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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회복은 순조로웠다.

        애초에 드래곤족의 육체는 강건한 편이고, 나는 나의 안전을 위해 회복력에 과한 투자를 했다.

        물론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트롤급의 재생력을 지닐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영양공급만 충분하다면 인간보다는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 옆에는 내 영양공급을 책임져 주는 존재가 있었으니.

       

        크릉!

       

        턱!

       

        내 옆에 먹이를 놓아주는 철룡.

        그러고는 슬쩍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더니, 내 몸에 자기 얼굴을 부비적거리기 시작한다.

       

        치이이익!!

       

        ‘…….’

       

        한숨을 삼키며 무시했다.

       

        처음에는 녀석이 나에게 다가올 때마다 이를 드러냈지만, 내가 아무리 녀석을 쳐 내려고 해도 녀석은 꿋꿋하게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먼저 지치는 바람에, 지금에 와서는 이는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대신 녀석이 다가올 때마다 몸에서 철을 부식시키는 독을 내뿜고 있는데, 녀석은 자기 철갑 비늘이 부식되고 녹아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꿋꿋이 나에게 자기 냄새를 묻히더라.

        이걸 순정남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스토커라고 해야 할지 슬슬 헷갈린다.

       

        ‘빨리 다 나아서 이놈을 쫓아내든가 해야지 진짜.’

       

        철이 녹아내리며 나는 유독가스 냄새를 맡으며 한숨을 내쉰다.

       

        끼이잉!

       

        치이이익!!

       

        그러는 사이, 얼굴의 철갑 비늘이 다 녹아서 화상을 입어 버린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매번 저렇게 화상을 입으면서도 나에게서 떠나가지 않는 녀석이 이제는 무서울 지경이다.

        나 같으면 이런 못된 암컷은 진작에 학을 떼고 떠나갔을 텐데…….

       

        ‘아, 이런. 나도 모르게 또 암컷이라고 자칭해 버렸네.’

       

        드래곤으로 살아온 세월도 벌써 몇백 년.

        괴물로 살아온 오랜 시간은, 어느새 나의 인간적인 부분을 빼앗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그다음으로는 인간으로서의 행동거지, 그리고 마지막은 인간으로서의 사고방식까지…….

       

        어쩌면 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미 나는 인간에게서 너무 많이 멀어져 버리지 않았을까?

        때때로 그런 생각이 든다.

       

        철룡이 가져온 먹이를 먹으며 그날도 회복에 집중했다.

       

       

        *            *            *

       

       

        또다시 시간이 지났다.

        몸의 뼈도 다시 붙었고, 찢어졌던 근육과 피부, 비늘도 수복했다.

        몸에 퍼졌던 포자독도 해독했고, 독샘도 회복을 끝마쳤다.

        무엇보다 날개가 다시 회복했다.

       

        펄럭!

       

        ‘좋아. 이제 다시 사냥에 나설 수 있겠어.’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물론 이제 막 회복이 된 상태이니, 새롭게 만들어진 근육과 뼈 및 각 기관은 아직 뻣뻣한 상태일 것이다.

        그러니 당장 무리는 하지 않는다. 오늘은 가볍게 하늘을 날아보고, 작은 동물을 사냥해 보자.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지.’

       

        캬아아악!

       

        크앙!

       

        우선 어느새 내 둥지…… 아니, 집에 자리 잡은 놈부터 쫓아냈다.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내 양심이 콕콕 찔러왔지만, 야수의 심정으로 떨쳐 냈다.

        나는 오랜만에 산에서 굴러떨어지는 철룡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이젠 이런 매몰찬 여자는 잊고, 참한 암컷을 찾아라.’

       

        나는 네 마음을 받아줄 수 없으니까.

        산 아래까지 무사히(?) 굴러떨어진 녀석이 주섬주섬 일어나는 것을 확인하며 나는 날개를 펼쳤다.

       

       

        *            *            *

       

       

        몸이 회복되고 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굳었던 몸은 순조롭게 풀려서, 지금은 다치기 이전과 다름없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

       

        철룡은 그 이후로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나에게도, 그 녀석에게도 다행인 일이다.

        인간의 마음을 가진 나는 그 녀석의 요망을 들어 줄 수 없었고, 그 녀석은 더 이상 나에 의해 상처받지 않아도 되니까.

       

        ‘좋은 암컷을 만났겠지.’

       

        그래도 가슴 한구석이 쓸쓸해지는 것은…… 그저 그 녀석에게 일말의 미안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사이에 그 녀석에게 정이 들었기 때문일까?

        나는 소란스러운 서쪽 구역을 살피며 하늘을 활공했다.

       

        그때 나를 죽일뻔했던 타이거 드래곤은 죽었다.

        나도 나중에 알았지만, 아무래도 그 철룡이 타이거 드래곤을 처치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타이거 드래곤이 영역으로 삼았던 곳은, 현재 다른 드래곤과 괴물들의 영역 다툼으로 시끌벅적한 상태다.

       

        ‘저곳은 피해야겠군.’

       

        잘만 한다면 나도 저 영역 다툼에 끼어서 어부지리를 노려볼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저렇게 시끄러운 상황에서는 나에게 딱 맞는 먹잇감들도 대부분 피할 테니, 나에게 저런 영역은 하등 필요가 없는 땅이다.

       

        하지만 저 시끄러운 영역 밖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포식자들의 영역 다툼을 피해 밖으로 빠져나온 먹잇감들이 바로 나의 목표.

       

        파앗!

       

        촤악!

       

        끼이이익!!

       

        거대한 메뚜기를 닮은 곤충형 괴물을 사냥하는 데 성공한 나는, 그 먹이를 물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록 저 영역 다툼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겠지만, 한동안은 먹이 사냥이 한결 쉬워질 것 같았다.

       

        평소 내가 먹이를 먹는 데 사용되는 높은 봉우리에 내려앉은 후 숨을 몰아쉬었다.

        역시 내 체구로 이만한 크기와 무게를 가진 먹이를 물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먹이를 옮길 때마다 역시 체구를 좀 더 키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역시 지금의 균형이 딱 맞아.’

       

        일단 비늘은 포기할 수 없다.

        단순히 드래곤의 로망이라는 하찮은 이유가 아니다. 내 비늘은 ‘내독성(耐毒)’과 ‘항독성(抗毒)’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만약의 사태에는 온몸에 존재하는 땀구멍을 통해 독을 분비하는데, 이때 비늘이 없으면 피부가 독에 상해 버린다.

        게다가 이 숲에는 피부에 파고드는 종류의 기생충도 있기에, 그것을 막는데 비늘이 아주 효과가 좋다.

       

        ‘그래서 깃털도 포기했지.’

       

        물론 하늘을 나는 데는 ‘깃털’이 최고라는 것 정도는 안다.

        만약 내 날개가 ‘피막’이 아닌 ‘깃털’로 뒤덮여 있다면, 지금처럼 하늘을 날아오를 때 고생할 필요도 없을 것이겠지.

        하지만 ‘항독성’, ‘내독성’을 가진 깃털을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고, 무엇보다 깃털은 관리가 힘들다.

        나는 피부로 독을 내뿜기에 깃털이 항상 독에 젖게 되는데, 이렇게 젖은 깃털을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깃털을 쓸 수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다른 선택지도 줄어들게 되었다.

        깃털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최대한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도록 크기와 무게를 줄이고 근육을 최대로 키웠다.

        그 모든 노력의 결과가 지금의 상태인 것이다.

       

        만약 여기서 체구를 더 키울 경우엔 필연적으로 몸무게와 면적이 늘어날 것이고, 당연히 그만큼 하늘을 날아오르는 데 시간이 걸리게 된다.

        물론 그만큼 날개를 키우면 해결은 되지만…….

       

        ‘이렇게 나무가 빽빽한 곳에서 날개를 더 키우면 날갯짓하기가 힘들겠지.’

       

        역시 지금, 이 상태가 제일인 것 같다.

        이 상태에서 여유 영양분이 축적될 때마다 ‘돌연변이 가챠’를 돌려보고, 그중에 괜찮은 특성이 나왔을 때 다른 진화 방향을 고민해 보는 것이 좋겠지.

       

        우적!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이전의 나였다면 생각하지도 못했을 거대한 곤충을 먹어 치운다는 행위.

        만약 내가 아직도 ‘인간의 감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면 이놈을 잡아먹기는커녕, 징그러워서 쳐다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징그러움과 혐오감 따위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벌레든 흙탕물이든, 살기 위해서는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만 하는 것이 바로 야생의 삶.

       

        우적! 우적!

       

        이젠 익숙해진 맛을 느끼며 한창 식사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쿠우웅!

       

        ‘?!’

       

        그것은 갑자기 일어난 울림이었다.

        단순히 땅이 울리는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 아닌, 단순히 하늘이 울리는 ‘폭풍’ 같은 것이 아닌…… 마치 세상 그 자체가 울리는 것 같은 느낌.

        내 존재와 영혼 그 자체가 울리는 것 같은 그 느낌에 몸을 바짝 굳혔다.

       

        ‘뭐지?’

       

        난생처음 느끼는 그 감각에 나는 한동안 바짝 굳어 있었다.

       

       

        *            *            *

       

       

        이상한 감각을 느낀 후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나만의 일상으로 되돌아온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또…… 시작인가?’

       

        그것은 여자라면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인간 여성의 경우에는 한 달에 한 번 겪는 ‘마법의 날’이라고 부르는 그것.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1년에 한 번 겪게 되는 그것.

       

        인간의 경우에는 단순히 ‘월경’으로 부르며, 한 달에 한 번 배란된 난자를 배출하는 행위로 끝낸다.

        하지만 나와 같은 짐승들은 단순히 기분 좀 나쁘고, 피 좀 흘리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

        지금 나는 1년에 한 번 있는 ‘발정기’를 맞이한 것이다.

       

        ‘죽겠군.’

       

        1년에 한 번 있는 ‘생리’와 그 이전에 난자가 배란되는 과정에서 임신이 가능한 기간 동안 몸이 달아오르는 현상이다.

        아예 없애버리고 싶지만, 이것은 ‘자궁’이라는 신체 기관이 존재하고, 동시에 생식이 가능한 존재라면 피할 수 없다.

        덕분에 1년마다 이렇게 몸이 달아오르고, 이게 끝나면 생리로 인해 기분이 다운되는 나날을 겪어야만 한다.

       

        끄응…… 끄응…….

       

        발정기가 왔을 때는 최대한 외부 활동을 자제한다.

        아무래도 몸이 달아오르고 민감해지다 보니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걱정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때를 위해 먹이를 잔뜩 먹어두었기 때문이다.

        위 속에 저장되어 있는 먹이 덕분에 발정기가 끝날 때까지는 둥지 안쪽에서 참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래도 조금만 버티면 되겠…….’

       

        쿵! 쿵!

       

        ‘??’

       

        갑자기 땅이 울리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웅크렸던 몸을 살짝 풀며 둥지의 입구를 바라보니, 무언가가 내 둥지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아무리 지금 내가 발정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내가 못 알아차렸다고?!

        갑작스러운 사태에 몸이 바짝 굳는다.

        정상이 아닌 몸을 일으키며 이빨을 내보인다.

        그리고 감히 내 둥지에 쳐들어온 침입자를 향해 공격을 쏘아붙이려고 했다.

       

        쿵! 쿵! 쿵!

       

        ‘??????’

       

        ……놈의 덩치가 내 예상보다 커다랗지 않았다면 말이다.

       

        ‘무슨 놈의 크기가…….’

       

        내 둥지를 꽉 채운 채 걸어오는 녀석.

        내가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거대한 크기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에 쪽팔려 할 시간은 없었다.

        이미 놈은 내 코앞에 도착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익숙한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이놈은…….’

       

        그래.

        익숙한 얼굴일 수밖에.

        이전에 보았을 때보다 더욱 커진 덩치를 가진 ‘철룡’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내 여자.

       

        ‘…….’

       

        꿀꺽!

       

        또다시 머릿속에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쩐지 아랫배가 더욱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미 암컷타락 중인 과거의 주인공.

    추석 잘 보내셨나요?

    저는 생각보다 바쁜 추석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연참도 못했습니다. (또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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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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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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