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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푸르른 바닷물이 가득 찬 이곳.

        대자연에서 오롯이 이름 붙여진 것이 있을 리가 있냐 만은, 인간들이 부르길 ‘대서양’이라 부르는 드넓은 바다.

       

        대항해 시대의 대표 격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바다이자, 아마도 인류 역사에 큰 전환점을 세웠을 바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여러모로 태평양에 이름값을 내주었지만, 여전히 인류에게 큰 의미와 가치를 가진 바다.

       

        하지만 지금의 대서양은 인간의 손을 떠나버린 미지의 바다가 되어 버렸다.

        인류가 ‘몬스터’라고 부르는, 혹은 ‘괴수’라고 부르는 이세계의 생물들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태평양을 비롯한 지구의 바다들은 해양 몬스터에 의해 위협적으로 변한 지 오래고, 인류는 폭풍우와 빙산, 암초에 더해 ‘해양 몬스터의 습격’이라는 침몰 이벤트까지 대비해야 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배가 돌아다니는 다른 바다와는 달리, 대서양은 그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후우우우웅!!

       

        대서양의 상공을 인류의 발명품이 날아가고 있었다.

        특수한 초상 능력을 각성한 헌터들이나, 혹은 이세계에서 건너온 지식인 마법과 오러를 배운 이들에 의해 개량된 무인 정찰기다.

        기존의 무인 정찰기보다 더 오랫동안 하늘을 날 수 있는 덕분에, 이 넓은 대서양의 한가운데를 돌아다닐 수 있는 것.

       

        부글부글…….

       

        기이잉!

       

        하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무인 정찰기의 카메라에, 대서양의 한가운데에서 거품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상 현상에 정찰기가 반응하기 직전.

       

        촤악!

       

        서걱!

       

        거품 속에서 쏘아진 바닷물이 마치 칼날처럼 무인 정찰기를 두 동강 냈다.

       

        철썩!

       

        풍덩!

       

        점점 작동을 멈추기 시작하는 무인 정찰기의 잔해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인 정찰기가 완전히 작동을 정지하기 직전, 그 카메라에 어떤 것이 포착되었다.

       

        햇빛이 비치는 바닷속.

        그 아래에서 어두운 빛으로 번뜩이는 거대한 무언가.

       

        그것은 마치 바다뱀을 보는 것 같은 기다란 무언가로 보였고, 동시에 산호초가 피어난 바닷속의 암초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안쪽에서 카메라를 노려보는 노란색의 동공이 렌즈에 비추며, 그와 동시에 렌즈가 박살 났다.

       

        콰드득!

       

        마치 수만 미터 심해의 수압이라도 작용한 듯이 구겨진 정찰기의 잔해.

        하지만 이내 그 잔해마저, 거칠게 진동하는 바닷물의 물결에 의해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 흥!

       

        이미 사라진 잔해를 기분 나쁘다는 듯 바라보던 ‘그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동양의 ‘용(龍)’을 보는 것 같은 형태였다.

        뱀처럼 기다란 몸체와 마치 산호초같이 머리 뒤로 쭉 뻗어 있는 두 개의 뿔. 앞뒤로 달려 있는 새의 다리를 닮은 두 개의 손과 발.

        하지만 용과는 달리, 그 존재의 몸에는 두 팔다리 이외에도 고래의 지느러미를 닮은 여러 개의 다리가 몸에 달려 있었다.

        게다가 뱀처럼 긴 몸에는, 마치 암석과 같은 울퉁불퉁한 겉껍데기가 달라붙어 있었고, 그 위로 산호초의 숲과 함께 여러 해양 생물들이 살고 있었다.

       

        그가 바로 멸천룡 그랑 라그나의 둘째 아이이자, 그녀의 둘째 아들.

        현재 인류가 대서양에 얼씬조차 하지 못하는 원인이자, 심해룡(深海龍)이라는 어마어마한 신명을 가진 드래곤.

       

        심해룡 에나 벨제투스.

        그가 몸을 돌려 심해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뽀글뽀글…….

       

        우우웅!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주변과, 그와 동시에 점점 내려가기 시작하는 수온.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벨제투스의 몸에 달라붙은 산호초는 조금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강력한 지배력이, 그의 몸을 보호하는 덕분이었다.

       

        그렇게 인류에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

        이제는 이세계의 생물까지 들어온 탓에 완벽하게 미지로 남게 된 곳.

       

        깊은 심해로 내려온 벨제투스가 자기 둥지로 들어가려 한 순간이었다.

       

        = 음?

       

        벨제투스가 시선을 들었다.

        그러자 한점의 빛조차 없는 어두운 심해의 한 곳에서부터, 선명한 빛 덩어리가 빠른 속도로 그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인간의 짓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이미 이 바다는 벨제투스의 영역이 된 지 오래다.

        그의 의지에 따라, 이 바다는 인간의 그 어떤 것도 허락지 않는 장소가 된 지 오래.

        특히 심해는 그 나약하고 영악한 생물들에게 허락된 장소가 아니다.

       

        이런 심해에서 힘을 행사할 수 있으며, 동시에 드래곤인 그의 기세를 이겨 낼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저 익숙한 빛을 내뿜을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뿐이다.

       

        = 안뇽안뇽!

       

        = 슈르네.

       

        가까이 다가온 빛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벨제투스는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좀 자려고 했는데…… 왜 하필…….

       

        = 뭐야? 나 안 반가워? 안 반가운 거야?

       

        = ……그럴 리가.

       

        지금은 안 반가운 게 맞았지만,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솔직히 쬐~금 고민하긴 했지만 말이다.

       

        = 앞에 침묵 뭐야?

       

        = 기분 탓이다.

       

        =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무려 이 귀여운 슈르네님이 오빠를 찾아왔다고!

       

        = 어어…….

       

        언제나 그렇듯, 똥꼬발랄한 막내 여동생의 수다를 들으며 벨제투스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 맙소사.’

       

        왜 하필 지금이란 말인가?

        이제 기분 좋게 한숨 자려고 했는데…… 왜 하필이면 지금, 그것도 심해는 어두워서 싫다고 하던 막내 여동생이,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온단 말인가?

        이것도 시련이란 말인가?

       

        = 오빠오빠! 듣고 있어?

       

        = 그래.

       

        그래도 사랑스러운 여동생을 슬프게 할 수는 없었으므로, 벨제투스는 피곤함을 꾹 참고 여동생의 수다를 전부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제 언니인 헤니시아는 좀 사악한 구석이 있긴 해도, 어쨌든 겉으로는 내숭을 잘 떨던데.

        왜 막내 여동생은 이렇게 활발한 것일까?

       

        ‘역시 아직 어려서인가?’

       

        하긴…… 아직 4천 살도 못 넘겼으면 아기가 맞지.

        나는 태어난 지 20년 정도가 지나자마자 어머니에게 독립하라고 들었지만, 내 막내 여동생은 아직 아기가 맞지.

        아무튼 아기임.

       

        뭔가 팔불출 같은 생각을 하며 막내 여동생의 수다를 들어 주는 벨제투스.

        정작 속으로는 동글동글한 생각을 이어 나가는 것과는 달리, 겉으로는 냉혹하고 싸늘한 모습인 터라 주변의 해양 생물들은 겁에 질린 채 몸을 숨기기 바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오빠의 모습이 익숙한 슈르네는 위아래로 붕붕 움직이며 수다를 계속할 뿐이었다.

        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보았던 모든 것들을 마구 토해내는 막내 여동생.

        중간중간 벨제투스가 혐오해 마다하지 않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나왔으나, 차마 여동생에게 화를 낼 수 없는 벨제투스는 그냥 묵묵히 들을 뿐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초월적인 인내심으로 졸음을 참으며 여동생의 수다를 들어 주길 잠시.

       

        = 그리고 그거 들었어 오빠? 엄마가 인간들의 아이돌이 되셨대!

       

        = ……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가 막내 여동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            *

       

       

        오늘은 휴방일이다.

       

        사실 나에겐 휴일이라는 것이 필요가 없었고, 실제로 휴일은 딱히 챙길 생각이 없었다.

        내 방송을 관리해 주는 매니저야 인간들의 회사에서 여러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일하니, 그쪽도 딱히 휴일이 필요 없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이번만은 특별히 휴방하기로 했다.

        왜냐고?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겠구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내 방송 계정이 일시적으로 정지되었기 때문이다.

        방송 정지 사유로는, 방송에서 혐오스러운 장면을 노출한 탓이라나?

        아마 도화의 그 모습을 보여 준 탓인 것 같다.

       

        “인간들이 겨우 그 정도로도 깜짝 놀라워하다니. 앞으로는 주의가 필요하겠구나.”

       

        “그, 그렇지요…….”

       

        내 말에, 내 앞에 앉아 있던 인간이 땀을 뻘뻘 흘린다.

        더운가?

        이곳이 일반적인 인간도 지낼 수 있도록 특별히 만든 방이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더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밖은 인간 기준으로 섭씨 200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에어컨을 좀 더 세게 틀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이전에 말했듯, 나는 인간들의 규칙을 어길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인간들의 방송 플랫폼에서 방송하는 한, 당연히 나는 인간들의 방송 규칙을 따를 생각이다.

        그리고 인간들의 규칙상, 내가 무언가를 어겼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제재를 받는 것이 당연할 터.

       

        “그러니 따로 보복할 생각 따위는 없단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정지는 하루 뒤에 풀릴 예정입니다.”

       

        “그래.”

       

        연신 내 눈치를 보던 헌터 협회의 인간이 돌아가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뭐하지?”

       

        이것이 인간들이 말하는 일중독의 후유증이라는 것인가?

        해야 할 일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니, 뭔가가 텅 비어 버린 느낌이다.

       

        “어쩐다…….”

       

        진짜 뭐하지?

        본래라면 지금쯤 방송을 켜고 있었을 텐데, 그게 막혀 버리니 할 일이 없다.

       

        본체야 늘 그렇듯이 마그마탕에 몸을 담근 채 노곤노곤하게 풀어져 있고, 게이트의 내부는 자예가 잘 단속하고 있을 것이다.

        도화 역시 늘 그렇듯이 내 본체를 바라보고 있을 테고…… 결국 아바타의 나만 할 일이 텅 비어 버렸다.

       

        “오늘은 그냥 본체로 돌아갈까?”

       

        용금을 이용해 나노로봇 수준으로 물질을 복제할 수 있는 나는, 아바타 역시 평범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드래곤이 만드는 아바타는, 결국 그 근원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헤니시아가 만들어 낸 아바타가, 아무리 겉으로는 인간의 형상을 띠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나무인 것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내 아바타는 다르다.

        진짜 생물처럼 임신도 가능할 정도로, 이 아바타는 생물의 모든 작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뇌’ 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복제인간과 같이, 이 아바타는 본체와는 별개의 뇌를 가지고 있고, 역시 별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예 별개는 아니고, 본체의 복제형 인격 같은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아바타의 ‘나’는 내가 맞지만, 완벽한 드래곤인 ‘나’는 아니다.

        보다 인간에 더 가까운 ‘나’인 것이다.

       

        ‘일단 뇌의 성능부터가 다르니까.’

       

        드래곤인 본체의 뇌 성능은, 말하자면 인간들의 양자 컴퓨터 그 이상의 성능을 낸다.

        하지만 이 아바타의 뇌는 좋게 봐줘도 인간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뇌의 성능이 차이가 나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더라도 서로의 인격이 달라지는 결과를 낼 수밖에 없다.

       

        물론 기본적으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이 이어져 있기에, 아바타인 내가 본체를 배신한다던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아바타인 나는 꿈을 꾸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보다 오늘 무엇을 할지가 문제인데…….”

       

        본체는 마그마탕에 몸 담근 채 자고 있다.

        알아서 하라며 자율권을 준 것은 좋긴 한데, 뭔가 치사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끙끙거리며 오늘 무엇으로 시간을 때울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문득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 하나.

       

        “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영정 당해도 할 말 없는 수준이었는데, 드래곤이라서 하루 정지로 넘어감.

    그리고 막내는 나중에 제대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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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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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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