 내게 사랑한다 속삭였던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걸.

         

       예전의 그들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아빠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쩌저저적-!

         

       부서지는 것은 내 마음이었다.

         

       내 마음은 산산이 조각나서 주변에 버려지듯 흐트러졌다.

         

       그리고 그렇게 비어 있던 공간을 채운 것은….

         

       “…미워요.”

         

       깊은 원망과 분노였다.

         

       사랑이라는 허상을 치우니 내 깊은 원망은 부모에게로 향했다.

         

       “…약속을 못 지킨 아빠 엄마가 미워요. 저를 딸이 아닌 이용물로만 본 아빠 엄마가 미워요.”

         

       […예린아.]

         

       “…저를 다시 고아로 만든 아빠 엄마가 미워요.”

         

       꼭 낳아주었다고 부모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빠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았고 책임을 다하지도 않았다.

         

       …외면하고 있었을 뿐 오래전부터 나는 다시 고아였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띠링.

         

       [잠긴 특성이 임시 해제됩니다!]

         

       “…용서 못 해요, …당신들 용서 못 해.”

         

       [예린아? 그게 무슨 소리야…! 예린아! 예린아, 잠…!]

         

       꾹.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어느새 내 얼굴은 흘린 눈물로 범벅이 된 채였다.

         

       너무 눈물을 많이 흘려서 눈이 이상해진 걸까.

         

       카키색이었던 내 바지가 회색으로 보였다.

         

       바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부모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바보 시절에는 알록달록했던 세상이…, 지금은 너무나도 어두웠다.

         

       “…새로 임시 해제된 특성 때문인가.”

         

       이에 나는 상태창을 속으로 외치며 열어 보았다.

         

       평소에는 푸른 빛깔로 보이던 상태창이 오늘은 칠흑같이 검게 보였다.

         

       [특성 : 극마(極魔) – 당신의 원망이 하늘에 닿았습니다. 불신자, 배교자, 당신의 원수, 당신의 적 등등 당신을 방해하는 모든 것에게 당신의 분노를 각인시키십시오.]

         

       [특성효과 : 만마전(萬魔殿) 개방 – 상황에 맞춰 모든 천마신공 미공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인간성 스탯이 일시적으로 모두 무효화됩니다.]

         

       “…….”

         

       방금 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마음이 희한하리만큼 차분했다.

         

       인간성 스탯이 무효화 된다는 의미가 이것인가.

         

       나는 마치 게임 속 ‘하예린’이라는 캐릭터를 조종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사뿐사뿐 걸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 예린 양. 나오셨습니까. …역시 아무리 그래도 부몬데 내치기 힘들겠죠. 방금 제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그리고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 실장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기자회견 할게요.”

         

       “……예?”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멍한 표정을 짓는 정 실장에게 또박또박 다시 말해 주었다.

         

       “기자회견 하겠습니다.”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내가 멍청한 년이라 망설이다 많은 걸 잃었다.

         

       “바로 내일. 기자들 최대한 많이 불러다 주세요.”

         

       지금 내게는 그 모든 걸 바로잡고 그 모든 것들을 밟아 버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unravel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J-pop 노래 중 하나입니다. 원곡도 좋지만 꼭 Ado가 커버한 unravel을 들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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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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