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3

        “어머! 좋네요!”

       

        거미 여인이 손뼉을 짝짝 치며 감탄했다.

        그런 그녀의 앞에선, 이유리가 앙증맞은 드레스를 입은 채 쭈뼛쭈뼛거리고 있었다.

       

        “조금…… 부끄러워요.”

       

        “호호호! 싫다고는 안 하시네요?”

       

        “…….”

       

        여주인의 말에 소녀가 얼굴을 붉혔다.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는 소녀의 모습에, 여주인과 경호 헌터가 나란히 양 볼을 감쌌다.

       

        “귀여워!”

       

        “귀엽네요!”

       

        그리고 그런 여인들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팬더 기사가 팔짱을 낀 채 혀를 찼다.

       

        = 하여간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이곳으로 데려오기는 했지만, 그의 예상보다 훨씬 잘 어울리고 있었다.

        덕분에 이곳에서 유일한 남자인 그가 끼어들기에는 애매한 상황.

       

        =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군.

       

        어깨를 으쓱인 그가 천천히 존재감을 죽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주위 경계는 철저하게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팬더 기사가 존재감을 죽이고 있을 때.

        연신 어린 인간 소녀에게 여러 가지 옷을 입혀보던 여주인이 행복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아! 인간분이 제 옷을 입어 주시는 것이 얼마 만인지…….”

       

        “……굉장히 기뻐 보이시군요?”

       

        참다못한 경호 헌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본래라면 경호 임무를 하는 와중엔 사적인 대화는 자제해야 하지만 그녀는 도저히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이야기나 게임에서나 보던 아라크네 비슷한 존재가 바로 옆에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몬스터가 아니라 동네 옷 가게 주인으로!!!

        ……이걸 참는다고?!

       

        경호 헌터가 뒤늦게 자기 행동을 후회하고 있을 때.

        창고에서 또 다른 옷을 고르던 여주인이 경호 헌터의 질문에 대답했다.

       

        “다른 종족분들 옷은 자주 만들지만, 아무래도 이곳에는 인간분이 거의 없거든요.”

       

        “아아…….”

       

        확실히 그랬다.

        이곳에 와서 본 이들 중, 인간으로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간 비슷하게 생긴 종족은 봤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동물 귀를 달고 있다거나, 목이 길쭉하게 늘어난다거나, 피부가 창백하다거나 같이 어딘가에 하자가 있었다.

       

        “그나마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이들은 있지만…… 같은 옷을 입어도 진짜 인간과는 스타일이 다르거든요.”

       

        사사사삭!

       

        거미의 다리가 빠르게 움직이며 실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옷이 빠르게 수선된다.

        마침내 수선이 끝난 옷을 쫙 펼쳐서 확인한 여주인이, 그 옷을 경호 헌터에게 내밀었다.

       

        “그러니 손님도 한 번 입어보시는 것이 어떠세요?”

       

        “네?!”

       

        갑작스러운 제안에 경호 헌터가 화들짝 놀랐다.

        저에게? 이 드레스를요?!

       

        “죄, 죄송하지만 근무 중에는…….”

       

        “그런가요? 아쉽네요오오~”

       

        뜻밖에 여주인은 빠르게 단념했다.

        경호 헌터는 그런 여주인의 모습에 조금 당황했다.

        뭔가 좀 더 권유해 본다거나, 아니면 매달려 본다거나 하지 않나?

       

        “에이~ 손님분께 실례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답니다.”

       

        “……제가 말했나요?”

       

        “저희 나이쯤 되면 표정 읽는 것 정도는 쉽거든요.”

       

        = 그건 그렇지.

       

        뒤에서 추임새를 넣는 팬더 기사의 말에 거미 여인이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기사를 노려보았다.

        날카롭게 쏘아 보는 6개의 눈동자를 확인한 팬더 기사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지금 눈 마주쳤다가는 곧바로 거미줄에 돌돌 말릴 위험성이 크다.

       

        결국 한숨과 함께 인상을 푼 여주인은 들고 있던 드레스를 다시 창고 안쪽에 집어넣었다.

        대신 아동복을 몇 가지 더 꺼내고선 소녀에게 내밀었다.

       

        “손님? 이번엔 이 옷을 입어볼 거예요. 괜찮으시겠어요?”

       

        “네에~!”

       

        노란색의 샛노란 드레스가 마음에 들었을까?

        지금까지 계속 옷을 갈아입어서 힘들었을 텐데도 이유리는 활기차게 대답했다.

        그런 아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준 여주인이 녹아내릴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아아…… 역시 인간 아이들은 너무 귀엽단 말이죠.”

       

        “…….”

       

        저거, 사실은 위험한 사람…… 아니, 거미 아니야?

        경호 헌터는 허리에 매어놓은 총기를 다시 한번 매만졌다.

       

        어쨌든 그렇게 이유리가 펼치는 패션쇼가 몇 번 더 이어지고.

        소녀의 몸에 맞는 옷 몇 벌을 고른 여주인이 거미줄을 짜내서 옷들을 포장했다.

       

        “이것은 귀여운 손님께 드리는 선물이랍니다.”

       

        “감사합니다!”

       

        “호호호~!”

       

        미소를 짓던 여주인이, 다음으로는 거대한 포장을 팬더 기사에게 넘겼다.

       

        = 웃차! 양이 제법 되는군!

       

        “흥! 잘 들기나 하셔! 영감!”

       

        날카로운 눈매와 말투로 팬더 기사에게 쏘아붙였던 여주인은, 순식간에 다정한 얼굴로 소녀와 경호 헌터에게 말했다.

       

        “일단은 넉넉한 사이즈로 재단한 옷들이랍니다. 사이즈가 잘 맞지 않는다면, 인간분들의 디자이너분들께 가져가서 수선을 맡기시면 될 거예요.”

       

        “아, 네. 그렇게…… 전해드리겠…… 습니다.”

       

        경호 헌터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일단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조금 애매했다.

       

        ‘미스릴 실, 아라크네의 비단, 천잠사를 사용해서 만든 옷을 어떻게 수선하라는 거야?’

       

        하나하나가 지구에서는 없어서 못 구하는 최고급 재료들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저런 재료들이 넘쳐난다.

        심지어 옷이 상하지 않게 포장해 준 것도, 아라크네가 즉석에서 자기 거미줄로 만든 ‘아라크네의 비단’이다.

        그 부드러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방어력으로 인해 방어구를 만드는 아티팩트 장인들이 없어서 못 구한다는 그 재료.

       

        아니, 그보다 왜 이런 재료로 옷을 만드는 거지?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아티팩트 아닌가?

        C급 몬스터의 진심 공격에 맞아도 상처 하나 안 입을 것 같은 방어력인데?

       

        ‘도대체 이계란 뭘까?’

       

        아니, 이 경우에는 EX랭크 게이트의 상식이 이쪽 세계와는 다르다고 해야 하나?

        살짝 인지부조화가 올 것 같았기에, 경호 헌터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에라 모르겠다. 포기하면 편해…….

       

        “그런데 이쪽 차원의 디자인도 참 특이하네요.”

       

        이유리가 이곳에 올 때 입고 있던 옷, 그리고 경호 헌터가 입고 있는 정장을 유심히 바라보던 여주인이 중얼거렸다.

       

        “에휴. 인간들의 패션 디자인에 대해 저 많이 알고 싶은데 말이죠.”

       

        “……그러면 저희집에 놀러 오면 안 되나요?”

       

        “어머나?”

       

        소녀가 여주인의 손을 꼬옥 잡으며 물었다.

        아직은 거미의 몸체가 두려워 보였지만, 그런데도 소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여주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런 소녀의 용기에 여주인이 감동받은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감동받은 것은 감동받은 것.

        그리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제가 인간분들 상식은 잘 모르지만, 이런 모습으로 밖에 나가면 인간분들이 많이 놀라지 않을까요?”

       

        “아…….”

       

        소녀가 거대한 거미의 형태를 한 하체를 내려다보며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이 화들짝 놀라더니 울상을 지었다.

       

        “호호호! 괜찮아요. 착하죠?”

       

        그 생생한 귀여움을 직관하던 여주인이 소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아아…… 역시 인간의 아이는 최고야!

       

        “…….”

       

        = ……저래 봬도 실력은 좋아.

       

        “……네.”

       

        경호 헌터는 저 예비 소아성애자 범죄자를 구속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            *            *

       

       

        다우림 일행은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모인 광장은 활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특히, 그 활기의 방향이 다우림을 향하는 것이 확실하게 보였다.

       

        = 오! 인간 손님!

       

        “술 마시겠는가?!”

       

        “으하하하! 축제다! 마셔라!”

       

        = 먹자!

       

        ……뭔가 일부는 축제를 핑계로 술 마시는 것이 목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축제를 벌이는 모든 이들이 다우림을 비롯한 인간들을 환영해 주었다.

       

        그때 인파 속에서 슬라임과 비슷한 점액질의 무언가가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다우림의 앞을 막아섰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다우림의 옆을 지키던 경호 헌터가 재빨리 다우림의 앞을 막아서며 총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가 총을 겨누기도 전, 그들의 뒤에 서 있던 늑대 인간이 두 팔로 두 인간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거대한 늑대의 머리가 전방의 슬라임 비슷한 것을 물어뜯으려던 그 순간……!!

       

        = 크르릉…… 뭐야. 벨렘이잖아?

       

        “@%&$%$&&(^$@%(&#……??”

       

        = 놀래키지 말라고. 그대로 물어뜯어 버릴 뻔했잖냐.

       

        툴툴거리며 경계 태세를 푼 늑대 인간이 슬라임을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슬라임은 점액질과 같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

       

        = 아니야. 이분들은 오늘 돌아간다고.

       

        “#%$^^$&@$*(……?!”

       

        = 그래. 그러니까 돌아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분위기다.

        대충 위기 상황이 지나간 것을 느낀 경호 헌터가 슬그머니 총을 홀스터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뒤에서 저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다우림이 경호 헌터에게 물었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 중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아. 별건 아닙니다.

       

        작게 말했는데, 두 인간의 대화를 들은 모양인지 늑대 인간이 대답했다.

        이 시끄러운 축제 한복판에서 귓속말을 들었다고? 도대체 귀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두 인간이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늑대 인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슬라임을 가리킨 늑대 인간이 말을 이었다.

       

        = 이 녀석은 벨렘이라고 하는 녀석입니다. 이 도시에 있는 유일한 여관주인이고요.

       

        “……여관?”

       

        슬라임이? 여관주인?

        겉보기에는 동굴 같은 곳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여기사를 덮쳐서 19금 동인지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외향인데…… 여관주인이라고요?

        그런 다우림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한 늑대 인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 뭐, 우리를 덮치려던 것은 아니고, 그냥 자기 여관에 묵으라는 호객 행위였다네요.

       

        “여관주인이 직접 호객 행위를 하나요?”

       

        보통 여관이 호객 행위도 하던가?

        다우림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이곳이 다른 차원이라고 할 수 있는 EX랭크 게이트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판타지 소설에서 보면 여관도 호객 행위를 하고는 했다. 대충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다우림은 그렇게 납득했지만…….

       

        = 이놈 여관에 한 번도 손님이 온 적이 없었거든요.

       

        “음음…… 네?”

       

        ……현실은 상상보다 더했다.

       

        = 뭐, 여관이라는 것이 외지인들이 임시로 묵는 숙소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외부인이 들어왔어야 말이죠.

       

        “아…….”

       

        “…….”

       

        다우림과 경호 헌터는 안타까운 얼굴로 벨렘이라는 이름의 슬라임을 바라보았다.

        딱하고 안타까운 자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직종 선택을 잘못해버린 슬라임.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