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6

        “후우…….”

       

        리온의 얼굴 위로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웠다.

        젊었던 시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힘이 넘쳐났던 팔다리는 앙상하게 메말랐다.

        새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은 힘없이 늘어졌고, 수염으로 가려진 그의 얼굴 위에는 주름살이 가득하다.

       

        “부인…….”

       

        “그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리온이 힘없이 내 손을 잡았다.

        아바타인 내 몸은 원자 단위에서부터 마음대로 재조립 할 수 있는 육체다.

        당연히 기본적으로 아바타의 육체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려 하며, 그렇기에 현재 내 모습은 리온과 처음 만났을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겉으로 본다면, 늙은 할아버지가 어린 여자아이를 부인이라고 부르는 이상한 상황.

        하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우리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

       

        “…….”

       

        “…….”

       

        리온과 나 사이에서 태어난 10명의 아이들이 말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중, 30년 전에 황위를 물려받은 미하일이, 자기 짝과 손을 잡은 채 리온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 옆에는 미하일의 아들. 나에게는 손자가 되는 아이가 슬픈 얼굴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

       

        “미하일. 아가.”

       

        미소를 지은 리온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첫째 미하일부터, 마지막 10번째 아이까지.

        자기 흔적들을 살피던 리온의 시선이, 마지막에는 나에게 향했다.

       

        “잠시… 부인과 단… 둘이 있게, 해주겠느냐?”

       

        “……네.”

       

        슬픔을 참는 듯 얼굴을 굳힌 미하일이, 다른 형제들을 데리고 방을 나선다.

        이제 이곳에 남은 이들은 나와 리온뿐.

        천천히, 주름진 손으로 내 손을 붙잡은 리온이 입을 열었다.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래.”

       

        그때를 어찌 잊을까?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짓자, 리온 역시 나를 따라 미소를 짓는다.

        그러고는 이내 씁쓸하다는 듯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때 이후로 벌써 90년이 지났습니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지요.”

       

        “…….”

       

        그래. 인간에게는 긴 시간일 테지.

       

        “감사합니다. 이 부족한 저를 키워주시고, 이 못난 놈을 위해 함께 살아주셔서.”

       

        “…….”

       

        “이 몹쓸 놈의 아내가 되어 주셔서, 이 나쁜 놈의 터무니없는 소원을 이루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의 마지막 시간을 후회와 슬픔으로 곱씹는 리온.

        그런 리온에게 나는 물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느냐.”

       

        “허허허. 이래 봬도 마녀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던 순정남이었습니다. 모를 리가 없지요.”

       

        나는 분명히 리온을 사랑한다.

        하지만 내가 리온에게 품었던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디까지나 ‘가족 간의 사랑’에 더 가까웠다.

        ‘부부와 연인 사이의 사랑’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내가 드래곤으로서의 내 남편을 잊지 못함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드래곤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드래곤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과, 인간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그 형태가 너무나도 달랐으니까.

        그나마 나에게 인간으로서의 기억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기에, 겉으로 흉내라도 낼 수 있었다.

       

        ‘잘 흉내 냈다고 생각했거늘…….’

       

        어쩐지 입맛이 썼다.

       

        “마녀님을 저에게 푹 빠지게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실패했군요.”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제가 죄송하죠.”

       

        하아~

        리온이 힘겹게 숨을 내뱉는다.

        그런 리온의 머리를, 언젠가 그랬듯이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다.

       

        “……이젠 떠나셔도 좋습니다.”

       

        “……리온.”

       

        “이 못난 놈의 아내 역할을 하신다고, 이곳에 너무 오래 계시지 않았습니까?”

       

        “…….”

       

        그의 말대로.

        차원을 뛰어넘을 정도의 코즈믹 에너지는 이미 30년 전에 다 모았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기다린 이유는, 어디까지나 리온과 맺었던 약속을 끝까지 완료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리온에게 나의 진정한 정체를 알려 준 적이 없었고, 리온도 내 정체를 눈치챈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이 나이가 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가끔 보이고는 하더군요.”

       

        너털웃음을 흘리던 리온이 천천히 손을 들어 내 볼을 쓰다듬는다.

        리온의 손에 내 볼을 맡기고 있을 때,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아니다.”

       

        내가 단순히 약속 때문에 리온의 옆에 있었는가?

        그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약속 때문이기는 했으나, 그의 옆에서 나 역시 즐거웠기 때문이다.

       

        “나도 즐거웠단다.”

       

        “……그렇군요.”

       

        깊게 숨을 내쉰 리온의 몸이, 천천히 이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숨이 흘러나오며, 그가 희미하게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사랑합니다…….”

       

        “…….”

       

        이제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된 목소리를 입안에서 굴리며, 나는 온기가 사라진 리온의 손을 조심스럽게 침상에 올려 두었다.

       

       

        *            *            *

       

       

        대륙을 통일한, 올데온 제국의 반신 황제.

        리온 포이네스 올데오니스 황제.

        그의 장례식이 끝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였다.

       

        “어머니.”

       

        “미하일.”

       

        철없이 뛰어놀던 시기가 어제 같은데, 어느새 훌륭한 우두머리…… 아니, 황제가 되어 버린 아이를 바라본다.

        어쩔 수 없이 내 아바타의 유전자가 강하게 발현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제 아버지를 닮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리온. 네 말이 맞구나. 미하일은 너를 닮았어.’

       

        하여간에…… 죽어서도 드래곤을 울적하게 만드는 아이다.

       

        “어머니. 꼭 떠나셔야 합니까?”

       

        아직 아버지의 죽음을 채 수습하지 못한 듯, 미하일의 감정이 떨려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 떠나야지.”

       

        “……안 떠나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말로 오랜만에 나에게 떼를 쓰는 미하일.

        눈물을 참는 아이를 바라보던 나는, 그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전 이제 이런 짓을 당할 나이가 아닙니다.”

       

        “어머니에게, 자식은 언제나 어린아이일 뿐이란다.”

       

        이젠 인간 기준으로 중년의 나이가 되어 버린 미하일.

        어릴 적의 귀여운 모습은 전부 사라졌고, 제 아버지를 닮은 날카로운 이목구비 위로 깊은 경험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귀여운 아이에 불과할 뿐이다.

       

        “미하일. 모든 이들은 언젠가 이별을 하기 마련이란다.”

       

        만남이 있다면, 이별도 있는 법.

        설사 내가 이곳에 남는다고 한들, 그것은 그저 이별을 잠시 늦추는 것에 불과하다.

       

        “네 아버지도 갔으니, 이제 나도 가야 하지 않겠느냐.”

       

        “……어머니.”

       

        결국 미하일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슬퍼하는 가엾은 아이의 얼굴을, 천천히 내 품에 끌어안아 주었다.

        마치 어릴 적 그러했던 것처럼.

       

        토닥토닥…….

       

        크흡!

       

        그날은 하루 종일 나의 아이를 달래주었다.

       

       

        *            *            *

       

       

        – ㅜㅜ

        – ㅠㅠ

        – 너모 슬푸다ㅠㅠ

        – ㄹㅇㅋㅋ ㅠ

        – ㅠㅠ

        – ㅠㅠㅠㅠㅠㅠ

        – ㅜㅜㅜ

       

        “자. 이것으로 이야기는 끝이란다.”

       

        미하일과 작별인사를 나눈 후, 다른 아이들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그 다음에는 아바타를 회수한 다음에 다른 차원으로 건너갔다.

        뭐, 이 부분은 딱히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겠지.

        이야기의 끝을 선언하는 내 말에, 채팅창이 활발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 너무 재미있었어요!

        – 감동적이었음!

        – 너무 좋은 이야기여써!

        – ㅠㅠㅠㅠㅠ

        – 자식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 어케 됨?

        – 그냥 그 세계에 계속 머물러도 되지 않았나요?

        –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 (대충 슬픈 이모티콘)

        – ㅠㅠㅠ

       

        “내가 그 세계에 계속 머무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란다.”

       

        내가 말했지 않더냐? 초월자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필멸자들에게 재앙이라고.

        아무리 내가 용금으로 내 기세를 감춘다고 하더라도, 나의 존재가 세계에 아예 영향을 안 줄 수는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계속 내 게이트에 머무르고 있을 필요가 없지.”

       

        내가 EX랭크 게이트에 계속 머무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나의 존재가 내 고향 차원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서, 아예 공간 자체가 격리된 게이트에 주로 머무는 것이다.

       

        – 헐

        – 그랬던거예요?

        – 감동!

        – 라나님은 빛이고 신이시다!

        – 오오오!!!

       

        “게다가 초월자가 머무르는 차원은 다른 평행차원으로 분리되지도 않지.”

       

        내가 이전에 말했지 않던가?

        차원이라는 것은, 수많은 선택의 결과로 분리된 평행차원들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A라는 차원에 B라는 인물이 존재하고, C라는 차원이 A라는 차원과 99.9999……% 유사하다면, 과연 C라는 차원에도 B라는 인간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만약 맞다면, 거의 유사한 두 차원에 똑같은 초월자가 존재하는 것일까?

       

        – 타임 패러독스 이야기인가?

        – 그거 유명한 이야기 아닌가요?

        – 과거의 나와 만나면 둘 다 사라진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 ㄹㅇㅋㅋ

       

        “너희들이 이야기하는 시간 여행은, 말하자면 가능하긴 하단다.”

       

        다만 단순히 시간을 되돌리는 것으로는 시간 여행이 되지 않는다.

        정확히는 ‘시간의 흐름이 다른, 유사점 99.999……%의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에 더 가깝다.

       

        “시간 여행이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지금 보다 과거의 시간선을 가진 다른 차원으로 건너간다는 것에 더 가깝지.”

       

        엄밀히 말해서 진짜 과거의 자신을 만나는 것이 아닌, 다른 차원의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럼 과거의 자신 봐도 안 사라져요?

        – 어라? 나 이거 히어로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 파이널게임에서 본 듯?

        – 아! 핑거 스냅 마렵넼ㅋㅋㅋㅋ

        – ㄹㅇㅋㅋ

       

        “하지만 이것은 필멸자들의 사정이란다.”

       

        초월자는 평행 차원에 또 다른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초월자가 되는 순간 무한한 차원선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는 존재가 하나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즉, 초월자는 어느 차원에서도 존재했지만, 동시에 무한한 차원에서 오로지 하나만 존재할 수 있는 독립된 개체라고 할 수 있단다.”

       

        그렇기에 다른 차원에서 아무리 나를 찾아내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는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월자의 이런 특성 때문에, 초월자가 존재하는 차원 역시 다른 차원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흔히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있는 차원들이 그렇지. 특히 아주 오랫동안 신이 머무른 차원은, 아주 독특하고 유일한 차원이 된단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냐고 물어본다면…… 그것도 모호하기는 하다.

       

        차원의 분기점은, 말하자면 무수한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무수한 가능성을 막아 버리고 단 하나만 남겨둔다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란 말인가?

       

        – ㅎㄷㄷ하네.

        – 들을 때마다 광기가 차오름.

        – 그거 병이야. 정신병원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런데 광기 마렵기는 함.

        – 코즈믹 호러가 여기 있었넼ㅋㅋㅋ

        – 우리가 들은 것은 코즈믹 호러인가, 아니면 우주의 비밀인가? 그것도 아니면 로맨스인가!!!!

       

        “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어느새 시간이?

        방송 종료만은 안 된다며 울부짖는 시청자들을 뒤로한 채 방송을 끌 준비한다.

        너희들이 아무리 소리쳐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법이니라.

       

        – 내일도 올 거죠?

        – 내일도 옛날이야기 기대할게요!

        – ㅠㅠ

        – 맨날맨날 이야기해주실 거죠?

        – 흙흙흙…… ㅠㅠ

       

        “내일은 힘들 것 같구나.”

       

        벌써 이틀이나 썰풀이를 했지만, 딱히 그것 때문인 것은 아니다.

        단순히, 내일은 미리 잡혀 있는 일정이 있기 때문이다.

       

        “내일이 바로 그날이 아니냐.”

       

        – 그날?

        – ?

        – ??

        – ?

        – ?

        – 뭐임?

        – 아!

        – ?

        – 아! 그거!

        – 술?

       

        “그래.”

       

        환상도화목의 꽃으로 빚은 술이었던가?

        그것으로 인해 시작되었고, 드디어 이루어진…… 나의 야심 찬 콘텐츠!

       

        “내일은 내 게이트에 인간들이 놀러 오는 날이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본래 오늘은 휴재일이지만, 마지막 편을 못보고 끝내는 것은 아쉬울 것 같다는 판단하에 월요일 연재분을 오늘 풀겠습니다.

    이번주 휴재는 일요일, 월요일입니다. 월요일에 연재 가능할지는 모르겠는데…. 모르겠네요. 일단 이번주는 월요일도 휴재인걸로. ㅎㅎ

    다음 편은 두근두근 드래곤님의 게이트 구경입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