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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호주의 EX랭크 게이트는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EX랭크 게이트를 포함해 호주 대륙의 한가운데가 통째로 사라졌다’라고 해야 한다.

       

        본래 호주 대륙은 바다에 인접한 땅이 상대적으로 비옥하고, 대륙의 한가운데에는 사막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사막을 포함한 호주 대륙의 한가운데가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맙소사…….”

       

        “오! 신이시여!”

       

        “허어어…….”

       

        멸천룡과 아그라다의 주인이 부딪친 여파였다.

        결계로 감쌌던 범위의 모든 것들이 소멸했다.

        덕분에 호주 대륙의 한가운데가 마치 스푼으로 퍼낸 것처럼 움푹 파였다.

       

        호주 대륙의 내륙 부분이 사막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장소가 사막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호주의 주요 산업 중 하나인 목장이 존재하던 지역인 만큼, 이번 일로 호주가 겪은 손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지경이었다.

       

        “무시무시하네.”

       

        이현은 다른 의미로 황량해진 땅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블레이즈가 초월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조금 미심쩍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초월자에는 필멸자의 격만 뛰어넘은 ‘데미갓’과 진정한 초월을 이루어낸 ‘오리진 갓’이 있다느니.

        진정한 초월자는 우주 단위의 힘을 쓸 수 있다느니.

        자기 진정한 힘을 꺼내놓으면 지구도 부술 수 있다느니 같은 이야기들.

       

        백익룡의 힘이 강대하다는 것은 이현 본인이 가장 잘 알았지만, 솔직히 저 이야기의 절반쯤은 허풍인 줄 알았다.

        지구를 부수는 정도는 안 되고, 지구를 반파시킬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지.’

       

        오히려 블레이즈가 상당히 축소해서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두 초월자의 싸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왜 초월자를 크툴루 신화의 외신들에 비유했는지 이해가 되었어.’

       

        이현은 이전에 보았던 멸천룡의 방송을 떠올렸다.

        그때 멸천룡은 초월자들을 일컬어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보는 것만으로도 광기에 미쳐 버리는 외신들과 같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번에 본 멸천룡은…… 정말로 그 말에 딱 알맞은 모습이었다.

       

        비록 결계에 의해 일부 가려졌었고, 블레이즈가 다시 한번 더 지켜 준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지만…… 멸천룡과 아그라다의 주인의 싸움은 감히 인간의 정신으로는 바라볼 수조차 없었던 그런 싸움이었다.

        그런데 그 싸움조차 자신들의 진정한 힘을 꺼내놓고 싸운 것이 아니었다니…….

       

        쩌저저저적!

       

        “?!”

       

        “저, 저건?!”

       

        “공간 균열 확인!”

       

        “으아악!”

       

        그 순간 호주 대륙의 상공에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공간이 갈라지고, 깨지고, 이어서 거대한 에너지가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모든 인간이 황급히 대피하며 전투 태세를 갖추기 시작할 때…….

       

        슈우웅~!

       

        = 흠.

       

        공간의 균열 속에서 황금으로 몸을 뒤덮은 거체(실제로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가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자기 몸에 용금을 두른 멸천룡이다.

       

        쿠우우웅!

       

        호주 대륙에 착륙한 멸천룡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벽하게 소멸해 버린 대륙의 모습에, 입에 물고 있던 ‘우르스 올베인의 머리’를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 이런……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건만…….

       

        뭐, 초월자끼리 싸웠는데 이 정도 피해라면 사실 굉장히 양호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멸천룡은 이 정도의 피해조차 피하려고 했을 뿐이다.

       

        혀를 차며 호주 대륙을 툭툭 건드리던 그녀의 몸에서 용금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이번에 잡아먹은 우르스 올베인과 항성 하나분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용금에 흡수되고, 그렇게 흡수된 용금은 자기 질량을 불려 나가기 시작한다.

       

        쿠드득!

       

        철퍽!

       

        초-거대한 스푼으로 퍼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던 호주의 땅이, 순식간에 용금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피, 피해라!”

       

        “으악!”

       

        “물러서!”

       

        갑작스러운 사태에 사람들이 대피하는 동안에도 멸천룡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용금이 파였던 땅을 완전히 채웠을 때였다.

       

        = 흠…… 완전히 본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겠으나, 비슷하게는 가능하겠지.

       

        용금이 채워진 땅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린 멸천룡의 지배력이 호주의 땅을 뒤덮기 시작했다.

        동시에 대지에 채워진 용금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액체처럼 출렁거리는 용금이, 천천히 그 성질을 뒤바꾸기 시작했다.

        가장 깊은 곳의 용금은 단단한 암석으로, 위로 갈수록 무른 암석으로, 마침내 흙으로…….

        두 초월자의 싸움으로 인해 소멸했던 호주 대륙이 본래의 형태로 복구되기 시작했다.

       

        “?!”

       

        “맙소사…….”

       

        비록 호주 대륙에서 서식했을 식생까지 되돌릴 수는 없었으나, 그 식생이 살았던 토대만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그렇게 호주 대륙의 모습을 거의 원래의 형태로 되돌린 멸천룡이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인간들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이현에게 닿았다.

       

        = 아이야.

       

        “……네? 네?! 저, 저요?”

       

        = 그래.

       

        이현이 땀을 뻘뻘 흘리며 멸천룡에게 다가 갔다.

        멸천룡은 자신에게 다가온 이현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 훌륭하구나.

       

        “네?”

       

        이 드래곤이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이현은 무례하게도 그런 생각해버리고 말았지만, 멸천룡은 흐뭇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 그동안 육체를 단련하는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구나.

       

        “아…….”

       

        그제야 이현의 머릿속에 과거의 일이 스쳐 지나갔다.

        반쯤은…… 아니, 한 90% 가까이 블레이즈놈의 짓이었긴 했지만, 멸천룡이 자기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게 된 일이 있었다.

        그때 멸천룡이 사과하며, 그 대가로 자신이 들어 줄 수 있는 소원 하나를 들어 주겠노라고 했다.

        이현은 그 소원으로 자신을 강하게 단련해 달라고 했고, 멸천룡은 그를 자기 게이트로 데려갔었다.

       

        ‘그리고 고생했지…….’

       

        이현은 그때 ‘인간의 몸을 이렇게도 조질 수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로 별의별 방법으로 조지더라.

       

        어쨌든 그 이후로도 이현은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멸천룡의 게이트에 들어가서 단련하고 있었다.

        힘든 것은 힘든 것이고, 단련 자체는 확실했으니까.

        멸천룡은 바로 그런 이현의 노력을 보고 칭찬하고 있는 것이었다.

       

        = 훌륭하다.

       

        “아하하. 아닙니다.”

       

        스스로 불러 온 재앙이긴 했지만, 그래도 자기 노력을 누군가가 알아봐 준다는 것은 기분 좋은 경험이다.

        비록 상대가 인간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아들 친구를 바라보는(사실 틀린 소리는 아니다) 시선으로 이현을 바라보던 멸천룡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쪽을 지켜보는 수많은 인간들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 땅은 본래와 비슷하게 복구해 놓았단다.

       

        “아, 네.”

       

        = 허나 이곳에 살았던 생물들 만큼은 어찌하지 못했구나.

       

        멸천룡은 참으로 안타깝다는 감정을 담아 말했다.

        사실상 그녀가 호주의 환경을 신경 쓸 이유가 없었음에도, 오히려 그녀는 호주를 구원한 존재로서 찬사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음에도.

        멸천룡은 미안해하고 있었다.

       

        = 그 수많은 먹잇감들은 어찌할 수가 없구나.

       

        “……네?”

       

        뭐요? 먹잇감요?

        이현은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멸천룡이 무엇 때문에 저렇게 미안해하는지 이해해 버렸다.

       

        드래곤과 인간의 개념이 조금 달라서 설명하기 어렵지만…… 말하자면 이거다.

        멸천룡은 호주의 땅을 호주 사람들의 ‘사냥터’ 혹은 ‘농장’이라는 개념으로 보고 있었고, 자신 때문에 호주 사람들이 쫄쫄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인간식으로 말하자면, 남의 집 냉장고를 자기 실수로 고장냈다고 해야 하나?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닌데…….’

       

        그래도 뭔가가 다른 데…….

        아무튼 다른 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이현이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을 때, 멸천룡은 슬픈 얼굴로 호주의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 수많은 아이들이 굶어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

       

        아뇨…… 그러지는 않을 걸요? 아마?

        이현은 조용히 입을 다물기로 했다.

       

       

        *            *            *

       

       

        드래곤인 멸천룡 본체가 호주에서 인간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을 때.

        한국에서 합방을 진행 중이던 방송인 라그나는 말을 끝마치고 있었다.

       

        “음?”

       

        – 미친.

        – 자기 싸움을 생 중계하는 방송인이 있다?

        – 엌ㅋㅋㅋㅋ

        – 오늘 방송 레전드넼ㅋㅋㅋㅋ

        – 방송 수준이 아닌뎈ㅋㅋㅋㅋㅋㅋㅋ

       

        라그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채팅창에 보여지는 인간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살랑미미와 최강물소에게 물었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느냐?”

       

        “…….”

       

        “…….”

       

        실수는 아닌데…… 실수 맞나?

        둘은 혼란에 빠졌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갑자기 세계에 울린 어떤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들린 직후.

        분노한 표정이 된 라그나는 입을 열었다.

       

        “건방진 놈이로구나.”

       

        솔직히 그때 살랑미미와 최강물소는 바지에 지리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방송인 라그나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마치 자신들의 바로 옆에 호랑이가 앉아서 으르렁거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방송 분위기가 얼어붙고, 방송인들과 시청자들 모두가 라그나의 눈치만 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컴퓨터를 조작하던 라그나가 어떤 영상을 틀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방송 소재로나 써야겠구나.”

       

        “???”

       

        “???”

       

        – ?

        – ??

        – ?

        – ?

        – 뭘요?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든 이들이 ‘?’만 띄울 때였다.

        컴퓨터 화면 위로 두 존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뉴스에서나 보는 흐릿하고 작은 영상이 아닌, 마치 바로 옆에서 직관하는 것 같은 크고 자세한 영상이 말이다.

       

        – 아니 잠깐.

        – 설마?

        – 미친?!

        – 엌ㅋㅋㅋㅋㅋㅋ

       

        바로 멸천룡과 아그라다의 주인의 싸움 영상이었다.

        본체가 초월자와 싸우러 떠날 때, 그녀의 아바타는 그것조차도 방송 소재로 써먹은 것이었다!!

       

        그 이후에는 말이 필요 없었다.

        라그나는 마치 축구 경기의 해설자처럼 본체의 싸움을 지켜보며 설명해주었고, 살랑미미와 최강물소는 옆에서 추임새를 넣고, 간간이 감탄사만 내뱉는 리액션 머신으로 둔갑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팝콘을 뜯었다.

       

        마침내 모든 싸움이 끝나고.

        몇천 광년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영역의 싸움은 영상 중계가 아닌, 설명으로 대신한 라그나가 중얼거렸다.

       

        “음! 다음에도 이런 방송해보는 것도 좋겠구나.”

       

        “…….”

       

        “…….”

       

       

        이것이 사건의 전말이었고, 두 방송인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라그나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보고 싶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방송 소재 낭낭하게 챙겼으나, 합방 동료의 정신력까지 챙기지 못한 드래곤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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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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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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