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2

        끼이잉!

       

        겁먹은 개와 같은 소리를 내며 철룡이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이번이…… 벌써 20번째 정도 되나?

       

        ‘끈질긴 놈.’

       

        이 정도로 매몰차게 굴었으면 슬슬 포기할 때도 되었으련만, 왜 아직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지 의아할 정도다.

        짐승이라면 좀 더 조건이 괜찮은 암컷을 찾아가도 되지 않나?

       

        ‘그래도 이번에 쫓아냈으니, 당분간 오지 않겠지.’

       

        하도 나를 귀찮게 해서, 이번 기회에 이 주위에 호흡기로 감염되는 독성 식물을 잔뜩 옮겨 심어두었다.

        아무리 저놈이 철갑옷을 둘러 입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독성 식물을 심어두었다면 어쩔 수 없겠지?

        놈이라고 하더라도 숨을 아예 쉬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

       

        ‘사냥이나 가야겠군.’

       

        펄럭!

       

        천천히 날갯짓하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아무리 몸의 무게를 최대한도로 덜어내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무게가 있는 이상 이륙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고 만다.

        그리고 나는 이것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좀 더 빠르게 날아오르고 싶은데…….’

       

        역시 지난번에 가졌었던 ‘브레스 기관’을 퇴화시킨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아니야. 역시 브레스 기관은 나에게 맞지 않다.

       

        ‘브레스 기관’이라는 것은, 내 호흡기에 존재하는 드래곤 브레스를 뿜어낼 수 있는 기관이 달려 있는 또 다른 신체 기관을 말한다.

        나의 경우에는 그 신체 기관을 날개 쪽에 발현시켰었는데, 날개에 생긴 브레스 기관을 이용하면 드래곤 브레스를 이용해 마치 제트기처럼 하늘을 날 수 있게 된다.

        마치 전생에 했었던 게임 속 캐릭터처럼 말이다.

       

        ‘이젠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그것을 이용한다면 하늘에서 나를 따라올 수 있는 존재는 없었겠지.

        하늘에서 난 누구보다 빨랐을 것이고, 지금처럼 이륙을 위해 시간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브레스 기관’을 포기했다.

       

        ‘사용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

       

        드래곤의 브레스는 드래곤의 비장의 무기인 만큼, 한 번 사용하는데 대량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런데 그것을 단순히 비행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인 것이다.

        내가 비행을 선택한 이유는 좀 더 쉽고 안전하게 사냥을 하기 위해서인데, 브레스 기관을 사용하게 되면 비행하기 위해 사냥하게 되어 버린다.

        한 번 비행할 때마다 하루치의 열량을 소모하게 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적절한 고도에 도착한다.

        그리고 높은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날개를 활짝 펼쳐 활공하기 시작한다.

        지상에 가까운 곳에서는 날아오르기 힘들지만, 일정 고도 이상으로 올라오면 이렇게 날개를 펼치는 것으로 활공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에너지 손실을 최소로 줄이면서 오래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을 타며 아래를 내려다본다.

        뛰어난 시력으로 정글 숲을 살피며, 적절한 먹잇감이 있는지 탐색한다.

       

        ‘정글에서는 먹이 탐색이 불편하단 말이지…….’

       

        사실 정글과 같이 나무가 우거진 지형에서 나처럼 고고도 비행 사냥 방식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런 방식의 사냥에서는 기본적으로 목표물을 ‘시각’으로 찾아야 하는데,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는 나무가 시야를 가려서 목표 탐색이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의 주 무기는 ‘독’이다.

        본래 비행이 가능한 포식자는 단숨에 하강해서 목표물의 목을 물어뜯는 방식이 가장 무난하지만…… 나에겐 매나 부엉이처럼 날카롭고 강력한 발톱도, 부리도 없다.

        즉, 지구의 시점에서 보면 나의 방식은 굉장히 비효율적이라는 소리다.

       

        ‘본래라면…… 말이지.’

       

        내가 이런 방식의 드래곤으로 진화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임의로 ‘드래곤’이라고 이름 붙인 이 종족은 인위적으로 자기 DNA를 재구성할 수 있는 특이한 종족이지만, 그 진화의 과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종족이다.

        즉, 인위적인 진화를 일으킬 수는 있지만, 어떤 진화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소리다.

        마치 전생에 했던 가챠 게임 같달까?

       

        게다가 이 드래곤이라는 종족은 하루에 필요로 하는 에너지량이 생각보다 많다.

        그렇기에 나는 지구에서 보았던 매나 부엉이 같은 맹금류와는 달리, 일정 이상의 크기를 가진 고열량의 먹이를 사냥해야만 했다.

        그놈들은 쥐나 토끼만 사냥해도 충분하겠지만, 나는 한 번 사냥할 때 적어도 사슴이나 순록 정도의 먹이를 사냥해야 한단 말이다.

       

        ‘게다가 이곳에 존재하는 다른 포식자들도 만만치 않지.’

       

        걸어 다니는 바위 거인을 본 적이 있는가?

        사냥감을 느긋하게 뜯어먹고 있었는데, 앉아 있던 바위가 갑자기 움직이더니 나를 습격해 온 적이 있는가?

        그때 뭉개졌던 내 뒷다리의 충격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나의 진화 방향은 이렇게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사냥해야 하는 사냥감의 크기도 크고, 그런 사냥감들을 사냥할 때는 포식자들도 조심해야 한다.

        그 왜…… 전생에도 그런 일이 있지 않던가? 아프리카에서 버팔로의(이젠 이름도 가물가물한데, 아마 맞겠지?) 들이받기에 사자가 찔려 죽는 일 말이다.

        나도 많이 당해서 이제는 남 일 같지가 않다.

       

        즉, 지금의 내 진화 방식은 이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궁리한 나의 지혜라는 소리다.

        약간의 비효율을 감수하고, 극한의 안전을 챙긴 형태다.

       

        ‘찾았다!’

       

        그렇게 딴생각하는 사이, 내 시야에 목표물이 걸렸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초식동물의 형태. 나 개인적으로는 ‘맥돼지’라고 부르는 녀석이다.

        전생의 지구에서 보았던 ‘맥’이라는 동물에서, 코만 돼지코로 바뀐 것 같은 형태를 한 짐승인데, 성격이 지랄 맞은 것을 제외하면 번식력과 맷집 밖에 볼 것이 없는 동물이다.

        물론 저 두꺼운 지방 때문에 어지간한 상처는 무시해 버리는 터프한 녀석이지만…….

       

        ‘독에는 별수 없지.’

       

        생김새는 좀 이상하지만, 저래 봬도 고열량의 먹이다.

        덩치도 상당히 크고, 지방층도 아주 두껍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체 수도 많기에 내가 자주 사냥하는 사냥감이기도 하다.

       

        날개의 각도를 조정해 녀석의 상공을 빙빙 돌며 주위를 살핀다.

        사냥감을 발견했다고 무턱대고 사냥에 나서면 안 된다.

        녀석의 주변에 함정은 없는지, 다른 포식자가 있지는 않은지, 빠르게 공격하고 이탈할 수 있는지 등등.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냥감을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한동안 녀석의 위를 빙빙 돌며 관찰한 결과는…….

       

        ‘문제는 없어 보이는군.’

       

        냄새가 고약한 독을 소량 사냥감의 주위에 흩뿌려 보았지만, 딱히 반응하는 다른 포식자는 없었다.

        나처럼 육식을 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거슬리는 종류의 냄새였는데도 불구하고 반응하지 않는다면 다소 안심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럼 사냥에 들어가자.’

       

        내가 흩뿌린 냄새 나는 독에 의해 다급히 도망치기 시작하는 사냥감을 쫓는다.

        나뭇가지에 시야가 가리지만, 저렇게 다급하게 움직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소리가 날 수밖에 없기에 쫓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리고 녀석의 경계심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할 무렵…….

       

        ‘지금!’

       

        파아아앗!!

       

        날개를 접고 단숨에 하강한다.

        나뭇가지가 나의 몸을 할퀴지만, 아무리 날기 위해 몸을 경량화했다고 하더라도 비늘은 폼이 아니다.

        이 정도 나뭇가지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뀌이이이익!!

       

        콰득!

       

        ‘됐다!’

       

        나의 발톱이 녀석의 목과 두개골을 노리지만, 안타깝게도 빗나갔다.

        하지만 이 정도면 된다.

        이 공격으로 절명시킬 수 있다면 나야 좋지만, 그저 상처만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애초에 한 방에 절명시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이것을 위해서 독샘을 가진 것이니까.

       

        타다다다닷!!

       

        나의 사냥용 독 3종 세트를 주입 당한 채 도주하기 시작하는 맥돼지.

        하지만 이미 독의 효과가 돌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녀석의 소변 냄새가 선명하게 난다.

        이제는 그저 녀석의 흔적을 쫓아가다, 녀석이 쓰러졌을 때 먹이를 수거하기만 하면 끝이다.

        덩치가 커서 저걸 옮기는 것은 수고가 들겠지만…….

       

        ‘그럼 가 볼…….’

       

        휙!

       

        ‘?!’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 날갯짓을 하던 순간이었다.

        무언가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큭!’

       

        캬아아악!

       

        촤악!

       

        서둘러 날개를 비틀어 피하는 데 성공했으나, 내 날개의 피막이 찢어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쿠당탕!

       

        ‘큭!’

       

        황급히 날개를 접어 날개가 꺾이는 것을 방지한다. 그래도 땅을 구르는 것은 피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비늘이 땅에 긁히며 더러워졌지만, 신경 쓸 틈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내 앞에는…….

       

        ‘저놈은…….’

       

        크르르륵!!

       

        그것은 마치 검치호랑이를 닮은 존재였다.

        입 밖으로 튀어나온 커다란 송곳니, 몸에 그려진 검은 줄무늬, 마치 고양잇과 동물을 연상하게 하는 발.

        하지만 검치호랑이라고 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존재의 몸에는 털 대신 비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 날 습격한 저 존재 역시 나와 같은 ‘드래곤’족이다.

        다만 내가 포이즌 드래곤쯤 된다면, 저쪽은 타이거 드래곤 정도 될까?

        나와는 전혀 다른 진화를 거친 드래곤이자, 이 근방에서 유명한 포식자 중 하나.

       

        ‘젠장. 하필이면…….’

       

        캬아아악!!

       

        크르르르르…….

       

        저 고양잇과 동물을 닮은 발과 유연성, 그리고 시야가 제한되는 이 정글에서는 소리 없는 암살자로서 무시무시한 포식자다.

        저놈에게 수많은 짐승들이 사냥당하는 것을 지켜봐 왔고, 나 역시 저놈에게 죽을 뻔한 경험이 참 많다.

        내가 ‘독’이라는 수단을 가졌으면서도 굳이 ‘비행’이라는 수단을 고른 것에는 저놈 영향도 있었다.

        아무리 나에게 독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놈과 같은 정글에서 땅에 발붙이고 지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빨리 몸을 일으킨 후 몸을 부풀리며 녀석을 노려본다.

        아무리 나에게 ‘독’이라는 무기가 있다지만, 비행을 위해서 몸을 극단적으로 경량화한 나는 체급적으로 불리하다.

        그나마 내가 날고 있었다면 상대해 볼 만했을 테지만, 녀석의 기습에 의해 나는 날아오르는 데 실패했다.

        게다가 한쪽 날개의 피막이 찢어지기까지 했다.

        아예 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찢어진 피막으로는 제대로 날 수 없다.

       

        ‘이거…… 잘못하면 죽겠는데?’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독샘을 열었다.

        동시에 내 독니와 발톱, 그리고 비늘 사이에 존재하는 퇴화된 땀구멍을 통해 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나를 잡아먹었다가는 이런 맛 없는 독도 먹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자 나만의 방어 수단이다.

        아무리 포악한 녀석이라고 하더라도, 잡아먹지 못하는 존재를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할 이유는 없을 터.

        부디 이것으로 물러서 주기를 바라지만…….

       

        크르르르르르…….

       

        캬아아악!!

       

        녀석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칼날이 달려 있는 신축성 있는 꼬리를 바짝 세우며 나를 노려본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 역시 몸을 바짝 긴장시켰다.

        그리고 녀석의 꼬리가 다시 나를 노리고 날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살벌했던 드래곤님의 리즈 시절.

    늦어서 죄송합니당.

    공지에도 썼지만, 어제 새벽에 썼던 내용을 전부 날려먹었어요.

    열심히 쓴 글이 날아가는 것은 정말…… 슬프네요. ㅠㅠ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