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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8

       나는 방송국을 걸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후회였다.

         

       ‘아, 내가 애초에 연예계 소식을 꿰고 있었다면 이런 걱정 안 해도 되었을 텐데.’

         

       전생에서도 아이돌에 관심이 많았다면….

         

       그랬다면 이렇게 전전긍긍할 것 없이 루키즈를 지켜낼 수 있었을 텐데.

         

       “하아…, 이런 거는 스킬 좀 안 생기나? 미래를 볼 수 있는 그런 거.”

         

       예전에는 내가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자동으로 스킬이 생기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천마신공으로도 어쩔 수가 없는 건지….

         

       상태창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에 나는 아무런 알림도 없는 애꿎은 상태창만 몇 번 껐다 켰다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엇.”

         

       곧 내가 꽤 멀리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돌아갈 길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떻게 사람이 한 명도 없네?”

         

       이 넓은 복도에 사람 한 명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게다가 곳곳에는 의상실, 소품실 등등 일반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신기한 곳들이 즐비했다.

         

       마침 사람도 없겠다 나는 마치 모험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점점 더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여기는.”

         

       꽤나 으슥한 느낌이 나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돌아가자.”

         

       이에 나는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내 목표는 머릿속에서 잡생각을 지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고…, 이를 웬만큼 충족했다.

         

       괜히 이런 곳에서 방송국 사람과 만났다가 곤란해지지 않게 나는 다시 대기실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보일러실]

         

       벽면을 따라 온갖 배관이 연결되어 있는 보일러실이라는 방의 명패가 눈에 띄었다.

         

       칙칙폭폭.

         

       안에서는 뭔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증기를 내뿜는 소리도 조금 들리는 듯했다.

         

       ‘저기만 들어가 볼까?’

         

       마침 문도 열려 있는 것 같아 나는 그 안으로 고개를 빼꼼 집어넣은 뒤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오오….”

         

       조금 감탄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게 이곳 굉장히 으슥하다.

         

       딱히 나쁜 의미로만 으슥하다는 게 아니라 마치 어린 시절 비밀기지를 연상케하는 느낌이랄까.

         

       ‘각 방송국에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숙소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전혀 가질 수 없었다.

         

       잘 때는 매일 서유진이 나를 껴안고 자고…, 일어나면 눈코 뜰 새 없이 스케줄을 하러 가야 하고.

         

       물론 루키즈 멤버들과 함께 있는다는 건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지만 인간이라면 언제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나는 이 방송국에 올 때마다 이곳이 내 비밀장소가 될 것을 기대하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와….”

         

       안으로 들어오니 보일러실은 굉장히 넓었다.

         

       정체 모를 기계들도 즐비해서 내가 아까 말했던 대로 어린 시절 상상했던 비밀기지 느낌이 물씬 났다.

         

       이에 작게 감탄하며 내가 안으로 걸음을 조금 옮긴 그때였다.

         

       쿠당탕.

         

       “……!”

         

       보일러실 구석에서 갑자기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듣자마자 나는 움찔했다.

         

       ‘다른 누군가가 있었어…!’

         

       누가 봐도 이곳 보일러실은 출연자가 굳이 찾아올 이유가 없는 곳이다.

         

       나는 소리를 낸 사람이 여기서 일하는 사람인 줄 알고 다시 조용히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아이고….”

         

       넘어지면서 다친 건지 구석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뭔가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도 함께 났었지.

         

       ‘설마 다친 건가?’

         

       머릿속에서 안 좋은 생각이 들자 나는 그냥 무책임하게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에 나는 소리가 난 안쪽으로 조금씩 걸어갔다.

         

       그리고….

         

       “으으….”

         

       “……!”

         

       아이돌 복장을 하고 있는 어떤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구석에 있어야 할 진열대는 넘어져 있고 곳곳에는 망치나 드라이버 같은 공구들이 떨어져 있다.

         

       남자의 발목이 접질러져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진열대가 발에 걸려 넘어진 듯 보였다.

         

       넘어진 곳이 상당히 아픈 듯 남자가 얼굴을 찡그린다.

         

       아직 그는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이에 나는 곧장 다가가 다친 그를 도와주려고 했다가….

         

       ‘뭐 그렇긴 하죠. 그래도 아직까지 기획사들은 본인 소속 연예인들의 열애설을 무서워해요. 특히 저희 같은 신인들은 열애설 한 번 났다 하면 팬들 엄청 이탈하죠.’

         

       문득 아까 나한나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루키즈 활동이 시작하기 전 정 실장도 이런 말을 했었지.

         

       ‘앞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아이돌들을 만날 겁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남돌들과는 작은 접촉, 짧은 대화도 나누지 마시지요.’

         

       정 실장이 그 말을 했던 것 역시 혹시 모를 열애설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주변에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

         

       이곳은 으슥한 보일러실.

         

       나와 저 사람 말고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다친 사람을 그냥 두고 간다는 것 역시 마음에 조금 걸렸다.

         

       이에 나는 짧은 고민 끝에….

         

       “제가 도와 드릴게요!”

         

       “……!”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갑작스런 내 등장으로 당황한 사이 그의 다리를 덮친 진열대를 세워서 그가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아….”

         

       남자는 그런 나를 잠시 멍하니 보다가….

         

       스륵.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은근슬쩍 뒤로 숨겼다.

         

       남자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던 것을 내게 들키고 싶지 않은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을 진작에 본 채였다.

         

       ‘담배 피고 있었구나.’

         

       그것은 바로 담배.

         

       ‘냄새가 조금 묘하네. 풀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외국 담배인가?’

         

       외국 담배든 국내 담배든 아이돌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들킨다면 꽤나 난처할 것이다.

         

       이에 나는 그가 숨긴 것을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본 후….

         

       “……엇.”

         

       조금 놀라고 말았다.

         

       “……아.”

         

       상대도 내 얼굴을 보고 놀랐다.

         

       우리는 친하지는 않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고 인사까지 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도 그럴게….

         

       ‘블랙밤 리더.’

         

       상대가 바로 우리와 이번 주 음방 1위를 겨뤘던 YW 간판 보이그룹 ‘블랙밤’의 리더였기 때문이었다.

         

       ‘이름이 분명…, 아.’

         

       YW에는 두 명의 시우가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 명의 시우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YW의 첫 전성기를 이끌며 YW를 대한민국 3대 기획사로 올려놨던….

         

       하지만 지금은 우리 루키즈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한시우.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현재 YW의 간판 아이돌로 활약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이끄는….

         

       무려 포스트 한시우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블랙밤의 신시우.

         

       ‘이런 사람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이에 내가 잠시 멈칫하니 그가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채로 내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루키즈의 예린 님이시죠? 저는 블랙밤의 신시우라고 합니다.”

         

       뭔가 민망할 만한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얼굴에서 그림 같은 미소를 지어냈다.

         

       나는 그런 신시우의 모습에서 프로다움을 느끼며 마주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선배님. 루키즈의 하예린 입니다.”

         

       “아, 네. 예린 님. 이번에 1위 하신 거 정말 축하드립니다. <비밀소녀>도 너무 잘 듣고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제가 일어나는 것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그리 말하면서 자신의 발목을 가리켰다.

         

       넘어지면서 심하게 접지른 건지 그의 발목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아. 네. 지금 바로 도와 드릴게요.”

         

       이에 나는 곧바로 그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에게 다가가니 아직 미처 사라지지 못한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본인도 지금 당장 그 냄새를 숨길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당황스럽다는 듯 하하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 사실은 제가 몰래 흡연을 하러 여기로 온 거여서요.”

         

       “아….”

         

       “혹시 비밀 지켜 주실 수 있을까요? …팬분들은 제가 담배 피는 거 몰라서.”

         

       “네, 그럼요. 비밀로 해드릴게요.”

         

       같은 아이돌 업계인 사람끼리 도우고 살아야지.

         

       내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니 그가 다시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하, 부끄럽네요. 갑자기 누군가 들어온 것 같아서 황급히 움직이다가 그만…, 꼴사납게 넘어지고 말았어요.”

         

       “죄송해요. 제가 괜히….”

         

       “아뇨. 예린 님이 사과할 일은 아니죠. 근데 예린 님은 어쩌다가 이 으슥한 곳까지 오신 거에요?”

         

       신시우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편안하여 아무런 부담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딱히 숨길 내용도 아니었기에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아…, 요즘 머리가 복잡해서 조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한산한 시간에 잠시 방송국을 둘러보다가….”

         

       “그렇군요. 하긴…, 단체 생활하다 보면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곤 해요. 저도 그랬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예린 님. 다음부터는 예린 님이 여기 쓰세요. 제가 지난 1년간 이 방송국 오면서 매번 여기를 들리곤 했는데 그동안 찾아왔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앗, 그래도 선배님이 먼저 자리 찾으신 곳인데….”

         

       “예린 님이 지금 저를 도와주신 답례예요. 다음부터는 제가 여기 안 올 테니 편하게 쓰세요.”

         

       나는 그와의 몇 마디 대화를 통해 그가 왜 팬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었다.

         

       먼저 상상 속 교회 오빠를 연상케하는 다정한 미남상의 얼굴.

         

       그리고 하나하나 상대방을 배려하는 게 느껴지는 그의 화법.

         

       ‘팬들한테 친절한 걸로 유명하다더니 그냥 성격이 좋은가 보네.’

         

       거기에 블랙밤은 실력파 아이돌들이 즐비한 YW에서도 독보적인 퍼포먼스로 유명했다.

         

       괜히 포스트 한시우라는 별멍이 붙는 것이 아니다.

         

       이에 나는 이런 사람의 스탯은 어떨까 싶어 그의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파앗.

         

       [이름 : 신시우]

         

       [나이 : 23]

         

       [특성 : 스토커]

         

       [예술 세부 스탯]

         

       (외모 : 94)

         

       (가창력 : 83)

         

       (연기력 : 100)

         

       (춤 : 95)

         

       그리고 스탯을 보며 작게 감탄하고 말았다.

         

       ‘스탯이 무슨….’

         

       물론 내가 봤던 이들 중 가장 스탯이 높은 것은 유 설이긴 했다.

         

       하지만 눈앞의 신시우는 거의 유 설과 맞먹을 정도로 높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응?’

         

       국내 탑 아이돌의 스탯에 감탄하던 나는…, 문득 그의 특성을 보고 잠시 얼어붙고 말았다.

         

       [특성 : 스토커.]

         

       “…….”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나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의 특성을 눌러 보았다.

         

       [특성 : 스토커 – 당신의 사랑은 잘못되었습니다. 당신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대에게 괴로움이자 폭력입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법이 허용하는 경계를 넘는 경우라도요.]

         

       [특성 효과 : 검은 사랑 – 흥미를 느낀 대상이 있다면 그 대상을 어마어마하게 집착합니다. 집착 대상이 정해지면 당신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충족감과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동시에 느낍니다. *아직 집착 대상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설마가 맞았다.

         

       상태창은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신시우는 미친놈이었다.

         

       덕분에 나는 예린수호 생각이 나서 몸을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예린 님, 왜 그러세요?”

         

       그런 내 모습을 빠르게 알아채고 신시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물었다.

         

       처음에는 순수하고 친절해 보이던 그의 얼굴이 조금 싸해 보이기 시작했다.

         

       “아…, 그게….”

         

       “안색이 좀 안 좋으신데요? 제가 대기실까지 바래다 드릴까요?”

         

       그때의 나는 몰랐다.

         

       ‘루키즈는 어차피 얼마 안 가서 망할 그룹이거든.’

         

       오아라가 말했던 전생의 루키즈가 망한 이유 그 첫 번째가….

         

       눈앞의 신시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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