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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4

        리온 포이네스 올데오니스.

        올데온 왕국의 황태자이자, 선왕이었던 바이덴 욜타 올데오니스의 유일한 아들.

        그리고 아버지가 죽은 후 반란을 일으킨 숙부에 의해 죽을뻔했고, 지금은 마녀의 아래에서 잘 지내는…… 그냥 리온.

       

        “그렇단 말이지.”

       

        리온이 17살이 되던 해.

        무려 7년 만에 알게 된 리온의 혈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인간이었다면 놀라움에 두 눈을 크게 떴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리와 계급에 민감한 종족의 일이다.

        내가 무리를 이루는 드래곤도 아니고, 다른 종족의 계급과 출신에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야생에서는 출신이 아닌, 오로지 힘과 지혜로 계급이 결정되는 법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체에게서 태어난 새끼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개체가 우수한 부모로부터 우수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유리하게 시작할 수는 있더라도, 그것이 절대적인 계급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약하면 잡아먹히는 것이다.

       

        ‘솔직히 인간이 이상한 것이지.’

       

        나도 전생에 인간이었지만, 지금 드래곤의 시점으로 보면 인간의 계급 구조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것이 인간의 생존 전략이라는 것은 이해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고개를 돌려 마당에서 슈르네와 뛰어노는 리온의 모습을 바라본다.

        드래곤의 모습을 한 슈르네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그런 슈르네를 쫓아 뛰어다니는 리온.

        이젠 거의 일상이 되어 버린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수고했다.”

       

        = 네.

       

        지난 2년간 인간들의 도시로 내려가 정보 수집을 해온 수하를 치하한다.

        자고로 상과 벌은 철저해야 하는 것이 우두머리의 의무.

        내가 내렸던 임무를 무사히 완수했으니, 당연히 그것에 맞는 상을 내리는 것이 나의 의무다.

       

        적절한 포상을 받고 황금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수하를 배웅해 준 후 고민에 잠겼다.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하지?’

       

        솔직히 리온의 출생 같은 것보다는, 오늘 저녁 메뉴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가 더 어렵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는 그냥 사냥감을 잡아 와서 잘게 찢어 주는 정도였는데, 아무래도 인간은 ‘요리’를 해서 식량을 먹기 편하도록 가공하는 편이니…….

       

        ‘요즘엔 리온이 요리를 한다고 하지만.’

       

        약 3년 전부터였나?

        14살이 된 리온은 슈르네를 따라 마을로 내려갔다 오더니, 그 이후부터 자기가 요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요리하려고 하면 필사적으로 말리던데…… 왜일까?

       

        아무튼 리온이 슈르네와 놀고 있는 사이, 나도 간만에 요리해봐야겠다.

       

        그리고 그날 리온은 내가 한 요리를 반 이상 남겼다.

       

       

        *            *            *

       

       

        쿵!

       

        = 잘했어!

       

        “그래.”

       

        짝!

       

        리온은 슈르네와 하이 파이브를 한 후 뒤로 돌았다.

        그곳에는 거대한 사마귀를 닮은 괴물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세간에서는 ‘아크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괴물로서, 한 마리만으로도 어지간한 도시를 박살 낼 수 있는 강력한 몬스터다.

        그가 어렸을 적에 이 녀석이 백작령의 도시를 습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버지가 군대를 출정시키니마니 하는 이야기를 했었던 기억이 있다.

       

        철컥!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리온이 참았던 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옮기는 것은 아무래도 그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도 성공했네.’

       

        비록 슈르네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의 혼자 힘으로 아크라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과거의 자신은 물론이고, 왕국의 그 어떤 기사들에게 물어봐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겠지.

       

        = 옴뇸뇸!

       

        “큭큭…….”

       

        어느새 아크라의 시체에 달라붙어 식사를 시작한 슈르네를 바라보며 리온이 미소를 지었다.

       

        그가 슈르네와 지낸 지도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마녀가 기르는 신기한 애완동물 정도로 생각했고, 지금은 또래 친구 정도로 생각하는 존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과거에는 올데온 왕국의 유일한 후계자였던 터라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존재할 수 없었고.

        숙부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친구를 사귈 겨를이 없었으며.

        지금은 친구를 사귈 환경이 되지 않았다.

       

        근처 마을로 내려가면 친구가 있지 않냐고?

        당연히 마을로 가면 리온과 비슷한 또래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리온의 출신이 어떻든, 현재 그는 검은 숲의 마녀가 키우는 제자, 혹은 양자의 포지션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현대 지구와 비교했을 때 야만과 미신이 판을 치는 세상.

        당연하게도 마녀의 제자 혹은 양자의 포지션인 리온은 마을에서도 은근히 따돌림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난 7년간 리온의 친구가 되어 준 것은 마녀의 애완동물(?)인 슈르네밖에 없었고, 뜻밖에 슈르네는 리온의 절친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슈르네.”

       

        = 왱?

       

        “넌 왜 마녀님을 엄마라고 불러?”

       

        리온의 질문에, 슈르네는 괴물의 피가 묻은 입가를 가릴 생각도 없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 엄마니까!

       

        “……그래. 먹어라.”

       

        = 왕!

       

        정신없이 괴물을 먹어 치우는 슈르네를 바라보며 리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종족이 다른 데 엄마라고 부른다라…….

       

        ‘새가 처음 본 사람을 부모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건가?’

       

        실제로는 진짜 모녀 관계지만, 당연하게도 리온은 그 사실을 몰랐다.

       

        라그나는 지난 7년간 리온을 기르며, 단 한 번도 자기 정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말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리온이 묻지 않았으니까! 굳이 먼저 밝혀야 할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게다가 중간중간 라그나의 상식이 이상하다거나, 혹은 인간답지 않은 어색한 행동을 보여도 리온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리온은 라그나가 마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신비한 마법을 사용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뭔가 어색한 부분이 있더라도 ‘마녀니까…….’라며 넘겼던 것이다.

       

        근처의 나무 아래에 털썩 주저앉은 리온이 나무에 몸을 기댔다.

       

        ‘벌써 7년인가?’

       

        숙부의 반란이 성공하고, 왕국의 정당한 후계자인 자신을 죽이려 했던 숙부.

        그리고 숙부가 보낸 추격자에 의해 죽기 직전까지 몰렸던 순간…… 그는 이곳 검은 숲에 떨어졌다.

       

        처음에는 자신이 천국에 온 줄 알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어딘지 모를 곳에서 눈을 떴고, 그곳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언뜻언뜻 금빛이 반짝거리는 밝은 은발.

        마치 토파즈를 떠올리게 하는 황금빛의 눈동자.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피부.

       

        감히 말하건대, 리온은 그녀보다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에는 잘 몰랐지만, 머리도 굵어졌고, 마을의 청년들과도 간간이 어울리는 리온은 이제 그때 느꼈던 감정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그 순간 첫눈에 반했던 것이라는 것을.

       

        여기서 누구는 슈르네에게 반하는 것이 정배 아닌가? 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같이 붙어 다닌 시간이나 정신연령을 따져 보면 슈르네에게 반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문제는 지난 7년간 슈르네가 단 한 번도 인간의 형상을 취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리온의 처지에서 연애 감정을 품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여자는 라그나뿐이었고, 리온에게 슈르네는 그냥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똑똑한 애완동물 혹은 친구에 불과할 뿐이었다.

        특히 이 세상에는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없다 보니, 더더욱 슈르네를 그냥 좀 신기한 동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이다.

       

        ‘벌써 7년이나 지났지. 지금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숙부의 왕권은 이미 자리를 잡았을 거야.’

       

        물론 정통성은 그에게 있고, 아직도 반란으로 왕위에 오른 그의 숙부를 따르지 않는 귀족들도 존재할 것이다.

        그들을 규합한다면 숙부와도 한번 해볼 만할 것이다.

       

        왕이 되어도 잘할 자신은 있다.

        어릴 적 배운 것들도 있고, 지난 7년간 마녀에게 배운 것도 많으니까.

        도대체 마녀가 어디서 제왕학을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마녀니까 뭐.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숙부가 왕국을 잘 다스린다면…… 그러면 그냥 숙부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선왕이었던 그의 아버지도 매번 하루 종일 일하고, 스트레스받고, 화내고, 살 뒤룩뒤룩 찌고 하던데.

       

        그에 비하면 이곳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천국이라고 해도 좋았다.

        검은 숲이라는 말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쾌적했고, 어지간한 일들은 마녀가 마법으로 해결해 버린다.

        게다가 슈르네라는 친한 친구까지 있다.

       

        ‘어라? 왕 하는 것보다 더 좋아?’

       

        도대체 왕이라는 것은……?

        리온이 잠시 혼란을 겪었다.

       

        어쨌든, 이곳에서의 생활에 200% 만족한 리온의 처지에서는 굳이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었다.

       

        올데온 왕국의 정당한 후계자로서의 권리?

        좀 전에도 생각한 것이지만, 왕이 되는 것보다는 그냥 이곳에서 유유자적 지내는 것이 더 낫다.

       

        고통받는 왕국을 구원하는 것?

        마을로 내려갈 때마다 왕국의 소식을 간간이 듣고는 하는데, 숙부도 나름 나쁘지 않게 왕국을 운영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원수?

        이건 좀 끌리기는 하는데, 솔직히 리온의 기억을 뒤져 봐도 선왕은 좋은 아버지라고 하기에는 좀 그랬다.

        나쁜 아버지는 아니었는데, 맨날 정무 보느라 바빠서 아버지다운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달까?

       

        이런 여러 가지 사항들을 열거해 보던 리온이 결심했다.

        밖으로 나가지 말고 여기서 평생 잘살아야지.

       

        ‘좀 더 크면 나무꾼이든 사냥꾼이든 일을 해 보자. 그리고 좀 더 크면…….’

       

        리온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마녀와 결혼하고, 아이는 한 4명 정도 낳고, 아이들이 자라고, 손주를 보고, 그대로 마녀와 함께 늙어가는…….

       

        ‘……그런데 마녀님이 늙을까?’

       

        리온이 7년 동안 외형에 변화가 없었던 마녀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듣기로는 마녀가 검은 숲에 자리를 잡은 지 벌써 30년은 되었다고 하던데…… 그동안 저 어린 외형 그대로였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자신이 늙어도 마녀는 늙지 않는다는 말이 아닐까?

       

        ‘음! 고민이야.’

       

        아직 청혼도 안 했는데, 벌써 마녀와의 미래까지 망상하기 시작한 리온이 끙끙거리며 고민을 할 때였다.

       

        “으아아악!”

       

        “어?”

       

        = 읭?

       

        어디선가 들려온 비명 소리에 리온과 슈르네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방금 그 소리…… 사람 목소리였지?”

       

        = 몰라!

       

        ……그래. 네가 그렇지 뭐.

        한숨을 푹 내쉰 리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슈르네가 리온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는다.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진 포지션으로, 슈르네가 리온의 머리를 잡고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 저쪽!

       

        “그래.”

       

        파바밧!

       

        어마어마한 각력으로 땅을 박찬 리온이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숲을 달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길조차 나지 않은 검은 숲이었으나, 그에게는 7년간 뛰어놀던 앞마당에 불과할 뿐이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라그나의 영향을 받고, 본인은 모르나 슈르네의 힘을 받아들인 그의 몸은…… 이미 이 세상의 인간 평균을 아득히 초월하는 강자가 된 지 오래였다.

       

        그렇게 도착한 숲의 한구석에서는, 누더기를 걸친 한 사람이 거대한 식인 식물에게 거의 먹히기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사, 사람 살려요!”

       

        “합!”

       

        새애애앵!!

       

        질풍과도 같은 속도로 휘둘러진 리온의 검이 식인 식물을 갈랐다.

        그리고 간신히 살아난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후우!”

       

        연신 고개를 숙이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리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야 마녀의 가호라던가 슈르네의 순간 이동 능력 덕분에 안전하게 검은 숲을 다닐 수 있지만, 다른 인간들에게 검은 숲은 그야말로 지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다.

        그런데 그런 장소에 들어오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고?

       

        ‘아니, 그냥 들어왔다는 부분을 지적해야 하나?’

       

        그래도 인간 된 도리로서 밖까지는 데려다줘야 하나…… 라는 고민을 할 때였다.

       

        “어?”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있던 남자가 리온의 얼굴을 확인하곤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화, 황태자 전하?”

       

        “?!”

       

        리온의 두 눈도 크게 뜨여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본래 리온 시점의 서술은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한 번 쯤은 필요할 것 같아서 이번 편에 넣었습니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썰풀이’이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주인공인 라그나 시점에서만 서술이 됩니다.

    다만 필요할 경우 이처럼 다른 이의 시점도 간간히 나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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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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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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