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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3

        “스탠바이!”

       

        “레디!”

       

        “액션!”

       

        PD의 신호와 함께 촬영이 시작되었다.

        환각 계열 능력자의 대규모 환각이 발현되고, 이어서 배우들은 촬영장이 아닌 한적한 등산로에 나타났다.

       

        크와아아앙!!

       

        “꺄악!”

       

        “으아악!”

       

        환영으로 만들어진 몬스터가 울부짖고, 자리에 넘어진 배우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등장할 차례다.

       

        “멈추거라.”

       

        거의 보이지 않을 굵기의 미스릴 실을 이용해 띄운 내 몸이 슬그머니 내려간다.

        사실 마법을 사용해서 몸을 띄우는 것이 나을까? 라고도 생각해 봤는데, 익숙하지 않은 마법을 사용하기보다는 나에게 익숙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다고 의지를 담은 용언을 사용했다가는, 이 주변이 초토화될 수도 있고, 적당히 절충한 끝에 이런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이 정도로 가느다란 실이라면, 나중에 간단한 CG 처리로 안 보이게 할 수 있다나?

       

        어쨌든 지금은 촬영 중이다.

        그러니 대본대로…….

       

        “컷!”

       

        “응?”

       

        연기를 이어 나가려 했는데, PD가 촬영 중단을 외쳤다.

        환각이 사라지고,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의아한 얼굴로 감독을 바라보았다.

       

        “라그나님! 표정이 조금 어색합니다!”

       

        “표정 말인가?”

       

        근엄한 표정이라고 해서,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았는데?

       

        “많이 굳어 계셔요!”

       

        “으음…….”

       

        조금 이해되지 않았지만, 감독이 그렇다니 그렇다고 생각해야지.

        감독이 거짓말할 리도 없고, 이런 광고 촬영은 나보다 이곳에 있는 인간들이 더 숙련자들이다.

        당연히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겠지.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스탠바이!”

       

        “레디!”

       

        “액션!”

       

        다시 환각이 들어오고,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비명을 지르는 두 배우를 향해 허공에서 내려오며 대사를 말했다.

       

        “멈추거라.”

       

        “컷!”

       

        “으음…….”

       

        또다시 촬영이 중단되었다.

       

        “근엄함과 함께, 자애로움이 느껴지도록 부탁드립니다!”

       

        “그건 너무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에요!”

       

        “컷!”

       

        “컷!”

       

        그렇게 4번이 더 진행된 이후에야 우리는 완전히 촬영을 중단하고 모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원인인 나는 인간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

       

        “끙…….”

       

        “음…….”

       

        인간들이 나를 힐끔대며 침묵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내 눈치를 보지 말라…… 고 해도 어쩔 수는 없겠지.”

       

        이런 분위기는 이미 이전에 수천 번 이상 경험해 보았다.

        그렇기에 이들이 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음은 잘 안다.

       

        “하지만 너희들이 말을 해주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닌 나는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전혀 모를 것이다. 그러니 부디 용기를 내어 잘못을 지적해 주지 않겠느냐?”

       

        “……일단 표정이 문제입니다.”

       

        다행히 내 설명에 PD가 용기를 내었다.

        그는 조금 전 찍은 NG 영상을 가져오더니, 그곳에 찍힌 내 영상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느낌을 잘 잡지 못하시는 것도 있긴 한데, 근본적으로 표정이 너무 딱딱하십니다.”

       

        “움직임도 좀 어색한 것 같은데요.”

       

        “이 부분은 너무 심심해요. 좀 과장된 느낌이 있어야…….”

       

        PD의 용기와 함께,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도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지적을 하나하나 듣고 기억했다.

       

        “……인 것인데,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으음.”

       

        모든 지적을 끝낸 PD의 질문에, 나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지적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브루스맨의 표정 연기는 또 뭐고, 공기 반 소리 반은 또 무슨 소리인지…….’

       

        이건 내가 드래곤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내가 나이가 너무 많아서일까?

        이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분명히 내가 배운 한국어가 맞는데, 듣다 보면 마치 다르칸 왕국어를 듣는 느낌이다.

       

        “이해가 안 되십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단다.”

       

        인간만 아는 관용구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줘도, 내가 알아들을 수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난감하다는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하는 스태프들.

        그때 이찬영이라고 자신을 밝힌 배우가 말했다.

       

        “저희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거라면, 차라리 직접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

       

        “네? 그게 무슨…….”

       

        “제가 라그나님의 역할을 시범적으로 연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연기하는 것을 보고 라그나님이 따라 하신다면…….”

       

        “오?”

       

        ……그럴듯한 말이었다.

        일단 내가 듣기에도 솔깃한 소리였고, 다른 인간들이 듣기에도 그럴듯한 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찬영 배우의 말이 받아들여졌고…….

       

        “레디! 액션!”

       

        “멈추어라!”

       

        이찬영은 염동 능력자의 도움을 받아 내가 연기해야 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의 연기를 세세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떤 타이밍에 어떤 대사를 하고, 이 대사를 할 때는 얼굴 근육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것 기타 등등.

        그리고 조금 전 PD에게 들은 사항을 저 연기에 맞추어 분석했다.

       

        “좋아요 좋아! 수고하셨습니다!”

       

        “넵!”

       

        마침내 모든 연기가 끝나고.

        나는 땀을 닦으며 내려온 이찬영 배우에게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었다.

       

       

        *            *            *

       

       

        “컷! 좋습니다!”

       

        “나이스!”

       

        그 후 약 6번의 재촬영을 하긴 했지만, 결국, 나는 무사히 나에게 주어진 연기를 해낼 수 있었다.

        단순히 다른 존재의 역할을 연기하는 것뿐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어렵다니.

        좋은 경험이긴 하지만 동시에 난해한 경험이기도 했다.

       

        “휴우.”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수많은 스태프들이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래. 너희들도 수고했구나.”

       

        참고로 말하자면.

        이들이 ‘수고했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정작 촬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찍을 분량만 끝났을 뿐이다.

       

        그렇기에 아직 이곳에 있는 이들은 나머지 부분을 찍어야 한다.

        그저 조연인 내 촬영 분량만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준 것이다.

        다들 호들갑이 심한 것 같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좋은 식사 자리가 예약되어 있습니다.”

       

        촬영 중 맨 뒤에서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강바다 회장이 다가와 제안했다.

        식사라…… 식사 좋지.

        이쪽 세계의 음식은 이쪽 세계의 특징이 진하게 묻어 있기에, 그것대로 맛있으니까.

       

        “안타깝게도 오늘은 힘들겠구나.”

       

        하지만 오늘은 안 된다.

        왜냐하면 촬영 이후에 또 다른 볼일이 있었으니까.

       

        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강바다 회장은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얼굴 표정만 그랬다.

        나에게는 그의 ‘아쉬움’이라는 감정이 고스란히 보였으니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군요. 그럼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그래.”

       

        분장실로 들어가 화장과 의상을 다시 바꾸었다.

        그리고 강바다 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촬영장을 나왔다.

       

        “오늘 하루,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도 뵙길 소망하겠습니다.”

       

        “그래. 나 역시 재미있는 하루였다.”

       

        “살펴 들어가십시오.”

       

        강바다 회장을 비롯한 다른 스태프들, 인간들의 배웅을 받으며 리무진에 올라탔다.

       

        부우우웅!

       

        “그럼 바로 협회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러거라.”

       

        내 옆에 앉은 경호 헌터의 말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올 때 내 옆에 앉았던 어린 경호 헌터는 어디 가고, 처음 보는 경호 헌터가 앉아 있지?

       

        의아한 얼굴로 조수석을 바라보자, 어딘가 후련한 얼굴이 된 경호 헌터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 어린 경호 헌터는 어딘가로 끌려간 모양이다.

        이런. 부디 많이 혼나지 않기를 바라마.

       

        그렇게 차를 타고 헌터 협회의 건물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안내를 받아, 은밀하게 마련된 방으로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그래.”

       

        그곳에는 헌터 협회장 김두식.

        그리고 내가 부탁한 이동 계열 능력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저희를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니다.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인간들의 규칙을 따르는 것이 나의 뜻. 오히려 나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어 고맙구나.”

       

        김두식이 나에게 작은 책자를 건네주었다.

        대한민국 국적으로 표시된, 나의 ‘여권’이었다.

       

        우우우우웅!!

       

        “게이트, 준비 끝났습니다.”

       

        “다녀오십시오.”

       

        “그래.”

       

        협회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게이트를 넘었다.

        그리고 게이트를 넘은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많은 검은 군세에 둘러싸인 세상이었다.

       

        갉작갉작…….

       

        콰드득!

       

        “…….”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하늘에는 검은 태양이 떠 있고, 대지는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다.

        그리고 오로지 나 혼자만이 색채를 가진 채 서 있다.

       

        “하아~! 기껏 여권까지 만들었는데, 다 쓸모없는 짓이 되어 버렸구나.”

       

        = 왔군요.

       

        드넓은 대지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내 앞에서 검은 입자가 꾸물거리며 일어서기 시작하더니, 내 아바타와 흡사한 형태를 만들어 냈다.

       

        = 이런 형태인가요? 당신의 육체 구조는 비효율적으로 보입니다.

       

        “굳이 나의 모습을 따라 할 필요는 없다.”

       

        =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파스스스…….

       

        녀석의 몸을 이루는 검은 입자가 흩어졌다, 다시 뭉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녀석의 형체가 조금씩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 그보다, 저의 요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다. 나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내 손가락에 붙은 검은 입자.

        ……아니.

        ‘검은색의 작은 생물체’를 털어냈다.

       

        = ‘우리’는 ‘대군체 마디고’.

       

        = 군체이자, 하나인 초월자.

       

        = 어서 오십시오 멸천룡.

       

        = 당신을 환영합니다.

       

        “그래. 반갑구나 대군체여.”

       

        나는 수많은 작은 생물체로 이루어진 초월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광고 촬영 편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간단한 일상편으로 봐주셨으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다음화부터 다시 인방편입니다.

    다만 썰풀이는 아니고, 아마 합방으로 진행하지 않을까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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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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