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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1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된 유창선 병장. 아니…, 민간인 유창선.

         

       전역한 그가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부모님 뵙기?

         

       아니다.

         

       친구들과의 여행?

         

       아니다.

         

       여자친구 사귀기?

         

       어차피 불가능하다.

         

       그가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하예린을 실제로 만나는 거였다.

         

       이에 그는 전역하자마자 하예린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 봤지만…, 역시나 쉬운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쇼케이스 티켓을 알아 봤지만 경쟁률이 너무 빡센데다 암표는 수백만 원을 능가했다.

         

       다음으로 혹여 콘서트에 가면 예린이를 만날 수 있는 거 아닌가 했지만 이제 막 데뷔한 루키즈의 콘서트 일정이 나왔을 리 만무했다.

         

       하예린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이돌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유창선은 그렇게 하예린을 실제로 만날 방법을 찾지 못해 말라갔다.

         

       그때 루키즈 관련 SNS를 몽땅 뒤지던 그의 눈에 띈 것이 바로 음방 방청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어마어마한 경쟁률 속에서 추첨으로 정해지는 거라 유창선은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이를 신청했다.

         

       그리고…, 당첨 되었다.

         

       ‘우와아아아아-!!’

         

       처음 당첨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뛸 듯이 기뻤지만…, 당첨 되었다고 끝이 아니었다.

         

       [사녹 시간 : 새벽 5시.]

         

       “……에?”

         

       사녹이라길래 그는 갑자기 배X그라운드 맵 이름이 왜 나오나 했다.

         

       하지만 사녹은 그 사녹이 아니었다.

         

       이른바 사전녹화.

         

       뭔가 싶어서 알아보니 오후 5시에 생방송으로 시작하는 음방에 모든 아이돌들이 생방송으로 출연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그 전에 세트장에서 사전녹화를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예린이를 보기 위해서 새벽 5시라는 이른 시간에 방송국으로 가야 했다.

         

       물론 새벽 5시라고 해서 시간 맞춰 가면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오산이었다.

         

       “아으…, 피곤해…. 나는 무슨 전역하고도 야간 근무를 하고 있냐….”

         

       유창선 병장은 무려 새벽 2시에 일어나 새벽 3시 즈음 방송국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우르르-.

         

       웅성웅성.

         

       “…뭐여 이건.”

         

       팬들 중 제일 먼저 도착했을 거라는 그의 기대와 달리…, 방송국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방청권에 당첨된 팬들이 대략 200명 정도.

         

       모든 팬들이 루키즈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한다.

         

       때문에 사녹 시간이 새벽 5시라면 그 전날 밤부터 팬들이 줄을 서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유창선 병장이었다.

         

       그렇게 그는 멍한 표정으로 방청 신청을 위해 사람들 뒤에 줄을 섰다.

         

       참고로 방청을 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준비물들이 필요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루키즈 음반 예약 구매 내역이었다.

         

       유창선은 내역서와 신분증 등등 스태프에게서 여러 가지 확인을 거친 후 겨우 방청권을 얻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던 유창선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루키즈 팬들인데…, 대다수가 여자들이다.

         

       걸그룹이니 남자팬이 많을 거라 생각했던 처음 예상과는 무척 상반된 결과였다.

         

       ‘뭔가 다 미친년들 같네….’

         

       걸그룹에 사람이 이렇게 많을 정도니 보이그룹에는 또 얼마나 여자들이 득실대겠는가.

         

       유창선이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헌신해봤자 아이돌들이 팬들이랑 사귀어 주는 것도 아닌데 얼굴 한 번 보자고 뭘 밤에 잠도 안 자고 이렇게까지 노력한단 말인가.

         

       유창선은 여기 있는 모두가 괜히 헛수고하는 얼간이들로 보였다.

         

       물론….

         

       자기도 그 얼간이들 중 하나였지만 말이다.

         

       새벽이라 몸은 피곤하고…, 사람들이 많아서 정신도 사납고….

         

       “제가 이번에 유정이 포토카드 구했잖아요.”

         

       “와! 이거 어디서 나셨어요?”

         

       대다수의 여자 팬들은 소수의 남자 팬들을 뭔가 기분 나쁜 눈으로 흘끔거리며 자기들끼리만 얘기하고….

         

       “저 죄송한데….”

         

       “…예?”

         

       “키가 너무 크셔서…, 저희가 키 제한은 없어도 키가 너무 크신 분은 원래 가장자리로 배정하거든요.”

         

       “…아니, 그게 무슨.”

         

       키가 크다고 좋은 자리 뺏기고….

         

       아무튼 유창선은 커져 가는 피로와 불만에 점점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하 시발 좆같네. 다음부터는 오지 말까.’

         

       그래, 예린이를 좋아하는 건 포기하지 못 하겠다만…, 꼭 예린이를 직접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집에서 핸드폰으로 보면 편한 자리에서 예린이를 더욱더 가까이 볼 수 있다.

         

       그렇게 유창선이 한숨을 내쉬며 다음부터는 이런 자리에 오지 말자고 다짐하며….

         

       ‘아…, 졸려….’

         

       밀려오는 졸음에 점차 고개를 조금씩 숙이던 그때였다.

         

       “어? 온다!”

         

       “꺄아아아아악-!!”

         

       “뭐…, 뭐…?! 오, 온다고?”

         

       견디기 힘든 졸음에 고개를 조금씩 숙이고 있던 유창선은 루키즈 팬들의 찢어질 듯한 외침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가장자리의 장점은 세트로 올라가는 멤버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창선은 급하게 잠에서 깨어 정신없는 와중에도 하예린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화아아-.

         

       흐린 시야에서 마치 혼자서 자체발광하는 것처럼….

         

       ‘아….’

         

       새하얀 빛을 감싸듯 빛나고 있는 한 여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의 병장 시절을 책임져 줬었던….

         

       그의 영원한 스타.

         

       하예린이었다.

         

       울컥.

         

       그녀를 실제로 보자 유창선은 왠지 눈에서 눈물이 핑 도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는 하예린이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마치 억겁처럼 느껴지는 몇 초 동안…

         

       그녀에게서 눈을 절대 떼지 못했다.

         

       하지만….

         

       ‘아, 안 돼…!’

         

       절대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고 있었다.

         

       잠깐 멍한 사이에 하예린은 그를 지나 무대 위로 향하려 하고 있었다.

         

       이에 그는 하예린에게 어떻게든 말을 붙여볼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예, 예린…!”

         

       거기서 그는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호칭을 어떻게 해야 되지…?

         

       예린아.

         

       그것은 너무 반말이어서 싸가지 없어 보인다.

         

       예린 님.

         

       이건 너무 존댓말이라 딱딱하게 들린다.

         

       ‘그, 그러면 어떻게 불러야….’

         

       스윽.

         

       유창선이 그런 별것도 아닌 걸로 고민하는 와중에도 하예린은 지나가고 있었다.

         

       이에 유창선은 그냥 머릿속에 떠오른 아무 호칭으로 하예린을 불렀다.

         

       “예, 예린 짱…!!”

         

       그리고 후회했다.

         

       시발.

         

       예린 짱은 뭔 예린 짱인가 개씹오타쿠새끼도 아니고.

         

       전역하고 애니 조금 봤던 게 이렇게 스노우볼이 굴러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에 유창선이 어마어마한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진 그때였다.

         

       멈칫.

         

       ‘……어?’

         

       …기적이 일어났다.

         

       무대 위로 향하던 하예린이 예린 짱이라는 그의 부름에 잠시 걸음을 멈춘 것이다.

         

       빙글.

         

       그리고는 몸을 돌리더니….

         

       싱긋.

         

       작은 미소와 함께 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

         

       하예린의 팬들이라면 안다.

         

       그녀의 작은 미소가 얼마나 귀한 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예쁜지.

         

       “…….”

         

       유명한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단순히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하예린이 작게 웃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어 준 순간….

         

       “…….”

         

       …그는 돌이 되었다.

         

       그대로 그 자리에 얼어 붙어서…, 숨 쉬는 법도 잊어 버린 돌.

         

       “푸하아…, 하아….”

         

       그가 다시 제정신을 차린 것은 1분 30초가 지나고 더 이상 숨 참는 것을 미룰 수 없는 때가 온 순간이었다.

         

       “하아…, 하아….”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그는 과호흡으로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깨달았다.

         

       ‘이 맛에 다들 아이돌을 보러 오는 거구나….’

         

       그동안 미디어로만 보던 아이돌을 실제로 보는 기분이란…, 정말 짜릿했다.

         

       마치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나 애니 속 캐릭터를 실제로 보는 느낌이랄까.

         

       “하예린-!!! 하예린-!!!”

         

       그렇게 정신을 차린 그는 무대 위 하예린을 향해 연호하며…, 그녀를 향한 더 큰 충성을 다짐했다.

         

         

         

         

       **

         

         

         

       사녹 시간은 새벽 5시.

         

       그 전에 우리는 의상, 헤어, 메이크업 등등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기에 그날 우리 하루는 새벽 1시부터 시작하였다.

         

       체력에 자신이 있던 나조차도 버거울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아으으…, 흐으응….”

         

       특히 체력 스탯이 낮은 서유진은 아주 죽으려고 했다.

         

       거기에 다른 멤버들도 모두 고된 일정에 힘들어하며 지친 모습을 보였지만….

         

       “와아아아-!!”

         

       “……!”

         

       “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다들….”

         

       우리는 이른 새벽부터 잔뜩 모여 있는 팬분들을 보고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나중에 듣기로 팬분들은 우리가 일어나기 전부터 방송국에 줄을 서고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는 심지어….

         

       “예, 예린 짱…!!”

         

       ‘일본인…?’

         

       외국인인 듯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나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그 외국인 팬에게 손을 한 번 흔들어 준 후 무대에 올랐다.

         

       생방송이 아니라 사전녹화였기 때문에 무대는 무척이나 여유가 있었다.

         

       관객석의 대부분 팬들이 나아아 때부터 우리 루키즈를 상징하던 연분홍빛 응원봉을 흔들어 주었기에 마치 단독 콘서트를 하는 듯한 느낌도 났다.

         

         

       -잠깐 다가오지 마

         

       -이게 너와 나의 거리

         

         

       “오지 마-!!”

         

       이혜정이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관객석에서 우렁찬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이에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 이것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응원법.’

         

       미리 예습으로 다른 걸그룹 음방 영상을 시청하며 봤었던 팬들의 응원법.

         

       우리 루키즈도 저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비밀소녀> 발매된 지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응원법을 만들었나보다.

         

       그 사실이 너무 감사해서 그런지 내 얼굴에서 계속해서 진심 어린 미소가 피어났다.

         

       아무래도 오늘의 천마환혹(天魔幻惑)은 그 효과가 정말 굉장할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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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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