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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6

       쇼케이스.

         

       음반 발매 전 기자와 팬들에게 먼저 무대와 곡을 보여주고 소통의 시간을 갖는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겪는 행사다.

         

       NAS 엔터는 그런 루키즈의 기념비적인 쇼케이스 장소를….

         

       “와…, 이 길 오랜만이다.”

         

       “제가 운전했던 게 아닌데도 길이 다 기억나요.”

         

       …바로 나아아 세트장으로 정했다.

         

       덕분에 우리는 차로 이동하는 와중에 나아아 PTSD를 겪어야 했다.

         

       “나아아 세트장에 가는 중이라 그런가 문득 설 언니가 저한테 진심으로 할 거 아니면 하차하라고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

         

       내가 장난스런 말투로 말하자 유 설이 조금 붉어진 낯으로 딴청을 피웠다.

         

       “그때 언니가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기억 나세요? ‘예린아, 정신 차려. 너랑 나랑 경쟁자야. 그렇게 어설프게 살 거면 차라리 하차를 해. 네가 지금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 간절한 한 명이 기회를 잃고 있다는 거 몰….’”

         

       “그만…, 그만…!”

         

       그리고 내가 그때 유 설이 했던 말을 연기톤으로 재연하자 그제서야 급하게 나를 말렸다.

         

       물론…, 이미 다른 멤버들은 모두 들은 후였지만 말이다.

         

       “하핫! 설 언니 그랬던 적도 있어요?”

         

       “어떡해앵…, 설 언니 무서워엉….”

         

       이 틈을 타 그동안 유 설에게 짓눌려 있던 동갑내기가 나서서 그녀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이에 유 설은 붉어진 낯과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때는 많이 간절했으니까….”

         

       나는 그런 유 설의 귀여운 모습을 오랜만에 보고 이 기회에 그녀를 더 놀릴까 생각하다가….

         

       ‘…음?’

         

       …방금 그녀가 한 말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어 물었다.

         

       “…그러면 지금은 안 간절한 건가요?”

         

       “아니…, 그건….”

         

       유 설을 공격하려고 꺼낸 질문이 아니었는데도 막상 뱉고 나니 꽤 예민한 말이었다.

         

       유 설도 내 물음에 순간 움찔했다가 이내 고개를 살짝 든 후 답했다.

         

       “그건 아니지…, 다만….”

         

       “…….”

         

       “확실히…, 나아아를 할 때와는 조금 달라진 것 같네.”

         

       그렇다.

         

       나를 포함해서 여기 있는 루키즈 6인은 나아아에서 정말 치열하고 간절했다.

         

       우승을 위해, 데뷔를 위해.

         

       하루하루 전쟁을 임하는 각오로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데뷔를 확정해서 그런가….

         

       나아아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열심히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더 이상 나아아 시절의 독기는 없는 느낌이랄까.

         

       ‘더 이상 서로 죽고 죽일 경쟁자가 없어서 그런 걸지도….’

         

       나는 그리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나아아 때는 경쟁자였던 멤버들이 서로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나도 피식 웃었다.

         

       그래, 지금 다 같이 웃고 행복하면 되는 거지.

         

       독기 따위 없으면 어떠한가.

         

       지금은 그 대신 나아아 때는 가질 수 없었던 여유가 있었다.

         

       그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며 나는 과거와 관계가 많이 달라진 유 설의 손을 잡았다.

         

       “언니. 저희 오늘 잘해 봐요.”

         

       유 설도 자신의 손을 꼭 부여 잡은 내 손을 한 번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잘해 보자.”

         

       그녀의 웃음을 보니 이번 쇼케이스가 왠지 잘 될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

         

         

         

       “와…, 오랜만이다.”

         

       “여기는 바뀐 게 하나 없네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제집처럼 드나들던 나아아 세트장이라 그런가 나는 한결 편안한 심정으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이어졌던 오랜 대기 시간이 끝이 나고 쇼케이스 시작 시간인 오후 3시가 다가오자 나는 오랜만에 무대에 오르기 전 그 긴장감을 다시 느껴야 했다.

         

       두근.

         

       예전에 한시우가 말해줬던…, 1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긴장감.

         

       이번에는 한 달 만에 팬들 앞에 선다는 특별함까지 더해진 채였다.

         

       이러한 기분을 나만 겪는 건지는 아닌지 다른 멤버들도 조금씩 몸을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나아아 시절 무대 오르기 전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였다.

         

       “루키즈 멤버분들 이제 곧 이동하셔야 합니다.”

         

       쇼케이스를 직접 준비하며 여러 곳을 뛰어 다니던 정 실장이 마지막 주의를 주기 위해 대기실을 찾아왔다.

         

       “여러분들. 쇼케이스 순서는 다 기억하고 계시죠?”

         

       “네!”

         

       정 실장이 미리 설명하길 이번 쇼케이스에서 무대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고 했다.

         

       대신 질의응답과 여러 행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저희가 미리 기자들과 입을 맞추긴 했지만…, 질의응답 시간에 갑자기 어떤 짓궂은 질문들이 날아들지 모릅니다. 기자들이 워낙 겁이 없는 족속들이라….”

         

       “아….”

         

       “그럴 때는 여러분들의 임기응변에 따라 문제 되지 않게 적절하게 대답해 주세요. 팬들에게 선보이는 루키즈 첫 무대인 만큼 신경 써 주시고요.”

         

       “넵! 알겠습니다!”

         

       “자, 그러면 파이팅입니다.”

         

       스륵.

         

       우리의 대답을 듣자마자 정 실장은 작은 파이팅을 한 후 스태프에게 손짓해 우리를 백스테이지로 데려다 주었다.

         

       나아아에서 여러 번의 무대를 진행하며 자주 오갔던 그 백스테이지였다.

         

       “자, 무대가 암전되고 저희가 신호하면 바로 나가실게요.”

         

       “넵!”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진한 나아아의 향수를 느껴서일까?

         

       나는 무대에 나서기 직전 멤버들에게 장난스레 말했다.

         

       “저희 오랜만에 나아아 구호 외치고 갈까요?”

         

       “뭐? 하하.”

         

       이에 다른 멤버들이 작게 웃었다가 호응했다.

         

       “그럴까 그러면?”

         

       “나아아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엄청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지네요. 저는 좋아요.”

         

       “나도.”

         

       그렇게 모든 멤버들이 긍정의 뜻을 밝히는 그때 무대의 불이 완전히 꺼지고 팬들의 함성이 거세지는 것과 함께 스태프가 우리에게 출발 신호를 보냈다.

         

       “네, 지금 나가셔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에 맞춰 짧고 굵게 구호를 외치고….

         

       “Show me your dream-!”

         

       무대로 향했다.

         

       이제는 정말로 코앞까지 다가온 우리의 꿈을 보여 줄 차례였다.

         

         

         

         

       **

       

         

         

         

       “와아아아아아-!!”

         

       “예린아-!!!!”

         

       쇼케이스 시작 시간이 되고 무대의 불빛이 꺼지자 하예린 팬인 그녀가 거세게 하예린의 이름을 외쳤다.

         

       “유 설-!!!”

         

       옆에 있던 유 설 팬인 그녀의 친구는 유 설의 이름을 외쳤다.

         

       나아아 때는 하예린을 응원하냐 유 설을 응원하냐로 첨예하게 갈렸던 두 사람이지만….

         

       결국 하예린과 유 설이 루키즈라는 한 배를 타게 되자 둘 사이의 갈등은 씻은 듯 사라졌다.

         

       그것은 다른 팬들도 마찬가지인 듯 그들은 자기들이 응원하는 멤버들의 이름을 외치다가….

         

       “루키즈-!!!”

         

       결국 루키즈의 이름을 함께 외치며 대동단결했다.

         

       그리고 그러한 외침에 화답하듯….

         

       화아아-!

         

       “와아아아아-!!”

         

       곧이어 무대에 불이 환하게 켜지고 루키즈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몽환적인 멜로디와 함께 감미로운 목소리로 시작을 알린 것은 이혜정이었다.

         

         

       -잠깐 다가오지 마

         

       -이게 너와 나의 거리

         

         

       “와…….”

         

       “음색 미쳤다….”

         

       모두가 이혜정에 감탄하는 사이 하예린 팬인 그녀는 하예린의 위치부터 살폈다.

         

       하예린은 아직 자기 파트가 아니라는 듯 뒤에서 동작을 잇고 있었다.

         

       ‘와…, 오늘 예린이 착장이랑 메이크업 무엇…. 진짜 뇌가 녹아 버리겠다….’

         

       의상은 나아아 교복과 같았지만 디테일 면에서 획연히 달랐다.

         

       거기에 코디가 잔뜩 힘준 듯한 헤어 셋팅과 풀 메이크업이 더해져 지금 하예린은 그야말로 순정 만화 속 주인공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저런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존재하지…?’

         

       당연하지만 팬인 그녀가 그런 하예린을 보고 느낀 감정은 질투가 아닌 동경이었다.

         

       그녀는 하예린을 마치 상상의 동물을 목도한 것처럼 바라보며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 사이에도 루키즈의 무대는 진행되고 있었다.

         

         

       -나에 대해 알고 싶어?

         

       -Not enough

         

         

       애교가 많은 박유정 그리고….

         

         

       -다가오면 화낼 거야

         

       -No mercy

         

         

       서유진이 다소 처질 수도 있는 노래를 풍부하게 채워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유 설의 브릿지.

         

         

       -그래도 내가 궁금하다면

         

       -나를 따라 와

         

         

       “……!!”

         

       듣는 이의 귀를 녹여 버릴 듯한 유 설의 목소리 다음 나온 것은 중독성 강한 후렴이었다.

         

         

       -이건 너와 나의 비밀

         

       -우리만의 비밀, 쉿.

         

       -Ooh-ooh, ooh-ooh.

         

         

       마치 구미호처럼 매혹적인 표정을 강조하는 안무에다 온몸을 간질거리게 하는 목소리에 팬들은 눈과 귀가 동시에 즐거워졌다.

         

       그리고 후렴이 끝나자마자 앞으로 튀어나온 하예린과 나한나의 합동 댄스 브레이크.

         

         

       -더 알고 싶다면

         

       -더 가까이 와야 해

         

         

       현란한 안무와 함께 두 사람에게 집중되는 조명.

         

       그리고….

         

         

       -그러면 보여 줄게 내 비밀 쉿.

         

         

       찡긋.

         

       “……!!!”

         

       원래 안무인 듯 자신의 표정을 강조하며 윙크를 하는 하예린.

         

       그 순간 하예린 팬인 그녀는 공간이 바뀐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석양이 지는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말없이 창밖을 구경하는 전학생 하예린.

         

       그녀는 그런 하예린을 보며 궁금증에 빠진다.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아이는 무엇을 보는 중일까

         

       저 아이의 신비로운 얼굴에 담긴 저 표정은 무슨 의미일까

         

       스윽.

         

       “……!”

         

       그 순간 갑자기 고개를 돌린 전학생 하예린과 눈을 마주친다.

         

       전학생 하예린이 아니다.

         

       루키즈의 하예린이다.

         

       ‘누, 눈이 나와 마주쳤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아니면 그녀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지금 분명 그녀는 진짜 하예린과 눈을 마주쳤다.

         

       “…….”

         

       “…….”

         

       그렇게 그녀는 억겁과도 느껴지는 1초 동안 하예린과 눈을 마주하며…, 안 그래도 높았던 내적 친밀감과 하예린을 향한 유대감이 극대화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하예린의 눈빛에 매료되어 마지막 마음 한 조각까지 바친 순간….

         

       슥.

         

       하예린이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붙이고 그녀에게 속삭였다.

         

         

       -쉿,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

         

         

       아.

         

       끄덕끄덕.

         

       이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백 명의 관객들 중에서 하예린은 오직 그녀만을 바라봐주었다.

         

       이건 하예린과 그녀 둘만의 비밀이었다.

         

       ‘와아…!’

         

       하예린과 그녀 둘 사이 작은 비밀이 생겼다는 생각에 그녀는 격한 흥분감을 느끼며 하예린을 향한 충성도를 높였다.

         

       그녀가 나아아부터 쇼케이스까지 수백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하예린의 무대를 보러 온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예린은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평소에는 아무 보잘 것 없는 그녀지만…, 오늘만큼은 저 아름다운 소녀의 비밀친구였다.

         

       “와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악-!!”

         

       “하예린-!!!”

         

       그렇게 쇼케이스 <비밀소녀>의 무대는 끝이 났다.

         

       팬들은 기대 이상의 퀄리티에 환호성을 지르며 멤버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무대의 감상평을 간단히 말하자면….

         

       나아아 시절 무대에 비해 거칠고 날 것의 느낌이 없어 조금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정돈이 훨씬 더 잘되고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이를 직역하면….

         

       루키즈는 프로의 냄새가 강했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걸그룹임에도…,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걸그룹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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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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