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존 배부르당….”
“국수를 그렇게 먹으니 당연히 배가 부르지, 아르야. 배 안에서 이만큼 불었겠다.”
“쀼우…. 하지만 맛있어서 어쩔 수 없어써.”
아르는 결국 후식까지 다 먹은 뒤 폭신한 풀밭에 드러누웠다.
“쀼룩.”
뚠뚠한 배에 자신의 손을 올리고 가볍게 트림을 하는 아르를 보며 나는 아빠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야물딱지게 많이 잘 먹고 좋아하니 나도 기분이 좋네.’
예상했던 일이지만, 아르의 먹성은 덩치가 커진 이후로 더 대단해졌다.
물론 이드밀라가 말했던 것처럼, 성체가 된 이후에는 사실상 정순한 마나만 있으면 음식은 아예 안 먹어도 될 정도라고 하지만….
‘아르는 아직도 성장기니까.’
성장기도 그냥 성장기가 아니다.
천 년 동안 알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만큼 누적된 성장을 이제 몸이 따라잡으려고 급격히 변화하다 보니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 요리할 때는 구할 수 있는 냄비 중 가장 큰 걸로 항상 쓰고 있지.’
국수 면 한 번 삶을 때도 커다란 냄비에 면을 한아름 때려 넣고 대용량으로 삶는다.
뭐든 할 때 많이 해서 손이 좀 가긴 하지만….
‘그래도 아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다 치유가 되니까.’
요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큰 보상은 먹는 사람이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다.
내가 만든 요리를 정신없이 챱챱 먹으면서 행복 가득한 표정을 짓고 이따금씩 쀼 소리를 내는 걸 보고 있으면 요리에 들인 공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오히려 더 만들어서 먹여 주고 싶지.
‘그리고 잘 먹은 아르가 쑥쑥 크는 모습을 보는 그 맛이란.’
말랑콩떡이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저렇게 큰 모습을 보니 매번 감회가 참 새롭다.
‘진짜 성체가 되고 나서 딱히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어지더라도, 아르는 여전히 내 요리를 찾아 주겠지?’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풀밭에 누워 있는 아르에게 다가갔다.
“아르야.”
“우응?”
헤벌쭉 입을 벌린 채 폭신한 풀밭, 그리고 살랑거리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고 있던 아르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르는 내가 해 주는 요리가 좋아?”
내가 묻자 아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응! 당욘하지!”
“정말?”
“구럼! 아르는, 막 호텔 가튼 데서 나오는 비이싼 요리들보다 레온이 해 준 요리가 쩰루 조아. 히히.”
아르는 드러누운 상태에서 안아 달라는 듯 나에게 두 팔을 쭈욱 뻗었다.
이제는 내가 안아 주는 게 아니라 아르에게 안기는 느낌이 좀 더 강했지만, 나는 그런 아르를 꼬옥 안아 주었다.
“그럼 아르야, 나중에 아르가 완전히 다 커서 성체가 되고, 이드밀라 님처럼 음식을 따로 먹지 않아도 되는 때가 와도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 줄 거야?”
나는 아르를 안은 채 감동 받을 준비를 했다.
“…쀼.”
“……아르야?”
당연히 방금처럼 즉답이 나올 줄 알았던 나는 아르의 망설임에 고개를 들었다.
왜인지 아르는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며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내 눈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서, 설마 지금은 크기 위해 먹고 있는 거고, 나중에 다 크고 나면 내 요리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겠다는 뜻인가?’
머릿속에는 금세 안 좋은 상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아르야…. 내가 이번에는 간장떡볶이를 좀 해 왔는데 먹어 볼래?
-흥! 아르는 이제 레온이 해 준 음식 가튼 건 안 먹어두 대거든? 아르는 마나가 더 맛있으니까 최상급 마력석이나 더 구해다 조!
-으, 으응…. 알았어 아르야.
성체가 된 아르가 고개를 홱 돌리며 내가 갓 만든 따끈따끈한 요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모습이 그려졌다.
‘아, 안 돼….’
맙소사. 그럼 지금까지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 줬던 건 대체….
그렇게 생각할 때쯤.
“구, 구게…. 레온.”
“으응….”
아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래, 차라리 계속 억지로 맛있게 먹는 척하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지. 그래야 내가 조금 더 노력을 하든지 할 수 있으니….’
아르는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사실…. 아르는 이미 딱히 음식 안 먹어두 상관없는 몸이 대써.”
“…응?”
아르는 겸연쩍게 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르 최근에 몸 커진 이후로 주변 마나가 막 자동으루 걸러져서 몸에 쌓인다구 해야 대나? 그래 가지구 마나 엄청 적은 곳에 가는 거 아니며는 밥 안 먹어두 사실 전혀 문제가 업써. 근데….”
아르는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르가 음식 안 먹어두 댄다는 거 레온이 알면 혹시라두 못 먹게 댈까 바 얘기 안 해써…. 아르는 께속 레온이 해 준 마싰는 음식들 먹구 시픈데 먹을 명분이 업써써….”
“아르야….”
나는 마음이 사르르 녹아 내리는 걸 느꼈다.
‘그러고 보니….’
예전, 아르가 말랑콩떡일 때도 그렇고 조금 더 성장했을 때도 그렇고, 아르가 배 터지도록 음식을 많이 먹고 나면 시스템 메시지에서 스탯이 추가로 증가한다는 알림이 떴었다.
‘영양소 및 에너지를 섭취한 만큼 소화시켜서 추가 스탯이 되었었지.’
하지만 어느새부턴가 그 메시지는 보기가 힘들었고, 특히 나보다 덩치가 더 커진 이후에는 호텔에서 아무리 배가 터지게 먹어도 해당 메시지가 뜨지 않았었다.
‘이제 음식이 성장에 영향을 주는 단계는 지났다는 거지.’
완전한 성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드래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신체를 가졌으니, 일명 ‘드래곤 하트’라고 불리는 용의 심장이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여 순환시키고, 불순물은 걸러 내 몸을 원활하게 성장 및 유지시키는 기능을 온전히 하게 된 것이었다.
‘아르의 특성도 한몫 했겠지.’
아르가 가진 수많은 고유 특성들 중 「마나 친화」, 「마나 순환」, 「증폭」 등의 특성이 시너지를 일으켜서 완전한 성체가 아니더라도 드래곤 하트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게 된 걸 거다.
‘그렇게 음식을 전혀 안 먹어도 되는 몸이 됐는데도, 내 요리를 그동안 그렇게 맛있게 먹어 준 거였구나.’
오히려 내 걱정과 반대로 아르는 더 이상 내 요리를 마음껏 먹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된 나머지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무, 물론 레온은 아르가 먹고 싶다구 말하며는 요리를 해 주긴 할 고야. 그거는 아르두 알고 이써. 하지만….”
아르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알구 있는데두 막 아르 머릿속에 안 조은 상상이 떠올라서 말을 모태써…. 막 아르가 해 달라구 하면 레온이 안 먹어두 대는 거 안다구 하고 온니랑 둘이 먹는 모습이 떠올라써….”
아….
‘설마 아르도 나랑 비슷하게 안 좋은 쪽으로 막 상상을 했던 건가.’
그러니까 아르 입장에서는 이런 상상을 한 모양이었다.
-레온! 아르 간장 떠뽀끼 먹구 시퍼! 헤헤. 떡보끼 해 조!
-무슨 소리야, 아르야? 너 이제 음식 안 먹어도 아무 문제 없잖아. 저기 숲에 가서 깨끗한 마나나 흡수하고 와. 나는 실비아 씨랑 둘이서 식사 좀 하고 있을 테니까.
-레, 레온…?
-실비아 씨! 말 나온 김에 떡볶이 좀 할까 생각하는데 드실래요?
-좋죠!
-레, 레오오온!!
그렇게 말하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아르는 나와 실비아 씨가 알콩달콩 요리를 해서 먹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게 되는….
“푸흡.”
그런 생각을 하자, 내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프흐, 하하하핫, 하하!”
제대로 웃음보가 터진 나는 눈물이 쏙 빠지도록 그 자리에서 웃어 젖혔다.
“왜, 왜 그러케 웃는 고야?”
“미안, 아르야. 하하하핫! 너무 웃겨서.”
“히잉.”
나는 눈물을 닦고 나서, 아르에게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해 주었다.
“아르야, 반대로 난 무슨 생각을 한 줄 알아? 아르가 나중에 커서 음식 안 먹어도 된다고 해서 내가 갈 곳 잃은 요리를 들고 쓸쓸히 혼자 먹는 상상을 했었어.”
그 말에 이번에는 아르가 충격 받은 표정을 했다.
“아, 아르가 레온 요리를 거절할 리가 업짜나!”
“푸흣. 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아르도 내가 요리해 주는 거 싫어할 리 없다는 거 알면서 그런 생각을 한 거잖아?”
“구, 구건 구러네.”
아르는 머리를 긁적인 뒤, 조금 마음이 놓인 듯 다시 콧물을 훌쩍 삼키고는 헤에 웃어 보였다.
“우리 둘 다 괜한 일 가지고 걱정했다, 그치?”
“히히, 마쟈. 괜한 걱정이어써!”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째 쓸데없는 걱정 하는 것까지 서로를 쏙 빼닮았네.’
영혼의 계약이라는 게 참 신기하긴 신기하다.
나는 울려다가 그친 아르의 뺨을 두 손으로 문질문질해 주었다.
“뀨우.”
아르는 기분이 좋아진 듯 뀨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하아암. 밥 먹고 나서 그런지 졸리네.”
“후암. 아르두…. 요기 풀밭이 너무 푹신하구 바람두 솔솔 불어서 잠이 잘 오는 거 가타.”
“이렇게 된 김에 낮잠 좀만 잘까?”
“우응. 히히.”
아르는 풀밭에 대 자로 누웠고.
나는 그런 아르의 몸에 상체를 기댄 채, 뚠뚠한 배에 머리를 올렸다.
아르가 숨을 쉴 때마다 배가 조금씩 부풀었다가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나는 아르와 함께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