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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단잠을 자던 나는 눈을 떴다.

        수많은 이들이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몰려오는 것을, 대지를 울리는 진동을 통해 느꼈기 때문이지.

       

        = 음?

       

        거의 10년간 느껴본 적이 없는 감각에, 나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자리에서 일어났지.

        어떤 거대한 무리가 그냥 지나가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정확히 내가 있는 방향을 목표로 이동하고 있었고, 느낌상으로도 나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 뻔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 인간인가?

       

        그 차원에 도착한 이후로 굴 밖으로 나온 적이 거의 없기에, 그쪽 차원에 어떤 생물들이 사는지는 잘 몰랐지.

        하지만 그 차원에서도 인간이라는 종족은 존재하고 있었고, 본래 인간과 같은 지성체들이 사는 차원은, 어지간하면 지성체들이 생태계 최고 포식자로 등극하는 경우가 많았지.

        그러므로 나를 향해 다가오는 무리가 인간의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10년 전의 약속에 의해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단다.

       

        [- 거의 다 직감이네.]

        [- 찍기 개고숰ㅋㅋㅋ]

        [- 전부 그냥 추측 아닌가요?]

       

        100년도 살지 못하는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처럼 일정 이상의 경지에 이르거나, 혹은 천 년 이상을 살아온 존재의 예측이나 직감은 뜻밖에 잘 맞는단다.

        일정 경지 이상으로 올라간 존재는 운명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기에 그렇고.

        천 년 이상을 살아온 존재는 비슷한 일들을 수없이 경험했기에 경험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지.

       

        [- 역사는 반복된다. 뭐 그런 건가?]

        [- 그럴듯한데?]

        [- ㄹㅇㅋㅋ]

       

        아무튼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나는 오랜만에 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내가 자리 잡았던 숲을 싹 밀어 버리며 내 주위를 포위한 인간들의 무리를 볼 수 있었지.

       

        “황금의 영물은 나와서 황제 폐하의 어명을 받들라!”

       

        [- 와씨. 무슨 사극인가?]

        [- 사극 비슷한 거기는 함.]

        [- 일단 무협지는 맞구만.]

       

        1만이 넘어가는 인간의 무리…… 그것은 군대라고 하던가?

        인간의 군대의 가장 앞으로 나선 인간이 나에게 그렇게 소리쳤단다.

        그쪽 세상에서는 ‘당교’라 부르는, 이쪽 세상에서는 ‘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생물을 탄 인간이 겁도 없이 내 앞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단다.

       

        = 인간이여. 그대는 나와 철검백가라는 무리의 인간들이 나눈 약속을 알지 못하는가?

       

        “그들은 감히 지엄한 국법을 어기고 사익을 챙긴 대역죄인들이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

       

        그 인간은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나를 바라보았다.

       

        “또한 감히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국토를 무단으로 점거하는 황금의 영물은 더 이상의 죄를 짓지 말고, 황제 폐하의 어명을 받들라!”

       

        = 흠…….

       

        내 기세가 닿지 않는 거리에서 목소리만을 키운 채 떠드는 인간의 모습에 나는 의아함이 커졌지.

       

        [- 좀 건방진 것 같기도?]

        [- 뭔가 전형적인 악역 느낌인 것 같은데요?ㅋㅋㅋㅋ]

        [- 그대로 뚝배기 깨주셨나요?]

       

        내가 그의 말에 의아함을 느낀 것은 단순히 그 인간이 건방지다던가, 혹은 가소롭다던가 같은 이유가 아니었단다.

        그보다는 그가 한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

       

        = 인간이여. 그대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구나.

       

        “흥! 미천한 영물은 무엇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냐?”

       

        = 우선 내가 무단으로 그대들의 영역을 점거하고 있다는 부분이구나.

       

        보통 인간이든 짐승이든, 동물이라는 존재의 영역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뜻한다.

        여기서 말하는 ‘통제’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보통은 ‘먹잇감’을 뜻하지.

       

        일반적인 육식 동물의 영역은, 그 영역 안에서 자기 먹잇감을 사냥할 수 있는 권리를 자신만이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단다.

        물론 동물이 강하면 강할수록 ‘먹잇감’만이 아닌, ‘짝짓기 상대’, ‘자원’, ‘영토’ 등으로 그 범위가 늘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의 안에서 이야기다.

       

        “그게 무슨 뜻인가?”

       

        = 쉽게 말해서 이런 것이란다.

       

        인간의 국가라는 것은, 인간의 무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뜻한다.

        그리고 아무리 인간의 국가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은 어떤가?

       

        = 내가 자리 잡은 이 장소. 본래는 ‘검은 숲’이라고 불렸던 이 땅 말이다.

       

        나라고 그냥 가만히 마그마탕에 누워서 허송세월한 것은 아니다.

        내 본체는 눈에 띄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지만, 내 하수인을 밖으로 보내어 이 세계에 대한 정보는 착실하게 모았었다.

        그리고 내가 불시착한 땅이, 이곳 인간들에겐 ‘검은 숲’이라고 불리는 위험한 장소 중 하나라는 것도 알아두었다.

       

        “그, 그게 무슨…….”

       

        = 묻겠다 인간이여. 그대들이 통제는커녕,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이 숲이 진정으로 그대들의 영역. 국가에 속한 땅이 맞는 것이냐?

       

        [-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하고…….]

        [- 어쨌든 국경선 안쪽에 있으면 영토 아님?]

        [- 이건 라나님이 억지 부리시는 것 같기도 한데?]

       

        인간들의 처지에서는 그렇게 보이는 것 같구나.

        물론 입장의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드래곤이고, 드래곤을 비롯한 동물들의 시선에서 볼 때, 인간들이 전혀 접근하지 못하는 장소는 인간들의 영역이 아니란다.

       

        [- 이건 종족 차이가 좀 있으려나?]

        [- 난 모르겠는데.]

        [- 이건 의견이 좀 분분할지도?]

       

        흠……. 어떻게 말해야 너희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 그럼 이렇게 이야기해 보겠다.

       

        너희 인간들은 우주선이라는 것을 쏘아 보내어 달이나 화성과 같은 다른 행성에 인공위성을 보내었지.

        그렇다면 달이나 화성이 너희 인간들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냐?

       

        [- 와씨. 스케일이 거기까지 커진다고?]

        [- 그러니까 이해될지도?]

        [- ㄹㅇㅋㅋ]

        [- 스케일이 좀 커지긴 했는데, 이해는 바로 됐습니다.]

       

        그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지금의 너희 인간들이 우주 밖의 행성을 감히 들어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맹수가 도사리는 숲은 온전한 인간의 통제를 받는 곳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곳은 완전히 인간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곳에 다른 존재가 자리를 잡는다고 해서 인간이 감히 권리를 행사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누, 눈앞에 이 수많은 군세가 보이지 않는 것이냐?! 이곳은 어엿한 황제 폐하의 영토이니라!”

       

        = 내가 이곳의 맹수들을 쫓아내지 않았다면, 감히 너희들이 이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을 것 같으냐?

       

        [- 헐?]

        [- 도대체 몬스터들을 얼마나 잡아드셨길래?]

        [- 엌ㅋㅋㅋ 어떻게 인간들이 대군을 몰고 왔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뎈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10년 동안 기세를 흘려대니, 어지간한 놈들은 전부 도망가더구나.

        절대로 내가 다 잡아먹은 것은 아니니라.

       

        [- 네.ㅋㅋㅋㅋ]

        [- 믿어드릴게욬ㅋㅋㅋ]

        [- 엌ㅋㅋㅋㅋ]

       

        에잉 고얀 놈들.

       

        아무튼 이 부분은 종족 간의 시점 차이가 있다고 하자꾸나.

        하지만 내 의문점은 그것만이 아니었지.

       

        = 또한 ‘황제 폐하의 어명을 받들라’라고 하였는데, 그것 역시 의아하구나.

       

        황제 폐하의 어명을 받들라고 했는데 말이다, 거기엔 아주 커다란 허점이 있었단다.

       

        = 나는 너희가 말하는 ‘황제 폐하’라는 인간의 우두머리를 따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만?

       

        어명을 따르라는 소리는, 결국 명령을 따르라는 뜻이다.

        그런데 말이다.

        애초에 종족 자체가 다른 데, 왜 내가 인간의 우두머리를 따라야 한단 말이냐?

       

        [- 어, 라나님? 그럼 라나님이 인간의 법을 따른다고 하셨던 것과 모순되지 않나요?]

        [- 그러게?]

        [- ??]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란다.

        내가 인간의 법을 따른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머무는 곳이 너희의 세상이고, 너희를 존중하기에 ‘손님’의 처지에서 너희의 규칙을 따른다는 뜻이지.

        너희 인간들도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갔을 때, 그 나라의 법은 따르지만 그 나라의 우두머리를 따르지는 않지 않더냐.

       

        [- 그것도 그러네?]

        [- ㄹㅇㅋㅋ]

        [- 엌ㅋㅋㅋ]

       

        = 그러니 내가 너희 우두머리의 명령을 따라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지. 그렇지 않은가?

       

        “이이…… 불경한 것 같으니라고!”

       

        챙! 챙!

       

        그 인간을 호위하러 따라온 다른 인간들이 무기를 뽑았다.

        하나하나가 이곳 기준으로 B랭크로 보이는 이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냈으나, 나는 코웃음을 쳤다.

       

        “영물 주제에 지고하신 황제 폐하께 그 무슨 망발이냐!”

       

        = 인간의 우두머리라고 하여, 인간임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결국 그도 그대들과 같은 인간이지 않으냐.

       

        “감히~!

       

        그렇게 외치던 그 인간은 몸을 돌렸다.

        그러곤 군대로 돌아가기 전에 날 보며 이렇게 외치더구나.

       

        “황제 폐하의 자비는 더 이상 없다! 너의 그 무례를 땅을 치며 후회하도록 하라!”

       

        = 처음부터 나를 공격할 생각으로 왔다는 것을 잘 안다.

       

        “흥!”

       

        다그닥! 다그닥!

       

        그렇게 그 인간은 자기 무리로 돌아갔단다.

        그리고 잠시 후.

       

        푸시이익!

       

        철컥!

       

        쿵! 쿵! 쿵!

       

        좀 전에 말했던,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강철 거인’ 100기가 가장 먼저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 왔다!!]

        [- 스팀펑크 로봇!]

        [- 이게 떽뜨지]

        [- 와우!]

       

        이곳에서는 ‘석탄’이라는 물체를 태워 만들어 낸 열로 물을 끓이고, 그 증기의 힘으로 동력을 얻는 기관이었지.

        하지만 그곳의 증기기관은 조금 달랐단다.

       

        [- 어떻게 달랐나요?]

       

        일단 종류가 두 종류였지.

        커다란 증기기관은 ‘화령석’이라는 뜨거운 돌을 이용해 증기를 끓여 동력을 얻는 방식이었고.

        작은 증기기관은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 안에 들어가서 마나를 사용해 물을 끓이는 방식이었단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왔던 그 강철 거인들은, 전부 안쪽에 무인이라 부르는 인간들이 들어가 있었지.

       

        “조철무인들은 거철병에 탑승하라!”

       

        “전진!”

       

        “황제 폐하의 영토를 범한 영물을 사냥하라!”

       

        기이익!

       

        삐이익!

       

        칙칙폭폭!

       

        쿵! 쿵! 쿵!

       

        쿵쿵거리며 다가오는 100기의 강철 거인들.

        몸에서는 연신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등 뒤에 달린 분출구에서는 이따금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병기.

        그 묵중한 질량을 가진 인간형 병기가 각자 무기를 치켜든 채 나에게 달려드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말했단다.

       

        = 그래. 그것이 너희의 선택이라면…….

       

        동시에 내 형태를 변형하기 시작했단다.

        너희도 한 번 보았을 그 모습 말이다.

       

        [- 설마?]

        [- 트랜스 폼?]

        [- 기동 전사 라그나?!]

       

        이름들이 좀 다양하긴 한데…….

        뭐, 그렇지.

       

        철컥!

       

        “헉?!”

       

        “저, 저게 뭐야?!”

       

        참고로 너희들이 변신 로봇이라고 부르는 나의 변신 형태. 그것의 정식 명칭은 ‘기간트 모드’라고 한단다.

        가능하다면 정식 명칭으로 불러 주길 바라는구나.

       

        = 너희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시간이다.

       

        부우웅!

       

        그렇게 말을 끝내며, 나의 겉날개…… 아니, 주먹이 허공을 가르기 시작했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 이 시간에.

    참고로 내일은 집에 일이 있어, 하루 휴재합니다.

    수요일에 뵈여~!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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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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