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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키익!”

       

        “살려주십시오!”

       

        “히익!”

       

        나는 고개를 조아리는 코볼트들을 바라보며 볼을 긁적거렸다.

       

        왜 일이 이렇게 되었냐면, 오크 마을에서 했던 일들을 여기서 재현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나와 크쉬타르에게 무기를 겨누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얌전해진 코볼트들을 뒤로한 채 나는 코볼트들의 주거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름 신기한 부분들이 많아서 재미있다.

       

        “호오. 이건 밭인가?”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주거지 내부에는 ‘밭’으로 보이는 공간이 따로 존재했다.

        바깥의 뜨거운 태양 빛을 받지 않는 실내 공간이기에, 빛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종류의 식물을 따로 재배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긴. 지성체들이라면 ‘농경’ 역시 빠뜨릴 수 없는 것이기는 하다.

        이 행성은 환경상 농경 생활이 힘들겠지만, 이렇게 농경 생활 비슷한 생활하는 이들도 있긴 하구나.

       

        “살려주십시오!”

       

        “으흐흑!”

       

        금속으로 만들어진 구속구에 온몸이 꽁꽁 묶여 버린 사람들이 하소연을 이어 나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크쉬타르가 나에게 물었다.

       

        “이놈들은 어쩔 텐가?”

       

        “글쎄…….”

       

        크쉬타르는 코볼트들이 그렇게 기껍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크쉬타르와 장로의 이야기를 들어 봤을 때, 이 행성에서 오크족과 코볼트족은 그렇게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인간들만 하더라도, 같은 종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싸우던 것이 바로 ‘지성체’라는 이들이지 않던가?

        심지어 이들은 외형도 확연하게 다르고, 종족마저도 다르다.

        당연히 서로 싸울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서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우선은 이야기를 들어봐야지.”

       

        “이야기?”

       

        “그래.”

       

        내 말에 크쉬타르가 의아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붙잡힌 코볼트 중 대표로 보이는 이에게 물었다.

       

        “네가 이들의 대표인가?”

       

        “아, 아니요. 장로님은 옆에…….”

       

        “…….”

       

        으음.

        여기에 있는 이들 중에서 가장 강해 보였기에 골랐는데, 진짜 대표는 옆에 있던 늙은 코볼트였다.

        이쪽은 강한 이가 무리를 이끄는 것이 아닌, 경험이 많은 이가 무리를 이끄는 것이 보통인가?

        오크 마을의 장로도 그렇고, 이쪽도 늙은이가 대표를 맡고 있었다.

       

        어쨌든 대표와 함께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이쪽에는 나와 크쉬타르.

        저쪽엔 코볼트들의 장로와 내가 대표로 착각했던 전사장.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첫 시작은 장로부터였다.

        공포에 질려 덜덜 떨면서도, 나의 정체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아닌, 크쉬타르에게서 나왔다.

       

        “이쪽은 숲의 현자다.”

       

        “숲의 현자?!”

       

        “그 전설의……?”

       

        “헉!”

       

        크쉬타르의 대답에 코볼트들이 단체로 기겁한다.

        ……도대체 그 ‘숲의 현자’라는 것이 뭐기에 이들이 이렇게 놀라는 걸까?

       

        ‘미리 알아 둘 것을 그랬군.’

       

        나만 모르니 조금 답답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숲의 현자가 아니라고 하기도 뭣한 것이, 이들이 말하는 숲의 현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일례로, 일 전에 만난 오크 마을의 장로가 ‘관찰자’였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그 ‘숲의 현자’가 초월자에 관련된 단어라면? ‘숲의 일족’이 초월자와 관련된 종족이라면?

        아닐 확률도 있지만, 만약 이 뜻이 맞는다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어렵구나.’

       

        일단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이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뭔가를 소곤거리던 장로와 전사장이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숲의 현자님을 뵙습니다!”

       

        “뵙습니다!”

       

        “그…… 아니. 그래. 반갑다.”

       

        긍정도, 부정도 안 하려고 했는데…… 해 버렸네.

        한숨을 내쉬며 자세한 설명을 하려 했으나, 저쪽이 먼저 말을 꺼냈다.

       

        “현자께서는 어찌 저 사악한 오크들과 함께 오셔서 저희를 위협하십니까?”

       

        “음?”

       

        장로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냐하면 그의 말이 참으로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들은 것과는 다르구나.”

       

        “사악한 오크들이 무슨 말로 현자님을 현혹하였든, 저들의 말은 모두 거짓입니다!”

       

        “…….”

       

        장로의 말에 크쉬타르가 얼굴을 구겼다.

        그의 팔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손으로 찹찹 두드려서 진정시킨 후 물었다.

       

        “내가 듣기론, 너희들이 오크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약탈하였다고 들었는데?”

       

        “…….”

       

        내 말에 장로와 전사장은 겉으로 보이는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듣게 된 근처의 다른 코볼트들의 반응은 달랐다.

       

        “헉!”

       

        “흡!”

       

        “끕!”

       

        몇몇 이들이 황급히 눈을 돌리거나, 자기 입을 딱 다물었던 것이다.

        게다가 내 앞에 앉아 있는 장로와 전사장의 감정에서도 동요가 느껴졌다.

        내 말이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자. 반론할 기회를 주마.”

       

        “……이곳은 본래 저희들의 땅입니다. 저희들의 선조가 살아오던 땅을, 저 사악한 오크들이 빼앗았습니다!”

       

        전사장이 발끈한 듯 목소리를 높인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겁에 질려 있더니, 분노가 공포를 이겨 낸 모양이다.

       

        “그 말은, 과거는 몰라도 현재는 오크들이 이 영역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전사장이 내 말에 허둥대기 시작한다.

        그런 전사장 대신, 장로가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사장의 말은, 사악한 오크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저희들의 영토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그렇습니다!”

       

        “그렇구나.”

       

        그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당한 방법? 부당한 방법이라…….

       

        “그렇다면 무엇의, 누구의 규칙에 따른 부당한 방법이냐?”

       

        “……네?”

       

        “너희들이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부당한 방법’이라고 말이다. 그 말은, 너희 코볼트족과 오크족을 아우르는 누군가의 강력한 규칙이 존재한다는 뜻이겠지.”

       

        이를테면 이런 뜻이다.

        코볼트와 오크 두 종족에게 영향을 미치는 강대한 ‘누군가’가 존재하고, 두 종족은 그 ‘누군가’가 정한 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오크 마을의 장로가 나에게 코볼트들을 징치하기를 원했다는 것으로 볼 때, 그 ‘누군가’는 이미 죽었거나 모종의 이유로 규칙을 어긴 것에 대한 제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겠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코볼트들도 이렇게 약탈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 아닌, 그 ‘누군가’에게 요청해 규칙을 어긴 오크 마을을 처리했을 테니까.

        그리고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누군가’를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말해 보거라. 누구지?”

       

        “…….”

       

        “…….”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리고 대답을 요구하는 나의 말에 장로와 전사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겠지. 거짓말이었을 테니까.

       

        “그, 그게 그렇게 중요하오!”

       

        “음?”

       

        그 순간 주위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 한 명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죽고 싶나?”

       

        스릉!

       

        “히익?!”

       

        크쉬타르가 으르렁거리며 석재 몽둥이를 집었지만, 내가 손을 뻗어 그를 말렸다.

        그리고 나에게 소리친 이에게 물었다.

       

        “그래. 계속 말해 보거라.”

       

        “……자, 잘못은 저들이 먼저 했단 말이오! 저 사악한 오크들이 우리의 땅을 빼앗지 않았다면, 우리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소!”

       

        “흠…….”

       

        매우 분노와 슬픔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물었다.

       

        “아이야. 너는 저 오크들을 동족이라고 생각하느냐?”

       

        “그,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지 마시오!”

       

        “그렇다면 오크들을 너희의 무리로 받아들인 적이 있느냐?”

       

        “……지금 우릴 놀리고 있소?!”

       

        “즉, 저 오크들은 너희들과 ‘적’이라는 소리로구나.”

       

        “그렇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 것이냐?”

       

        “……뭣?!”

       

        “오크들도 코볼트들을 ‘적’으로 여기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적’의 것을 빼앗고 약탈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내 말에 모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옛날에 오크들이 너희의 영토를 부당한 방법으로 빼앗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적’의 것을 빼앗는데 ‘부당한’ 방법은 없다. 그저 ‘효율적인 수단’과 ‘좀 더 효율적인 수단’만이 있을 뿐이지.”

       

        지성체들 중에서는 간혹 ‘비열하다’라든가, ‘치사하다’라든가, ‘사술이다’라는 등의 말로서 다른 이의 행동을 비난하고는 한다.

        하지만 내 처지에서는 그들의 행동은 그저 ‘효율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자기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행동도 용납되는 것이 바로 ‘야생’이라는 무대고, 나 역시 ‘같은 종에게 해가 되는 행동’만 아니라면 어떤 행위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이 영역은 ‘오크들의 영역’이 맞고, 너희들은 ‘침략자’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왜 우리를 공격한 것이오?”

       

        장로가 핏줄이 드러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의 충혈된 눈을 마주 보며, 나는 평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야 간단하지. 나는 ‘이 영역의 주인 된 이들’에게, ‘침략자’인 너희를 퇴거하도록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란다.”

       

        “…….”

       

        “…….”

       

        내 말에 코볼트들의 안색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최후의 통첩을 날렸다.

       

        “선택하거라. 다시는 이곳 오크들의 영역에 함부로 침범하지도 않고, 약탈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후 떠나는 것. 혹은…….”

       

        코볼트들을 한 번 더 둘러본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한 것을 확인하며, 나는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죽을 것인지 말이다.”

       

        “…….”

       

        “…….”

       

        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사실상 하나뿐이었다.

       

       

        *            *            *

       

       

        떠나가는 코볼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크쉬타르가 말했다.

       

        “저들이 약속을 지킬 것으로 생각하나?”

       

        “흠.”

       

        그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 크쉬타르는 저들이 나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하긴.

        지성체들의 특징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고, 크쉬타르는 저 코볼트 무리가 나와 ‘거짓된 약속’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아마 맞을 것이다.

        저들은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나와 거짓된 약속을 맺었을 것이고, 언제쯤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 약탈을 이어 나갈지 고민하고 있겠지.

        하지만…….

       

        “저들이 거짓으로 나와 약속을 맺었든, 진짜로 약속을 맺었든 상관없단다.”

       

        “???”

       

        “나와 약속을 맺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크쉬타르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의뢰도 완료했으니, 가서 보수를 받자꾸나.”

       

        “……하. 그래.”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나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            *            *

       

       

        참고로 그 코볼트 무리는 어떻게 되었냐면…….

       

        “나와의 맹세를 저버린 자들에겐 팔다리가 죽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게 되는 페널티가 내려졌을 거란다. 그 뒷이야기는 모르고.”

       

        – ㅎㄷㄷ

        – 아앗…….

        – 왠지 남일 같지가 않음.

        – ㅎㄷㄷㄷㄷ

        – ㄷㄷㄷㄷ

        – ㄹㅇㅋㅋ

        – ㄷㄷㄷㄷㄷㄷ

        – 갑분 호러인가?

        – ㅎㄷㄷㄷ

       

        초월자와의 약속은 함부로 어기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약속은 반드시 지킵시다.

    못 지킬 것 같으면 약속을 하지 마시고…….

    안 지키면 큰일 남.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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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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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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