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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다시 말하지만 내가 머무는 정글.

        인간들은 검은 숲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현재 내가 장악하는 땅이었다.

        적당히 강한 힘을 가진 존재들은 나의 존재감에 굴복했고, 오랫동안 이 검은 숲에서 터줏대감으로 지내오던 짐승은 나에게 덤벼들었다가 지금은 이인자의 자리에서 얌전히 지내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 코스프레하기 위해 인간 마을과 그나마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내가 아무런 대비를 안 했을 리가 없다.

        너무 강하거나 잔혹한 짐승들은 잘 타일러서 서식지를 조금 옮겼고, 내가 지내는 곳 주변에 표식을 남겨 혹시나 모를 어중이떠중이들에게 경고도 해 두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에코와 부하들까지 배치해 두었으니…….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다.

       

        “인간이 이렇게 몰래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내가 의도해 놓은 정규 루트가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해서 내 아바타가 지내는 영역 안쪽으로 들어왔다고?

        물론 인간 중에도 초월자는 존재할 수 있고, 초월자 정도라면 이 정도 장난질은 충분히 돌파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쓰러져 있는 금발의 어린 인간은 초월자는커녕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꼬마아이다.

        아직 성인의 보살핌을 필요로 할, 새끼라고 해야 할까?

       

        “우연…… 일리는 없겠지.”

       

        본체의 천룡안 만큼은 아니더라도, 아바타가 가진 눈 역시 매우 예리하다.

        그런 나의 시선에, 지금 내 앞에 쓰러져 있는 꼬마 아이에게선 그 어떤 운명의 가닥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이 아이에게 다른 초월자의 손길이 닿았다는 소리다.

        그리고 현재 이 세상에서 이런 장난을 칠 초월자는…….

       

        “슈르네.”

       

        = 넹.

       

        내 부름과 동시에 슈르네가 내 머리 위에 턱 올라온다.

       

        = 이 몸 등장!

       

        “…….”

       

        저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워온 것인지…….

        어느새 내 로브의 두건을 벗겨내곤, 내 아바타의 은색 머리카락을 잘근잘근 물기 시작한 슈르네에게 물었다.

       

        “이 인간 아이는 무엇이냐?”

       

        = 몰라! 같은 인간에게 쫓기고 있길래 데려왔어요!

       

        와구와구……!

       

        내 머리카락을 물어뜯는 막내아이의 말을 들으며 고민을 해 본다.

       

        ‘이 아이가 입은 의복의 소재는, 이 대륙에 사는 인간들의 문명 수준에서 상등급이라고 할 수 있는 재질이군.’

       

        비록 찢겨지고 더럽혀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재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즉, 이 아이는 인간들 중에서도 상류층에 속했던 아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다른 인간에게 쫓겼다고?

       

        “이 아이를 쫓던 인간들은 어떤 모습이었느냐?”

       

        = 어…… 몸에 식물섬유와 동물 가죽을 두르고 있었어요!

       

        “…….”

       

        그래. 문화가 발달한 인간들은 대부분 그러겠지.

       

        = 엄마는 모르죠? 그건 ‘옷’이라고 하는 거래요! 엣헴!

       

        “…….”

       

        쓰담 쓰담.

       

        나는 말없이 막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너는 네 언니 오빠처럼 험악하게 자라지만 말아다오.

       

        정확한 정보를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대충 상황은 그려진다.

        아마 이 아이는 귀족가의 아이일 것이고, 권력 다툼에 의해 희생될 뻔한 것을 슈르네의 변덕으로 살아난 것이겠지.

       

        “이걸 어쩐다…….”

       

        나는 어지간하면 다른 차원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으려는 편이다.

        내가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존재인지라 ‘손님’의 입장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초월자인 내가 필멸자들의 일에 아주 조금만 간섭하더라도 이쪽 차원의 운명을 크게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앞에 있는 이 인간의 아이는 본래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다.

        다른 차원에서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쪽 차원에서는 이 아이가 죽을 확률이 제일 높았던 것이다.

        그런데 초월자인 슈르네가 끼어들면서 그 운명이 한 번 뒤집어지고 말았다.

       

        ‘운명이라는 것은 유기적인 것. 이 아이가 살아남으로 인해, 다른 이들의 운명도 뒤집어졌겠지.’

       

        물론 운명이라는 흐름은 향상성이 있어, 미시적인 역류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별다른 변화는 없다.

        하지만 연약한 필멸자들의 처지에서는 미시적인 역류만 하더라도 거대한 폭풍처럼 느껴질 터.

        슈르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이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야 할까? 아니면 내가 돌봐야 할까?’

       

        이미 슈르네의 손길에 의해 한 번 운명이 바뀐 아이다.

        하지만 여기서 추가적으로 손을 보지 않는다면, 아직 향상성을 가진 운명의 흐름에 의해 본래의 흐름으로 휩쓸려 갈 것이다.

        적어도 내가 손을 대지 않는다면 말이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조심스럽게 인간의 아이를 들어 올렸다.

        아직 성체도 되지 못한, 이제 10살 남짓이 되었을까 싶은 아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구나.”

       

        만약 성체였다면 그냥 숲밖에 내버렸을 것이지만, 하필이면 아이라니…….

        남편을 만나고 알을 낳은 이후, 나는 나도 몰랐던 모성 본능을 폭발시키고 말았다.

        덕분에 종족 불문하고 성체가 아닌 이들은 냉정하게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과거의 내가 본다면 코웃음을 치겠구나.”

       

        아니, 생각해 보면 그때도 새끼는 되도록 건드리지 않았었지.

        단순히 측은지심 때문이 아니라, 새끼를 건드렸다가는 골치 아파지는 것들이 사냥감이어서 그렇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슈르네와 인간의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            *

       

       

        – 아. 이거 로판에서 봤는데?

        – 무슨 로판 도입부인가요?

        – 로판의 냄새가 난다!

        – 아니, 여기 왜 이렇게 로판 독자들이 많아?

        – ㅋㅋㅋㅋㅋㅋㅋㅋ

        – ㄹㅇㅋㅋ

        – 남자도 로판 읽을 수 있다 뭐!!!

       

        활발하게 올라가는 채팅을 읽고 있자니, 잘 자던 슈르네가 내 머리 위에서 눈을 떴다.

       

        = 이 몸 잠 깸!

       

        “일어났느냐?”

       

        = 넹!

       

        크게 입 벌려 하품을 하는 막내딸.

       

        – 하품하는 거 개귀엽네.

        – ㄱㅇㅇ

        – ㄹㅇㅋㅋ

        – 악! 내 심장!

        – 젠장! 저 드래곤이 제 심장을 도둑질했다니까요?!

       

        = 심심하다! 언니한테 가야지!

       

        어딜!

        헤니시아에게 가려는 막내를 즉시 잡아챈다.

        그리고 그대로 품속에 가둔 후 배를 조물딱 조물딱 해주었다.

       

        = 읭? 엄마?

       

        “슈르네. 맛있는 거 줄까?”

       

        = 헉?! 맛있는 거?!

       

        우리 가족 중 제일 먹보답게 곧바로 침을 줄줄 흘리기 시작하는 막내딸.

        순식간에 제 언니를 잊어버린 막내딸이 초롱초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런 슈르네의 뱃살을 주무르며 도화에게 눈짓한다.

       

        그리고 잠시 후.

        본래 오늘 먹방으로 먹을 예정이었던 다양한 족발들이 들어온다.

       

        = 와아아아아아!!!

       

        일단 먹을 거라면 다 좋아하는 막내딸답게 내 품에서 벗어나더니 도화가 들고 있는 족발 접시에 다이빙을 한다.

        그러곤 무서운 기세로 족발을 흡입하기 시작한다.

       

        – 엌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우리 집 시고르자브종이 사료 다 흘리면서 먹는 것 같은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 무슨 똥강아지냐곸ㅋㅋㅋㅋㅋ

        – ㄱㅇㅇ

        – 우리 집에서 저랬으면 곧바로 회초리 들었짘ㅋㅋㅋㅋㅋ

       

        사방으로 휙휙 날아가는 족발 조각들을 청소하는 도화를 잠시 바라보고, 바로 손을 뻗어 슈르네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 엄마?

       

        “욘석! 이렇게 지저분하게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분명히 가르쳤는데, 이 부분은 도저히 고쳐지질 않는다.

        나는 슈르네를 품 속에 안으며 조곤조곤 혼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지저분하게 먹으면 흔적이 고스란히 남지 않느냐. 자고로 먹이를 먹을 때는, 최소한의 흔적만 남긴 채로 빠르게 먹어 치워야 하는 법이다.”

       

        = 넹~

       

        “이렇게 흔적을 남기면, 그것이 곧 포식자의 추격으로 이어진다고 몇 번을 말하느냐.”

       

        = 힝!

       

        – ……저거 맞나?

        – 몬가가 몬가임.

        – 드래곤 처지에서는 맞을지도?

        – ㅋㅋㅋㅋㅋㅋ

        – 드래곤의 가정교육도 비슷하구나.

        – ㅋㅋㅋㅋㅋㅋㅋㅋ

       

        보통 때라면 이쯤에서 끝냈을 테지만, 지금 나는 인간들 앞에서 방송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먹방은 반쯤 포기했지만, 인간들의 앞에서 인간들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즉, 지금은 적어도 인간의 예절로서 음식을 먹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그러니 인간의 형상으로 변하거라.”

       

        = 귀찮은데…….

       

        “어허!”

       

        = 네에엥~

       

        슈르네의 몸이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품엔 자그마한 드래곤이 아닌 8살 정도의 핑크색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의 여자아이가 안겨 있었다.

       

        – 헉?!

        – 허크!

        – ㄱㅇㅇ

        – 핑크 머리?!

        – 와씨! 저거 현실에서 볼 줄은 몰랐는데?

        – 그런데 안 어색하고 개 귀엽네?

        – 인형 같다!

        – ㄹㅇㅋㅋ

       

        시청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슈르네는 짜리몽땅한 팔다리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이 몽 등쟝!”

       

        – 엌ㅋㅋㅋㅋ

        – 혀 짧은 소맄ㅋㅋㅋㅋㅋ

        – ㄱㅇㅇ

        – 개 귀엽네 진짴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ㄹㅇ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어디서 본 건지는 몰라도, 한쪽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소리치는 슈르네.

        하지만 짧은 혀 때문에 발음이 뭉개지는 것은 그렇다 치고, 워낙 외형이 인간 기준으로 귀엽다 보니 전혀 멋있어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더욱 큰 문제는, 본인이 그것을 모른다는 것.

       

        “흐흥! 잉간들아! 나룰 차냥해라!!!”

       

        – 와아아아아!!!!

        – 아ㅏㅏㅏㅏㅏㅏㅏㅏ

        – ㄱㅇㅇ

        – 귀엽습니다!

        – 차냥!!!!

        – 교주님 등장이시다!!

        – 차냥하시란다!!!!!

       

        이젠 내 무릎 위에서 양팔을 높이 들며 의기양양한 자세까지 취하는 슈르네.

        그리고 그런 슈르네의 장단에 맞춰주는 시청자들.

       

        “슈르네.”

       

        “넹?”

       

        “고기 먹자.”

       

        “넹!”

       

        쓰담 쓰담.

       

        나는 언제나 똥꼬발랄, 머릿속이 꽃밭인 막내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넌 언제나 이렇게만 있어 다오.

       

        맨손으로 족발을 집어 먹기 시작하는 슈르네의 손에 포크와 젓가락을 집어 주고.

        겨우겨우 슈르네의 온 정신이 족발에 집중된 것을 확인한 이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후우…… 육아는 역시 힘들다.

       

        “도화야.”

       

        “네.”

       

        “족발 100인분 정도만 더 사 오거라.”

       

        “알겠습니다.”

       

        인간 기준으로 100인분 정도면 슈르네도 만족하겠지 뭐.

       

        – 어우씨. 잘 먹네.

        – 복스럽게 잘 먹네.

        – ㅋㅋㅋㅋㅋ

        – 오늘 이 방송은 교주님이 접수하신다!!

        – 아앀ㅋㅋㅋ 썰 들어야 하는데 너무 귀여운뎈ㅋㅋㅋㅋ

        – 엌ㅋㅋㅋㅋㅋㅋ

        – ㄹㅇㅋㅋ

       

        “크흠! 그럼 이야기를 계속해 주마.”

       

        슈르네가 족발에 정신 팔린 틈에, 얼른 이야기해 둬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 방송은 육아 방송인가? 아니면 저챗인가?! 가슴이 웅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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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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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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