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
– 진짜 드라마네.
– ㄹㅇ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드래곤에게 수작을 부리다닠ㅋㅋㅋ
– 와. 어쨌든 아들도 깡이 있긴 하넼ㅋㅋㅋㅋ
= “와. 그런데 그때랑 지금이랑 성격이 좀 다르신 것 같네요?”
도돌순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때는 옛날 성격이 완전히 죽지 않았을 때였거든.”
초월자가 된 이후로 내 원래 성격이 많이 수그러들었다지만, 몇천 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원래 성격이 쉽게 사라지겠는가?
지금도 본격적으로 힘을 내려고 하면 그때 성격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데, 옛날 그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저것도 원래 성격이 많이 죽은 것이란다.”
– 헐.
– 그래도 죽고 싶냐고 한마디 한 정도면 착한 것 맞음.
– ㄹㅇㅋㅋ
– 개미가 날 속였는데 ‘죽고 싶냐?’ 한마디로 끝낸 것이라면 착한 것 맞음.
– ㅋㅋㅋㅋㅋ
– 나였으면 곧바로 뒤집었짘ㅋㅋㅋㅋ
= “전 지금의 라나님이 좋아요.”
“호호호. 나 역시 지금의 도돌순이가 좋단다.”
= “꺅! 라나님이 날 좋아하신대!!”
– 왜 누나만!!!
– 으아아아악!!!
– 부럽다부럽다부럽다부럽다……
– ㅠㅠㅠㅠㅠ
– 우리도 좋아해 주세요!!
“물론 너희들도 좋아한단다.”
– 꺅!
– 아이 좋아!
– ㅋㅋㅋㅋㅋㅋ
– 헤헤헤헤헤
– ㅏㅏㅏㅏㅏㅏ
그렇게 좋을까?
나는 싱글벙글 웃는 도돌순이와 시청자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귀여우니 그냥 놔둘까?
=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그다음 말이냐?”
내 기억이 맞다면 분명…….
* * *
침묵에 빠진 광장.
할 말을 잊어버린 듯, 나를 바라보며 두 눈을 크게 뜰 뿐인 인간들.
그 가운데에서 내게 가장 먼저 말을 건 것은, 은인들의 아이인 아나티샤였다.
“왜…….”
= ??
“그렇다면 왜…… 지금 오신 거죠?”
= 음?
아나티샤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 양손 사이에서 천천히 일어선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빨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제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다 보고 계셨으면서! 왜! 왜 지금 온 건가요! 왜!!”
분노와 슬픔의 감정을 여과 없이 토해내는 아나티샤.
나는 그런 아나티샤에게 말했다.
= 아나티샤여.
“제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세요!”
= 그렇다면 널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
“부르지 마세요!”
= 흠?
이 아이가 지금 날 놀리는 것인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감정이 격해져서, 저런 논리도 없는 말을 아무렇게나 쏟아 내는 것이겠지.
나는 아나티샤가 정신 차릴 수 있도록 콧김을 작게 불었다.
해를 입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게…….
후우웅!
“꺅!”
= …….
이것도 좀 강했나?
내 콧김에 날아가려던 아나티샤를 앞발로 잡아 준 후, 조금 정신을 차린 아이에게 나는 말했다.
= 내가 지금 온 이유는 간단하다. 네가 죽을 상황이었기 때문이지.
“죽을뻔한 상황은 많았어요! 그런데 왜! 이제 와서…….”
= 네가 독을 먹었던 때 말이냐? 아니면 암살자라는 이들에게 죽을 뻔한 때 말이냐? 그것도 아니면 납치당했을 때?
“다 알면서…… 왜…….”
= 그야, 그때는 네가 죽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내 말에 아나티샤의 얼굴 위로 분노가 자리 잡는다.
그녀는 내 앞발을 때리기 시작했다.
별로 아프지는 않는데, 좀 아픈 척이라도 해줘야 하나?
“죽을 상황이 아니었다고?! 내가! 그때마다 얼마나 서러웠는데! 얼마나 무서웠는데!!!”
= 하지만 넌 살아남았지. 그렇지 않느냐?
“내 후견인이라며! 그런데 지켜만 보고 있었다고?!”
얼굴을 굳힌 아나티샤가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쉰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결국! 당신도 내가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거지! 내가 귀찮았던 거지?!”
= 난 한 번도 네가 귀찮거나,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적이 없단다.
“거짓말하지 마!”
나는 나에게 화를 내는 아나티샤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냐하면 그녀가 나에게 화를 내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계급이 높은 인간에게 육아를 맡겼고, 식량도 꼬박꼬박 먹었고, 포식자의 위협에서도 안전한 곳에서 자랐는데?
그런데 왜 이 아이는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일까?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드래곤으로서의 뛰어난 두뇌를 사용해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 왜 아나티샤가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인지 이해했다.
= 그렇군. 네가 왜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인지 이해가 되었구나.
“뭐?”
= 일단 말하지만 나는 인간이 아니다.
“그걸 누가 모르죠?”
= 그래.
그렇다.
이것은 드래곤과 인간 사이의 ‘상식 차이’에 의한 오해였다.
= 우리 드래곤들의 육아는 먹이를 물어오고, 포식자로부터 지켜 주고, 따뜻한 둥지를 제공하는 것 정도면 충분하지.
“???”
= 하지만 너희 인간들의 육아는, 우리보다도 더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더구나.
드래곤 사이에서도 가족 간의 감정교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들과 같은 지성체 수준이냐고 하면…… 사실 그 정도는 아니다.
우리 가족이야 ‘남편’과 ‘나’라는 이레귤러 덕분에 사정이 좀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 내가 생각하기에는, 먹이도 잘 나오고 포식자도 없고, 둥지도 적당한 환경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너는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그, 그게…… 말이 되는…….”
= 그 이야기는 조금 나중에 하도록 하자꾸나.
나는 아나티샤를 조심스럽게 들어 내 머리 위로 올렸다.
그리고 용금을 조작해 아나티샤가 적당히 앉아 있을 만한 자리를 만들었다.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잠깐 사용할 것이니 이 정도면 적당하겠지.
= 우선은 내 둥지로 가서 마저 이야기하자꾸나.
“자, 잠깐만!”
= 음?
날아오르려는데, 누군가가 나를 붙잡는다.
고개를 돌려보니, 황제가 다급한 얼굴로 나에게 소리쳤다.
“어, 어디 가십니까!”
= 응?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내 둥지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그, 그런데 왜 아나티샤를 데려가려는 것입니까!!”
황제의 말에 나는 다시 고개를 갸웃…… 거리려다 말았다.
머리 위에 아나티샤를 올려 두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면 아나티샤가 불편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틈에 황제가 말을 이어 나갔다.
“아, 아나티샤는 아직 저희 황가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데려가실 수는 없습니다!”
= …….
나는 황제를 바라보았다.
나의 ‘눈’을 통해, 그의 속마음이 보였다.
– ‘일단은 아나티샤를 데리고 있어야만 한다.’
= …….
욕망과 질투, 분노로 점철된 그의 감정.
그런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황제여.
“예, 예에…….”
=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순히 아나티샤가 죽을 상황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순히 아나티샤가 죽을 상황이었다면 굳이 내가 이곳으로 올 필요도 없었다.
그냥 원거리에서 금속 지배력을 사용해 아나티샤를 구해주면 될 일이었으니까.
실제로 그동안은 이런 방식으로 아나티샤를 지켜왔었다.
아나티샤를 습격한 암살자의 금속 무기들을 조절해 아나티샤가 다치지 않게 했고, 아나티샤가 위험한 상황에서는 주위 금속을 조종해 그녀에게 위험한 것들을 치웠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왜 내가 이곳에 등장했는가?
= 네가 우리의 계약을 먼저 끝냈기 때문이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 한 번도 당신과의 계약을 끝낼…….”
말을 하던 황제가 말을 멈춘다.
그럴 수밖에.
황제도 스스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유를 모르는 이들이 보였기에, 나는 조금만 더 친절을 베풀기로 했다.
나의 몸에서 흘러내린 황금이 뭉치고, 이어서 조금 전의 상황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아나티샤가 애통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 ……제가, 진정으로 당신들의 가족이었던 적이 있나요?
그런 아나티샤의 물음에, 황제가 대답한다.
– 더러운 사생아의 핏줄에, 참담한 죄를 저지른 널 단 한 번도 내 딸로 여긴 적은 없다.
= 이제 기억났느냐?
“…….”
= 가장 먼저 계약의 파기를 말한 것은 너다. 인간들의 우두머리여.
황제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몸을 덜덜 떨기 시작하는 황제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날아오르려다…… 잠시 잊고 있었던 말했다.
= 계약이 끝남에 따라, 너희에게 주었던 금광은 거두어 가겠다.
“그, 그건…….”
= 이미 주었던 금은 회수하지 않겠다. 그럼 이만.
펄럭!
그렇게 계약을 끝낸 나는, 내 은인의 아이를 태운 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 그게 끝?
– 그냥 그걸로 끝인가요?
– 뭔가 심심한데?
– 헐?
– 그걸 그냥 봐줬어요?
= “참교육은 안 했어요?”
시청자들과 도돌순이의 아우성이 대단하다.
하나같이 ‘그 괘씸한 황제에게 왜 참교육 안 함?’이라든지, ‘그냥 그렇게 끝냈어요?’라든지.
수많은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그래. 너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안단다.”
= “그럼 왜 그러셨어요?”
“조금 전 이야기에서도 말했지만, 어쨌든 황제와 그 일가는 나와의 계약을 지켰단다.”
= “……그게요?”
도돌순이와 채팅창이 다시금 활활 타올랐지만, 어쨌든 계약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진실이었다.
왜냐하면 의식주는 물론이고, 포식자로부터의 보호나 교육과 같은 부분은 잘 이루어졌으니까.
“그때는 지금보다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기였단다. 인간과 같은 무리를 이루는 지성체들은 단순히 의식주만이 아닌, 가족과의 유대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몰랐던 시기였지.”
그렇기에 그 부분은 계약에 넣지 않았었고, 그렇기에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어쨌든 ‘내’ 처지에서는 계약대로 잘 이루어졌고, 계약 당사자가 ‘계약 파기 합니다!’라고 외치니, 나 역시 ‘알겠다’라고 합의를 본 후 아나티샤를 데려온 것이고 말이다.
– 그게…… 그렇게 되나?
– 헐.
– 허미
– ㅋㅋㅋㅋㅋ
– ㅋㅋㅋ
– 진짜 우리랑 사고방식이 다르시넼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와. 그럼 그냥 그렇게 끝내셨어요?”
“그때는 그렇게 끝났단다.”
물론…… 단순히 거기서 끝났다면,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았겠지?
그런 내 말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 그럼 그렇지!
– 참교육 가즈아!
– 이예에에ㅔㅔㅔㅔ!!
= “오! 빨리 다음 편! 다음펴어어어언!!!”
“알았다. 알았으니 조금 진정하거라.”
나는 흥분한 도돌순이를 진정시키며, 다시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