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9

        용병 길드에서 벗어나 돌아가는 길.

        레이지가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마스코트라는 직책…… 진짜 안 바꿀 거야?”

       

        “그렇다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전투 요원이나 서브 오퍼레이터, 행정관…… 다 있잖아. 왜 하필이면 그건데?”

       

        레이지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머리가 매우 아프다는 듯,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농담으로 알아듣지 않겠느냐?”

       

        “대신 내가 사회적으로 매장 당한다고.”

       

        레이지가 우는 목소리로 내 말에 대답했다.

       

        “거기서 날 바라보는 사람들 눈초리가 꼭 쓰레기를 바라보는 것 같았잖아.”

       

        “……그랬나?”

       

        그러고 보니 인간들이 어딘가 혐오의 감정을 담은 눈초리로 레이지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적의의 감정도 약간 섞여 있었지만, 우리에게 해가 될 것 같은 기색은 없어서 그냥 무시했지만 말이다.

       

        “……이걸로 이 콜로니에서도 난 어린 소녀를 마스코트 취급하면서 애인으로 데리고 다니는 쓰레기가 되겠군.”

       

        “???”

       

        레이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딘가 공허한 목소리였다.

       

       

        *            *            *

       

       

        – 엌ㅋㅋㅋㅋㅋ

        – 이건 라나님이 잘못했닼ㅋㅋㅋ

        – ㄹㅇ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앜ㅋㅋㅋㅋㅋ

        – ㅋㅋㅋ

       

        “그때 레이지가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지.”

       

        솔직히 그때는 아직 인간에 대한 경험이 좀 부족했다.

        아무리 내가 전생에 인간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의 나는 드래곤으로서의 삶을 몇천 년이나 보내온 상태였다.

        그 덕분에 나는 인간으로서의 시선과 감각에 익숙지 않았고, 의도치 않게 레이지에게 수치를 주게 된 것이다.

       

        누구는 궁금해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의 인생을 보냈었는데,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시선을 잊어버릴 수가 있냐고 말이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30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 인간의 인생과, 몇천 년의 시간을 보낸 드래곤의 삶.

        아무리 인간으로서의 삶이 첫 번째 삶이었다고 한들, 드래곤으로서의 삶이 압도적으로 긴데 어떻게 인간일 적의 기억을 온존하겠냐고 말이다.

       

        “뭐, 그래도 마스코트 노릇을 하는 것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 이 드래곤! 자백했어!

        – 엌ㅋㅋㅋ

        – 재미있었다고 인정했닼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그래. 인정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만약 내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를 마스코트라고 자칭하고 다녔을 것이다.

        왜냐하면 곤란해하는 레이지를 보는 것이 재미있었으니까.

       

        – 우와! 악취미!

        – 악취미다!

        – 라나님이 꼬맹이 괴롭힌다!

        – 이것이 바로 드래곤의 고로시?

        – ㅎㄷㄷ

        – 어린애한테 장난쳐서 좋으시겠어요?

       

        “그럼! 재미있고말고.”

       

        내가 비록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장난은 언제 해도 재미있더라.

        그 슈르네의 엄마가 바로 나라고?

       

       그리고 내가 장난친다고 해서 너희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너희들은 얌전히 내 이야기에 귀만 기울이면 된다!

       

        – 우우우우!!

        – 폭군!

        – 폭군은 물러가라!

        – 우우우우우우!!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까?”

       

        – 충성충성! ^^7

        – ^^7

        – ^^7

        –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 충성!

        – ^^7

       

        쯧쯧쯧. 욕망에 약한 인간 주제에 어딜 감히 나에게 덤볐을꼬.

       

        내가 이래 봬도 인간들의 욕망을 많이 겪어본 몸이다.

        내 본체가 몸에 걸친 용금이 워낙에 황금과 닮아 있다 보니, 내 본체를 목격한 인간들은 거의 예외 없이 욕망에 빠지고는 했으니까.

        물론 대부분은 내 기세에 눌려서 도망쳤지만, 그중에선 공포를 이겨 내고 욕망에 몸을 맡기는 이들도 있었다.

        ……그 용기를 생존본능을 이기는 데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싶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나는 인간의 욕망에 상당히 민감했다.

        그래서 인간들의 욕망을 다루는 법에도 제법 정통하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반란 분자들(?)도 진압했겠다.

       

        “그럼 계속 이야기를 하마.”

       

        나는 이야기를 계속하기 시작했다.

       

       

        *            *            *

       

       

        용병선으로 돌아오고, 소모된 물자를 보충하며 휴식을 취하던 어느 날이었다.

        우주선의 기관실에서 중앙 엔진을 살피던 제인이 중얼거렸다.

       

        “이 우주선은 진짜 신기하다니까.”

       

        검댕을 얼굴에 묻힌 채 엔진을 점검하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거 알아 라나? 이 배의 엔진 말이야. 기묘할 정도로 멀쩡하단 말이지?”

       

        “음음.”

       

        평소처럼 휴게실에서 멍때리고 있다가 제인에게 붙들려서 기관실로 온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인은 중앙 엔진을 만지며 말을 이었다.

       

        “보통 우주선의 엔진으로 사용되는 강척력 엔진은, 한 번 작동 후엔 완전히 걸레짝이 되는 경우가 허다해.”

       

        강척력 엔진.

        이름 그대로 강력한 ‘척력’을 발생시키는 장치를 일컫는 말이다.

       

        광활한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데 대량의 고체 연료를 실어야 하는 초기의 로켓 엔진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엔진을 점화시킬 연료는 물론이고, 연료를 태우는 데 사용될 산소까지 싣고 다니는 엔진이 얼마나 효율적이지 못한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현재 이 우주에서 날아다니는 우주선에는 모두 ‘강척력 엔진’이라는 장치가 사용되고, 당연히 내 본체…… 아니, 우리 용병선에도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 강척력 엔진은, 그 효율성만큼 다루기가 무척 까다로운 물건이다.

       

        “물론 진짜로 걸레짝이 되지는 않지만, 그 정도로 험악한 물건이라는 소리지.”

       

        통통!

       

        강척력 엔진을 다룰 수 있는 엘리트 엔지니어인 제인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중앙 엔진을 두드렸다.

       

        “그런데 이 우주선의 엔진은, 정말 이상할 정도로 멀쩡하단 말이지…….”

       

        “…….”

       

        그야 여기 있는 엔진들은 보여주기식 물건들이니까 그렇다.

        진짜 엔진은 에코가 따로 관리 중이고, 이상이 생겨도 내 금속 지배력으로 금방금방 수리할 수…… 아니, 애초에 고장 자체를 내지 않기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우주선이 사실은 드래곤이라는 것을 모르는 크루들에게 그런 사정을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레이지와 상의를 해서 가짜 엔진을 기관실에 놓아둔 것이다.

        당연히 사용된 적이 거의 없으니 생각보다 멀쩡할 수밖에.

       

        ‘그래도 매번 일부러 조금씩 망가뜨리고 있었는데…….’

       

        그걸 눈치채다니. 역시 제인은 실력이 좋은 엔지니어인 것 같다.

        눈앞의 내가 범인인 것을 모르는 제인은 여전히 의아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게다가 이상한 게, 가끔 엔진 수리하다가 바닥에 귀를 대면,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단 말이지.”

       

        “호오. 그렇구나.”

       

        “진짜라니까?”

       

        제인이 굳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검댕이 묻은 얼굴을 나에게 가까이 대더니,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가끔 엔진 소리에 묻혀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강척력 엔진과 각종 기계들의 소음. 그리고 방음 장치에 의해 거의 들리지 않지만…….

       

        “뭔가 쿵! 쿵! 쿵!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

       

        어, 그거…… 아마 내 본체의 심장 소리가 아닐까 싶은데?

        아무리 내가 초월자가 되었다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생물인 이상 심장이 안 뛸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각종 기계들의 소음과 방음벽으로 가려져서 듣는 사람은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대단하구나 제인?

       

        “이 우주선. 뭔가 수상해.”

       

        “…….”

       

        “크기는 중형인데, 정작 우리가 돌아다니는 공간은 소형 우주선 정도밖에 안 되는 거 알고 있어?”

       

        “…….”

       

        알고 있지.

        그야 이 우주선의 절반 정도는 내 본체가 차지하고 있으니까.

        아무리 내가 우주선인 척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 몸 안에 인간을 집어넣을 수는 없지 않나.

       

        물론 이것들을 밝힐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과자를 집어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운 일이로구나.”

       

        “……너, 안 믿지?”

       

        어라? 나름 열심히 호응해 준 건데?

       

       

        *            *            *

       

       

        삐진 제인을 달래주기 위해 하루 동안 그녀의 옷 갈아입히기 인형이 되어 준 이튿날.

        레이지는 크루들을 불러 모았다.

       

        “무슨 일이야… 캡틴?”

       

        “새로운 의뢰다.”

       

        레이지가 홀로그램으로 띄운 의뢰의 내용을 일행의 앞에 보여 주었다.

       

        “의뢰주는 트리미아 성계들을 전부 영지로 가지고 있는 리벨롭 백작이야.”

       

        현재 우리가 머무는 ‘제 3번 트리미아 성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성계의 근처에는 ‘제 1번’, ‘제 2번’과 같이 ‘트리미아’라는 이름을 함께 사용하는 성계가 적어도 4개는 더 존재한다.

        그리고 알리네시아 제국에게서 그 트리미아 성계들을 전부 영지로 허락받은 가문이 바로 리벨롭 백작가다.

        즉, 이 리벨롭 백작가라는 가문은 행성계를 적어도 5개는 소유하는 어마어마한 가문이라는 뜻이다.

        ……뭐, 나도 들은 이야기지만 말이다.

       

        “어마어마한 의뢰주잖아?!”

       

        = 만만치 않은 의뢰가 될 것 같군요.

       

        아놀드와 필립이 각각 혀를 내두른다.

        그야 기업이 내거는 의뢰, 혹은 우주 해적을 퇴치하는 의뢰와는 달리 귀족이 용병에게 하는 의뢰는 그 내용이 상당히 난해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경험이 많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캡틴. 이제 골드 랭킹도 달았는데, 굳이 이런 의뢰를 받아야 해?”

       

        아놀드가 헬쑥한 얼굴로 물었다.

        레이지가 단 1년 만에 골드 랭킹을 달게 된 비결이자, 이젠 익숙하다 못해 질릴 지경이 된 귀족들의 지명 의뢰.

        또다시 골치 아프게 될 것을 예감한 아놀드의 불평에, 레이지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일단 들어 보고 결정하는 게 어때?”

       

        “……그래.”

       

        들어는 주겠다는 듯 팔짱을 끼는 아놀드.

        그의 덩치와 근육이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지만 정작 그의 옆에 놓여져 있는 캐릭터 베개 때문에 그 긴장감이 희석된다.

        저걸 뭐라고 하더라? 다키…… 다키마쿠라였던가?

       

        “이번 의뢰는 호위 의뢰야.”

       

        띠링!

       

        내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레이지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호위 대상을 픽업하기 위해 제 3번 트리미아 – 2 행성에 들린 후, 목표물을 확보.”

       

        홀로그램 지도를 손가락을 하나하나씩 짚으며 레이지가 설명한다.

        그의 능수능란한 설명에, 처음에는 질색한 표정을 짓던 크루들의 얼굴이 점점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해서 레지아 성계의 레지아 – 3 행성에 목표물을 데려다주면 이번 의뢰는 끝이지.”

       

        마침내 레이지의 설명이 끝났을 때, 크루들의 얼굴 표정은 상당히 풀려 있었다.

        그야 레이지의 설명대로라면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 데다, 딱히 위험물을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뢰금이 낮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뭐, 그 정도면 괜찮겠네.”

       

        “캡틴이 잘했겠지.”

       

        “저, 저는 캡틴을 믿어요!”

       

        아놀드와 제인, 그리고 에이미는 이미 레이지의 화술에 넘어간 모양이다.

        그나마 안드로이드인 필립이 뭔가 의문점을 느낀 모양이었지만…….

       

        = 잠깐만요 캡틴. 방금 이야기에서…….

       

        “그러고 보니 레지아 성계는 안드로이드 산업이 제법 부흥한 성계라지 아마?”

       

        = ……괜찮게 들리는군요. 전 찬성입니다.

       

        결국 안드로이드마저 인간의 화술에 넘어갔다.

       

        “…….”

       

        나는 과자를 집어 먹으며, 레이지의 화술에 넘어간 안타까운 크루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일의 모든 전말을 알고 있는 자로서, 그들의 앞날에 심심한 위로를 표하기로 했다.

        너희의 앞날에 치얼스…….

       

        와삭!

       

        “……이 과자는 괜찮군.”

       

        이 합성 과자의 레시피는 따로 알아봐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리더의 능력(풍둔 주둥아리술)을 마음껏 뽐내는 캡틴.

    그리고 그걸 구경하는 드래곤님.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