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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하나의 세상이 있었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그 세상은, 현대 지구의 시선으로 보자면 중세 판타지와 르네상스 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런 세상이었다.

        굳이 비유를 해보자면야…… ‘로맨스 판타지’의 세계관에 좀 더 가까울 것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어딘가에 위치한 시대상인데, 묘하게 어떤 부분에서는 현대스러운 그런 세계관.

       

        보통 소설이나 만화 같은 곳에서는, 독자들에게 그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세계에 어떤 이름을 붙인다.

        대표적으로 저쪽 눈보라의 이름을 가진 게임사의 대표작 중 하나인 WOW의 ‘아제로스’같은 이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한 문명이 자신들이 사는 세상에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어느 정도 발전이 이룩된 이후다.

        실제로 지구의 인간들이 자신들이 사는 세상에 이름을 붙이던가?

        기껏해야 아시아 대륙, 아메리카 대륙, 유럽 대륙 같은 식으로 자신들이 사는 대륙의 이름을 댄다던가…… 혹은 자신들이 사는 행성의 이름을 대지 않던가?

        심지어 이렇게 부르기라도 한 것도 근대에 들어서고 나서다.

       

        그 이전의 기술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세상은 생각보다 매우 좁았다.

        왕이나 황제 정도나 되어야 ‘나는 무슨무슨 나라의 왕이요’하는 정도였고, 한평생을 한 지역에서만 살아가는 농노나 농민들은 ‘무슨무슨 마을의 누구요’하는 수준이었다.

        그들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가 겨우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 한 나라가 존재했다.

       

        주변의 다른 나라에 비해 1.5배 큰 국토와 풍족한 경제력, 그리고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룩한 덕분에 무시무시한 성장을 이룩한 왕국.

        불과 80년 만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너무 강력하게 성장한 나머지, 다른 나라들 사이에 낀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른 왕국들을 전부 굽어살필 정도의 힘을 비축한 왕국.

        명분과 정통성만 있다면 곧바로 ‘제국’을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왕국.

        사람들은 경의와 두려움, 그리고 질투를 담아 그 왕국을 이렇게 불렀다.

       

        “올데온 왕국?”

       

        “그, 그렇습니다 마녀님.”

       

        나는 내 앞에 무릎 꿇은 채 벌벌 떠는 인간 남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이 내 앞에서 벌벌 떠는 것 정도는 뭐…… 그러려니 한다.

        다만 내가 고개를 갸웃거린 이유는 다른 쪽이다.

       

        “즉, 이 숲이 그 올데온이라는 국가에 속한 영토라는 소리인 것이냐?”

       

        “네, 넵…….”

       

        “그러니 세금을 내라고?”

       

        “……네.”

       

        마을에서 왔을 인간 남자가 창백한 안색으로 덜덜 떤다.

        그런 남자를 무시한 채,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지 벌써 80년.

        어지간하면 손님 된 입장으로서, 내가 도착한 세상에 큰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그냥 귀찮아지기 싫어서.

        아무튼 이런 이유들로 인해 오지에 숨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이 세상에서 선택한 곳은 바로 숲이었다.

       

        그냥 ‘숲’이라고 하면 그냥 숲 같겠지만, 내가 숨은 숲은 이 세상에서 인간들이 ‘검은 숲’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사실 숲보다는 정글에 더 가까운 곳이다.

       

        이 세상은 중세 판타지와 르네상스 유럽의 중간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세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이 세상은 마법이나 초상 능력, 인간 이외의 종족 같은 것들이 ‘모호하게’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마법은 현대 지구의 기우제라던가, 혹은 저주술, 주술 같은 애매한 무언가고.

        초상 능력은 본 적이 없고.

        인간 이외에 엘프나 드워프 같은 종족들은…… 존재는 하는 것 같은데 어디 숨어서 나올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상 거의 현대 지구와 비슷한 곳에서…… 내가 자리를 잡은 ‘검은 숲’은 거의 유일하게 마법 생물이나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지구로 따지자면…… 아마존? 지구인이 아마존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려나?

       

        그리고 심심하다는 생각에 검은 숲 가장자리에서 아바타로 인간 행세를 한 지도 벌써 30년.

        어쩌다 검은 숲으로 들어오는 약초꾼이나 사냥꾼들을 대충 구해주고, 치료해 주고 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근처 마을에 ‘검은 숲의 마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서 산 지 30년이다만?”

       

        “네. 네에…….”

       

        “30년간 아무런 소리도 없더니, 갑자기 왜 인제 와서 세금을 내라는 것이냐?”

       

        내 아바타가 집 짓고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곳은 검은 숲의 남쪽에 위치한 가장자리다.

        그리고 내가 위치한 곳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검은 숲과 맞닿아 있는 마을이 하나 존재한다.

        검은 숲에서 자생하는 약초와 몬스터들을 이용해 자생하는 마을로서, 그 마을이 한 나라에 속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나에게도 세금을 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달까?

       

        “그, 그게…… 이 숲도 왕국의 영토이니, 당연히 이곳에 살고 계신 마녀님도 세금을 내라고 하셔서…….”

       

        “흠…….”

       

        무슨 소리지?

        눈앞의 남자가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되는데? 이상한데?

        이래 봬도 나는 드래곤이고, 나의 뇌는 진화에 진화를 거쳐서 어지간한 양자 컴퓨터 급 이상의 성능을 낸다.

        그런데 그런 내가 이해를 못 하는 말이라고?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내 우수한 두뇌는 답을 낼 수 있었다.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리는구나.”

       

        영역표시도 하지 못하는 땅을 그저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우기고서 억지를 부리는 꼴이라니?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헛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벌벌 떨며 내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인간 남자를 바라보았다.

        내가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을지, 혹은 화가 난 내가 마을에 무슨 짓 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모습이다.

        아마 이 청년도 마을 사람들에게 떠밀리듯 하여 이곳에 온 것이겠지.

       

        작게 웃음을 터뜨린 나는 답을 주었다.

       

        “그래. 세금을 내라 했으니, 내야지.”

       

        “그,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 가서 그들에게 전해주지 않으련?”

       

        세금을 원한다고? 원한다면 줄 수 있다.

        다만…….

       

        “세금을 지급하는 것이 영주민의 의무라면, 그것을 가져가는 것은 지주의 의무.”

       

        나에게서 세금을 가져가고 싶다면, 직접 와서 가지고 가야 할 것이다.

        집채만 한 육식 동물과 각종 기괴한 몬스터, 그리고 독충과 독물이 우글거리는 이 검은 숲을 지나서 말이지.

       

        나의 말을 들은 청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조금 딱하기는 했으나, 이 이상은 내가 신경 쓸 이유가 없다.

        게다가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주(영주를 말함)와 나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다.

        만약 이 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주의 업보가 될 것이다.

       

        까닥!

       

        슈웅!

       

        나의 손짓에 따라 랜턴 하나가 날아온다.

        그것을 받아 든 후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받거라. 이것을 든 채 길만 따라간다면, 무사히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그, 그럼 가가가, 가 보겠습니다!”

       

        내 허락과 동시에 서둘러 밖으로 나가는 청년.

        어두워진 숲에 작게 난 오솔길을 따라 달려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손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어질러졌던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자동으로 정리되는 집 안을 천천히 걸으며, 이전에는 왼손바닥으로 허공을 쓸었다.

        그러자 허공 위로 나에게만 보이는 홀로그램 정보가 떠오른다.

       

        “에코야. 방금 나간 인간이 무사히 마을에 도착하면, 랜턴에 심어놓은 나노 머신들을 마을에 잠시 풀어두거라.”

       

        [알겠습니다 마스터 라그나.]

       

        “그리고 온실의 온도를 조금 낮추어야겠다.”

       

        [실행하겠습니다.]

       

        내 명령과 함께, 아바타가 머무는 집의 뒤에 존재하는 텃밭 위로 반투명한 무언가가 살짝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다.

        그것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형은 중세의 일반적인 민가보다 낡아 보이는 집.

        하지만 그 실체는, 에코의 각종 기술들이 접목된 최첨단의 펜트하우스였다.

       

       

        *            *            *

       

       

        – 아닠ㅋㅋㅋㅋㅋㅋ

        – 엌ㅋㅋㅋㅋㅋ

        – 판타지에서 플랙스를ㅋㅋㅋㅋㅋㅋㅋ

        – 미치겠넼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나 실제로 물 뿜음ㅋㅋㅋㅋㅋㅋ

       

        웃음을 터뜨리는 시청자들을 바라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안 할 이유가 없지 않냐?”

       

        – 그건 맞음.

        – ㅇㅈ

        – ㅇㅇㅇㅇ

        – 맞죠.

        – 안 할 이유가 없음.

        – ㅋㅋㅋㅋㅋㅋ

        – 그래도 웃겼어욬ㅋㅋㅋ

        – ㄹㅇㅋㅋ

       

        “어쨌든, 그 이후로 인간들이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단다. 기껏해야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랄까?”

       

        – 보복 없었나요?

        – ㅇㅇ

        – 보통 그러면 군대 끌고 가는 게 클리셰 아님?

        – ㄹㅇㅋㅋ

       

        “흠…… 없었던 것은 아닌데 말이다.”

       

        내 말을 도발로 받아들인 것인지, 지주(다시 말하지만 영주임)가 분노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지주도 아주 생각은 없지 않은 것인지, 대뜸 군대를 끌고 오는 일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위치한 곳이 검은 숲이었지 않느냐?”

       

        가뜩이나 마법과 같은 이능이 거의 없었던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창칼 같은 날붙이만 들고 검은 숲으로 들어온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을 이끌고?

       

        “너희가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창과 갑옷만 입은 사람들을 이끌고 공룡이 서식하는 아마존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된단다.”

       

        – 이해 됨.

        – ㄹㅇㅋㅋ

        – 개 미쳤넼ㅋㅋㅋㅋ

        – 엌ㅋㅋㅋㅋ

        – 비유 너무 찰져요!!

        – 눈나 멋져어어어ㅓㅓㅓㅓ!!

        – 아! 공룡은 킹쩔 수 없지!

       

        아무것도 아닌 인간 한 무리를 데려가 봤자, 결국에는 전부 괴물들의 한 끼 식삿거리가 될 것은 자명한 일.

        그 대신 영주가 생각한 작전은, 소수의 암살자를 동원하는 것이었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기사나 사람을 보내, 나를 처치하려 시도를 했다.

       

        – 그래서 어떻게 됬나요?

        – 솔직히 예상은 감.

        – ㄹㅇㅋㅋ

        – 되가 아니라 돼인데!!!

        – ㅋㅋㅋㅋㅋㅋ

       

        “내가 알기로는 대략 18번의 시도가 있었단다.”

       

        그중 15번은 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검은 숲을 뚫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고 남은 3번 중 2번은 내 집의 방범 시설을 통과하지 못하고 죽었다.

       

        – 그럼 1번은 통과했다는 건가?

        – 와앀ㅋㅋㅋ

        – 저 정도면 인간 승리 아님?

        – ㅋㅋㅋㅋㅋㅋ

       

        “마지막 한 번은 부상자로 꾸며 내 집으로 들어온 경우란다.”

       

        철저하게 부상당한 일반 행상인처럼 꾸며서 마을에 들어온 이였는데, 무려 날 암살하기 위해 스스로 자해까지 했던 인간이었다.

       

        이 지구도 마찬가지지만, 본래 의료 지식이라는 것은 상당히 고급 지식이다.

        생명을 죽이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생명을 치료하는 것은 수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교육과 지식의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대에선, 그런 고급 지식을 변방의 낙후된 작은 마을에서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 시대에선 의사라고 자칭하는 돌팔이들이 많았고, 마녀라고 불리던 나를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하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 마을에서 그나마 치료 기술을 가진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마을에도 나름 의사라고 자칭하는 인간이 있긴 했으나, 내가 봤을 때는 그냥 약초 조금 아는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결국 그 마을에 중상을 치료할 수 있는 이가 나뿐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내 집으로 들였다.

        그리고 그 암살자는 기회를 보다 숨겨둔 단검을 꺼내 나에게 휘둘렀고…….

       

        “……뒤는 말하지 않으마.”

       

        – ㅎㄷㄷ

        – ㄷㄷㄷㄷㄷ

        – 무시무시하네

        –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워요.

        – ㅎㄷㄷㄷㄷ

       

        “어쨌든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암살자가 오지 않더구나.”

       

        아마 그 지주도 포기한 것일 테지.

        그렇게 세금도 안 내고 유유자적하게 살아간 지 2년이 더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숲이 조금 시끄럽더구나.”

       

        내 아바타가 지내는 검은 숲 남쪽의 가장자리 부분은 에코가 풀어놓은 경비 로봇과 내 황금의 영역에서 차출해 온 부하들이 단속하는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어지간해서는 시끄러울 일이 없는 곳인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시끄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산책도 할 겸, 내가 직접 나갔지.”

       

        지금 방송하는 아바타와는 달리 뿔과 꼬리를 숨겨 진짜 인간처럼 보이도록 한 후.

        마녀처럼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마치 약초를 캐러 나온 것처럼 바구니도 하나 챙겨 든 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났던 것이란다.”

       

        흙먼지와 피에 더럽혀지고, 이곳저곳이 찢어졌으나 소재 자체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을 입고.

        상처가 났으나 피부 자체는 좋아 보이는 인간.

        나이는 겨우 10살이 안 되었을까?

        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꼬마 남자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 이거 키잡물이었나?!

        – 키잡 떴나?!

        – 정지! 아모른직다!

        – 키잡? 역키잡?!

        – 아무튼 맛만 좋으면 좋아!!!!

        – 키타아아아아아아아!!!

       

        “??”

       

        시청자들이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것은 바로 키잡물이었구연!

    물론 정확히는 역키잡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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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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