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9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그냥 연막탄을 던져서 시야를 가리고, 좀 전에 기억했던 위치를 향해 총을 쏘았을 뿐이니까.

       

        – 미친

        – ㅎㄷㄷ

        – 연막속으로 총 쏘는데 죄다 맞네

        – 헐…….

        – 아! 핵 신고 좀요!

        – 그런데 드래곤이 핵을 쓸 줄은 알까?

        – ㄹㅇㅋㅋ

       

        = “…….”

       

        어쩐지 말이 없어진 최강물소와 반대로 시끌벅적한 채팅창.

        나는 덤덤히 연막속으로 들어가, 내가 쓰러트린 캐릭터들의 장비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수거한 무기는 AR 종류와 SMG라 부르는 기관단총, 그리고 산탄총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AR과 권총까지 합치면, 무려 5개나 되는 무기를 가지게 된 상황.

       

        “최강물소야. 어떤 무기를 써야 하느냐?”

       

        = “어어…… 그냥 끌리시는 거 아무거나 고르셔도 되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소리니 최강물소야.

        내 마음대로 고른다고 하더라도, 뭔가를 알아야 내 마음대로 고르지 않겠니?

       

        – 엌ㅋㅋㅋㅋㅋㅋ

        – 솔직히 무슨 총을 쥐여 줘도 다 이길 것 같긴 함ㅋㅋㅋㅋ

        – ㄹㅇㅋㅋ

        – 그냥 대충 써 보고 마음에 드는 거 골라도 될 듯?

        – ㅋㅋㅋㅋㅋ

       

        “음…….”

       

        그런데 시청자들까지 최강물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러니까 뭘 알아야 고르지 않겠느냐.

       

        = “일단 권총은 그대로 두시고, 원거리를 좀 더 보강하실 거라면 AR을 드세요. 반대로 근거리를 강화하고 싶으시다면 SMG나 샷건을 드시는 게 낫겠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뭘 들어야 하나…….

        잠시 고민해 보다 현재 내 무장을 그대로 들고 가기로 했다.

        내 실력을 보니, 딱히 근거리에서 싸울 일이 없을 것 같다고 최강물소가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도 비슷했고 말이다.

       

        [금지구역 설정까지 1분 남았습니다.]

       

        – 오! 시간 다 되어 간다!

        – 슬슬 요새화 준비해야 하지 않음?

        – 자리 잡아야 하지 않나?

        – ㅇㅇ

        – 전투 준비!

       

        = “라그나님. 슬슬 요새화 준비 들어가야 합니다.”

       

        “요새화?”

       

        그건 또 무엇이냐?

        내 질문에 최강 물소가 대답해 준다.

        금지구역이 설정된 이후, 플레이어를 향해 무한하게 달려드는 크리처라는 몬스터에게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라고.

       

        = “특성을 극한으로 변태적이게 찍지 않는 이상, 크리처들을 맨몸으로 맞이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보통 금지구역 설정 이후엔 한 장소에서 버티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구나. 그럼, 그 요새화라는 것은 어떻게 하면 되느냐?”

       

        = “일단 위치부터…….”

       

        최강물소가 찍어 준 장소로 이동한다.

        학교 동관이라는 이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와 근처에서 상호작용 버튼을 눌러서…….

       

        “음?”

       

        타-!

       

        그 순간 예리한 내 감각에 무언가가 잡혔다.

        최강물소가 죽었던 중앙 건물에서부터 날아오는 빛 조각.

        뒤늦게 들리기 시작하는 총소리로 미루어 보았을 때, 중앙 건물에서 누군가가 내 캐릭터를 노리고 총알을 발사한 모양이다.

       

        ‘허나 느리다.’

       

        인간들에겐 빠른 속도겠지만, 나에겐 총알 정도의 속도는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느린 속도에 불과하다.

        회심의 기습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겐 통하지 않…….

       

        퍽!

       

        쨍그랑!

       

        “???”

       

        총알에 맞은 내 캐릭터의 실드가 박살 났다.

        통하지 않…….

       

        – 헉?!

        – 허크!

        – 공격이다!

        – 숨어!

       

        = “헉! 라그나님! 엄폐물! 엄폐!”

       

        “음?”

       

        투다다다다다!!

       

        퍽! 퍽!

       

        털썩!

       

        – 앗! 아아…….

        – 아이고!

        – 당해 버렸달까.

        –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기습은 어쩔 수가 없구나.

       

        아니…… 피할 수 있었는데? 분명히 기습을 인지했는데?

        총알을 보자마자 반응했는데…….

       

        “끙! 그러고 보니 내 캐릭터는 인간이었지.”

       

        아무리 내가 총알을 인지하면 뭐 하겠는가?

        정착 그 총알을 피해야 하는 캐릭터가 총알을 피할 정도의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 덕분에 나는 새까맣게 물들어 버린 화면만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괜찮습니다! 다음 판에 잘하면 되죠!”

       

        “…….”

       

        최강물소가 애써 활기찬 목소리로 말을 건다.

        하지만 나는 최강물소의 말에 대답해 줄 정신이 없었다.

       

        이것이…… 이것이 바로 ‘허탈감’이라는 감정이란 말인가?

        정말로 오랜만에 마음속 ‘흑염룡’이 눈을 뜰 것 같은 기분이다.

        이걸 인간들은 뭐라고 불렀더라? 중…… 중…… 그래. 중2병이라고 불렀었지?

       

        – 뭐임?

        – 혹시 삐지신?

        – 삐지셨어요?

        – 야! 여기 얘 삐졌대!

        – 와글와글!

        – 와! 라나님 삐지셨다!

        – 놀리자!

        – ㄹㅇ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그러는 와중에도 건수가 생겼다고 날 놀리기 시작하는 시청자들.

        하여간에 정말로 짓궂은 아이들이다.

       

        “최강물소야.”

       

        = “네?”

       

        “게임이라는 것은, 참으로 힘든 유희구나.”

       

        = “……네?”

       

        이렇게 수많은 이들과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단 한 명 혹은 한 팀만이 승리를 얻는 구조.

        그리고 승리를 하지 못하면 유희로서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기 힘들게 만들어진 설계.

        50여 명의 플레이어 중 승리를 한 이들만이 온전한 즐거움을 독점하고, 승리하지 못한 이들은 그렇지 못하는 것.

       

        “이렇게 힘든 것을 본업으로 방송하는 네가 참으로 존경스럽구나.”

       

        = “……네에?”

       

        – ?

        – ?

        – ??

        – 갑자기 분위기 왜 이럼?

        – ?

       

        최강물소와 시청자들이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내 결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앞으로 내 방송에서 게임을 메인 콘텐츠로 할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을 것 같구나.”

       

        – 헉!

        – 허크!

        – 허크

        – 이게 무슨 일이야..?!

        – ?

        – ?!

       

        게임.

        내가 인간일 적에는 나도 제법 재미있게 즐겼던 유희였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1만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접하게 된 게임은, 이제는 기억도 안 나는 과거의 아련한 향수와는 새삼 다른 느낌을 주었다.

        과거의 나는, 인간은 이렇게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인가?

       

        = “어…… 다음 게임 할까요?”

       

        “……그래. 그러자꾸나.”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어쨌든 오늘 하루는 최강물소 스승님에게 게임에 대해 배우기로 한 날이고, 나는 방송인으로서 오늘의 합방 콘텐츠를 무사히 완료할 생각이었다.

       

        = “이번에는 세팅을 조금 다르게 가겠습니다.”

       

        “알겠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게임을 시작했다.

       

       

        *            *            *

       

       

        서울의 어느 원룸.

        방음 효과가 있는 벽으로 가려진 좁은 공간 안에서, 한 여자가 양손을 볼 옆에 대며 소리쳤다.

       

        “근육신사님! 만원 후원, 감사하다냥! 고맙다냥!”

       

        – 귀여워!

        – ㄱㅇㅇ

        – 최고다 미미쟝!!!

        – ㄹㅇ인 부분이고요!

        – 앜ㅋㅋㅋ 고양이 귀 최고!

       

        “귀엽다는 소리 그만하라냥!”

       

        볼을 붉히며 새침을 떠는 여자.

        하지만 의자 뒤에서 살랑거리는 고양이 꼬리와 위아래로 흔들리는 고양이 귀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저절로 훔치는 마력이 있었다.

        쉽게 말해서, 눈앞의 여자가 삐지든 말든 무조건 귀엽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랄까?

       

        – 삐진 고양이는 최고거든요.

        – 우리 업계에서는 포상입니다.

        – ㅋㅋㅋㅋㅋㅋ

        – 착하지~!

       

        “흥! 삐졌거든? 이제 대답 안 해 줄 거다냥.”

       

        일부러 흥 소리를 내며 고개를 홱 돌려 버린 여자가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자의 화를 풀어 주기 위한 시청자들의 채팅, 도네이션 소리를 일부러 무시한 채 한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

       

        [파이널 레이스]

       

        “오늘 해볼 게임은 파이널 레이스다냥!”

       

        – 에…….

        – 켠왕? 켠왕?!

        – 오늘도 새벽 방송 가즈아아!!

        – 앜ㅋㅋㅋ 나 내일 출근해야 하는뎈ㅋㅋㅋ

       

        “아니거든? 오늘은 금방 1등 할 거거든!”

       

        시청자들의 놀림에 또다시 금세 발끈한 여자가 버럭 소리 지른다.

        그리고 언제 나와 같이 시청자들의 도네이션이 올라온다.

       

        띠링!

       

        {오늘 1등 하면 10만원 미션 ㄱ?}

       

        “콜!”

       

        언제나 그렇듯이 실패할 확률이 아주 높았지만, 여자는 언제나 그렇듯이 짐짓 자신만만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러자 그런 여자를 놀리기 위해 너도나도 미션에 돈을 더하기 시작하는 시청자들.

       

        ‘이 정도면 적당히 흥이 올랐을까?’

       

        다트 스트림에서 ‘살랑미미’라는 닉네임으로 라츄얼 방송하는 그녀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가 사용하는 아바타는 고양이 귀 수인 형태의 아바타지만, 외형과는 달리 신체 능력은 일반적인 인간 여성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그녀도 알고 시청자들도 안다.

        그녀가 게임에서 1등을 하는 그림은 정말로 쉽게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래도 이 정도로 호응을 끌어냈으면 됐어.’

       

        그래.

        시청자들에게 놀림 좀 받으면 어떻던가?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도네이션으로 수익을 두둑하게 받는 것이다.

        오늘 채워질 지갑을 생각하면 조금 놀림 받는 것 정도는…… 크흑!

       

        “그럼 시작하겠습니다냥!”

       

        힘차게 외친 살랑미미가 게임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선택한 캐릭터는 키츠네.

        일본식 이름을 가진 이 캐릭터는 권총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여자 캐릭터다.

       

        방어력과 체력이 낮은 대신, 짧은 은신 능력과 높은 속도를 가진 캐릭터로서, 히트 앤 런 전략을 사용하기 적합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살랑미미가 그나마 잘 사용할 수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어라? 오늘은 이쪽에 사람이 별로 없네요?”

       

        그런데 시작부터 뭔가가 이상했다.

        평소라면 사람들이 제법 몰려왔을 공장 지대에, 오늘따라 사람이 별로 오지 않았다.

       

        “으햐! 피스 콤파스! 겟또다제!”

       

        – 헉!

        – 오늘 운 왜 이럼?

        – 운 미쳤네?

       

        게다가 권총 중 1티어라고 평가받는 ‘피스 콤파스’까지 얻었고, 피스 콤파스에 맞는 부착물까지 파밍 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 성공적으로 1차 웨이브를 끝마치고, 금지구역을 피해 움직일 때도 다른 플레이어와 조우하지 않았다.

       

        “뭐죠? 저 오늘 혼자 게임 하나요?”

       

        – 어라? 이게 아닌데?

        – 어어? 오늘 진짜로 1등 해 보는 거 아님?

        – 미미쟝의 솔로 1등?

        – 1등 가즈아아아아ㅏㅏㅏ!!

       

        이상할 정도로 잘 풀리는 오늘 게임에, 살랑미미와 시청자들의 기분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매번 죽을 쑤고 있는 살랑미미의 솔로 전적에 1등이 추가될 것인가?

       

        “어?”

       

        그 순간 살랑미미와 시청자들의 시선에, 한 플레이어가 보였다.

        초보자들의 추천 캐릭터라는 메디언이 언덕 위에서 살랑미미의 캐릭터인 키츠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지?”

       

        보아하니 저격총을 들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AR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권총.

        멀어서 어떤 권총인지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 감히 피스 낀 키츠네에게 권총으로 덤벼?!”

       

        – ㄹㅇㅋㅋ

        – 피스낀 키츠네는 어지간해서는 못 비비지.

        – 근거리에서는 샷건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무리짘ㅋㅋㅋ

       

        “참교육 가즈아아아아!!”

       

        뾰족한 고양이 송곳니를 활짝 드러내 보이며, 살랑미미는 캐릭터의 빠른 이속을 십분 활용해 적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은폐 엄폐를 하며 또 다른 적의 존재를 경계하거나, 혹은 적의 공격을 회피해야 하지만 그녀는 그저 적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릴 뿐이었다.

        이 상태라면 그대로 적의 공격을 몇 번 허용해야 할 상황이었으나, 상대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그녀를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얍!”

       

        충분히 거리가 가까워졌다고 판단한 그녀가 캐릭터를 조작했다.

        그러자 옆으로 몸을 굴리며 총알을 발사하는 그녀의 캐릭터.

        ‘무빙샷’이라는 키츠네의 스킬이었다.

       

        타아앙!

       

        [게임 오버]

       

        “……???”

       

        – ?

        – ?

        – 뭐임?

        – ??

        – ?

       

        그리고 까맣게 변해 버린 화면을 보며, 살랑미미와 시청자들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어? 어어엉? 어어어어어?!!”

       

        뭐지?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혹시 내가 뭔가 실수했나? 아니면 버그? 핵?

        도대체 무슨 일이???

       

        “이, 이게 뭐야아아아아?!!!”

       

        살랑미미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화면의 한구석에서, 작은 알림창이 떠올랐다.

       

        [‘멸천룡라그나’님이 ‘존귀미미’님을 쓰러뜨렸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낮잠을 잤는데, 낮잠이 아니게 되어버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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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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