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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9

        – 넘못 야해욧!

        – 크!

        – 야하다!

        – 얘들은 가라!

        – 오마나오마나

        – 그런데 너무 단데?

        – 저 입에서 설탕이 막 쏟아지는데, 정상인가요?

       

        채팅창이 활발해진다.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 주었다는 증거이기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너무 과열된 분위기도 느껴지지 않고 말이다.

       

        “그 후로 여러 일들이 있었지.”

       

        강대한 포식자가 쳐들어와서 목숨 걸고 싸운 적이 있었다든지, 갑자기 일어난 지진 때문에 죽을 뻔했다든지.

        둘째 아이의 출산 때 남편이 울고불고 난리를 치다가 큰아들에게 맞았다든지…….

        소소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소중한 나날들이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그런 추억을 곱씹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멍하니 방송실의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내 아바타의 몸이 ‘인간’의 형태라서 그런 것일까? 어쩐지 감정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았다.

       

        – 왜 그러세요?

        – 라나님?

        – ??

        – ?

        – 무슨 일이 있으신가?

        – 뭐지?

       

        채팅창은 물론이고, 개인 채팅을 통해 매니저들도 걱정의 감정을 보내온다.

        이런. 방송인으로서 사운드를 비워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 이상 방송을 이어 나가기는 무리였다.

        왜냐하면 감정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몇천 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이 감정은 잊혀지지 않는구나.’

       

        드래곤인 본체라면 능숙하게 감정을 추스를 수 있겠으나, 인간의 육체로는 이 감정들을 전부 추스르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이 감정은 인간의 육체로서 느꼈던 감정이 아닌, 드래곤으로서 느꼈던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칫하면 아바타의 동요가 본체로까지 넘어갈 위험성이 있다.

       

        게다가 때마침 방송 종료 시간이기도 하니까…….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다.”

       

        – !!!!!!!!!!!

        – 왜요!!!

        – 왜 여기서 끊는데요?!!!

        – 이것이 바로 드래곤의 절단마공인가? 무시무시하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얔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이젠 익숙하다. 이 패턴.

        – ㅋㅋㅋㅋㅋ

       

        채팅창이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다음부터는 나에겐 슬픈 이야기가 시작된다.

        만약 그 이야기 중에 감정 조절에 실패하는 순간, 자칫하면 내 멸천의 힘이 새어 나갈 위험이 존재한다.

       

        “어차피 방송 종료 시간이지 않느냐. 남은 이야기는 내일 계속해 주마.”

       

        – ㅠㅠㅠㅠㅠㅠㅠ

        – ㅜㅠㅜㅜㅜㅜㅠㅠ

        – ㅠㅠ

        – ㅠㅠㅠㅠㅠㅠ

        – 라바

        – 라바라바

        – 용바

        – ㅜㅜㅜㅜ

        – 용바바

        – 빠빠이

       

        다른 것은 몰라도, 방송 종료 시간만큼은 내가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시청자들도 파악했는지, 이제는 길게 붙잡는 이들이 거의 없어졌다.

        울음 표시와 함께 나를 배웅하는 시청자들에게 미소를 지어 주며 방송을 종료시켰다.

       

        “후우…….”

       

        미처 수습되지 못한 감정이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송실을 나섰다.

       

        화악!

       

        내 침실의 뜨거운 열기가 아바타를 덮치고, 이어서 방송실을 나온 내 옆으로 도화가 나타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저벅저벅…….

       

        천천히 걸어가며 본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본체를 앞에 둔 상태에서 잠시 도화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20시간 동안 누구도 내 침실에 들이지 말거라.”

       

        “네.”

       

        허리를 숙인 도화가 재빠르게 침실을 나선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본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 아바타가 순식간에 그 형체를 잃더니, 이내 용금이 되어 본체에 흡수되었다.

       

        크르르르르르…….

       

        천천히 몸을 마그마 속에 담갔다.

        용금 너머로 느껴지는 뜨끈함을 느끼며, 천천히 몸을 마그마 아래로 가라앉혔다.

        내 안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이 진정될 때까지…….

       

       

        *            *            *

       

       

        블레이즈는 남산 타워 위에서 서울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하늘을 날면서 바라보는 풍경도 각별하지만 이렇게 높은 구조물 위에서 느긋하게 지상을 내려다보는 것 역시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라…….’

       

        그는 어지간하면 어머니의 방송을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이었다.

       

        처음에는 걱정이었다.

        멸천룡이 지금은 자애롭고 이해심이 깊은 성격이더라도, 블레이즈에겐 그녀의 과거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첫인상 효과라고 할까?

       

        그래서 어머니가 방송을 한다고 했을 때 굉장히 걱정했었다. 혹시나 인간들과 어머니 사이에서 싸움이 붙거나, 혹은 인간들이 어머니의 성질을 건드릴까 봐.

        그가 멸천룡의 방송을 본 것은,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위함이었다.

        즉, 사실상 모니터링의 목적으로 시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 외로 잘하셨지.’

       

        블레이즈 자신이 적극적으로 인간들과 어울리는 성격이라면, 라그나는 굳이 먼저 나서서 관계를 맺는 타입이 아니었다.

        인싸와 아싸의 차이랄까?

       

        그러므로 자신보다 인간 사회와 습성에 무지할 라그나가 생각 외로 방송을 잘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제법 놀랐었다.

        그리고 요즘에는 모니터링의 목적보다는, 그냥 어머니의 방송을 심심풀이의 목적으로 보는 경우가 늘어났다.

       

        다만 오늘만큼은 조금 달랐다.

       

        ‘설마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셨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 시절의 기억은 그들 가족에게 아주 특별했던 기억이자, 동시에 가슴 아픈 기억이다.

       

        라그나도 설명했던 내용이지만, 본래 그들의 종족인 ‘드래곤족’은 기본적으로 홀로 독립해서 살아가는 종족이다.

        DNA의 돌연변이를 통해 ‘무리 생활’에 관련된 유전인자를 습득한 몇몇 드래곤족을 제외하면, 마치 호랑이나 표범과 같이 하나의 개체가 일정 영역을 가진 채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실제로 그들의 어머니인 ‘라그나’도 그렇게 살아왔었다.

       

        하지만 그랬어야 할 그들을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묶어 준 이가 바로 라그나의 남편이자 4남매의 아버지인 ‘황금룡 라이츠’였다.

        본래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는 이들이 지금도 서로를 위하고(물론 형제 사이는 좀 미묘하다) 사랑하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유산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 가족이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아버지의 흔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서쪽 하늘로 저무는 노을 아래에서 블레이즈가 난간에 몸을 기댔다.

        어머니가 그때 이야기를 하신 덕분에, 그도 간만에 감성적인 기분이 돼 버렸다.

       

        저벅저벅.

       

        “여기 있었네.”

       

        “……파트너.”

       

        블레이즈는 자신을 찾아온 이현을 바라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말도 하지 않고 훌쩍 나왔는데, 이 파트너는 그의 생각보다 빠르게 그를 찾아왔다.

       

        “협회의 도움이라도 받았나?”

       

        “협회는 무슨. 너, 심란할 때마다 높은 곳 찾는 버릇 있는 거 아냐?”

       

        “그랬던가?”

       

        “내가 봤을 때는 그랬어 임마.”

       

        블레이즈의 옆 난간에 몸을 기댄 이현이 블레이즈에게 캔 콜라를 넘겼다.

       

        치익!

       

        꿀꺽꿀꺽…….

       

        “캬!”

       

        콜라를 원샷한 블레이즈의 시선이 다시 서울 전경으로 향했다.

        그런 블레이즈의 옆모습을 지켜보던 이현이 물었다.

       

        “너희 아버지 이야기가 그렇게 충격이야? 성치 않은 몸으로 외출까지 해야 할 정도로?”

       

        블레이즈는 호주에서 큰 부상을 입었다.

        아무리 그가 드래곤이고 초월자라고 하더라도 쉽게 치유할 수 없는 그런 부상 말이다.

        그렇기에 한국으로 돌아온 백익룡과 이현에겐 강제적인 휴가가 주어졌다.

        평소라면 협회의 의뢰에 따라 고등급의 던전들을 돌아다녀야 할 S랭크 헌터가 이렇게 느긋하게 남산 타워의 꼭대기에 올라와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이런. 인간에게 걱정을 받다니. 드래곤 체면이 말이 아니군.”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리는 블레이즈.

        어쩐지 슬프게 느껴지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블레이즈의 계약자이자 파트너인 이현은 말없이 그의 옆을 지켰다.

       

        서서히 노을이 저물고, 어느새 나타난 협회 직원들에 의해 남산 타워에서 인적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할 때쯤.

        멍하니 저녁 하늘을 바라보던 블레이즈가 입을 열었다.

       

        “이현. 너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무엇이냐?”

       

        “아버지라…….”

       

        블레이즈의 말에 이현은 자기 기억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쓰레기지.”

       

        이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도박판을 전전하고, 하루 종일 술을 달고 살며, 어렸던 그와 어머니에게 폭행을 행사했던 인간쓰레기.

        그것이 바로 이현이 생각하는 ‘아버지의 존재’였다.

       

        신랄하다면 신랄한 이현의 대답에 블레이즈가 미소를 지었다.

        비록 지금은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더라도, 드래곤의 옆에서 저렇게 할 말 다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재주다.

        뭐, 저 성격과 마음가짐이 마음에 들어서 파트너로 삼은 것이기도 하니까…….

       

        “너도 알겠지만, 내 아버지는 인간들 손에 돌아가셨다.”

       

        물론 온전히 인간들의 탓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들을 시켜 아버지를 죽이도록 사주한 존재가 바로 ‘고대신’이었기 때문이다.

        즉, 주범은 ‘고대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머니는 고대신들을 죽였지만, 인간들에겐 따로 죄를 묻지 않으셨지.”

       

        하지만 3남매는 아니었다.

        그들에겐 고대신이나 인간이나, 모두 아버지의 죽음에 관련된 원수들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라그나가 그들을 말리기 전까지, 3남매는 전 대륙을 돌아다니며 인간들을 학살했다.

       

        “너도?”

       

        “나도.”

       

        블레이즈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복수에 눈이 돌아갔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버지가 원했던 ‘가족’이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과연 우리는 아버지가 원했던 이상적인 가족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가족’이라는 것을 배워 보고 싶었다.”

       

        그랬기에 블레이즈는 인간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가족’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것이 바로 지성체이고, 블레이즈의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지성체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어울림은 지금까지 이어졌고, 현재 블레이즈는 가장 ‘인간다운’ 드래곤이 되어 버렸다.

       

        블레이즈의 푸념, 혹은 한탄에 가까운 이야기를 듣던 이현이 들고 있던 음료수를 마셨다.

        그러고는 손에 든 캔을 구기며 물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뭐가?”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말이야. 라그나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단순히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 때문에 복수하신 것 같지는 않더라고.”

       

        멸천룡 그랑 라그나는 방송에서 말했다.

        그들은 드래곤이고, 인간과는 습성이나 성격, 문화가 전부 다르다고.

        그리고 이현이 보았을 때, 라그나를 비롯한 드래곤들의 습성은 ‘인간’보다는 ‘짐승’ 쪽에 더 가까웠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백익룡의 파트너이자 멸천룡과 직접 대화를 나누어 본 ‘드래곤 마스터’로서 생각해 볼 때 일단 그렇다는 소리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이 드래곤들은 아버지가 인간들에게 사냥당했을 때 슬퍼할지언정 복수할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죽은 것은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랐을 뿐이니까.

       

        그런 이현의 질문에, 블레이즈가 경멸하는 표정으로 이현을 바라보았다.

       

        “파트너…… 우리가 무슨 피도 눈물도 없는 짐승인 줄 아나? 우리도 부모님이 죽으면 복수 정도는 한다.”

       

        “어, 미안하다.”

       

        “그런데 틀린 소리는 아니다.”

       

        “…….”

       

        이 새끼가?

        이현이 황당하게 보든 말든 블레이즈는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 아버지가 죽은 것 자체로 우리가 인간을 싫어할 이유는 없지. 복수는 하겠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모든 인간들에게 적의를 품을 이유는 없으니까.”

       

        “그럼 왜…….”

       

        “그야 모든 인간들을 미워할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블레이즈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광경을 떠올릴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아버지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그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죽음조차 모욕당하셨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잠시 한 번 끊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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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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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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