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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0

        가르진은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크쉬타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결국 난 실패했나 보군.”

       

        “…….”

       

        빼빼 마른 몸.

        하얗게 변해버린 털.

        주름살이 늘어난 몸.

       

        ‘대량의 생명력을 소모한 후유증이군.’

       

        타인의 생명력을 대량으로 흡수한 후, 그것이 대량으로 소모된 후유증이다.

        비유하자면…… 인간이 푸짐하게 살이 찐 후, 급격하게 살을 빼면 늘어났던 살이 축 늘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즉, 가르진의 몸은 대량의 생명력의 이동을 버텨 내지 못한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크쉬타르와 가르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런두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들어 보았자 이해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닐 테고, 들을 이유도 없었으니까.

       

       

        *            *            *

       

       

        – 아니, 우리는 궁금한데요?

        – 스트리머는 시청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라!

        – 보장하라!

        – 나!

        – 락!

        – 락

        – 우리도 알고 싶다!

        – 전 궁금함.

        – 락

        – 알려주세요!

       

        “…….”

       

        나는 항의가 올라오는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요놈들…… 요즘 점점 날 놀리는 수위가 높아지는 것 같은데, 한 번 손을 봐주어야 하나?

       

        – 헉!

        – 저 눈빛! 심상치 않아!

        – 모두 엄폐하라!

        – 이 글은 고양이가 썼습니다!

        – 읍읍읍!

       

        “…….”

       

        어휴. 눈치는 빠른 놈들 같으니라고.

        순식간에 고개를 숙여 버린 채팅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머릿속 기억을 뒤적거렸다.

       

        “으음…… 그때 그들이…….”

       

        그러니까…… 이렇게 대화했던가?

       

       

        *            *            *

       

        

        “가르진…….”

       

        “친우여. 날 용서하지 마라.”

       

        쇠약해진 가르진이 덤덤히 말했다.

        그런 그의 옆에서 가르진을 바라보던 크쉬타르의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난 전사로서 다시 살기 위해, 명예를 저버린 자다. 친구와의 우정도 저버렸다.”

       

        “…….”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짊어졌다.”

       

        “……하지만 나는 널 용서하겠다.”

       

        크쉬타르의 말에 가르진의 얼굴 위로 미소가 지어졌다.

        가르진이 힘없는 손으로 크쉬타르의 가슴을 툭 쳤다.

       

        “여전히…… 단순하군.”

       

        “그것이 나니까.”

       

        “그래…….”

       

        두 눈을 감은 가르진이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목숨은 건졌으나, 저렇게 쇠약해진 몸으로는 아마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이런 참상을 벌였으니, 원한을 가진 이들에 의해 해를 입겠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르진의 얼굴에는 조금의 두려움이 없었다.

        아니, 두려움은 있었다. 다만 평온함이 더욱 컸을 뿐.

       

        “쉬고 싶군…….”

       

        “그래…….”

       

        “…….”

       

        그렇게 그들의 대화는 끝났다.

       

       

        *            *            *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든 기억을 쥐어짜서 이야기해 주었더니, 다행히 채팅창에서 반응이 있었다.

       

        – 오!

        – 멋있다!

        – 캬! 남자의 우정!

        – 저것이 바로 싸나이!

        – 마! 싸나이 아닌교!

        – 캬아아!!

       

        “…….”

       

        왜 너희들이 좋아하느냐?

        인간들의 공감 능력은 어디까지인지 새삼 궁금증이 생긴다.

        ……나도 분명히 전생에 인간이었는데, 왜 인간들의 저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걸까?

        이유는 알지만, 그런데도 또 한 번 한탄하게 된다.

       

        어쨌든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아하니, 기억을 쥐어짜서 대답해 준 보람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 너희들이 좋아하면 되었다.

       

        “뭐, 어쨌든 그곳에서의 일은 끝났단다. 그 후엔 자잘한 일들이 있었지.”

       

        다른 패밀리 세력이 습격했다던가, 나와 크쉬타르가 그들을 쫓아냈다던가, 바바라 패밀리에서 반역이 일어났다던가…….

       

        – ……그딴 것들이 ‘자잘한 일’이라고요?

        – 자잘한 일의 스케일이 아닌데?

        – 엌ㅋㅋㅋㅋㅋ

        – 앜ㅋㅋ 드래곤님에겐 자잘한 일이라곸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처리한 후, 우리는 다시 여행길에 나섰단다.”

       

       

        *            *            *

       

       

        모닥불이 타오른다.

        그 안쪽에 새로운 장작을 넣어 주며, 크쉬타르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으냐?”

       

        “아아…… 그래.”

       

        괜찮다고 했으나, 크쉬타르의 얼굴에서는 수많은 감정의 휘몰아침이 엿보였다.

        나는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감정들이겠지.

        그렇기에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뭐냐?”

       

        “음? 이곳에서는 이렇게 위로하지 않느냐?”

       

        “…….”

       

        크쉬타르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런 내 입술을 손가락으로 툭 친 크쉬타르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삐질 줄도 아나?”

       

        “흠. 나라고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감정의 변화가 적을 뿐이지.”

       

        이것은 내가 이들과 종족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그냥 내가 이들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왔기에 벌어진 일이다.

       

        “너도 8,000년을 살아오면 나처럼 될지도 모르지.”

       

        “……8.000년?”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크쉬타르.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못 들은 걸로 하겠다?”

       

        “음?”

       

        왜지?

        모닥불을 뒤적거리는 크쉬타르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런 나를 무시한 크쉬타르가 모닥불 안쪽에서 잘 구워진 열매를 꺼냈다.

       

        “먹자.”

       

        “그래.”

       

        우걱우걱.

       

        나와 크쉬타르는 잘 구워진 열매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맙다.”

       

        “…….”

       

        나는 흐릿하게 들린 크쉬타르의 말을 못 들은 척해주었다.

       

       

        *            *            *

       

       

        – 어우.

        – 끝내주네요.

        – 그럼 다음 모험은요?

        – 빨리 다음 편을!

        – 와!

        – 그러니까, 저런 오크가 나중에 라나님에게 구애했다는 거죠?

       

        “구애라…… 틀린 소리는 아니지.”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에서, 크쉬타르는 나에게 도전했다.

        그리고 나에게서 승리하고, 그 자리에서 나에게 구애를 했다.

       

        “하지만 이때는 아직 여행 동료 정도였단다.”

       

        – 아. 스포 에반데.

        – ㅋㅋㅋㅋㅋ

        – 아닠ㅋㅋㅋ 갑자기 스포 뭔가욬ㅋㅋㅋ

        – 엌ㅋㅋㅋㅋ

       

        “음? 이미 알고 있던 것 아니냐?”

       

        지난번에 스쳐 지나가듯 살짝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 그건 맞음.

        – 아! 못 들었는데!

        – 이미 영상 올라와 있던데?

        – 유입이지만, 이미 영상 다 찾아봄.

       

        “호오.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있었지.”

       

        일전에 내 매니저들이 내 방송 녹화본을 이용해 편집된 영상을 올리자고 했었었지?

        그때 수익에 관해 별 관심이 없었던 나는 마음대로 하라고 하고 별 상관을 안 했는데,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제법 좋은 결과를 내는 모양이었다.

        비록 내 영상들이 대부분 수익화를 신경 쓰지 않는 터라, 저작권이라는 것 때문에 영상화하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내 매니저들의 노고가 담긴 영상들이니, 댓글이라는 것으로 매니저들에게 한마디라도 해다오.”

       

        – 넹.

        – 충성충성.

        – 영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 회사 때문에 라나님 방송 잘못 보는데, 영상 덕분에 매일 재방송 보고 있습니다!

        – 수고하세요!

       

        잠시 내 매니저들에 대한 칭찬 시간이 지나갔다.

       

        어쨌든 이제는 다시 이야기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꾸나.”

       

        – 헐?

        – 에반데.

        – 안 돼!!!!

        – 흑흑흑!

        – 아, 안 돼!

        – 왜요!!!!

       

        “왜긴? 시간이 다 되었으니 그렇지.”

       

        나는 시계를 가리켰다.

        어느새 훌쩍 다가온 방송 종료 시간.

        본래는 30분 정도 시간이 있었지만, 매니저들에 대한 노고를 칭찬하는데 다 써버렸다.

       

        – 아아악!!

        – 시간이 벌써!

        – 분하다! 시간!

        – 젠장! 나에게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었다면…….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어도, 나에겐 통하지 않을 텐데?”

       

        애초에 공간과 시간의 개념마저 변질시키는 ‘멸천의 독’을 다루는 것이 나다.

        게다가 필멸자의 시간 능력 따위야…… 초월자인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 부럽다. 초월자.

        – 엄마! 왜 날 초월자로 낳아주지 못했나요!

        – ㅠㅠㅠㅠ

        – 내일도 올 거죠?

       

        “음? 매니저들이 공지를 올렸다고 했는데, 못 봤느냐?”

       

        이미 며칠 전에 올렸다고 했는데?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여전히 모르는 이들을 위해 나는 입을 열었다.

       

        “내일은 휴방이란다.”

       

        – 왜애ㅐㅐㅐㅐㅐ!!

        – 아아악!!

        – 하늘은 날 버렸다!

        – 갸아아악!!

        – 우릴 버리시나이까!!!

        – 왜요!!!

       

        채팅창의 반응이 참…… 뭐랄까…… 재미있었다.

        한심한 것 같기도 하고, 호들갑 떠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저대로 두었다가는 단체로 삐질 수도 있으니, 나는 설명해 주기로 했다.

       

        “공지에 써두었다고 했건만…… 내일은 내가 볼일이 있단다.”

       

        – ?

        – ???

        – ??

        – 무슨 볼일이요?

        – 읭?

       

        “두 가지 볼일인데…… 하나는 손님맞이고, 다른 하나는 의뢰지.”

       

        손님맞이의 경우에는 나에게 접촉해 온 초월자와 대화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초월자들끼리의 일이다.

        즉, 필멸자인 시청자들에게 밝힐 주제는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이들에게 내세운 휴방 사유는 후자 쪽.

        인간 쪽에서 나에게 온 의뢰였다.

       

        “내일 광고 찍으러 간단다.”

       

        – ?

        – ?????

        – 광고?

        – 엥?

        – ㅋㅋㅋㅋㅋㅋ

        – ???

        – 진짜 예상 밖이넼ㅋㅋㅋ

       

        채팅창의 반응이 다시 한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점점 빨리 올라가기 시작하는 채팅창을 일일이 확인하며, 나는 자신만만하게 턱을 치켜세웠다.

       

        “(신)강냉이였던가? 아무튼 너희 인간들 사이에서 유명한 회사라는 곳에서 나에게 광고를 의뢰한 것이다!”

       

        – 엌ㅋㅋㅋㅋ

        – 아닠ㅋㅋㅋ

        – 라나님 우쭐 포즈 뭐임ㅋㅋㅋㅋ

        – 앜ㅋㅋㅋㅋ

        – 우쭐 하는 모습도 귀여워!

        – 앜ㅋㅋㅋㅋㅋㅋ

        – ㅋㅋㅋ

        – 라나님 하고 싶은 거 다해요!

        – ㅋㅋㅋㅋㅋ

        – 앜ㅋ 귀엽다 진짴ㅋㅋㅋ

        – 저게 어딜 봐서 할머니임?

        – ㄹㅇㅋㅋ

       

        나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치켜들었던 턱을 살며시 내렸다.

        음…… 내가 원했던 반응은 이게 아닌데?

        인간들은 TV에 출연한다고 하면 뭔가 엄청나게 부러워하지 않던가?

       

        ‘역시 인간들의 마음은 어렵구나.’

       

        나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텔레비전에 나오면 마냥 동네 영웅이던 시절만 아시는 라나님이었다.

    항상 옛날 이야기의 마무리를 적을 때는 양이 적어서 고민이 많습니다.

    오크 이야기의 뒷 내용은 다음에 기회 될 때 이어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이야기는 많으니까요!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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