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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쿵!

       

        평소 먹이를 먹어 치우는 곳에서 식사한 후 내 거처로 되돌아온다.

        내 거처는 높은 산 중턱에 위치한 천연 동굴이다.

        주위가 높은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날개가 달린 존재가 아니라면 쉽게 접근할 수 없고, 접근하는 존재를 쉽게 파악하기에도 용의한 곳이다.

       

        ‘당분간은 느긋하게 지내도 괜찮겠군.’

       

        얼마 전에 성공적으로 진화시키는 데 성공한 3번째 위에 음식물을 잔뜩 저장했다.

        덕분에 사냥에 성공하지 못해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뭐, 열량이 높은 먹이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본래 노렸던 진화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라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나의 거처로 들어선다.

       

        곳곳에 내 몸에서 흘러나온 독이 찐득하게 묻어 있고, 몇 곳에서는 독성 곰팡이와 독성 버섯이 피어나 있다.

        이곳이 바로 나의 둥지다.

        처음에는 내 몸에서 새어 나온 독에 더러워지는 둥지가 거슬렸지만, 이제 와서는 상당히 마음에 드는 둥지다.

        이 독기 때문에 어지간한 놈들은 다가오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여름에 날벌레가 날아다니지도 않고 말이다.

       

        쿵! 쿵! 쿵!

       

        ‘음?’

       

        그 순간 멀리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날개 달린 존재가 아니라면 오기 힘든 이곳으로 굳이 걸어서 올 존재라면…….

       

        ‘설마?’

       

        이제부터 푹 잘 생각이었던 나는 얼굴을 구기며 거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거대한 존재를 볼 수 있었다.

       

        쿵! 쿵! 쿵!

       

        푸릉!

       

        그것은 거대한 철 덩어리였다.

        아니, 정확히는 ‘금속을 몸에 두른 드래곤’이었다.

       

        하늘을 날기 위해 뼈의 속을 비워내고, 몸 크기를 최대한 줄이고, 몸의 무게를 할 수 있는 한도로 덜어낸 나와는 달리 거대한 몸체를 가진 드래곤.

        나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한 몸체를 가진 드래곤이 가파른 능선을 오르고 있었다.

       

        ‘저놈이군.’

       

        최근 신경 쓰고 있는 놈이다.

        내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후, 산 아래에서 날 발견한 이후로 틈만 나면 나를 노려보곤 하던 놈이다.

        그것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의 눈빛과도 같았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내 거처에 다가오려고 여러 번 시도를 하고는 했다.

        물론 성공한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좋지 않군.’

       

        아무리 최대한 완만한 경사를 타고 오르고 있다고는 하지만 저만한 덩치와 무게로 절벽에 가까운 경사를 오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전의 육지 거북이를 닮은 외형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저놈은 손쉽게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분명 그것과 관련된 진화를 한 것일 터.

       

        ‘그렇게 나를 잡아먹고 싶었나?’

       

        왜 사냥하기 쉬운 곳에 있는 먹잇감을 놔두고 나에게 집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라고 쉽게 당할 생각은 없다.

       

        콰드득!

       

        꾸득!

       

        풀려 있던 근육을 긴장시키며 전투태세를 갖춘다.

        독샘을 활성화시키고, 접어두었던 날개를 펼치고, 비늘을 곧추세운다.

        그리고 녀석을 향해 이빨을 보인다.

       

        캬아아아악!!

       

        내가 저놈에게 보내는 경고.

        더 이상 다가오면 좋지 못한 경험을 하게 해주겠다는 신호.

       

        ‘온몸에 철을 두른 놈이야. 그렇다면 일반적인 독과 포자로는 소용이 없어. 사용한다면 부식독.’

       

        독샘이 움직이며 적절한 독을 제조하기 시작한다.

        다만 부식독은 나에게도 피해가 올 수 있는 독이기에 장기전은 불가하다.

        그러니 할 거라면 단기전.

       

        쿵!

       

        부스스스스…….

       

        그러는 사이 놈이 완전히 올라섰다.

        바로 앞에서 보는 놈의 크기는 내 예상보다 더욱 컸다.

        체급으로는 완전히 내가 불리한 상황.

       

        하아아악!!!

       

        ‘여차하면 바로 날아올라야 한다.’

       

        하지만 내 신체 구조상 곧바로 날아오르는 것은 힘들다.

        차라리 미리 날아오를 것을 그랬나?

        아니, 나는 날기 위해서 몸을 극단적으로 경량화했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날 수 있는 신체 내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리 날아올랐다가는 내가 먼저 지쳤을 것이다.

       

        푸릉!

       

        캬아아악!

       

        놈이 나를 날카로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나는 뒷걸음질 치며 계속 이빨을 보인다.

        가능하다면 놈이 돌아가 주는 것이 최고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

       

        ‘다행히 환경은 나에게 유리하다.’

       

        내 둥지는 오랫동안 나에게서 흘러나온 독에 의해 오염된 상태다.

        대지와 식물은 물론이고, 공기 중에도 독성이 퍼져 있다.

        저놈이 아무리 튼튼한 몸을 지니고 있더라도, 호흡기로 호흡을 하는 이상 독성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을 터.

       

        ‘덤빌 테면 덤벼라!’

       

        그렇게 경계심을 최고로 올릴 때였다.

       

        푸르릉!

       

        드드드득!

       

        캬악?!

       

        놈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젖은 털을 털어내듯 몸을 부르르 떨고, 몸을 흔드는 놈.

        동시에 네 다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몸을 움직인다.

       

        ‘…….’

       

        뭐지? 내가 모르는 공격 방식인가?

        혹시나 몸을 털어서 비늘 사이에 숨겨둔 독을 퍼뜨린다든지, 아니면 포자를 퍼뜨린다든지 같은 공격 방식이 아닐까 의심된다.

       

        하지만 나는 독룡.

        자화자찬하는 것 같지만, 독에 관해서는 스페셜리스트라고 자신한다.

        그야 나 스스로 수많은 독과 화학, 그리고 포자에 대해 연구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내가 볼 때, 독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덩실덩실~!

       

        계속해서 주위를 경계하며 놈을 노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놈은 계속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며 나를 노려본다.

        두 눈에 핏줄이 설 정도로 나를 노려보며, 숨소리는 점차 거칠어져 간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군.’

       

        녀석의 움직임이 ‘공격’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 후 내가 한 일은 간단했다.

       

        캬아아아아악!!

       

        ‘꺼져!!’

       

        크우어어어엉!!

       

        그날 나는 놈을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            *            *

       

       

        – 어…….

        – 왠지 느낌이 좀.

        – 라나님. 혹시나 하는데요…….

        – 그 드래곤 설마 아니죠?

        – 엌ㅋㅋㅋㅋ

        – ㅋㅋㅋ

        –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죠?

       

        채팅창이 이상하다.

        뭐랄까…… 내 눈치를 보는 것 같달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말했다.

       

        “그게 내 남편과의 정식적인 첫 대면이었단다.”

       

        – 맞았네!!!

        – 엌ㅋㅋㅋㅋㅋㅋㅋ

        – 아니 무슨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무슨 야생의 신비 찍으세욬ㅋㅋㅋㅋ?

        – 아니, 남편분은 왜 오셨대요?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때 남편은 구애의 춤을 추었더구나.”

       

        – 엌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이 ‘ㅋㅋㅋ’로 가득하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조금 짜증나지만, 솔직히 그때의 내 행동은 비웃음 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해도 눈치가 없었으니까.

       

        “변명을 하자면, 그 당시의 나는 여유가 없었단다. 주위에 날 잡아먹을 수 있는 포식자가 즐비했거든.”

       

        그 당시의 나는 최고 포식자가 아닌, 중간 포식자 정도에 위치한 존재였다.

        세상에는 갓 성인이 된 드래곤을 잡아먹을 수 있는 존재가 수없이 많았고, 단순히 먹잇감이라고 생각했던 존재도 경우에 따라서는 충분히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게다가 뇌에 기생하는 기생충도 조심해야 했고, 질병도 조심해야 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생존의 연속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짝짓기를 할 생각 따위가 일어날리 없었다.

       

        게다가 그때는 지금보다도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좀 더 짙었던 때였다.

        인간의 정신으로 이형의 괴물과 짝짓기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뭐, 미숙했던 시절이었단다.”

       

        지금 생각해도 참 부끄러웠던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래도 떠올려 보면 부끄러운 그런 기억이랄까?

       

        “뭐, 그래도 다행히 내 남편은 그런 사나운 나를 포기하지 않았단다.”

       

        나에게 호되게 당해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다시피 쫓겨났던 남편이었지만, 그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꾸준히 나를 찾아 산을 올랐던 것이다.

       

       

        *            *            *

       

       

        나는 또다시 산에 올라온 놈을 노려보았다.

        이번이 벌써 6번째인가?

       

        ‘귀찮은 놈!’

       

        캬아아악!!

       

        저놈을 쫓아내기 위해 조합한 특제 부식독을 뿌린다.

        나의 독에 닿은 녀석의 철갑옷이 연기를 내며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푸릉!

       

        하지만 녀석은 자기 철갑옷이 부식되든 말든, 이번에도 그 기묘한 몸 털기를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짐승의 생리를 잘 모른다지만, 이쯤 되면 저놈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행동하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저놈은 나에게 구애의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우웨에엑!!’

       

        선명하게 느껴지는 페로몬 냄새에 분노가 일어난다.

        저 거대한 몸에 가려지지만, 몸을 들썩일 때마다 힐끔 보이는 수컷의 생식기에 혈압이 상승한다.

        감히…… 감히 저 개XX 새X가 뭘 해? 나에게 뭘 하고 싶다고?!

       

        ‘죽인다. 죽여 버릴 거야.’

       

        캬아아아아아악!!

       

        감히 나에게 박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 놈에게 달려들어 가지고 있는 모든 독을 흩뿌린다.

        그리고 목숨을 도외시하고 놈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아무리 내가 지금은 드래곤이 되었다지만, 나는 엄연히 인간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짐승 따위에게 박히고 싶어 할리가 없다!!

       

        ‘죽어어어어어어어!!’

       

        캬아아아아아아아악!!!!!

       

        이딴 놈에게 박힐 바에는,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놈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의 정조(?)를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            *            *

       

       

        내 전생 이야기를 제외하고 내가 남편을 쫓아냈던 상황을 이야기해 준다.

        내 이야기를 듣던 시청자들이 의문을 표했다.

       

        –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뭔가 굉장히 난폭하시네요?

        – ㅇㅇ

        – 뭔가 난폭하셨네요?

        – 좀 난폭하신 것처럼 들리는데요?

        – ㄹㅇㅋㅋ

       

        “아, 그 당시의 나는 상당히 난폭했단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가 생존의 연속이었고, 주변의 모든 것들은 나의 목숨을 노릴 수 있는 비수였다.

        깨끗하게 보이는 물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내 목숨을 노리는 포식자가 튀어나올까봐 조마조마했다.

        사냥할 때도 나를 노리는 다른 포식자가 있지 않을지 언제나 경계했다.

        내 둥지에서 잠을 잘 때도 포식자가 습격할까 봐 깊은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그때의 나는 모든 것들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고는 했단다.”

       

        내가 그 당시의 남편에게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근본적으로 외부의 모든 것들을 믿지 못했었다.

       

        – 의외네요.

        – 그렇긴 하네요.

        – 신기하네.

        – 힘드셨겠어요.

        – ㅠㅠ

       

        “뭐, 한창때의 이야기란다.”

       

        이미 지나간 일이기도 하고, 지금은 좋은 추억이 된 기억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런 사소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던가?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내가 아무리 날카롭게 반응하더라도 남편은 나에게 구애하기를 멈추지 않았단다.”

       

        때로는 먹이를 가져와 나에게 선물하기도 했고, 때로는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의 원석을 가져와 선물로 주기도 했다.

        어느 때는 몸을 낮추어 나와 눈높이를 맞추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 지극 정성이네요.

        – 와…… 진짜 지극정성이네.

        – 찐사랑이었네요.

        – ㅇㅇ

        – 와씨…… 부럽다.

       

        “후후후. 참 미련할 정도로 일편단심이었던 이였지.”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런 남편의 구애를 모두 거절했다.

        그가 가져온 먹이는 독에 절인 채 버렸고, 그가 가져온 보석 원석도 부수어 버렸다.

        그리고 그가 몸을 낮추었을 때는 독을 뿌려 그의 한쪽 눈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 어우.

        – 그건 좀…….

        – 나라면 바로 정나미 떨어졌을 듯?

        – ㅇㅇ

        – 이건 라나님이 잘못했네.

       

        “…….”

       

        ……나도 안다 이것들아.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시청자들의 말대로 내 잘못이 맞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괜히 이야기했나?’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했다.

       

        “일이 일어난 것은 20번째로 찾아온 남편을 쫓아냈을 때였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은 기회가 되는 대로 해보겠습니다.

    열심히 해볼게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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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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