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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5

        으슥한 골목길.

        간신히 도망치는 데 성공한 우리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헉! 헉! 헉!”

       

        “…….”

       

        아니, 정확히는 크쉬타르만이다.

        나 같은 경우엔, 겨우 그 정도 뛰었다고 숨이 찰 리가 없으니까.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크쉬타르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고 있자니,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크쉬타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기랄. 글리톤이 거기서 나오다니.”

       

        “글리톤?”

       

        나의 의문에, 크쉬타르는 자기 몸에 그려진 붉은색 문신을 가리켰다.

       

        “이런 문신을 새긴 놈들을 일컫는 말이다.”

       

        “아아. 그렇군.”

       

        이곳에선 이 능력자를 대충 ‘글리톤’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숨을 고르는 데 성공한 크쉬타르가 이를 갈았다.

        그 순간, 골목 밖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인가?”

       

        “저쪽으로 가 보자.”

       

        타다닷!

       

        음…….

        아무래도 이 근처에 추적자들이 쫙 깔린 모양이다.

       

        “쳇. 성가시게 되었군.”

       

        크쉬타르 역시 그것을 느낀 듯, 혀를 찼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물었다.

       

        “전부 처리할까?”

       

        “…….”

       

        크쉬타르가 형용할 수 없는 것을 보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농담이다.”

       

        “농담 맞나? 그거?”

       

        사실 말만 한다면 진짜 다 정리해 주려고 했다.

        그러다가 크쉬타르의 표정을 보고 바로 농담으로 돌린 거고.

        음…… 예전에 다른 차원에서는 내가 ‘전부 처리해 주랴?’라고 하면 곧바로 머리 박고 ‘황공하옵니다!’라고 경배하는 지성체가 많았는데 말이야.

       

        내 농담(?)을 찝찝한 얼굴로 곱씹던 크쉬타르가 다시 골목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이 주제에 관해서 더 이야기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밖에는 패밀리들이 쫙 들이찼을 것이다. 조금 전, 우리를 쫓아왔던 이들은 약과겠지.”

       

        “겨우 조무래기 셋을 건드린 것이, 그들에게 그렇게 치욕적인 것인가?”

       

        “그것도 있겠지만…….”

       

        톡톡톡.

       

        손가락으로 자기 몽둥이를 두드리며 고민하던 크쉬타르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건드렸던 그 세 명 중 하나, 그놈에게 무언가가 있었겠지.”

       

        “이를테면?”

       

        “패밀리 대부(大父)의 가족이거나, 친우이거나?”

       

        “흠.”

       

        그러니까, 우두머리의 자식이었다는 소리인가?

        그래서 자기 인맥과 권한으로 패밀리들을 동원했고?

       

        “그런데 왜 지금은 인원이 더 늘어난 거지?”

       

        “내가 패밀리의 글리톤 하나를 쓰러뜨리지 않았는가. 그러니 저들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겠지.”

       

        “아아…….”

       

        그러니까, 이전까지는 그저 우두머리의 자식이 투정을 부리니까 들어 준다는 느낌이었다면.

        크쉬타르가 그 능력자를 쓰러뜨린 순간, 패밀리라는 무리가 우리를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경계심을 끌어올렸다는 소리인가?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대충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지?

       

        “그러면 어찌하겠느냐?”

       

        “음.”

       

        크쉬타르의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힐끔힐끔 나를 바라보는 것이, 여차하면 내 힘을 쓸 경우의 수도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나를 이상한 얼굴로 바라보긴 했어도, 내 제안이 매력적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결국 크쉬타르는 다른 대안을 내놓았다.

       

        “아는 지인이 한 명 있다. 그곳으로 가지.”

       

        “알겠다.”

       

        나는 크쉬타르를 따라 지저분한 골목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똑똑똑!

       

        식물의 수액에 모래를 섞어 굳힌 문을 두드리는 크쉬타르.

        수액을 굳혀 만든 물체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나무’라는 식물이 희귀한 세상이기에, 돌과 흙, 그 외에 별의별 재료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무가 아닌 재료로 나무를 흡사하게 재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누구요?

       

        “나다.”

       

        = ……니기미?

       

        드르륵!

       

        돌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문이 옆으로 열린다.

        여닫이문이 아닌, 미닫이문 형태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한쪽 팔이 없는 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쉬타르와 마찬가지로 몸에 문신이 그려진 오크였다.

       

        “어서 들어오게!”

       

        “실례하지.”

       

        “…….”

       

        황급히 우리를 집 안으로 들여보낸 오크가 집 밖을 두리번거리더니, 그래도 문을 닫았다.

        뭐, 우리를 따라오던 놈들은 없었고, 이쪽을 바라보던 시선도 없었다.

        아마 당분간은 안전하겠지.

       

        집 안에서 시원한 물을 가져온 오크가 나와 크쉬타르의 앞에 내려놓았다.

       

        “크쉬타르!”

       

        “가르진.”

       

        꽉!

       

        서로를 끌어안은 두 오크가 다시 떨어졌다.

        그러곤 가르진이라 불린 오크가 크쉬타르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때리며 말했다.

       

        “이 빌어먹을 새끼! 5년간 연락도 없었다가, 이렇게 나타나기 있냐?!”

       

        “그건 미안하군.”

       

        “하나도 안 미안하다는 얼굴이다!”

       

        “큼큼.”

       

        음…….

        아무래도 이 둘은 굉장히 친한 친구 사이인 모양이다.

        그래도 서로 오가는 대화가 좀 험악할 뿐이지, 둘 사이에 존재하는 우정은 굳건해 보이니 보기 좋다.

       

        내가 그런 생각하는 사이.

        한쪽 팔로 크쉬타르의 얼굴을 꽉 끌어안고 조이던 가르진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쪽은 누구냐?”

       

        “음…… 짐 덩이?”

       

        “…….”

       

        크쉬타르의 말에 내 가슴이 따끔거렸다.

        크쉬타르… 너… 나를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냐?

        어쩐지 배신당한 것 같은 느낌에 슬픔을 느꼈다.

       

        “농담이다.”

       

        “……농담 맞느냐?”

       

        내 질문에 크쉬타르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저거, 99% 농담이 아니었군.

       

        “하하하. 내 부족한 친구 놈을 보살펴 줘서 고맙군!”

       

        팡팡!

       

        “?!”

       

        내 등을 두드리는 가르진의 손길에 내 몸이 휘청거렸다.

        이쪽 행성의 오크 종족들은 하나 같이 인간보다 힘이 강하군.

        중력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역시 종족 단위의 진화 때문이겠지?

       

        “으음?!”

       

        가르진 역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자기 손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크쉬타르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 아이가 있었나?”

       

        “죽고 싶나?”

       

        크쉬타르가 으르렁거렸다.

        혹시 날 크쉬타르의 아이라고 생각한 것인가?

       

        ‘이상해할 것도 없나?’

       

        하긴.

        이곳에서 인간 정도의 크기는, 오크나 코볼트의 아이들 정도의 크기와 비슷하니까 말이다.

        아마 내 키나 골격 등을 생각했을 때, 어린 오크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해할 것은 없겠지.

       

        나는 크쉬타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건 속 내 눈빛을 알아챈 크쉬타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륵!

       

        “음?!”

       

        오크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내 모습을 확인한 가르진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의 고개가 크쉬타르를 향하고, 다시 나를 향한다.

        그리고 다시 크쉬타르를 향했을 때, 크쉬타르는 가르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됐다. 숨을 곳이 필요하다.”

       

        “……알겠다.”

       

        그제야 장난기가 싹 빠진 가르진이 자기 집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집의 문을 만들었던 식물의 수액을 굳힌 것.

        그것을 이용해 만들어 낸 가구들 중 옷장처럼 보이는 것을 옆으로 밀었다.

        그러자 그 아래쪽에 미세한 홈이 파여져 있는 돌판이 나타났다.

       

        “흡!”

       

        드르륵!

       

        가르진이 그 돌판을 밀어내자, 밀려난 돌판 아래로 공간이 나타났다.

       

        “따라와라.”

       

        쓱!

       

        가장 먼저 가르진이 내려가고, 그다음은 나였다.

        마지막으로 크쉬타르가 따라 내려오는 것으로 우리는 지하 통로에 발을 디뎠다.

       

        “이쪽이다.”

       

        가르진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 통로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우리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어느새 우리는 또 다른 집 안에 도착해 있었다.

       

        “이곳은…….”

       

        “코볼트들의 주거지군.”

       

        크쉬타르의 말대로, 이곳은 마치 코볼트들의 주거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다만 이전에 보았던 코볼트들의 주거지가 작은 언덕을 보는 것처럼 거대했다면, 이곳의 주거지는 작았다.

        대략 따져 보자면…… 내 본체 크기 정도?

       

        “털 난 놈들의 기술을 따라서 만들어 본 것이지. 어때?”

       

        한쪽 팔을 옆구리에 댄 채 자신만만하게 웃는 가르진.

        확실히…… 내가 보았던 코볼트들 정도로 큰 주거지는 아니지만, 그들의 기술을 제법 그럴싸하게 모방하기는 했다.

       

        슬쩍 문을 열어 보니, 문 너머에 쌓여 있었던 모래가 우수수 내부로 쏟아져 내려왔다.

        그리고 밖에는 광활한 사막과 뜨거운 태양 빛이 가득했다.

        ……이곳은 부르투름의 밖인 것인가?

       

        “분하지만, 사막에서 만큼은 털 난 놈들의 건축 기술을 따라갈 수가 없지. 통풍, 온도 조절, 위장술까지…… 나무랄 데가 없어.”

       

        “호오.”

       

        가르진의 말에 감탄했다.

        이곳에 존재하는 오크들과 코볼트들은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강하던데, 그런 적대감을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상대방의 기술을 인정하다니.

        저런 생각을 가지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면 될 거다.”

       

        “고맙군.”

       

        “그럼 이제 이야기를 좀 들어 보지.”

       

        “그래.”

       

        크쉬타르와 가르진이 한 탁자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그들은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            *

       

       

        – 몬가…… 몬가가 일어나고 이써?!

        – 이거, 느낌이 뭔가 살짝 클리셰 느낌임.

        – 오오오!! 흥미진진!

        – 두 번째 팝콘 다 먹음.

        – 와씨. 팝콘이 진짜 땡긴다!

       

        시청자들이 재미있어하는 것이 보였다.

        이번 이야기는 별로 인간들의 흥미를 유발할 요소가 없을 것 같아서 걱정이 좀 되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다.

       

        “이번에는 너희들이 좋아하는 ‘로봇’도, ‘로맨스’도, ‘우주선’도 없는데… 그래도 좋아해 주니 기분은 좋구나.”

       

        – 대신 액션이 있잖아요.

        – 아포칼립스 느낌이라서 좋음.

        – 라나님 이야기는 하나같이 흥미진진한 게 재미있어요.

        – 진짜 다양한 장르가 튀어나오는 것이 좋네요.

        – ㅋㅋㅋㅋㅋㅋ

        – 액션이 멋졌어요.

        – 시청각 자료가 최고였음.

        – ㅋㅋㅋ

        – 약간 액션 모험물 느낌이 좋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번 이야기엔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요소가 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딱히 나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좋아해 준다면 나야 좋은 일이다.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가르진과 크쉬타르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단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난 후 우리는 조촐한 파티를 했지.”

       

        파티의 명목은 ‘오랜 친구와의 재회를 기념하는 파티’였다.

        사막에서는 귀한 자원인 ‘장작’을 아낌없이 쓴 화덕과, 그곳에서 구워지는 고기와 열매.

        그리고 오크들의 술!

       

        – 술은 어디에서도 안사라지넼ㅋㅋㅋㅋ

        – 엌ㅋㅋㅋㅋ

        – 술은 존재하나보네욬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내가 여러 차원을 돌아다녔지만, 어지간하면 ‘술’이라는 것이 없는 차원은 없더구나.”

       

        그래서 가끔 고민해 보고는 한다.

        과연 지성체들에게 ‘술’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채팅창의 ‘ㅋㅋㅋ’이 점점 더 늘어나고, 나의 고민도 깊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 시간!

       

        “그렇게 파티가 끝난 후, 날이 밝은 후에 우리는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단다.”

       

        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이야기는 독자분들께 어떻게 보일지 걱정 됩니다.

    재미있게 보였으면 하지만, 아무래도 스팀펑크 로봇이나 우주선에 비하면 임펙트가…….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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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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