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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7

       그렇게 기절한 안 대표를 그의 수행원들에게 대충 맡기고 나와 형제기획 식구들은 곧바로 차에 탔다.

         

       나와 형제기획은 우리 부모가 지금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자, 그러면 어서 사옥으로 돌아가죠.”

         

       지금 우리 아빠 엄마가 있는 곳이 바로 형제기획 사옥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오후 내가 잠시 형제기획 식구를 만났다가 다시 루키즈 숙소로 돌아온 후…. 나는 상구 오빠에게서 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예린아, 너희 부모 지금 우리 사옥에 찾아왔다.’

         

       바로 아빠 엄마가 형제기획 사옥으로 직접 찾아왔다는 사실.

         

       호랑이 굴에 제발로 기어 온 것도 어이가 없는데 심지어 아빠 엄마는 나를 보여주기 전까지 사옥을 떠나지 않겠다고 농성하기도 했단다.

         

       덕분에 아빠 엄마는 어제 아무도 없는 형제기획 사옥에서 밤을 보냈다고.

         

       아직 이른 새벽인데다 아빠 엄마가 떠났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으니 분명 두 사람은 사옥에 남아 있을 터.

         

       19년.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이제 그 관계를…, 끊을 날이 되었다.

         

         

         

         

       **

         

         

         

         

       “하암…, 엣…?”

         

       예린 아빠는 자신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에 아침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부시시 몸을 일으켰다.

         

       “여보, 벌써 아침이에요, 일어나세요.”

         

       “으으음….”

         

       예린 아빠가 옆에 있는 예린 엄마를 깨우자 그녀가 뻣뻣해진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말했다.

         

       “아이고야…, 바닥이 딱딱해서 잘 못 잤어요….”

         

       “저도 몸 구석구석 아파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그들이 어젯밤 잠을 잔 이곳은 형제기획 사옥의 비어 있는 한 사무실이었다.

         

       자기 딸을 보기 전까지 떠날 수 없다고 어떻게든 버틴 두 사람은 빈 사무실을 하나 얻어 어떻게든 잠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매트리스나 이불같은 기본적인 침구가 없었기에 몸에 쌓인 피로는 풀리지 않긴 했지만 말이다.

         

       “으으…, 저 더 이상은 이런 데서 못 자요.”

         

       “웬만하면 오늘은 예린이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하아….”

         

       어제 있었던 기자회견 때문에 두 사람은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두 사람을 계속 욕하고…, 안 대표는 연락도 안 되고….

         

       두 사람은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예린이 뿐이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불쌍한 우리 딸…. 주변에서 얼마나 들볶았으면 억지로 그런 기자회견을 했을까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누군가 억지로 시킨 게 아니면 예린이가 저희한테 그런 짓을 할 리 없잖아요.”

         

       두 사람은 당연히 예린이가 어른들의 강요에 의해 그런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여겼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예린이를 안아주며 잘못했다고 빌면…, 예린이가 두 사람을 다시 용서해 주리라 믿었다.

         

       그랬기에 두 사람은 태평했다.

         

       “오, 여보 여기 에스프레소 머신 있어요.”

         

       “와, 대박! 저희 몸도 찌뿌둥한데 커피 한 잔씩 뽑아 마실까요?”

         

       지난 19년간의 세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이 낳고 키운 딸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비록 다른 일들에 비해 심각성이 클지언정 이번 일 또한 아무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무리 잘못해도 진심으로 빌면 용서하고 다시 원래 관계로 돌아가는….

         

       그것이 바로 그들이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관계였으니까.

         

       그때였다.

         

       웅성.

         

       “……!”

         

       순간 건물이 부산스러워지자 두 사람은 슬슬 예린이가 도착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마시던 커피를 책상으로 치워 놓고 재빨리 작당모의를 시작했다.

         

       “여보…. 우선은 저희가 싹싹 비는 거예요…! 저번처럼…!”

         

       “네, 알았어요.”

         

       그리고는 마치 레이스를 출발하기 직전 주자처럼 몸을 낮추고 준비 자세를 마친 그들은….

         

       끼이익.

         

       “예린아아아-!!”

         

       “흐어어어엉-!!”

         

       익숙한 딸의 다리가 보이자마자 스프링처럼 뛰어서 예린이에게 달려들었다.

         

       “우리가 잘못했어-!!”

         

       “다 너를 위해 한 일이었어!! 더 큰 회사로 가면 네가 더 잘 될 줄 알고…!!”

         

       “다시는 이런 일 없을게-!!”

         

       이런 일을 여러 번 하다 보면 레퍼토리도 몸에 배는 법이다.

         

       이렇게 두 사람이 예린이의 양쪽 다리를 부여잡고 떼를 쓰다 보면 예린이가 진절머리가 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 한다.

         

       이때 더욱 완강하게 예린이를 붙잡는 게 핵심이었다.

         

       그러면 예린이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못이긴 척 두 사람의 말을 듣기 시작한다.

         

       그때 원하는 바를 말하면 예린이는 곧이곧대로 그들의 말을 들어 주고 그들을 용서해준다.

         

       지난 19년간 항상 이래 왔다.

         

       예린 부모는 이번에도 일이 똑같이 진행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허어엉-!! 예린아 우리가 정말 잘못….”

         

       “예린아…! 제발…, …?”

         

       “……?”

         

       평소와 다르게 이번에는 그들이 아무리 매달리고 눈물을 흘려도…, 예린이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았다.

         

       이에 위화감이 들어 고개를 들고…, 두 사람이 마주한 것은….

         

       “…….”

         

       두 사람을 싸늘하게 내려보는 예린이의 차가운 눈동자였다.

         

         

         

       

       

       

       

       **

         

         

         

         

       신PD 그리고 안 대표….

         

       모두 내게 악몽 같은 기억을 선사해준 당사자들이지만…, 사실 내 부모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신PD와 안 대표가 나를 괴롭힌 게 고작해야 몇 개월이라면…, 내가 부모에게 시달린 지는 19년이 넘었으니까.

         

       그 긴 세월 동안 내 부모는 선을 넘고 넘고 또 넘었다.

         

       그래도 나는 매번 그들을 용서해 왔었지만…, 이번 일은…, 절대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깊숙하게 선을 넘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에게는 어떤 벌을 내려 줘야 할까?

         

       신PD에게는 ‘흑살마장(黑殺魔掌)’을 사용해 직접적으로 고통을 줌과 동시에 그의 행운을 깎아 앞으로 남은 인생을 망쳤다.

         

       안 대표에게는 ‘천마언령(天魔言靈)’을 사용해 그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거대한 저주(咀呪)를 남겼다.

         

       두 사람이 그 정돈데…, 지난 19년간 나를 괴롭게 한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벌이 내려질까?

         

       그때였다.

         

       띠링.

         

       신PD와 안 대표 때처럼 효과음이 울리더니 내 앞에 새로운 상태창이 떠올랐다.

         

       [천마신공 미공개 스킬이 임시 추가됩니다.]

         

       [천마신공 미공개 스킬 : 천형(天刑) – 하늘이 직접 내리는 벌, 즉 천벌입니다. 사용 즉시 상대방이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벌을 받게 됩니다.]

         

       천형(天刑).

         

       스킬 설명은 심플했다.

         

       상대방에게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벌을 내리는 것.

         

       나는 언제든 스킬을 사용할 준비를 하며 내 다리에 매달린 부모를 내려다보았다.

         

       뒤의 탁자에는 먹다 남긴 커피 두 잔이 눈에 띄었다.

         

       “하…….”

         

       이번에도 당연히 용서 받을 수 있을 줄 알고 태평하게 커피나 뽑아 마시고 있었나보다.

         

       확실히 극마(極魔) 상태가 아닌 평소의 나였다면 이들에게 또다시 넘어갔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안 대표에게 벌을 준 이후 내 몸은 왠지 모를 쾌감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를 괴롭힌 상대를 벌준다는 일이 내 몸에 즐거움으로 다가왔기에 나는 거침없었다.

         

       지난 기자회견에서 부모를 향한 마음도 전부 정리했기에…, 거리낄 것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부모에게 말했다.

         

       “이거 놓으세요.”

         

       “…예린아.”

         

       “왜요? 또 이렇게 저 껴안으면서 빌면 제가 용서해 줄 것 같았어요? 천만에.”

         

       “…….”

         

       툭.

         

       순간 아빠 엄마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내 다리를 부여잡은 팔에 힘이 빠졌다.

         

       나는 그 틈을 타 두 사람을 떼어내며 말을 이었다.

         

       “기자회견 안 보셨어요? 저는 이미 전 국민 앞에서 아빠 엄마 버렸어요. 당신들은 이제 제 부모 아니에요.”

         

       가슴이 차가워지며…, 그동안 한 적 없던 잔인한 말이 비수가 되어 부모의 가슴에 꽂혔다.

         

       두 사람의 얼굴 역시 지난 19년간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모습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다시는 서로 볼일 없을 거예요. 아빠 엄마가 감옥을 가든 뭐를 하든 저는 신경 쓰지 않을 거니까.”

         

       “예, 예린아….”

         

       “왜, 왜 그렇게 무서운 소리를 하는 거야….”

         

       “우, 우리가 네 부모가 아니긴 왜 아니야. 너는 우리가 낳고 키운 딸….”

         

       “딸? 하, 참나….”

         

       두근.

         

       부모의 입에서 딸이라는 말이 나오자 나는 가슴에서 무언가가 분수처럼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분노였다.

         

       선명한 분노.

         

       “당신들은 저를 정말 딸이라고 생각하긴 했나요? …아니, 딸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짓 못했겠지.”

         

       “예, 예린아…! 아니야…!”

         

       “너는 우리의 소중한 딸이….”

         

       “됐고요, 진짜 마지막으로 궁금했던 거 하나만 물어볼게요.”

         

       나는 그리 말하면서 눈은 상태창 쪽으로 향했다.

         

       [천마신공 미공개 스킬 : 천형(天刑) – 하늘이 직접 내리는 벌, 즉 천벌입니다. 사용 즉시 상대방이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벌을 받게 됩니다.]

         

       역시 눈앞의 인간들은 세상에서 가장 악독하고 잔혹한 사람들이다.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벌?

         

       그것이 뭔지는 몰라도 이 사람들에게 걸맞은 벌이리라.

         

       “저 진짜 묻고 싶었는데요. 당신들 말이에요. 당신들 왜…!”

         

       나는 이 ‘천형(天刑)’이라는 잔인한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왜….”

         

       “…….”

         

       “왜애…, 왜….”

         

       ‘사랑해, 예린아.’

         

       “왜…….”

         

       나는 차마 부모에게 스킬을 사용하지 못했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왜….”

         

       주륵.

         

       메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금 터져 나온다.

         

       부모를 향한 원망 그리고 넘실거리는 분노가 압도적인 서러움에 덮여 버렸다.

         

       “아빠 엄마한테 사랑받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흐으….”

         

       “…….”

         

       “대체 저한테 왜 그러신 거예요…. 흐으윽….”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 냈다.

         

       신PD와 안 대표에게는 천마(天魔)라는 특성에 걸맞는 압도적이고 잔인한 모습을 보인 나였지만….

         

       부모 앞에서는 또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버렸다.

         

       “예린아…….”

         

       “어, 엄마가 잘못….”

         

       스르르-.

         

       아빠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멍한 표정을 지으며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나를 안으려 했다.

         

       하지만….

         

       탁-!

         

       나는 팔을 휘둘러 그것들을 거칠게 쳐냈다.

         

       차마 이 사람들에게…, 내 부모에게…, 천마신공이라는 잔인한 스킬을 사용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아까 한 말 거짓말 아니에요.”

         

       “…….”

         

       “당신들과 연 끊을 거예요, 당신들과 다시는 만나지도 않을 거예요.”

         

       “……뭐?”

         

       이 사람들과 부모 자신 간의 연을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다.

         

       그동안은 과거의 이 사람들이 내게 줬던 사랑을 근거로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 사람들의 얼굴만 봐도 힘들었다.

         

       “당신들에게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을 거고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도 할 생각이에요.”

         

       “…….”

         

       아빠 엄마는 그리 말하는 나를 마치 현실이 아닌 환상을 보는 듯한 멍한 눈으로 보았다.

         

       “당신들이 어떤 일을 하든 어떻게 살아가든 저는 관심을 끊을 생각이에요.”

         

       “…….”

         

       나는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눈물을 닦아내고 퉁퉁 부은 눈과 함께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다시는…, 다시는 만나지 마요.”

         

       그리고는 마음이 더 약해지기 전에….

         

       휙.

         

       몸을 돌리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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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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