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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 이제 믿겠느냐?

       

        내 말에 각자의 약속을 이행하던 인간들의 몸이 움찔거린다.

        인터넷이라는 장벽 뒤에 숨은 채, 그저 자기만족을 위한 말들을 늘어놓던 이들.

        그런 이들이 겁에 질린 채 덜덜 떨고 있다.

       

        ‘흠…… 너무 심한 처사였는가?’

       

        잠깐 고민해 본다.

       

        ‘허나, 난 분명히 경고하였는데…….’

       

        내 본신을 볼 용기가 있겠냐고, 후회하지 않겠냐고 여러 번 물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괜찮다고 나와 ‘맹약’까지 나눈 이들이다.

       

        ‘비록 나를 가짜라 생각하였더라도…….’

       

        내가 진짜라는 가능성을 떠올리지 못한 채 맹약을 나눈 이들의 책임일 터.

        나는 혀를 차며 인간들을 내려다보았다.

       

        딸꾹질을하며 고기를 구워 먹는 인간.

        창백해진 안색으로 오카리나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인간.

        덜덜 떨리는 몸으로 알 수 없는 춤을 추는 인간.

        반쯤 기절한 상태로 꽃다발을 내미는 인간.

        그리고…….

       

        툭. 툭. 툭.

       

        = 흠…….

       

        “딸꾹!”

       

        창백한 낯을 한 채, 날붙이로 날 찌르는 인간.

       

        천룡안(天龍眼)을 사용해 그 인간을 바라본다.

        그래…… 이 인간이로구나.

       

        = 네가 ‘메루땅사랑해’인가?

       

        “딸꾹!”

       

        어쩐지 더 겁에 질린 모습이다. 왜 그러는 것일까?

        혹시 나를 모욕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다.

       

        = 어제 네가 한 말들은 용서해 주마.

       

        비루한 인간이 나에게 뭐라고 짖은들, 나에게는 그저 귀여워 보일 뿐이다.

        심지어 진정으로 적대감을 가지고 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만큼 더더욱…….

       

        = 허나, 다음부터는 좀 더 말에 신경을 써야 하겠구나.

       

        “네, 네네네네네네…….”

       

        간단한 충고와 함께 다시 고개를 든다.

        목을 길게 빼어 주위를 살피자, 수많은 인간들이 나를 둘러싼 채 경계심을 피워올리고 있다.

        그들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은 투쟁심이 아닌, 두려움과 절망.

       

        = 이 이상 이 자리에 있다가는 폐가 될 것 같구나.

       

        너무 철없이 행동해 버린 것 같다.

        쓴웃음을 지으며 ‘맹약’을 맺은 이들을 내려다보았다.

       

        = 이제 되었다. 너희들은 맹약을 지켰다.

       

        쨍그랑!

       

        털썩!

       

        “헉헉헉!”

       

        “히힉! 히익!”

       

        “우욱! 우에엑!”

       

        나의 기세를 버티지 못한 이들이 버둥거린다.

        기세를 최대한 갈무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인가?

        비록 이들의 생각 없는 말들이 시발점이었다고 하나, 나의 철없는 충동 역시 이 사태를 만든 주범 중 하나일 터.

       

        스르륵!

       

        나의 의지에 따라 내 몸을 뒤덮고 있던 용금(龍金)으로부터 순수한 금이 조금씩 뽑혀 나온다.

        그리고 몇몇은 발버둥 치는 인간들에게, 나머지는 내 옆에 모이며 커다란 덩어리를 이룬다.

        내 주위를 둘러싼 인간들 중 가장 강해 보이는 인간에게 물었다.

       

        = 아이야. 네가 이들의 우두머리냐?

       

        “?!”

       

        내 말에 당황해하는 인간.

        하지만 이들 중 가장 강한 인간답게, 조심스럽게 내 앞으로 걸어 나와 대답한다.

       

        “그, 그렇소.”

       

        = 이 황금은 내가 주는 것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분명 인간들은 황금을 좋아했다.

        이미 흐릿해진 오랜 기억 속에서, 나 역시 황금을 좋아했으니 아마 확실하겠지.

       

        = 나의 철없는 충동에 대한 보상이다. 이것으로 충분하겠느냐?

       

        “그, 그렇소…….”

       

        = 그래.

       

        보상도 끝났으니 몸을 돌린다.

        힘을 끌어내어 공간을 연다. 목적지는 나의 보금자리.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쿠르르르릉!!

       

        공간을 넘어온 곳은 모든 것들이 황금으로 이루어진 지하. 그리고 뜨거운 마그마가 흐르는 나의 보금자리였다.

        나의 레어이자 나의 영역. 그것을 본떠 만들어진 나의 현재 보금자리.

        그 심층에 만들어진 마그마 속에 몸을 담그며 숨을 내쉰다.

       

        화르륵!

       

        치이익!

       

        내 입에서 흘러나온 푸른 불길에 닿은 암석이 순식간에 녹아 마그마가 된다.

        뜨끈뜨끈한 마그마에 몸을 담그고 있자니, 구석에서 황금빛의 꼬리 6개를 단 여성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셨습니까? 주인님.”

       

        = 그래.

       

        피부…… 아니, 비늘 위로 느껴지는 평화로움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            *            *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랜 과거.

        인간에서 드래곤의 알로 환생했던 오랜 과거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진화시킨 드래곤의 두뇌로도 어찌할 수 없었던 망각의 물결. 그리고 그런 망각의 물결로도 막지 못했던 고향에 대한 향수.

        수많은 차원을 넘어서 마침내 도착한 나의 고향.

       

        하지만 나의 고향은 이미 내 희미해진 기억 속의 모습이 아니었고, 나 역시 더 이상은 인간이 아니었다.

        의미 없이 나에게 주어진 게이트라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잠시(드래곤의 시간관념에서 몇 년 정도는 잠깐이 맞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소통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어떻게 소통을 한단 말인가?

        과거 다른 차원의 인간들과 소통을 시도한 적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전부 본신인 드래곤의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때로는 탐욕을, 때로는 경외만을 보낼 뿐이었다.

        가끔 드래곤인 나를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는 인간도 존재했지만…… 내 고향 차원의 인간들이 전부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아바타만을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인간의 외형을 딴 아바타를 사용한다면 인간과 소통은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겨우 인간 한두 명과 소통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 그러니까 ‘인류’와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흠…….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렇게 고민에 들어가길 2년 정도.

        정확히는 2년 하고도 3개월 15일이 지났을 때였다.

        인간 세상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설치한 컴퓨터를 사용해 뉴스를 살피던 나의 눈에 ‘그것’이 들어왔다.

       

        ‘인터넷 방송?’

       

        그것을 보자마자 내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다!

       

       

        *            *            *

       

       

        마그마 밖으로 꺼낸 내 앞발에서부터 용금이 흘러나온다.

        점액처럼, 혹은 수은처럼 흘러내린 용금은 나의 지배력에 따라 형체를 갖추고, 이내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다.

       

        언뜻언뜻 금빛으로 반짝이는 은발.

        머리 위에 솟아난 황금색의 뿔.

        황금색 비늘을 가진 꼬리.

        매끄러운 피부.

       

        나의 본질을 그대로 표현한, 나의 아바타를 바라보다 다시 앞발을 들었다.

        이번에 꺼내는 것은 일반적인 금속.

        미스릴, 황금, 오르하르콘등의 일반적인(?) 금속을 꺼내 가늘게 뽑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엮어 섬유를 만들고, 그 섬유를 조합하여 나의 아바타의 맨몸에 씌운다.

       

        내 아바타에 입혀진 의복을 살펴본다.

        이미 인간인 시절의 미적 감각은 사라졌기에, 이것이 인간들이 보기에 적절한 의복 디자인인지 고민이 된다.

        특히 이 의복은 이전에 다녀갔던 다른 차원에서 입었던 의복 디자인이라 걱정은 더욱 커진다.

       

        ‘지난 방송에서 의복에 대한 지적은 없었으니 괜찮겠지…….’

       

        정 보기 싫다면 누군가는 지적을 할 터.

        두 눈을 감고 마그마 속으로 들어간다. 동시에 나의 감각을 아바타로 이동시켰다.

       

        “……아.”

       

        확 좁아진 시야.

        선명하게 느껴지는 주변의 감각들.

        하지만 그 대신 확연하게 약해진 육감과 힘 등…….

       

        나는 아바타의 몸을 한 번씩 움직여 본 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아마도 버티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마그마가 가득 찬 고온의 공간. 그 한쪽에 마련된 검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네모난 박스.

        천천히 그것에 다가간다. 그리고 그 검은 금속 벽에 손을 닿은 후 지배력을 발산한다.

       

        울렁!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벽이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내 아바타의 몸을 집어삼키며 공간 안쪽으로 이동시켜준다.

        아다만티움 박스 안쪽에 존재하는 것은 각종 방송용 장비들.

        내 황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인간 세상에서 직접 공수해 온…… 인간용 방송 장비들이다.

       

        위이잉……!

       

        미리 배운 대로 능숙하게 장비들을 작동시킨다.

        방송용 조명이라는 기기를 켜고, 송출용 컴퓨터도 켜고…… 자예가 만들어 준 냉각용 마도구도 켠다.

        차근차근 방송이 준비되고…… 마침내 이틀 전 나의 첫 방송 때처럼 방송이 켜진다.

       

        “…….”

       

        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방송 기기를 작동시키는 것 자체는 배운 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방송을 이용해 인류와 소통한다는 것은 어디선가 배울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이것은 오로지 내가 해내야 하는 것.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것은…….

       

        [현재 시청자 : 3102]

       

        “??”

       

        음? 지금 3000여 명의 인간들이 내 방송을 보고 있다는 것인가?

        어제는 기껏해야 50명 정도만이 보았을 뿐이건만…….

       

        – 헉?!

        – 진짜다!

        – 이거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님?

        – 헤으응!

        – 위대하신 드래곤이시여! 우리를 굽어살펴주소서!

       

        “음…….”

       

        비록 본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바타의 천룡안으로 바라본 인간들의 댓글로부터 수많은 감정들이 전해져온다.

        어떤 것으로부터는 놀람이, 어떤 것으로부터는 두려움이, 어떤 것으로부터는 경외심이…….

        전부 나에게는 익숙한 감정들이다.

       

        다른 인간들이 인터넷 방송을 시작할 때 어떻게 시작했는지 떠올려본다.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르기는 했으나…… 일단은 인사부터 하는 것은 동일했다.

        그러니 나 역시 인사부터 하기로 하였다.

       

        “만나서 반갑구나 아이들아. 내 이름은 멸천룡 그랑 라그나라고 한단다.”

       

        – 헉?! 말했어!

        – 미친…….

        – ㄹㅇ임?

        – 진짜 컨셉 아닐까?

        – 진짜로 홍대 거리에 출현하셨었나요?

        – 홍대 마실나오신 드래곤님. ㅋㅋㅋ

       

        이것이 ‘요즘 애들 감성’이라는 것일까?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들을 전부 읽으며 나는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환생 요소 있으나 크지는 않습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을 모티브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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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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